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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법시험본 고시생입니다. (로스쿨에 대한 단상)
게시물ID : humorbest_3334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시생Ω
추천 : 87
조회수 : 4953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2/20 00:28:20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2/19 21:13:55
생애 3번째 사법시험을 친 in 서울대학 법대 재학중인 06학번 고시생입니다.

유치원다닐때부터 막연하게 검사가 되고싶었고 어렸을때 꿈을 아직까지 가지고 나름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세상물정모르는 바보이기도합니다.

06년도에 학교에 입학할 당시 로스쿨에대해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법시험준비를 할 수 있었던건 우리나라 행정정책의 늦은 처리능력과
기존 법조계의 큰 반발때문에 일이 쉽게 진행되진 않을것 같아서 였죠.

하지만 유례없이 국가의 큰 틀을 (적어도 제 생각엔 말이죠) 바꿔놓은 로스쿨 도입 정책이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나라를 이해못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로스쿨 제도가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건 맞지만 세부적 사항은 위원회가 어쩌고 저쩌고..
자기는 사법시험붙고 왜 로스쿨 도입을 한거냐 어쩌고 저쩌고..

로스쿨 실제로 처음 도입되어서 첫 기수 입학생을 뽑을때만해도 사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
사이에선 얼마 하다 말겠지, 나중에 일본처럼 사법시험도 동시에 유지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이제 진짜 몇년안에 쇼부를 봐야겠구나 라는 불안감이 교차하면서도 한 3년정도는 합격자수가 급간하지는
않았기때문에 피부에 와닿는게 별로없었습니다.
그러나 로스쿨 1기생들의 학년이올라가고 입학기수가 늘어나면서 고시생들이 예상못하게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더군요.

특히 저같은 남자 (군 미필인) 고시생들의 경우 병역문제때문에 군대를 일찍가지고,
그렇다고 아예 미뤄놓기도 애매하게 되고 한번 두번 떨어질때마다 그 압박이 대단했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건 사법시험이라는것이 순수하게 자기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몇개없는 방법으로 믿고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도 이제 몇년 남지 않았고 실제로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수는 단계별로
계속 줄고있어서 아마 저도 올해 붙지 못하면 LEET 준비를 하거나 해군 학사장교 시험을
봐야할것 같군요.

로스쿨 제도에 대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취지 자체에는 고시생인 저조차도 사실 공감을 하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노 전 대통령이 고졸로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일명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이고
대학을 가지 않았고 고등학교조차 상고를 (당시 명문이라 하더라도) 나왔던지라
아마 기존 법조계의 학연과 지연같은 부조리한 부분에 대하여 어느정도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것 같습니다.
그 문제는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려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아예 제도 자체를
미국식 로스쿨로 바꾸어서 사회에 쏟아져나오는 법조인수를 늘려 더욱더 많은 계층, 많은 사람들이
법조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겠지요.

더불어서 법학전공자들만이 아닌, 비법학전공자로서 자신이 학사과정동안 배운 학문들을 기초로
로스쿨 졸업후 법조인 활동을 할때 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셨어야 했을겁니다.

1. 법학이라는것이 로스쿨 기간 3년으로 모두 (또는 숙련되게)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의
과목이 아닙니다.

이번학기 학교를 다니면서 저희학교 로스쿨의 커리큘럼도 가끔 들여다보고 하였지만,
기존 법학과의 수업보다 부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법대생의 경우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른 인문계열 학과와는 다르게
전공필수과목과 전공선택과목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물론 전공필수과목을 차례대로 이수하여야
다음레벨의 과목을 듣는데 수월하고 대부분의 법대생들이 거기에서 실패하여 재수상, 삼수강해서
학점을 재취득할정도로 법대전공자들도 과목 자체를 어려워하고 쉽게 공부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들어봅시다.  민법총칙 > 물권법 > 채권총론 > 채권각론 > 친족상속법 의 순으로 되어있는 
일명 민법 테크입니다. 저 과목 하나하나가 한학기 수업 한개로써 되어있습니다.
곧 민법테크를 제대로 이수하고 이해하려면 15학점, 5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거죠.
저 순서대로 테크를 타지않아도 공부는 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저렇게 세분화하여 순서대로
공부하지않으면 저 순서대로 세분화하여 공부하는 것보다 몇배는 힘들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을겁니다.

하지만 로스쿨의 커리큘럼은 저렇게 세분화되지도 일정한 레벨에 따른 순서가 명확하게 정해져있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저희학교의 커리큘럼을 본 제 관점에서는 말이죠)

법학과목의 어려움과 그것을 전공하는 법대생들의 우수성을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법학에 뜻이있어서 온 법대생들조차 어렵게 공부하고 원큐에 테크를 만족스럽게 타는것이
일명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소수에 한정되어있는데, 비법학 전공자들이 법학에 대하여
하나도 모른채 달랑 로스쿨 3년배워서 어떻게 하려는지 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2. 학사과정에서 전공한 자신의 기초학문 실력을 법조계에서 일할때 유용하고 전문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허황되고 한국 현실상 부합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비법학 전공자들이 로스쿨 3년의 기간동안 기존 법대생들과 사법시험 공부의
레벨과 양을 따라가지 못할겁니다.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요)

그렇다면 법학전공자 로스쿨생들과 차별될 수 있는건 자신이 학사과정에서 전공하였던
전문지식이 되겠군요. 예를들어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은 로스쿨 수료후 컴퓨터공학 소송관련
전문가가 될 수 있겠고, 한국화를 전공한 미대생은 수료후 미술품 소송관련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회계학 전공 경영대생은 회사의 회계업무관련 소송 전문가가 될 수 있겠군요.

