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은 곰팡이 내음을 감추고 있다 마침내 96년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63번지의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썩어가는 책장에서 꺼낸, 이름모를 작가의 책과 같은 추억을 함게 내뿜으며.
나는 96년의, 엄마 지갑에서 훔쳐 철길을 통해 달아난 천원짜리 네 장을 기억한다.
그 와중에도 스릴을 즐기겠다며, 엄마가 그 초라한 화장실 조차 없는 식당에서 일하는 동안 그 노동의
의미도 알지 못한채 사천원을 훔쳐 그것이 나의 부한 것이 된 마냥 철없이 돌아다녔던 그 날을 기억한다.
천재와 둔재 오락실에서 라이덴1 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동전이 다 떨어져 오후 일곱시 즈음에
나를 찾으러 왔던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 때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웃으며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백원만!'을 외쳤다.
이런 이야기들을, 내 책에 담으면 어떤 모양이 될까?
결국은, 잊혀져가는 책의 표지와 오랜세월 풍파에 울어버린 구석에 짱박힌 책으로 잊혀지겠지.
우리 누구네의 삶이라도 그러하듯, 아니? 나의 삶만 그런가?
술을 마신 김에 털어놓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아니 털어놓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이렇게 얼기설기 이어진 문장들로밖에 귀결될 뿐 완성은 요원해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싶은 이야기들은, 완성된 문장을 쓸 수 있는 완벽한 순간에는
완성되지 아니하고, 얼기설기라도 엮어지는 이 시간에는 어느정도 이어지기에 이렇게라도 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핑계이며 내 생각에도 특별한 일임에 불만의 여지가 없다.
독자들이야 뭐.
삶은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은 삶을 지배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결국 도착한 이곳에 혹은 도착했다고
착각한 곳에 사람이 안주하도록 만들고, 착각한 사람은 마침내 그곳에 주저앉아 술에 취해 내 인생이
이만큼이라고 말하는 오만에 빠지더라도, 타인은 모른다.
타인들은 어차피, 내가 타인들을 대할 떄 그러하듯 거기까지 밖에 보지 못하기에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그만큼만 아는 것에 대해 서로 미안해하며 살아가는게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모든것이 난해하다. 그리고 모든것은 내가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잔잔한 호숫가에서 여신이 들려주는 하프소리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다
함께 잠이들고, 잔잔한 부스스함에서 깨어 제 갈길을 가는 것 뿐이였는데.
음- 흠흠- 음음음- 흠흠-
섬진강에서- 만난 -사-람. 강물인양- 말이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