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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북파 공작원의 글[BGM]
게시물ID :
humorbest_3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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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동물의피
★
추천 :
38
조회수 :
8840회
댓글수 :
1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3/25 19:01:3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3/25 15:23:33
북파공작원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을 말한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서로간에 무장공작원을 파견하지 말자'고 약속한 뒤 북파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북파공작원들은 최초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있는 지리산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다.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임무였다. 이들을 선발, 양성한 부대는 'HID로 불리는 '육군첩보부대'가 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48년께 만들어진 이 부대는 60년대말부터는 'AIU이름으로도 불렸다. 글이 길고 조금 두서없는거같으니까 시간있는분만 천천히 읽어보세요.. 어느 북파공작원의 글입니다(펌) 공작원들의 편제를 무슨무슨 부대로 알고있지만, 우리는 민간인이고 군업무와 다른 엄연한 회사편제로 되어 있읍니다. 사장엔 현역 중령, 전무는 소령, 과장은 대위, 계장은 중위 혹은 소위 그리고 회사원의 기본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체구가 작고 민첩하며 운동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2. 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 학력(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3. 뒷조사에서 배경에 이북에 연고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 (625때 남하 못한 친척이 있어도 안됩니다) 4. 인성교육(평가)때 성격이 과격하거나 우유부단해도 안됩니다. (교관들의 안목에서 불합격판정이 나면 인사도 못하고 소리없이 사회로 퇴출당합니다) 이런 조건들 하에서 선발된 사람들로 구성하고 훈련은 자체 유격교육장서 받습니다. 지금부터 말해도 될것만 하겠으며 곤란한 것은 (생략)을 달겠읍니다. 훈련의 기본은 긴말 필요없이 모래주머니 달고 모래조끼 입고 일이년동안 첨부터 끝까지 산으로 뛰는 겁니다. 뛰기를 기본으로 야전삽(작은것 따로 있음)으로 잠복호파고 두더쥐숨기, 침투, 지뢰 제거, 수영, 살인비술(소리없이 죽이는것), 맨손격투(태권도, 유도, 별의별것) 칼로 목줄따기, 칼던지기, 나무와 돌로 무기만들기, 사격, 독도술, 사진촬영술, 요인암살(실제 요인암살은 하지않고 배우기만 한다) 더불어 자물쇠따기, 담장넘기, 식량훔치기,산나물 구별하기, 동물 산채로 잡아먹기, 잠수 3분 이상(숨 안쉬고 3분은 기본이며 4~5분도 버틴다), 면도칼 이발기술, 적무기사격과 분해등... (훈련과 실제상황서 아무리 배고파도 민가에 침투하여 표안나게 일부분만 훔침. 훈련때는 일반 민가에 나중에 과장이 다니면서 우리가 말해준 민간인들에게 도난품 접수받아 넉넉하게 모조리 변상해 준다) 이런 것이 공작원들의 교육과정인데 당시 내가 맡은 주요임무는 몇번에 걸쳐 목표물 근접사진촬영이 주임무였으며 침투는 잠수정2회(돌고래인지 그것보다 작은 소형(생략) (서부로 남포) (동부로 함흥) 그리고 휴전선 직접통과 2회였으며, 3회는 무사했고 1회는 두번째 북파때 남포에서 현지고정(생략)과 일하다 경비병에게 발각되어(현지고정의 목숨은 우리의 목숨보다 중요함) 현지고정 피신 완료 후 세명이서 필사의 탈출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해주까지 미리 만들어진 탈출로를 가늠하여 지그재그로 북상하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다 내려오고 일주일동안 낮에 숨고 밤에만 산으로만 계곡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황해도 해주부터는 생략해야 함) 이렇게 필사의 도망으로 적들과 조우하지 않고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다. 이때 평양근교? 에서 적의 수색조에 발각되어 사격을 받아 일사분란하게 포위망을 구축한 적들의 틈에서 죽음 직전에 이르렀으나 잠복과 끈질긴 은밀이동으로 모면하고 도망을 친 것이다. (우린 적들 근처에선 낙엽도 밟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낙엽을 손으로 소리없이 밀어내고 발을 옮기고 다시 낙엽을 제자리에 옮겨 자국이 생기지 않게 반복적으로 한다) 발각이던 뭐든, 사격을 해오든 말든 우리가 적을 확인만 하면 아무리 배고파도 절대 잡히지 않는다.(만약 잡히면 청산가리캡슐) 이때 기본장비는 소음권총 3인 1조에 하나, 자동카빈소총 1인1정, 실탄100발, 수류탄 네알, 단도, 청산가리캡슐 응급약(어지간한건 혼자서 꿰메버린다) 만능열쇠, 올림프스망원카메라, 지도, 나침판, 머리빗, 면도칼, ?찌, 라이터, 수통, 숨쉬기빨대, 바닥 믿믿한 농구화, 이런 것들이고 식량은 날짜 계산하여 부족하게 가져간다 마른걸로만. (훔쳐먹고 잡아먹고 구해먹고) 격투술에 있어서는 특전대와 예를 들면 맨손이든 무기든, 그들중 누가 무술에 고수일지라도 절대로 북파공작원을 이길 수 없읍니다. 우린 실제로 목숨 걸고, 격투술을 같은 수준의 회사원끼리도 1대1부터 5대1의 실전을 익히고 (여기서 지면 죽기도한다) 깡으로만 해도 그 누구도 적수가 안되며, 뛰기에 있어서 산악구보와 험지의 구보는 세계적 마라톤선수보다도 훨씬 강인한 귀신인 것입니다. 