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서로 악에 받친 통화를 끝으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2년간의 장거리 연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개소리도 통하지 않았던 우리 사이 우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시간도, 거리도 아닌 그저 서로 자신일 뿐이었다. 적지 않은 갈등, 너와 나의 무엇이 서로를 아프게 하는지 알면서도 쉽사리 포기하거나 바꿔내기 어려웠던 본질적인 문제들 2년 연애동안 숱했던 울음과 밤새운 통화로도 메울 수 없었던 너와, 그리고 나란 사람의 차이.
상처받은 나를 두고 너는 지친다고 했다 눈치보다 어렵사리 아프다는 말을 꺼내면 너는 절대 미안하다, 고의가 아니었다, 생각치 못 했다고 인정하는 법이 없다. 어느샌가 나는 네 앞에서 좁은 속내로 네 말을 무조건 꼬아듣고 2, 3일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가 느닷없이 공격을 퍼부어대는 전투본능 탑재녀가 되어있다.
모든게 내 꼬인 속내로 비롯되는 거라 책망하는 듯한 너를 두고 악에 받친 나는 '그럼 그만 두던가' 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자빠링을 시전, 지칠 대로 지쳐있던 너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컥 하는 목소리로 '어, 그래! 그럼 나 이제 전화 끊어도 되지?' 하고 내 말을 덥썩 받아물더니 더이상 연락이 없었다.
그래, 치졸한 말이었던 거 인정한다. 하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사과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일을 사과한다 한들 앞으로 무얼 더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싸움의 계기는 달라도 패턴은 늘 같다. 앞일이야 어찌 되었든 사랑하니 다시 또 붙어있자고 달려들기엔 무슨 말을 해도 양보할 수 없는 서로의 마지노선이 너무 뚜렷하다. 나의 상처입음은 항상 네가 의도했던 바가 아니기에 너의 마지노선을 위협하는게 되고, 조금의 역지사지도 없이 내 말을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는 너의 방어태세에 나 역시 내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욱 하는 마음에 헤어지자 말하는 것도, 멀리 못 가고 근처만 서성이다 네게 다시 매달리는 것도 항상 나 였는데. 이번엔 뭔가 울음도 안 날만큼 뒷통수가 싸하다. 배고픈데 왜 밥 안 주냐고 엄마한테 징징대다 쌀은 커녕 먼지만 휩쓰는 쌀통바닥을 보고 깜짝 놀라 눈물도 쏙 들어가는 기분.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편지를 썼다. 네가 바라는 게 무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나라는 고집을 못 꺾고 늘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늘 너 때문에 아프다고 아둥바둥 거렸지만 내가 그러했듯 너 역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우리 만남을 지켜주고자 노력했을 거란 거 알아서 고맙다, 가장 타협할 수 없는 각자의 본질을 다치지 않게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 각자 만날 기회를 갖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으로 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잘 지내라..
미주알고주알 아픈 마음 애써 눌러가며 보낸 장문의 편지에 너는 언제나 그랬듯 침묵을 지킨다. 표현할 줄도 모르고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너는 항상 내 행동에 그럴싸한 큰 반응이 없다. 별로 보답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만큼 와닿지가 않는 모양이다. 벌써 세 번째 이별, 아프고 초조한 티를 감추지 못 하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덕분에 나는 질릴대로 질렸다는 듯한 네 마지막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귓가에 울리는 듯해 밤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다. 쉽사리 잠들지 못 하고, 좀 잠드는가 싶으면 어딘가 불안하게 쫓기는 기분으로 깨어난다. 오늘도 그렇게 깼다. 술을 좀 사올까 하다 괜히 또 취기에 울고 불고 매달려 추한 꼴만 더 보일 것 같아 네가 즐겨먹던 웰치스만 사들고 왔다.
6일동안 남자친구의 증발을 선두로 밤잠도 덩달아 없어지더니 살도 3kg가량 없어졌다. 슴가도 없어졌다. (사실 이전엔 있었다고 말하기엔 슬픈 수준이었다) 다신 너를 만날 수 없다고 혼자서라도 인정해버리고 나면 감당 못 하게 추한 꼴로 밤마다 좀비처럼 술만 축 낼 것 같아 울지도 못 해 네 옆에선 그리도 잘 울던 내가 눈물도 없어졌다. 한 두 번 겪는 이별도 아닌데 정말 사는게 사는게 아닌 것 같다.
평소엔 입에 대지도 않는 웰치스를 물고 집으로 기어들어오면서 잘 바뀌지도 않는 네 카톡문구가 바뀌어있는 걸 봤다. '디아블로 잡아오겟다'는 한 마디...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그래야 너 답지. 나야 아프건 말건 간에 속으로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간에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태연하게 지낼 수 있는 거, 표현하고 노력하기보다 감추고 체념하는게 더 익숙하고 재빠른 거, 만날 때도 그랬듯 그게 너지. 나처럼 울지도 못 해 웃지도 못 해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지 않고 평소처럼 밥 잘 먹고 좋아하는 게임하면서 잡념따위 조까!라고 시간 속에 묻어버릴 수 있는 너라서 비꼬는 게 아니라, 나 정말 다행이다.
앞집 담벼락에 장미가 폈더라. 그러고 보니 2년 전 딱 이 맘 때 쯤이었지, 서로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괜히 좋아하는 티 냈다가 좋은 오빠 동생 사이 깨질까봐 전전긍긍했을 때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참 좋다, 너란 사람. 처음 해본 연애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징글징글하게 좋을 수 있다는게 너무 놀랍다.
어쨌든 고맙다, 있던 것도 없게 해버리는 미친 오유. 또 고맙다, 때마침 나와준 디아블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헤어져서 아픈게 아니라 헤어졌기에 차라리 다행스럽다. 네가 너무나 너 다운 걸 보고 전처럼 외로운 마음에 널 원망하기보다 더이상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는 입장이기에 안도 섞인 웃음으로 체념하며 네 안녕만 고이 빌어줄 수 있게 되서 다행이다.
그래도 새키야 내가 여지껏 너한테 퍼부은 내 열정과 못 다한 사랑이 있는데 2년동안 그걸 한결같이 니가 받아먹엇음 새키야 디아블로 잡고 나서라도 잘 지내란 문자 한 통은 좀 보내줘 새키야 좀
그리고 왠만하면... 돌아와라 난 어차피 널 억지로 잊고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도 없고 한동안은 변태처럼 혼자 니 사진만 보며 웃고 울며 너만 사랑할 것 같으니까 너만 괜찮다면야 같은 미친 짓 반복하면서라도 너랑 지지고 볶고 하고 싶으니까 오기만 하면 당장 맨발로 뛰쳐나가 잘 왓다고 얼싸안아줄 수 잇으니 왠만하면 빠른 시일내에 돌아와라... 같은 남자들도 네 얘기 듣고 혀를 내두르는데 네 성격 이만큼 받아주고 아프다고 울면서도 한결같이 너만 사랑하는 여자 내가 봐도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