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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빵걸을 만나다
게시물ID : humorstory_1368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pool
추천 : 15
조회수 : 68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7/05/11 19:51:01

Lovepool이라는 인간을 알고 있는 소수의 몇몇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작년 7월 대학 병원에서 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내가 K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실화를 쓰는 것임을 밝혀둔다.







---------------------------------------------------------------------------




그녀를 처음 본 건 병원 휴게실 앞에서였다.

당시 휴게실 앞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사람들은 휴게실 출입문을

기준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서는 휴게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야 시발!! 너 도대체 몇 살이야?”

“내 나이는 알아서 뭐하게?”

“이 년이 진짜 말하는 싸가지 좀 보게?? 아까부터 계속 반말로 지껄이네..”

“반말은 아저씨가 먼저 시작했거든??”

“아 진짜 미치겠네. 야! 다른 걸 다 떠나서 내가 휴게실에서 잠 좀 자겠다
는 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야? 자는 데 계속 문 두드려대고 이건 뭐 시끄러
워서 잠을 잘 수가 있나.”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병실로 올라가서 자던가. 병원 휴게실이 아저씨 
안방이냐?? 여긴 공공장소 아냐? 그리고 잠을 잘 거면 곱게 주무시던가 문
은 또 왜 잠그는데?! 휴게실에 사람들 들락날락 하는 거 뻔히 알면서 문을
왜 잠그는 건데??”




휴게실 안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휠체어를 타고 있던 여자애가

큰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흔치않은 구경꺼리다.

공공장소에서 한 남녀가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기란.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꺼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다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맨 앞줄에 있던 환자. 

그러니까 검은 색 비니모에 링겔을 들고 서 있던 20대 후반의 남자.

그게 나였다. -_-;




“사람들 다 쳐다보는 데 아 존나 쪽팔리네 진짜...”

“그러게 쪽팔릴 짓을 왜 하냐?”

“너 진짜 뒤질래??? 내가 여자라고 못 때릴 줄 알아?!”

“때려봐. 맞으면 나는 퍽이나 가만히 있겠다?”

“지랄한다 시발. 니가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괜히 깝치지 말고 병
신된 네 몸이나 잘 간수 해 이년아.” 

“................”




나의 시선이 여자애 쪽으로 고정된 건 이때부터였다.

그녀는 분홍색 환자복에 팔 다리 기브스를 하고 있었고, 얼굴은 씻지도 않

은 채 야구 모자만 푹 눌러 쓰고 있었는데..그래서일까? 모자사이로 내려 

오는 긴 생머리가 무척 인상적인 여자아이였다.

생긴 것도 그러했지만 목소리 역시 무척 앳되어보였던 걸로 보아 나이는 

대략 17~20살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아저씨 욕 한 번만 더 해봐.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어.”

“하하..뭐가 어쩌고 어째?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이 샹년이..!!!”




그때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남자가 팔을 높이 치켜들자, 구경을 하고 있

던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어머나.”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가 더 놀랐던 건 여자아이의 행동 때문이였다.

남자가 욕을 하면서 때릴 것처럼 팔을 높이 치켜들면, 솔직히 쫄 법도 한데..

여자애는 전혀 움츠려 들지 않았고 더욱 강하게 반발했다.




“쳐봐 시발!!! 손 놀리지 말고 칠 테면 진짜로 쳐봐!!!!!!!”




그녀의 고함소리에 술렁이던 휴게실 주변은 순식간에 침묵 상태로 변했고,

남자도 전혀 예상 못했는지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여자애는 남자가 주춤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더욱 거세게 남자를

몰아붙였다.




“맞는 거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쳐보라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이 어찌될라고..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무섭나 그려..”
(내 옆에 있던 어떤 할아버지.)

“아휴 말도 마세요. 저런 딸 낳을까봐 두렵소이다.”
(할아버지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

“사람들 참 이상하네. 왜 저 여자애만 잘못했다는 것처럼 말해요??”
(그 아저씨 옆에 있던 아주머니.)

“내가 저 아저씨였으면 저 기지배 버르장머리를 확...”
(내 뒤에 서 있던 남자.)




그런데 사건은 바로 여기서 일어났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여자애가 내 뒤에서 중얼거리던 남자의 목소리를 들

었는지, 갑자기 내 쪽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_-




뭐, 뭐지? 이 분위기는...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 내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자애의 눈길은 내 뒤가 아닌,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나에게로 향하자 주변 사람들 모두 날 쳐다보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난 순식간에 연극을 지켜보던 관객에서 무대 위의 게스

트가 되어버렸다.




“하하.. 그, 그러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무작정 입부터 열었다.