이만하면 대체로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참고로, 현대의 특수부대일수록 전문성과 장비에 의존하는 것이지 무식하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체력만으로 임무달성하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96년도 동해에서 잠수함 좌초되고 승무원들과 공작원들이 산위로 피해 올라가서 대책을 의논하다 무장공작원 아닌 잠수함승무원과 일부 전문공작원들을 일렬로 앉혀놓고 전부 사살하고 피해버린 일을 기억들 하실겁니다. 제생각엔 그들은 사살당한게 아니라 전체 의논하에 도망칠 능력이나 교육을 받지못한 잠수함승무원과 잡혀서는 절대 안될 비밀요원들은 자발적으로 죽기로 결정하고 일렬로 나란히 앉아 고향생각에 처자식, 부모님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을 품은 채 무장공작원들로부터 한발씩 총격을 받고 죽어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금이야 장비가 좋아서 돌핀급이네 뭐네 호사스러운 잠수함으로 침투하고 도망치고 하지만 과거로 올라갈수록 선배들은 헤엄쳐서 아니면, 고무배로 침투해 임무수행하고 몸으로 때우며 누가 슬퍼하지도 않는 죽음을 당하며 사라져간 것입니다. 우리 회사원들 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이 상당히 많았고 새벽녁이면 멀리서도 들려오는 북한군 확성기소리에서 어디서 몇넘 잡아죽이고 일망타진되었다는 말들이 내귀에 직접 들려오기도 합니다. 복귀시한에 나타나지 않고 이후 회사에서 보이지 않으면 그는 죽었다고 봐야하고 우린 그저 눈물과 함께 말없이 술 한잔에 마음을 달래는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북의 남파요원들은 장비가 좋고, 우린 알려지지 않은 몇몇이서 활동하고 그런줄 알지만 제가 회사원이 된 그 시절부터는 이북보다 훨씬 나은 침투장비가 활용되었고 공작원 숫자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숫자였고 그들이 임무완수 후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사라진 분들이 많습니다. 공작조시절 북의 첩첩산중에 숨어서 가장 많이 나던 생각은 부모님과 가족들입니다. 물론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해진 사이클대로 행동하지만 어린나이의 우리도 사람이기에 공포와 고뇌가 엄청 많습니다. 휴전선 근무하던 민정경찰들은 공작조 북파내용에 대해 잘 알겁니다. 사원들이 침투지역 수색대로 파견되어 며칠동안 수색대로부터 침투경로며 제반사항들을 꼼꼼히 숙지하면서 망원경으로 근처를 이잡듯이 살피며 관찰하고 며칠 후 시시때때로 행해지는 수색대 입출과정을 허수로 반복하고 어느 순간에 민정경찰의 선두안내로 이미 휴전선 깊숙히 잠복해 있는 수색대에 인계되고 적진을 살피고 서로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만져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정해진 코스로 침투하고, 복귀때도 휴전선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는 수색대 도움을 받아 그들 인솔하에 오는 것이지 람보처럼 헬기 타고 기관총 날리며 폭탄 터트려 가면서 요란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성질 나면 헌병이고 특전이고 시비걸어 패버리는 싸움 엄청 많이했지만 군인이라도 수색대 휴가병들한테는 조그만 시비도 하지 않았으며 거리에서 만나면 그들 델고 가서 밥사주고 술사주고 용돈도 꺼내주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며 회사 자체 훈련장 주변 마을사람들과의 유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북파출신들이 뭔 살인이나 하고 괴물들이나 되는 걸로 사회적으로 인식들 많이 하지만 우린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사원인 것이지, 깡패나 강도같이 그런짓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의 공작원들이 남파될 땐 시기적으로 겨울을 택하는데 그것은 그들 작전이 성공하면 뒤를 이어 얼은 임진강을 돌파하여 전면침공을 하겠다는 배경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남한의 공작원들은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침투와 탈출을 하는것이 그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왜 김신조대원들이나 삼척,울진지구에 침투했던 무장공작원들이 그 추운 숨을 곳도 없고 먹을것도 없는 겨울에 내려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작전목적이 전면남침의 선봉이었기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서부지역에 주둔하던 미군들은 평시에도 얼어붙은 임진강을 무작위로 곳곳을 폭탄으로 터트리곤 했읍니다. 미군들에 의한 휴전선쪽으로 포병사격연습 또한 사격도 하고 임진강 얼음을 깨는 일이기도 했읍니다. 사격도 하고 공비침투를 막기 위한 얼음을 파괴하는 실제연습도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남한은 북으로 전면전을 시도할 무력침공 의사가 없기에 침투조를 은신하기 좋은 늦은 봄부터 가을 이전에 행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우리사원들의 군사전술은 상대의 편제와 수법을 알고 우리가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배우는 것이지 그들과 맞장을 떠서 격파하고 섬멸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공작원들의 편제는 세계 어느나라나 거의 같은 것이고 공작목적에 따라 2인1조부터 칠팔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고정들로부터 전달받는 중요사안은 저와같은 회사원들이 침투하여 접선하고 넘겨주고 받아오고 더 위중한 굵직한 사안들에는 변수는 많지만 회사원들이 호송하여 현역 영관급들을 침투시킵니다. 