그래요. 취지 자체는 좋습니다. 4년내내 법학과목만 파고, 수험기간 내내 법학과목만 파고
사법연수원 연수 내내 법학과목만 판 일명 법돌이 법순이들이 다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떤경우 '무지'할정도의 수준을 가진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자라는 부분을 대한민국은 유사법조인들,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법무사 등이
메꾸고있고 그 수와 사회적 역할이 이미 뿌리깊숙히 박혀 있다는 거죠.

물론 판단을 내리는 법원의 판사와 기소를 하는 검찰의 검사가 그러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사건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다양성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쉽게도 로스쿨 제도의 취지를 살려서 학사과정 전공을 토대로 법조활동을 할 수 있는 영역이
현실적으로 넓지 않습니다. 이미 그 영역들은 대부분 유사법조인들이 활동하고 있구요.
이 상황에서 로스쿨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먹혀들어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3. 로스쿨제도는 오히려 기존 기득권의 법조계 진출을 늘릴것이며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는
못할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때 대한민국의 일명 '출세'할 수 있는 길중에 제일 공정하고도 냉정하며
사회적인 위치나 재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가장 객관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게 바로 사법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 사법시험도 학원수강과 비싼 책값, 생활비들을 생각하면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여타 다른 방법보다 가장 객관적인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고 선발에 있어서
누군가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개입하여 당락을 바꿀 수 없는 깨끗한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스쿨관련 최근 기사를 보니 이제 그런 시대는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습니다.

사법시험은 시험을 내는 교수님, 판,검사 분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다른 학문들처럼 다수설, 소수설 들이 존재하지만 '시험'에 출제되는 문제들은 대부분
학설의 주류인 다수설과 판례의 입장을 따를 수 밖에 없으며 문제 한번 잘못 내면 이에 관련한
민원과 소송들이 줄지어 일어나기때문에 각자의 학설과 생각을 가진 출제자들조차
자신들의 이론을 강요할 수 없다는 이점이 있죠.

하지만 로스쿨 수업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의 사상과 이론을 제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아마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법대교수님들의 성향을 4년동안 경험한 저를 포함한 모든 법대생들의 생각은 말이죠.

그렇다면 로스쿨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교수님께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로스쿨에서조차
교수의 이론과 방식을 따라야하며 이것이 나중에 판,검사 임용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든
있을거라는 결론이 도출이 됩니다.

더불어 로스쿨의 비싼 학비도 문제가 되겠군요.
로스쿨 학비문제를 들때 일부 사람들은 그럼 장학금을 받으면 되겠네, 니가 공부 열심히 하면
되는걸 왜 학비문제로 돌리냐고들 하는데, 장학금이라는 건 수혜자가 한정이 되어 있는 겁니다.
또한 제기한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못하는 거죠. 학비가 비싸면 입학이 힘들고 수료가 힘든 
로스쿨의 문제를 지적하자는 거지, 개인의 능력유무에따른 장학금 지급을 논하자는게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열심히해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정말 운이 나빠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비싼 학비 감당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결론적으로 최소한 중산층이상이 되어야 무리없이 로스쿨을 수료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풍족하지 않지만 대출이나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로스쿨을 다닐 수는 있겠지만, 
당장 가계에 무리를 주고, 나중에 상환하여야 할 일종의 '빚'으로 남는다는게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얼마나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지 아실겁니다.

시골 국밥집 아들이 검사가 되고, 어부의 딸이 판사가 되고, 농부의 아들, 딸이 변호사가 되는
그런 시대는 이제 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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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좋은감정도 나쁜감정도 같이 가지고 있지만,
최소한 로스쿨에 관한 영역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고,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최고 통치권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모든 부분을 다 예상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는 인지를 조금이라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 결정 하나가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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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보고 난 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3시간 가까이 자고 난 후 쓴 글이라 앞뒤가 안맞고
두서없어 읽는데 고생하셨네요.

이제 오늘 시험 같이본 친구들과 술 마시려 나가렵니다.
1년동안 하고싶은거 참고 보고싶은거 안보고 했기에 오늘은 조금 무리좀 해보려구요.

오유에 오늘 같이 시험본 동료들(?)도 많고 가족중에 수험생도 많은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모든 것 다 잊고 1년중 유일하게 편안한, 진짜 꿀맛같은 하루 즐기시길 바랍니다.

안되도 되게 해야죠. 알콜이든 뭐든 빌려서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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