말을 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던 남자가 그랬던 거라고..당당하게 얘기해야한다.




“사실 제가 아니라 제 뒤에......아악..”




그때였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날 밀었고, 내 몸은 마치 핀볼 게임의 공이 튕겨져 오

르듯..휴게실 안으로 튕겨져 들어갔다.




“....................”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파악했을 쯤엔 이미 늦어 있었다.

난 하필이면 여자애와 40대 남자가 팽팽히 대치하고 있던 그 38선 지점으

로 튕겨져 나간 것이다..-_-;

훈련소에서 조교가 “뒤로 번호!” 하고 외쳤을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 여...여....여...여섯!!!!!!!!

그 여섯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_-




“아저씨..왜 밀어요??”




하고 뒤늦게 사태를 수습해보려 했지만...

내 뒤에 서 있던 남자는 이미 토끼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총각. 괜찮나?”




오른쪽에 서 있던 40대 남자가 물었다. 




“괘, 괜찮긴 한데..정신적인 충격이;;;”




이번엔 왼쪽 편에 있던 여자애가 물었다.




“좀 전에 씨부려 대던 거..너 맞지?!”




하고 나의 눈빛을 노려보는 여자애.




얘 뭐지? 왜 초면부터 반말지껄이지? 

내 얼굴에 ‘난 졸라 만만합니다.’ 라고 쓰여 져 있기라도 하냐?

무척 당황스러워서 멍하니 있는데..여자애가 다시 묻는다.




“너 맞냐고 묻잖아!!”

“아, 아니요;;;”




뭐지. 이 지랄 같은 상황이 익숙한 기분은..-_-




“니가 아니면 누구야?”

“그러니까 그건 내 뒤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구라치지말고.”

“진짠데요;;”

“표정 보니까 너 맞구만 뭘!!!!”

“아닌데요?! 전 진짜 구경만..”

“그렇겠지. 구경하며 놀리는 입맛이 최고겠지.”

“...........”




..정상적인 대화자체가 불가능 했다.




“좀 어이없네요. 저 진짜 아니거든요?”

“진짜 아닌데 땀은 많이 흘리고 말이야. 굿이네.”




생각해보니..

내가 병신도 아니고 더 이상 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싸움에 끼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남자인 내가 여자에게 맞기라도 한다면...-_-

그거야 말로 진짜 굴욕이고 치욕스러운 일이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 이 자리를 뜨자.




“아무튼 난 바빠서 이만..”




하고 말하며 그 자리를 뜨려 하는데..




“어이 잠깐만 총각.”




이번엔 40대 아저씨가 가려는 내 팔을 붙잡는다.




“가지 말고..총각이 한 번 얘기해봐.”

“아..뭐를요?? 아니, 아니 그래요. 무슨 얘긴데요?”

“자네도 알다시피 병실에 있는 보호자 침대가 워낙에 좁잖아?”

“예.”

“내가 오늘 몸이 하도 피곤해서 휴게실에서 편하게 자려고 내려왔더니..
저 기지배가 여기서 자면 안 된다고 계속 나가라고 외치는데..도대체 누
가 잘못한 건가?”




그러자 휠체어 소녀가 바로 맞받아쳤다.




“웃기는 아저씨네!! 내가 언제 휴게실에 나가라디?? 아저씨가 휴게실 문 닫
을 시간도 아닌데, 혼자 잔다고 문까지 걸어 잠그고 팬티만 입고 있었잖애!!
난 컴퓨터 하게 문 좀 열어달라고 한 것뿐인데 아저씨야 말로 소설 쓰지 마!”

“난 소설 안 썼어 씨발!!!!!!!!!”




소설이라는 단어에 무척 예민한 두 사람 이였다.-_-;

문득 생각해본다.

그럼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죽어야 하나...??




“그리고 야 이년아!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언제 팬티만 입고 있었냐?!”

“아저씨 팬티만 입고 있었잖애!! 검은색 사각팬티!! 이래도 아니라고 우길
래?”

“저 기지배가 또 소설 쓰네. 그럼 넌 지금 무슨 팬티 입었냐? 망사 팬티?
끈팬티?? 노팬티?”




아, 아저씨..그건 좀...-_-;




“아 짱나. 변태 새끼!!!!” 




이 의미 없는 싸움에 더 휘말렸다간 정말 하루 종일 고생할 것 같다는 생

각에 다시 자리를 뜨려 했지만..




“어이 총각!”




다시 내 팔을 붙잡는 40대 아저씨. -_-

그러자 순간 울컥했다.




“아 그만 좀 하세요;; 전 그냥 싸이질 하러 내려온 순수한 환자라구요.”

“자네가 순수한 환자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지. 그나저나 내 말 좀 들어보게.”