체력과 안전 때문에 이런 작전엔 물고기를 타고 함흥지역으로 신의주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이미 그들이 00년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라서 지금은 군사기밀도 아닐 것입니다. 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장거리침투시엔 물고기(잠수정)를 타고 침투가 시행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더 잘 압니다. 제가 회사에 들어가기 몇년 전 물고기 타고 신의주로 침투하여 일하던 해군소속 공작조가 전원 몰살 당했다는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대령과 전원 위관급 이상의 정보요원들로 구성되고 전문 공작원들이 호송하여 작전하다 9명이 몰살한 이야기는 내부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읍니다. 실미도 친구들은 훈련이 끝나면 미군수송기로 평양 근교로 낙하산 침투시키기로 계획되었던 일이고 특공작원들이 김일성궁으로 침투하여 깨박살내어 보복한다는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일반인들 생각엔 북한이 대공시설이 엄청나고 어쩌고 부풀려진 말에 의하여 대단한 걸로 평가하지만 남한과 북한 어느곳이든 안전하게 침투하고 탈출할 수 있는 허술한 곳이 대단히 많읍니다. 당시 비행기 침투는 허큘리스 프로펠러기가 위성첩보에 의한 사전검토된 안내에 따라 저공침투하여 낙하산으로 뿌리고 남하한다는 치밀한 계획이 미리 있었던 것이고 특공작들은 평양서 김일성궁을 습격하여 뽄때를 보이고 전원 죽음으로 끝난다는 계획이었으나 남북화해분위기로 그들의 문제가 폭발하여 버스탈취하고 전원 사망하는 비극을 맞은 것입니다. 당시 공산 개인화기들을 월남에서 무진장 들여와 분해결합부터 사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하였으나 공작원들이 지참하는 개인화기는 실미도처럼 전원 카빈소총이었는데 이유는 소형이며 총기휴대가 간편하고 고장이 적으며 자동과 조준사격이 가능하다는 장점 등으로 항상 카빈만을 휴대한 것입니다. 아카보소총이 성능이 좋고 발각되어도 이북군인인 줄로 알게 될거고 어떻고 하지만 우리가 북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백주대낮에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므로 침투상황과 교전에 가장 효과적인 성능의 총기가 카빈인 것입니다. 영화 속의 독일군이나 미군처럼 기관단총을 휘두르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영화주인공들처럼 폭약 잔뜩 짊어지고 가서 파괴하고, 수류탄을 던져서 살상하고 부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작조는 고정들과 접선해서 주고받고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고 위성으로 확인했으나 실체구별이 잘 안되는 것들에 대한 세밀한 근접촬영 등이 목적인 것이지 뭔 이상한 무전기로 이불 속에서 소리 죽이면서 무전 치고 그런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파공작원은 키 큰 사람을 쓰지못합니다. (기밀이 아님으로 몇가지 조금 쓰겠읍니다) 잘 먹지 못하고 사는 이북사람들 과거나 현재 평균신장에 기준해서 공작원을 선발하고 침투시키는 것이지 어느 무식한 자가 이북사람들 작은 체격에 당장 눈에 표가 나는 건장한 젊은 것을 선발해서 침투요원으로 쓰겠읍니까. 에베레스트원정대처럼 넘치도록 비행기에 짐을 실어가지고 갈 수도 없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도록 최소의 분량만 휴대하고 민첩한 기동성과 은밀이 기본인 침투공작조가 어이 그런 애들로 구성이 되겠으며, 만약 그런 애들 보낸다면 두더지굴 파고 숨는 데만 몇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잠복호(비트) 파는 것이 뒷마당에 김치독 묻기 위한 굴파듯이 푹푹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작게 신속히 파고 숨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장난이 아닌 눈몰 속에 이뤄지는 겁니다. 야전삽도 아닌 모종삽 비슷한 작은 삽으로, 적지에서 소리없이 파고 준비한 작은 자루에 조금씩 담아서 먼곳으로 가서 사방으로 아주 조금씩 풀밭이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흐트려서 전혀 표 안나게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위장용 덮개 만들 죽은 가지들 줏어서 발자국 다 지우면서 다시 와서 반복적으로 파고 버리는 것이고, 웬수같은 발자국 그거 완전무결하게 없애고 밤새도록 구덩이 하나 만들어 누가 바로 앞에서 오줌 누다가도 발견 못하게 위장하고 숨는 것인데 어이 장대같은 애들을 침투공작원으로 이북에 침투를 시킨다는 건지 웃지 않을 수 없읍니다. 김장독 묻는 것도 힘든 일이건만 내 목숨 유지할 두더지굴 파는 것이 한두시간에 해결되는게 아니고 군인들처럼 무지막지한 성능의 야전삽으로 부담없이 쉬어가며 잠복호 만드는게 아닌데... 수색대에섞여서 총과 몸만 들어가고 날이 어두워져 배낭이 도착해 잠복하며 운동화로 바꿔신고 몇시간을 대기. 이때는 수색대가 좌우뒤로 이선삼선 초비상 경계하고 군인들도 철망밖에서 비상대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시간이 지났는데 언제 있었는지 수색대 두명이 앞에서 기어오고 적시라는 신호에 수색대와 인사 나누고 내가 가운데서 기어 침투하였다. 이북쪽은 훈련때보다 침투가 너무 허술해서 쉽게 넘어갔다. 지뢰밭, 모래밭, 얼기설기된 목책, 철조망(철조망도 아주 허술해서 지뢰지대 빼고는 시골목장의 담장과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비슷하다) 잠시후 배낭 벗고갔 던 앞에 형이 다시 돌아와 배낭 메고 앞서고 초병지대를 비켜 빠져나간 것이 침투의 전부였다. 몇백미터를 조심스럽게 기고 오리걸음하고 이후부터 형을 따라 뛰기 시작하는데 두형들이 여기서부터 무조건 따라서 뛰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사주경계없이 뛰기만 하였다. 