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은퇴는 정치적인 압박에 의한 거였다...
전 몰랐습니다....역시 서태지도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긴 하나봅니다...
서태지 96년 돌연은퇴 비밀있었다.
정치압력? "DJ와 친밀 YS정권에 밉보여" 측근 밝혀
-------------------------------- 2001년 10월27일 goodday 신문
운동권 우상도 부담...본인도 "정치문제로 고통" 고백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했던 것은 정치적인 외압 때문이었다.
지난 96년 1월 서태지는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창조의 고통이 너무 심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홀연히 팬들을 더났으며, 이후 그에대해서는 그이상도 그 이하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서태지가 떠난 것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같은 충격적 사실은 서태지의 최측근 관계자가 최근 본지에 기자에게 털어놓아
알려지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지난 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했을 때부터
서태지가 본의 아니게 정치권과 연관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최고로 치솟아 있었고 [발해를 꿈꾸며]는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
사랑 타령을 가사로 하던 여타 가수들과 확실히 차별화돼 있었다. 대마침 같은해 1월 설립된
아태평화재단은 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외교와 대북정책을 생산하고
이론적으로 뒷바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공개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서태지를 꼽으며
극찬했다.
[발해를 꿈꾸며]콘서트를 가졌을 때는 "기특한 젊은이"라고 평하며 축전과 화환을 보냈고
"시대 유감" 이라는 곡이 공륜 심의에 문제가 됐을 때도 당내에서 "서태지 음반관련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지원하기도 했다.
대선을 앞둔 선거기간에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김대중 후보의 TV광고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까지 한 바있다.
자생적으로 생긴 서태지의 일부 팬클럽에는 언제부터인가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서태지를
자신들의 상징적 존재로 삼기도 했다.
서태지 관계자는 "어떻게 압력을 넣었는지 정확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29일 4년7개월 만에 컴백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OZ201편 1등석을 타고 미국에서
귀국하던 서태지는 김포공할을 거의 다 도착할 무렵 뒤에서 다가온 5명의 건장한남성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라는 인사말이었다.
글르 보호하기 위해 출발지인 LA공항부터 같은 비행기에 올라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다.
서태지가 정치적인 회오리로 인해 고심했던 것에 대해 주변인물들조차 정확한 '몸통'을 모르고
있었다. 속이 여리고 내성적인 서태지인만큼 혼자 속으로 삭혀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맴버였던 이주노는 "[발해를 꿈꾸며]를 내놓고 활동하던 시절 어느날
연습실에서 태지가 잠시 보자고 했어요, 지친 표정의 그가 다음 앨범을 마지막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워낙 말이 없는 친구라 속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고심하고 있는 흔적은
역력했어요."라고 답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과거 매니저였던 이상철씨는 '정치권으로부터 손짓을 받았던 적은 있었으나
사양했었다"고 밝혔다.
서태지의 ARS담당자인 채송아 씨는 "서태지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슷한 내용의 문의가
가끔 올라온 것을 보았지만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롤랍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