여자애나, 40대 남자나..말 통하지 않는 건 똑같았다. -_-




“다른 걸 다 떠나서 저 기지배가 어른한테 반말하는 게..옳은 일이야?”

“뭐...그야 물론...”




끝까지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때 내가 왜 끼어들었던 걸까?




“나이차가 있는데 어른한테 반말을 해대는 건 좀..”

“맞지?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저 기지배가 잘못했다는 거지?”

“아, 아니 갑자기 그렇게 결론을 지으시면...-_-”

“야 시발아!!!!!!!!!!”




...에??




뭔가가 날라 왔다.

내 눈 위로 뭔가가 날라 오고 있었다.

뭐, 뭐지?;; 상당히 큰데...




퍽...




맞고 나서야 알았다.

내 이마를 강타하고 바닥에 떨어진 건 핸드폰 이였다.

그녀가 나의 이마를 겨냥해 던진 핸드폰..





개미떼같이 몰려왔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휴게실엔 그녀와 나 둘만

남아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난 컴퓨터를 하는 내내 계속 이마만 어루만지고 있었고, 나의 왼쪽 편에 

앉아 있던 그녀는 관심도 없다는 듯 Mc Sniper의 BK Love를 따라 부르

고 있었다.




“나의 마음 알고 있었니. 정말로 너만을 생각하며 지냈던 날들. 하지만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더욱더 힘들어 해야만 했어~”




왠지 괘씸했다. 

날 이따위로 만들어놓고..랩을 쳐 불러??




“아저씨.”




그때였다. 노래를 멈추고 날 부르는 그녀였다.




“예?”

“나 리니지 할 건데..리니지 좀 깔아줘.”




분명히 말하는 데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그건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 쪽은 컴맹 이예요? 게임 깔 줄 몰라요?”

“아 그냥 좀 깔아주지?”

“난 좀 있다가 올라가야 돼서..”

“좀 깔아주지??”

“아 진짜....그러면 말을 제대로 좀...그러니까 원이요? 투요?” 

“원.”




때론 오는 말이 더러워도-_-; 가는 말이 고울 때가 있다.

그건 오는 말을 받는 사람이 병신일 경우가 그렇다.




내가 그녀의 자리에서 리니지를 깔고 있는 동안 그녀는 계속 BK Love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너에게 말할 용기도 자신도 모두 잃어버렸어. 하지만 그냥 그게 좋았었지 
라고 생각 했던 내가 어리석었어. 그게 그렇게 힘들 줄은 난 정말로 몰랐
던 걸 이제야 늦게나마 난 깨달았던 거야~ 아저씨.”




엥? BK Love 노래 가사에 아저씨란 단어도 들어갔던가..?




“아저씨?”

“아..예??”




그랬다. ‘아저씨’ 는 노래가사가 아닌, 날 부르는 것이었다.




“이마 많이 아퍼?”




..동정 따윈 거절이다.




“별로..”

“그럼 이마 좀 그만 만지지? 뭘 잘했다고..”




정말 기가 막혀서 웃음이 다 나온다.




“에게~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러는 니도 잘한 건 하나도 없어요.”

“아저씨.”

“예?”

“말을 하려면 큰 목소리로 하던가.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 중얼 거려?”




병신인 내가 그렇지 뭐..

그리고 이마에서 손을 떼는 나였다.




“다 깔아가?”

“아..예. 이제 다 깔았네요.”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리니지를 하기 시작했고..

난 내 자리로 돌아와 인터넷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여 분이 지났을까.




“아 저새끼 몸빵 졸라 안 되네.”




그녀는 리니지를 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담배를 피기 시작했는데..

담뱃재가 계속 내 쪽으로 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다리와 오른쪽 팔에 기브스를 하

고던 그녀는 모든 걸 왼손으로만 해결하고 있었는데..

키보드 칠 때도 왼손, 마우스 클릭 할 때도 왼손, 종이컵에 담뱃재 털 때도

왼손을 쓰니....내 쪽으로 전부다 튀지 -_-




“아 진짜..담뱃재 좀..”




환자복에 묻은 담뱃재를 털며 짜증 섞인 소릴 내자, 게임을 하다 말고 내

쪽을 쳐다보는 그녀.

순간 죄인이 경찰관을 마주했을 때 그 짧은 순간의 떨림과 멈칫거림이 내 

얼굴에서 드러났다.




“아저씨.”

“.......?”

“대답 좀 하지?”

“쳐다보고 있잖아...요.”

“뭐 하나 물어보자.”

“뭔데요?”

“아까 그 아저씨 편드니까 좋디?”

“...............”