이때부터 00까지(이런데 강계땅이라고 하면 놈들이 좀 헷갈릴건데) 밤에만 산으로, 짧은 들판을 달려 5일 걸리는데 무풍지대의 험준한 산에선 두더지굴이 필요없이 미리부터 나뭇가지 꺾어서 옆구리에 끼고 뛰다가 몇키로 더가서 그걸로 시야가 좀 확보되고 움푹한 곳에 깜쪽같이 이리저리 걸치고 쉬고 교대로 잤다. 양말 갈아신고 운동화 갈아신고 주식은 하나씩 포장한 돌처럼 단단하게 눌러말린 라이터만한 소고기, 미룩구만하게 육등분으로 떼어서 먹게되어 있어 그냥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려 녹여먹듯 하면 된다. 절대 배 안고프고 (이게 이북촌애들 미숫가루하고 달랐다) 이젠 기밀도아니고 다른 친구들은 미숫가루 와 볶은쌀 가지고 다녔다는데 난 이해가 안감. 그거먹고 어캐 뛰는지 (하루이삼일 단기공작조는 가능) 나물은 뛰다가 잠시 쉬면서 뜯어먹고, 00형 하는 말이 너 이거 산나물 잘 먹어야 오래 산다. 형, 이짓 하면서 오래 살거 같지 않은데 우리 세명 모두... 형들이 이때 얼마나 킥킥거리면 웃던지... 잠 잘땐 약간 경사진 위쪽으로 다리를 놓고 머리를 낮게 하고 자면 피로가 확 풀린다. 첨엔 불편하지만 숙달되면 아무렇지도 않다. 이렇게 몇날을 낮잠 자고 인적이 조금씩 길에 보이는 00서 몇키로 떨어진 곳에 진출하여 위치 잡고 두더지굴을 만들고 때를 기다렸다. 하루를 교대로 실눈 뜬 채 반잠을 자고 (대소변은 상황에 따라 쪼그리고 앉아서 해결하고 바닥에 흙 덮으며, 일반인들은 공작원이 맨날 구덩이나 파고 다니는 줄로 알지만 구덩이는 한번 장거리 침투에 두세번이고 그나마 단기공작들은 팔 일도 없고 잠 잘 일도 없고 그런 것이다.) 날이 어두워진 초저녁 모두 밖으로 기어나와 형들이 하나씩 비닐과 헝겁에 싼 뭉치를 나에게 넘겨주며 그걸로 막걸리나 좀 사와라 (웃음) 00시까지 안오면 성공한 걸로 알고 우린 기다리지 않고 떠날테니 그런 줄 알고 00일에 00서 만나고 착오 생기면 xx서 몇일 몇시, 또 착오 생기면 **서 몇칠 몇시. 이렇게 세곳을 정해놓고 입을 맞추어 숙지하고 형들과 작별하고 은밀과 신속으로 나르듯이 목적지로 갔었다. 혼자서 가니 염려도 덜되고 잽싸게 다니고 이렇게 좋은데 저 형들이 날 보호한다고 델고다니니 내가 돌지... 씨부렁거리며 그래도 형들이 지리는 확실하더만. 한번도 틀린 적 없이 정확하게. 고참이 달리 고참이겠어... 목적지 근처에서 산너머쪽으로 빠르게 풀을 떠내고 땅을 파서 총과 배낭 감추고(이땐 밟고 지나가도 모른다) 소음권총 한개와 뭉치돈만 가지고 미끄러지듯이 15리 정도를 나르듯 뛰어 그 시각 뭘 끌고 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 확인. 표식으로 단 한번에 알아보고 미리 가서 잠복대기하고 있다가 미끄러지듯 집안으로 잠입 성공. (암구호 이런거 필요없음) 돈뭉치 전해주고 숫자로 알려주고 목욕하고 옷갈아 입고 된장찌개에 밥 배불리 먹고 이틀동안 잠만 잤다. 형들이 떠나는 시각을 보고 이젠 형들이 돌아가고 있겠구나 무사히 잘 가야 할텐데...(이번엔 중강진 어느 집이라면 이 넘들 헷갈리겠지) 나머지는 다음에 쓰기로 하고 여기서 일단 줄입니다.(아무리 이북애들이 봐도 내가 어디 다녔는지 모릅니다) 어디의 어느집을 어떻게 가고, 거리가 얼마이고 몇집을 가고 이런 것은 그냥 알아서 혼자만 보시면 됩니다. 잠을 자든말든 골목길 걷던 얘기들이며, 시내구경하든 뭐하든 사실은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대충 뒤범벅으로 썼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이틀동안 잠을 자고 몸을 추스리고는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목표를 찾아 다시 떠났다.(이때부터 점조직)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접선은 그동안 북파되기 전 교육을 통해 수없이 완전무결하게 암기한 후에 각기 만약의 불행을 대비해서 장소와 시간을 달리한 1 2 3차로 나뉘어 시행되어 지는 것이다. 김신조 개떼들처럼 수십명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세한 지도가 뭔 필요 있으며 달달 외워버린 지형지물에 모두 두뇌 속 암기력을 이용하여 공작이 전달되고 받는 것이지, 뭔 스파이영화처럼 무전을 주고받고 어쩌고? 허리띠 속에 집어넣는 사진필림 쪼가리말고 가지고 올 것은 무엇이며, 기밀도 아닌 누구나 다 아는 공작금 전달해주고 오면 되는 것이고 나머진 갖가지 정해진 신호로 그들이 자체적으로 본사와 오가는 것인데 ... 내가 입고간 옷과 신발은 이미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남김없이 아궁이서 소각되고 날이 어두워져 한뭉치 지참하고 눈인사 후에, 이번엔 산 아닌 한적한 들길로 운동선수처럼 뛰어 두번째 약속장소 근처로 이동해 아무도 모르는 신호표적 확인하고 다시 뛰어 두번째 표적 확인하고 (압록강옆 어느 도시라 하면 이놈들이 00년 지난 지금에 이글 보고 머리 굴리고 난리치며 찾으려고 생고생 좀 할거 같다) 어느 집으로 찾아 들어가고 인사 나누고 휴대품 전달해주고 나누기 곱하기 몇개 맞춘 다음에 목욕하고 밥 먹는 사이 옷과 신발 소각완료하고 그 도시 학생복으로 갈아입고 (여기서부터가 기억력이 확실히 필요할 때임) 조심스레 나와 골목길로 골목길로 가방 둘러메고 놀면서 천천히 걸어 표시된 곳으로 가 주위 살필 것 없이 당당하게 들어가서 내방?으로 들어가면 그걸로 임무끝... 며칠동안 머무르며 공부? 하고 누나하고 거리구경에, 뭐에 지시된 곳을 미리 방문해 보고 버스도 타보고 다시 이틀 머무르며 공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된 도주로를 따라 되돌아가서 숨겨놓은 총과 소지품 꺼내고 복구해 놓은 연후에 형들과 만나기로 한 지역으로 이틀밤을 나르듯 뛰어 안내를 받으며 복귀한 걸로 첫번째 임무는 종결되었었다. 오고가는데 북한이나 남한은 공작원들이 휴전선까지 도달은 걸릴 데 없고 허술했던 철조망과 지뢰지대만 잘 빠져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이북은 인구밀도가 적고 산악이 많고 교통량도 적어서 온 사방천지가 무풍지대라고 보면 맞다. 북한의 전방지역은 남한보다 군사시설도 많고 북한군이 곳곳에 주둔해 있지만 주둔지 근처가 남한과 북한의 맹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시간차로 총 한자루만 들고 마중나와 있는 접선과 연결되어 다시 그의 안내로 조심스레 철조망 넘어서 들어온 것이 나의 첫 임무였다. 