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087417&mobile&categoryId=200000330
-북한에서온 간첩들이 대중을 선동한 사건.
1. 트랙백한 슈타인호프님의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린이가 다루기 쉽고 싸게 먹힌다는 점 때문에 많이 쓰이고, 그만큼 혹사 당했다.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10살만 되어도 노인처럼 주름잡힌 얼굴이 되었고 심지어 그 나이에 자살까지 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일이 벌어짐에도 공장주들은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데려다 먹여주고, 키워주고, 입혀주고, 일자리까지 주니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영국 정부는 거리에 부랑아들이 사라지고 어린 나이에 사회 생활을 익혀 대영제국의 훌륭한 국민이 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현실 속에 19세기 초 영국 공장 근로자의 평균 수명은 25세였다.
2. 인도에서 노예를 부려 공장을 돌리는 자본가는 당시 영국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9살짜리 어린이를 하루 13시간이나 일을 하게 하는 건 인도에서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노예는 돈을 주고 사야하는만큼 건강 관리, 생활 여건도 신경써줘야하는데 여기선 실컷 부려먹다가 죽거나 병들고 다쳐 일을 못하면 바로 내쫒고 다른 아이로 채워버리니 이런 모습은 식민지의 노예만도 못한 물건 취급이나 다름없다."
3. 당시 어린이 노동자 중 로버트 블링코라는 소년이 남긴 기록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준다.
"내가 8세 되던 해 한 남자가 원장의 소개로 우리 고아원을 찾아왔다. 그는 우리에게 예절바른 인사와 함께 부모 없는 우리를 위해 멋진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공장주였는데 자기 공장에서 일을 하면 멋진 정장에 스테이크와 흰 빵을 실컷 먹을 수 있고 공장 주인의 말을 타고 공원을 산책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해주고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은시계를 선물 받고 매주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서로 앞다퉈 지원했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서로 공장 주인의 말을 먼저 타겠다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진실은 곧 밝혀졌다. 공장에 도착한 순간 우리의 꿈은 산산이 깨어졌다.
우리는 매일 검은 빵 한덩이와 물로 하루 끼니를 때워야 했다. 단 한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일하면서 갖가지로 들볶이고 매질을 당하고 견디지 못해 도망치다 붙잡히면 쇠사슬로 묶여 채찍질을 당했다."
출처: 계몽사 학습만화 세계사 14권 자유와 민족주의의 물결(경제 번영의 그늘편)
이런사실로 선동한 북한 추종세력을 모조리 조사실에서 피자냄새고문을 당해봐야..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7 -신자유주의 좋다며 이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