“정말 나만 잘못했다고 생각해?”

“아..그러니까..아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그 아저씨가...”

“꼴에 남자라고..남자 편든다 이거냐?”




그리고 다시 종이컵 안에 담뱃재를 터는 그녀였다.

물론 담뱃재의 대부분은 내 쪽으로 튀었지만..




“아저씨.”

“예?”

“아저씨 나이 몇 살인데?”




기회가 왔다.

이참에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저는 스물일곱인데..제가 그쪽보단 나이가 많..”

“사설은 빼.”

“예.”

“난 스물 둘이야.”




뭐 생각했던 것보단 나이가 많긴 했다. 처음엔 10대라고 봤으니까.

하지만 사실 22살 이라고 해봤자 어린 건 매한가지다.

내가 22살 땐 군대에서 조뺑이 까고 있었으니까.. 

네가 PT8번의 고통을 아냐?

독가스(?)의 고통을 아냐? 

행군의 고통을 아냐?

각의 고통을 아냐?

구타의 정석을 배우는 고통을 아냐?




생각해보니..

그녀가 저 따위 것들을 알 필요는 전혀 없다. -_-




“난 남자한텐 절대 높임말 안 쓰니까..아저씨도 말 편하게 하고 싶음 해.”




사실 높임말을 쓰던, 반말을 쓰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관심 가는 대목은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편하게 하라. 이 멘

트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볼 거라는 그 얘기가 아닌가?

하하.. 사실 그녀는 싸가지는 없었지만, 얼굴은 또 봐줄만 했으니..병원에서

의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생각한다면..내가 손해 볼

건 없었다.




“병원에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고 졸라 지루했는데..뭐 심심풀이 땅콩이라
도 생겼으니 잘됐네. 안 그래?”

“아니 뭐..”




...어차피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는 한.

하지만 그게 또 웃기지 않은가?

병원에서 마주친 남녀 환자가 연락처를 주고받는다는 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그로부터 10분 뒤였다.

어머니는 당장 병실로 올라오라고 큰 소리만 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긴 어머니가 화낼 만도 했다.

휴게실 벽시계는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밤 8시 이후 부턴 내 몸 안의 면역체계가 급격히 저하되기에, 난 항상 

10시 이전엔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대학병원에서도 안 된다고 진단 받은 몸.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다가, 살고 싶은데로 살다가..그렇게 갈 것이다.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을 챙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서 리니지를 하고 있던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뭐야? 벌써 가게?”




벌써 가게? 하고 묻는 건..섭섭하다는 소리냐? 




“가야 돼. 밤늦게까지 컴퓨터 하면 몸에 안 좋으니까.”

“그럼 난 몸에 좋다고 이 지랄하고 있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나는 간이 좋질 않다.

몸 상태가 엄청 나쁘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했다간...




이 따위 얘기들은 할 필요도 없는 얘기였고, 얘기해봤자 분위기만 서먹해

질 거라는 건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저씨 컴퓨터 엄청 좋아하지?”

“나?”

“어.”

“글쎄...”

“글쎄는 무슨~ 눈에 훤한데 뭘. 빼짝 말라서는 운동도 전혀 안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는 그런 애들 같은데 뭘.”




그건 나를...

제대로 본 것이다. -_-




“아무튼 갈 거면 잘 가라.”




하고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녀였고, 다시 잽싸게 모니터 쪽으로 머리를

쳐 박는 그녀였다.




뭐냐? 연락처도 안 물어보네?

저럴 거면 말을 놓으라느니,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겠다느니 하는 말은

도대체 왜 한 것인가? 

난 당연히 앞으로 알고 지내자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렇다고 내 자존심상 먼저 물어볼 성격은 못 되고..에라 뭐 상관있냐?

보면 보는 거고, 안 보면 안 보는 거지. 

어차피 병원에서 마주친 환자일 뿐인데..




그러고 보면 군대와 병원은 무척 비슷하다.

같은 환경과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나누는 유대감은

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안에 있을 때만 그러하다.

그 울타리를 빠져나와 세상 밖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제가 밖에 나가면, 휴가 나가면..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군대 쫄병들이 제대하는 고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밖에 나가서도 종종 연락드릴께요. 술이나 한잔 합시다.”

병원을 먼저 떠나는 사람들이 남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거짓말.




하지만 사실 거짓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건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성일 뿐이니까.




그래서 그녀와의 첫 만남 때도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어차피 병원에서 만난 인연..앞으로 봐도 그만, 못 봐도 그만이라고.

몸이 좋아져서 이곳을 떠나거나..

혹은 몸이 나빠져서 이곳에서 죽거나..

어차피 밖에서 다시 만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Written by Lovepool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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