올때나 갈때 지뢰탐지 전문가형이 앞장서고 나머지는 같은 행동으로 사주경계하며 소리없이 따르면 되고 각기 다른 세개의 접선시간 중 어느 하나에 맞추어 수색대의 안내로 재빠르게 따라붙으면 즉각 암구호 속에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장거리공작조는 베테랑 중 베테랑에서 선발되고, 어느 경우라도 얼굴만 기억하는 것이지 두번 다시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조직되어 있고 매번 호송담당이 바뀌고 단기공작조처럼 폭파를 위한 팀웍이네 뭐네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임무가 끝나면 각자 악수하고 안아보고 마음 속으로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각기 다른 차량으로 신속하게 헤어지는 것이며 여하한 경우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 일반인들 말하길 주변에 정보부 다니고 뭐하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말하시는 분들 있읍니다. 그냥 제가 좀 웃어드리고 넘어갑니다. 정보부 아닌 보안대나 그런 군인출신들이나 대공계 경찰출신들 그런분들이 사회에서 말하길 엄청난 사람으로 보이려고 정보부가 어떻고 간첩이 뭐고 대북공작 이런말 과거부터 항상 잘 하십니다. 물론 그중엔 정보부서에서 요원 말고 평사무원 혹은 평직에 근무한 분들도 있겠지만 그들 신원은 확실하지만 정보부 사람이 아니라고 보면 맞습니다. 정보의 중요요직을 담당하거나 기밀사항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부인한테조차 직업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고 그것이 그쪽 밥 먹고사는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정보부장이나 직급이 높고 사회활동 접하는 고위층들은 얼굴이 알려져 있지만 그외의 사람들은 일반사회에서 어떤 사진도 찍지 않습니다. (자녀졸업식에 가서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이하 제가 말씀드리는내용들은 이북에서 이미 알고 있는지 오랜사항들로 기밀이 아닌것만 올립니다 정보원들의 사회적 공식직업은 외무부직원, 해외지사, 학원강사, 공무원, 철도국원, 체신부직원, 00체육단체, 00사회단체, 00여행사 등 남북한 모두 이렇게 평범하게 되어 있읍니다. 그들의 명함이나 증명서도 그렇고 사용하는 대표전화도 00학원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지 뭔... 통금 위반으로 경찰서 잡혀가서도 큰소리 한번 못치고 야단 실컷맞고 뇌물 주고 나오기도 하고 그렇게 철저히 사회 속 평범한 양민으로 사는 것이지, 뭔 때려부시고 경찰서장이 와서 굽신거리고 어쩌고... 남북한 모두 대북과 대남담당공작부서는 정보부내에 이름은 있으나 유명무실이고 실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북한도 철저하게 이 문제를 독자적으로 따로 관리하고 남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의 정보요원들도 엔지니어, 컴퓨터프로그래머, 현장소장, 비서, 하청회사 직원 등 이런식으로 일반직원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평범한 직함으로 있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대기업의 정보수집능력이 국가중앙정보부를 상회해서 국가안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직접적 연결고리가 되고 그렇습니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절대권력자의 후광으로 남한과는 다른 조건이지만 우리도 대북은 별개문제로 정책과 정권의 영향을 받지않으며 지속적이고 독자적인 활동을 합니다. 남북한 모두 대북대남 활동자금은 중앙정보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일반기업 융자금형식을 취하고 이부분에서 이북이 남한에 유입시키는 공작금에 훨씬 자유로울 것으로 판단합니다. 만약 이북에가서 정치국 외에 대남관련부서에 전화한다고 가정하면 네 00농장입니다. 00사업소입니다. 양측 모두 과거부터 앞으로도 이렇게 끊임없이 철저하게 자신들을 숨기면서 활동해 갑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이상한? 무전기의 신호체계는 없어졌읍니다. 탐전이 너무 발달하고 위험요소가 큰데다, 근자에 인터넷과 셀룰라폰의 발달로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지난 96년도 잠수함침투좌초때 무장공작조가 산으로 북상하면서 비퍼형발신기로 두세번 이북공작부에 이동위치를 알린 적 있읍니다. 한번 누르면 0.1초가 소요되는, 아주 미세한 전파도 탐전이 되는데 요즘들어 누가 무전기를 사용하겠으며 첩자용 무전기는 구시대유물로 이미 25년전 박물관에 안치됐다고 보면 됩니다. 무전기 사용하지 않는 신호전달체계에선 남한이 절대적 우위에 있었는데 요즘은 남파공작들이 한국의 인터넷을 통하여 훨씬 자유롭게 직접적 전달이 잘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간첩 잡아 용돈쓰자"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간첩은 걸인차림의 행색이 많았지만 요즘은 장,단기 남파공작이나 고정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텔리젠트한 계층이 대부분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근자에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교포들 속에 상식적으로 상당한 숫자가 있을 것이고 위급을 요하거나 고위층이 직접 개입해야 할 그런 사안이 아니라면 육상과 해상침투도 삼가할 겁니다. 