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얘기인데, 얼마 전 베오베에 임산부 자리 양보 관련해서 댓글로 썼더니 사이다라고 해주신 분 계셔서 써봅니다;; ㅎ
저는 당시 오른쪽 발 인대가 '튿어' 졌습니다. 제 표현이 아니고 ㅋㅋㅋ 의사쌤이 그랬어요. 찢어졌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그래도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출퇴근은 해야했지요.
그래서 3호선 도곡역에서 출발 - 종로3가까지 목발 짚고 다녔어요. 반깁스 하구요.
평소에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세금 더 낼테니 무조건 더 해라'라는 입장이었지만
실제로 다치고보니... 보도블럭 울퉁불퉁한 곳도 괴롭더라구요. 저상버스만 있었으면 좋겠고.
목발 써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다쳐서 목발 막 짚었을 때가 제일 힘들잖아요.
한 달쯤 지나면 그럭저럭 적응이 되지만 처음엔 다친 다리도 아프고 ㅠㅠ 목발도 아프고 ㅠㅠ
게다가 계단 다니는건 얼마나 힘든지... 엘리베이터 있어서 쉬울 거라고 생각했으나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려면 거기까지 한참 걸어서 그것도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초반엔 지하철에 타면 앉고 싶은 생각 뿐이었어요. 한 발로 중심 잡는 것도 익숙하지 않구요.
그런데 또 제가 민폐 끼치는 거 같은 거예요. 양보해주시면 미안한데 막 고맙고.. 인사는 꾸벅하지만
행복한 아침을 방해한 거 같은 기분에 많이 죄송했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택시 출퇴근을 하고 싶지만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
다행히 출근이 10시고, 코스 자체가 헬코스가 아니긴 해도 앉아가긴 어려운 시간.
가장 많이 양보를 해주시는 분은 50~60대 아주머니들이셨습니다.
그 다음이 2~30대 청년들이구요. 어쩔 때는 충무로까지 서서 간 적도 있었는데. 뭐 괜찮았어요.
하지만 40대 이상 아저씨들.......... 절대 양보 안 해주세요. 10주간 깁스를 했는데 단 한 번도; 대신 잔소리를 하십니다.
일반석 쪽으로 가면 "거 다리 아픈 사람이 왜 일반석에 앉으려고 해? 저쪽 가요. 저기 노인네들 지정석 아니야. 앉아도 돼"
노약자석 가면 "우리 보고 일어나라는 거야? 저기 젊은 애들 보고 양보하라고 해" 어쩌라는 걸까요.
그렇게 초반의 설움을 겪고 나서
어차피 출근시간 대는 노약자석도 붐벼서 아예 포기하고
늦게 퇴근하는 저녁 8~10시대에는 노약자석도 한가한 시간이라 거기에 앉아왔어요.
그 몸으로 야근까지 하니까 피곤해서 벽이나 기둥에 기대고 눈 감고 있는데
어느 날은 지팡이로 깁스한 다리를 탁 치시더군요. 눈을 번쩍 떴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저쪽 가. 젊은 게 왜 여기 있어?" 하시는 겁니다.
한쪽에 기대 놓은 목발과 깁스한 다리를 보고도......... 그런데 전 싸울 기력도 없었어요.
일어날까? 생깔까? 싸울까? 이러고 있는데 제 옆에 있던 할머니가 ㅋ
"늙어서 눈깔이 삐었냐! 다친 다리 안 보여? (노약자석 옆에 스티커 가리키시며) 여기 다리 다친 사람 그림도 있구만!"
제가 할아버지라면 그냥 거기서 다른 칸 갔을 텐데 그래도 "아니 여기는 노약자..."
"(버럭 & 스티커 붙은 벽 퐝퐝 치시며)여기 그림에 다친 사람 있잖여! 이 아가씨도 똑같이 다쳤고! 목발 안 보여? 눈이 침침해?"
그러니까 할아버지 옆 칸으로 이동.
제가 "감사합니다" 인사하니까 ㅋㅋㅋ '됐다' 이런 말씀은 없이 "그래서 어쩌다 어떻게 다친 건데? 뼈가 부러진겨?" 하며 사고의 전후를 매우 궁금해하시길래 (생각보다 어쩌다 다쳤냐고 묻는 분 엄청 많아요 ㅎㅎㅎ 심지어 자기 교회 나오면 바로 낫는다고 전도하시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남묘호랑계교 전도도 받아봄...) 친절하게 설명해드렸어요.
저보다 일찍 내리시길래 어정쩡하게 일어나서 다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니까 손 휘휘 내저으며 쿨하게 '빨리 나아' 하고 가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할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