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인의 사무라이, 한국 언론은 미쳤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55142&hisBbsId=total&pageIndex=1&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지진이 천재(天災)라면 원전 사고는 인재(人災)다. 쓰나미가 불가항력적 비극이라면, 대피소에서 죽어 간 15명과 6일 지난 아직까지도 허기와 추위에 떠는 이재민의 실상은 부조리다.
티비에선 원전 복구 작업에 투입된 기술자들을 결사대니 사무라이니 하는 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소개하고 있고, 이재민들의 고통을 시민 의식으로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책임을 따지지도 않으며 고통을 미화해 상황을 오도하고 있단 것이다.
일본 말로 '하라기리'라 불리는 배를 수평으로 가르는 할복(割腹)은 죽음을 미화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죽음으로써 모든 책임을 떠난다는 본질적 의미가 숨어 있다. 또 1300년대부터 있어 온 '시험베기'는 무사가 새로 얻은 칼을 시험하기 위해 시체를 베던 중요한 행사였지만 이후 지나가던 행인을 베고도 아무런 책임 의식도 없었고 처벌도 받지 않는 잔인한 풍속이 되었다. '교차로베기'란 행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교차로에서 지나던 행인을 상대로 '시험베기'를 하던 습속을 말한다.
일본 전국 시대에 패전한 영주는 할복(割腹)하기 전에 자신을 따르던 여인들과 자식들을 무참하게 베었다. 여인네들은 유언시를 낭낭히 읊은 후 붉은 피를 쏟으며 벗꽃처럼 쓰러졌다. 그게 바로 '사꾸라'다.
과연 한국에서 홍수가 났을 때 대피소에서 사람이 죽어 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대통령이 사과하고 정치적 생명이 끊길 위기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시대를 돌이켜 보면 중국은 부패가 심했어도 백성이 국가의 근본임을 원칙으로 삼았고, 조선 역시 유교와 선비 정신으로 백성이 세계의 근본임을 통치 철학의 제1로 삼았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에선 그게 없다. 일본 지배 구조의 전통이 고스란히 유전되 살아 있는 것이 바로 야쿠자다. 주군에 목숨 받치는 '의리'만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일본의 '부시도(武士道)'다.
쓰나미로부터 살아 나온 이재민이 배가 고파도 소리내지 않고, 추워도 소리내지 않고, 몸이 아파도 소리내지 않은 채 죽어 가는 것이 바로 현대 일본에 남아 있는 '부시도'의 잔인한 유전이다. 일본 정신의 본질이 바로 '부시도'인 것이다.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은 위기 상황을 숨기고 정부가 인재로 인한 재앙을 숨기는 관성은 바로 백성이 없고 백성에게 오로지 의리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부시도'가 현대까지도 일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건 단지 우리가 피해자여서 뿐 아니라 그 제국주의의 또 다른 피해자가 바로 일본 국민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의 반일을 그저 피해자의 원망 정도로 인식해 '조센진'은 감정적이고 열등하다고 하는 주장이야 말로 '쇼군'의 질서를 한국에 강요하는 짓이며 역사를 모독하는 짓인 줄 알아야 한다.
원전이 폭발하든 아니든 이미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패장이 됐다. 정말 일본이 자존심이 있다면 일본은 이제 '하라기리'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들이 원전 사고의 책임을 지고 자신의 배를 가르는지 지켜 볼 것이다.
원전을 구하는 구조대를 일러 일본 백성을 베고, 조선 백성을 베고, 중국 난징 시민의 목을 치던 사무라이에 비유하는 한국 언론은 제 정신이 아니다. '부시도'에 굴복해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는 일본 이재민들을 질서 의식으로 미화하고 구호가 늦어 대피소에서 죽어간 쓸쓸한 영혼을 미화하는 한국 언론은 정말 제대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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