북한만이 아닌 중국정보부의 대 한국첩자가 조선족들 틈으로 상당수 유입되었을 것이고 군사뿐 아니라 산업에 대한 첩보활동 이런 것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중국에 의한 대한군사첩보가 이북의 대남첩보수행보다 비중이 많아지고 중대하게 될 것이며 중국을 비지니스때문에 자주 왕래하시는 분들은 어느 경우도 현지인과의 대화에 자신의 군사경험발설을 삼가해야 하고 입단속에 유념해야 합니다 (정보는 국가간이면 어떤것이라도 뭐든지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 이 시간도 남한지역에 상당수 침투하여 있을 북한의 남파공작원들에 대해 저의 소견을 써볼까 합니다 공작원은 인간의 극한상황을 견디도록 훈련된 기계와 같은 사람이므로, 이런 남파공작원 포착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국내에 이미 들어와 눌러 살고있는 고정들이 여행을 가장하여 침투가 용이한 지역을 찾으러 항상 다니는 것이고 남한의 실정을 잘 모르는 북한의 정보처에 사진과 도표등 상세한 정보가 전달되게 됩니다. 수십년전부터 남한 전지역을 이잡듯 뒤져 휴전선부터 해안일대 등 몇천분의 일의 아주 세세한 지도로 작성이 안된 곳이 없을 겁니다. 고정들의 목표는 군사시설뿐 아니라 사회의 일반적인 지식도 고정의 목표이며, 일반인에겐 전혀 무관심한 도로와 교량부터, 등산로며 등산객 출입의 대충적 숫자와 등산로 파악 등 사회 일각의 눈엔 스쳐가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되며 바다낚시꾼으로 가장한 고정의 정보를 토대로 해안침투에 대한 정보파악, 이렇게 고정들로부터 파악되고 전달된 것을 토대로 작전수뇌부에서 계획을 세워 남한일대의 고정들에게 명령이 시달되고 이차삼차 세밀한 분석과 실현가능성을 분석완료해서 성공가능한 지역으로 침투하게 됩니다. 남북한 막론하고 고정의 헌신적 정보를 토대로 하지않는 침투는 실패확률이 너무 많으므로 공작들의 침투엔 반드시 고정이 있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들 잡아내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요즘은 차량과 도로가 발달되고 레져가 발달해서 산으로 들로 해안가로 놀러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실상 특정 몇곳을 제외하고는 통제도 어려울 겁니다. 남한의 정보는 북한에 완전히 노출된지 이미 오래전이고, 북한지역은 미국의 정찰위성과 산업위성들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선 정권들의 협약 이런거 상관없이 정보부처 단위로 내부적으론 끊임없는 침투가 이뤄지고 누가 대통령을 하던, 김일성이 죽던, 정보부장이 잘리고 이런 것은 공작하고는 사실상 무관하다고 보면 맞고, 위정자와 국회의원들에 의한 정보부의 기밀문제들이 심사되거나 결정되어도 안됩니다. 4년이나 5년짜리 임기의 한시적 월급쟁이인 국회와 대통령이 간여할 일이 아니란 것이 저의 소견인 것입니다. 그 애들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각 부서적 체계로 연속되어 내려오는 문제들이라 깊은 지식없이 권력으로 정보처를 좌지우지 결정짓는다면 수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적지속의 국방의 촉각들이 우수수 무너져내리고 적지의 정보망이 붕괴되면 국방의 안위와 국민의 생존이 즉각적으로 중대한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대한민국의 실권을 잡던지, 정보부장을 자기사람으로 채우던 말던 대북공작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야하고 예산의 삭감을 하거나 보직을 멋대로 인사처리해서도 안됩니다. 대북공작은 몇년임기후 짤리는 대통령의 자리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북에서 남한에 고정 만들기는 쉬워도, 남한에서 북한에 고정을 보존하기 위하여 자결하고 죽어간 알려지지 않은 애국적 목숨이 너무도 많고, 그들의 첩보를 토대로 국방의 지표가 되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정권들이 대북업무를 실적도 없고 정치에 생색도 안나는 구석이라 하여 홀대들 많이 했지만 그들이 현재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불가결하게 공헌한 것이 대북공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체의 각부분에 있는 말초신경이 없으면 감각이 둔해져서 위험을 감지못하고 위험 대처능력 부족으로 반사성이 둔화되어 죽음을 당할 공산이 큰 것과 같은 겁니다. 다시 요약해서, 각 부대 단위별로 일선의 첨병과 수색과 정찰없이 전투를 하면, 그 부대의 생존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내무반 초병이 없이는 잠자는 사병들의 목숨이 없는 것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 생각엔 첩자가 모르스 무전기로 소리내어 정보를 전달하고 007처럼 변장에 능하고 소음권총을 쏴대고 여자를 거느리고 이런 환상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는 지역이 따로 있을 것이지만 전 솔직히 대충 감으로 생각은 해도 그 방면은 전혀 모릅니다. 침투공작원이 필요한 것은 남북한 모두 대체로 공작금 전달, 요원호송, 정보반출, 납치, 폭파, 암살 등 필요에 의해 이뤄집니다.(군장성 납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이런데 사안을 두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을 납치하여 무장공작원 및 간첩교육용으로 사용한 것이 과거엔 많았읍니다) 지금은 탈출한 북한주민만으로도 쉽게 현지실정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겁니다. 여하튼, 북한의 공작원이 침투하여 그가 사회에서 암약하는 고정이 된다면 찾는 방법이 어렵겠으나 무장공비로 일컬어지는 호송과 정찰 및 파괴를 하는,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산속에서 활동해야 하는 남파무장공작원은 일반병사들이 이들을 다루기엔 단수가 너무 모자른 것으로서 근래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북파공작원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고충을 각곳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짐승처럼 훈련시켜 국가가 목숨을 저당잡아 이용하고 사용가치가 없어지자 개패듯 패기도하고 보수를 지불않고 부상자에 대한 원호대책도 없고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뒷조사를 해서 직업을 갖게하지 못하는 방해책동과 여권발급 불허해서 해외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도저히 그런 것입니다. 