"약품 연기에 두통, 생리불순, 하혈"... 스물셋 소녀의 슬픈 죽음
'46명의 슬픈 죽음'은 천안함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46명의 노동자들은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었다. 사망한 노동자들 중에는 스물셋의 어린 소녀도 있었고, 한 가정의 가장도 있었고, 어머니의 효심지극한 아들도 있었다. 어느 하나 가정에서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봄기운이 만연한 31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주최로 열린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제 기자회견'에는 봄의 화창함 대신 슬픔이 감돌았다.
고 박지연(23)씨는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화학약품과 X선을 이용한 반도체 검사일을 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지난 2010년 3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당신은 아픔만을 남기고 스물셋 어린 삶을 고통스럽게 마감했습니다. 고 황유미, 고 황민웅, 고 이수경, 고 김경미의 죽음에 이어 당신은 9번째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무려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렵기만 합니다. 더 이상 죽이지 않기 위해 삼성을 바꾸어내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산 자들이 더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고 박지연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만 120명을 넘었다. 이중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백혈병과 뇌종양 등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 또 지난 1월 11일에는 삼성전자 천안LCD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한 고 김주현(26)씨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
고 박지연씨의 부모님을 대신해 발언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이 젊은 나이에 왜 죽었겠냐"며 "삼성전자는 인체에 유해한 반도체 화학물질들을 직원들에게 교육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생산 물량이 많은 날에는 일이 많아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 하는 일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삼성공장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 박지연씨는 2009년 5월 15일 천안 근로복지공단 자문의협의회에서 "납에 제품을 담글 때 나오는 하얀 연기가 코로 바로 흡입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고,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어 물로 씻어도 약품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생리불순은 물론 하혈을 해 방진복에 피가 묻은 적도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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