공작원 출신들중에 이 부분에 회의적인 분들도 많을겁니다. 저는 그런일 당해보지 않아서 수긍이 안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사생결단하고 집단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작원의 구성을 특성상 현역군인으로 할 수 없는것을 국민들이 먼저 이해하셔야 하고 국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들의 임기후 뒷조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 북에 다녔으니 혹시라도 북에 이중등록된 첩자가 아닐까? ** 무장공작원으로 인간기계가 되었으니 퇴직후 사회에 나가서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 저들이 북에서 파괴공작하던 경험으로 남한을 부수지는 않을까? ** 침투하여 문서절취하던 실력으로 남한의 정보를 빼가지 않을까? ** 직장 잡아 일하다가 사회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을까? 이 외에도 여러가지 염려되는 문제들로 인하여 그들을 이용후에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황당한 짓들이 있는것 같은데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폭력성이 좀 있는 사람이라 해도 내나라 국민이고 그들을 그렇게 훈련시킨 것도 대한민국 사람이었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사명을 받고 이북에 침투하여 암살하고 폭파하고 절취한 것인데 이후에 그들을 애국지사로 받들지는 못할망정.... 단기공작원 그들의 주장도 일리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세히 각자의 주장을 살펴보니... 제 의견은 가급적 그들을 퇴사 후에 대한민국의 인적자원으로 활용을 하되 그들의 체력과 절대적 경험을 바탕으로 남파 무장공작원을 색출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활동케하면 합당할 것 같습니다. 직업군인의 보수와 처우로 하고 직업군인에 적용되는 혜택을 부여하고 임기중 사망하면 국립묘지안장부터 사망시 지급되는 위로금 및 연금등 각종 혜택을 차별없이 부여하면 그들 공작원 출신들도 좋고 국가도 좋은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근자에 대북단기공작이 축소되었다 하더라도 북측에 대한 남한의 공작은 중지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물론 분위기상 파괴공작은 삼가해야 할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나 물색하고 꼬임 위주로 하던 과거의 행태를 버리고 북파공작원을 사회로부터 공개모집해서 지원자에 한해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훈련을 시키고 그들을 그냥 놀고먹게 버려둘 것이 아니라 무장공비 출몰 가능성 있는 해안이나 산악지역에 투입하여 남파공작들을 사전에 분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봅니다. 일반 군인들을 현역들이 교육하고 남파무장공작을 색출시키는 경계병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과거 실력이 미숙한 국가대표중에 나이든 고참순으로 축구국가대표감독을 연줄로 맡으며 허구헌날 같은 수준의 국가대표를 양성하여 단 일승도 하지 못했던 월드컵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공작에 관하여 히딩크보다도 훨씬 노련한 관록있는 북파공작원 출신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지혜를 좀 모아보시기를 권유합니다. 큰물에서 놀고 목숨을 저당하고 이북의 산하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본 백전노장들로 소정의 교육을 이수케하고, 그들이 직접 자신의 값진 경험을 토대로 현역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교육담당으로 활용도 하고 북파공작원훈련을 양성화해서 평시엔 젊은 그들로 하여금 남파공작원 색출과 기도은닉의 사전분쇄를 위한 산악과 해안탐색 및 잠복 등으로 민생치안의 안정과 국방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오랜경험으로 공작원의 가장 큰 적은 공작원인 것입니다. 북한은 과거부터 북파공작원이 포착되면, 남파공작 전문 부대 인원이 출격하고 그들의 지시와 참여로 추격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일반병사들로는 대량의 인원투입으로 차단과 잠복과 수색이 이뤄지지만 공작부대가 출격하면 그들은 북파공작을 맞상대로 자신들의 고도화된 훈련방식을 적용해 사냥개가 되어 추격전을 벌입니다. 또한 전지역을 꿰뚫어보고 도피 가능한 지역을 파악하여 북파들을 생고생하게 만드는 주요 임무를 그들이 맡는 것입니다. 그들의 숫자가 적어 그들로부터 직접 잡히는 공작들이 많지는 않겠으나 그들의 지략에 포착되어 섬멸된 북파들이 많을 것입니다. 단기파괴공작원들은 포착시 그들과 조우하게 될 일이 드물겟으나 장거리 침투공작원들에게 가장 치명타가 이 애들의 두뇌와 체력과 경험입니다. 제가 00년전 몇번째? 침투중 (평양근교라고 하겠읍니다) 평양근교의 보통 야산 6부능선에서 초저녁 해질무렵에 포착되어 죽음 직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언제 발각된지는 모르나 이상해서 살펴보니 북괴군이 아래에서 수색하며 좁혀오고 시야에 들어온 것만도 상당한 병력이라 간단히 이제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읍니다. 비트 속에선 항상 위급시 어떤 행동방향을 미리 설정해놓고 상황대처를 하며 헤어져도 다시 만나는 지점들을 여기저기 설정해둡니다. 이런 상황에선 단독으로 각자 적지를 탈출해야 효율적이지만 동료들과 삶과 죽음을 언제나 같이해야기에 머리 굴려 일단 남으로 뛰고 어느 지점?에서 서부해안가로 탈출시도를 노출시키자 결정하고 세명이서 동시에 배낭은 포기하고 식량을 주머니에 휴대하고 카빈과 실탄과 수통,지도만 소지하고 구르며 뛰기 시작한 적이 있읍니다. 이때 상황을 참고적으로 약간 기술한다면, 반잠을 자던 나와 형은 아주 골아떨어졌고 외부를 살피던 형이 톡톡 건드려 일어났더니 걸린 것 같다해서 다릴 주므르며 혈액순환을 도우며 숙의하고 각자 뚜껑을 조금 열어보며 확인 후 의견이 걸렸다고 결정되어 튀기로 한때입니다. (야산중 시계가 좋은 곳이라 6부에 발길 닿지 않을 곳 낮은 지점을 보수하여 나무와 풀로 깜쪽같이 위장한 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출발 몇시간 전에 발각이 된 겁니다. 지금도 그때 왜 포착?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당시 생각에 형 하나가 미련하게 대소변때문에 밖으로 기어나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본인이 아니라 해서 덮어두고 모른체 했던 일이고, 그때 두더지굴도 아니고 얕은곳 적지를 골라 누워있을 정도였는데 대소변도 누운 채로 해결해서 땅을 파고 처리해야 하는건데 그게 잘못 있던걸로 두고두고 생각나던 부분입니다) 이때 기어나와 중턱을 타고달리다 그들의 시야에서 안보이면 산넘어 무작정 남으로 튀기로 하고 실행하는데 산아래서 올라오던 놈들로부터 직접사가 시작되어 총알이 사방에 박히는 겁니다. 일반병들 그때나 지금이나 뻔한 것이 이런 상황서 엎드려쏴, 앉아쏴가 아니고 자신들 숫자가 많으니까 흥분해서 뛰어오며 쏘아댑니다. 하도 급해서 뛰며 뒤를 돌아봤더니 잘하면 살겠다 생각이 드는데 딱들어 맞았읍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형 하나는 산넘어를 살펴 판단하기로 하고 00형하고 둘이서 어차피 죽은거 저것들 하고 같이 가자는 맘에 육안으로 들어오는 한놈씩 조준사격으로 사살하고 이때 우리 살겠다고 죄없는 일반 북괴군인들 참 많이 죽였읍니다. 일단 보이는대로 정확하게 잡아버리니 흥분해서 정신없이 올라오다가 나중엔 머리도 못들고 굴러서 도망가는 난리법석 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일반사병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대체로 마찬가집니다 하여간 공작원은 발견 즉시 사살 못하고 놓치면 이후엔 도망치는 산짐승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때 신속히 산넘어 어두워지는 사방을 살피고 도피로 정해놓은 쪽으로보니 북괴군들이 몰려들고 있어 완전히 어두울 때까지 산속서 있기로 하고 이동중 도피로쪽의 북괴군이 그물망이 아닌 분대대형으로 분산되어 수색하며 오는 그곳으로 정면돌파로 빠지기로 결정하고, 내려가며 그들의 틈새쪽으로 은밀이동하다가 그들을 좌우쪽 이십여미터로 지나게 하고 숨죽이다가 빠져 나왔었다. (병력이 완전히 오질 못해서 5분대기조정도 병력이었기에 살아난 것이지만 공작은 죽는 순간도 기도은닉의 대담함이 목숨을 지탱해준다) 위험한 순간에는 나를 죽이고 숨으면 살 수 있는 겁니다. 이곳을 빠지면서 뛰는데 대규모병력들이 차량으로, 구보로 집결하는데 과감한 순간적 결단이 없었으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이후 사방팔방서 병력이 분산배치되는데 오로지 체력과 죽음을 불사한 돌파로 살아남은거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현역들이 공작원들의 기동성을 간파못해 지나고 난 뒤에서 찾는건 어쩔 수 없을 때였다) 모처로 신속돌파하여 서부로 방향을 틀고 서해쪽으로 향하여 뛰다가 다시 북쪽으로 새벽까지 뛰었다. 700고지의 산속으로 숨어들어 도피처 구축을 했는데 그때 그 일대를 탐색하던 무리들이 있었고 이애들이 분명 북한의 정예남파공작원들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탈출하여 서쪽으로 뛰었다 허를 찔러 북상했을 때 우리의 계산대로는 탈출지점서만 직선거리로 50 키로가 넘는 그곳 산악에 수색대가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인데 어쨌던 수십명이었던 그들에게 발각은 안되고 동해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부전선으로 넘어와서 귀환했지만 이렇듯이 공작조를 잡는덴 상대의 노련한 공작조의 적중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것이고 과부심정은 과부가 홀아비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하면 이해가 될겁니다. 북한에 침투해보진 않았지만 교육을 받고있는 사람들이나 경험자들을 사시사철 어느곳에나 있는 무장공작원 토벌에 사용한다면 그들 사기에도 좋고 현역군인들 경험에도 좋고 나쁠일은 전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포착때는 나를 죽이면 산다 ! 24시간중 어느때나 깨어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에는 꽃다운 청춘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음식도 아닌거 조금씩 먹어가면서 반잠 들어 있을 것이고 어느 청춘의 불꽃은 산비탈 어느곳에서 산짐승이 되어 뛰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 참 많이 합니다. 산짐승이 그렇듯이 공작원은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눈을 절반 뜨고자는 반잠이고 그것도 깊은 잠들까봐 1시간 정도씩 교대로 자야하고, 토끼의 귀를 하고 사방의 소리를 감지하면서 수시로 손톱으로 귀를 꼬집어 깨어놔야 하고 각자 서로를 잠못들게 고문을 해야 합니다. 비오날은 작업모자 하나로 하늘을 받치고 덜덜 떨면서 그렇게 반잠을 자고 간혹 생각나는 것이 언제나 두다리 길게 하고 엄마 다리 베고 늘어지게 자볼까나... 이런저런 생각이 산중생활의 생각들입니다. [출처]유머나라 글쓴이:메추리매니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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