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다가 글이 좋아서 퍼왔습니다
경향신문이요
‘어머니, 금(金)으로 집을 지어 드릴게요.’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을 때 꿈을 꿨다고 했다. 사람만큼 커다란 붕어가 도랑을 헤엄치고 있었다. 붕어를 따라가니 곧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를 만난 붕어는 금세 비단잉어로 변했다.
어머니는 “그런데 그 비단잉어가 갑자기 뛰어올라 재주를 넘더니 품에 안겼다. 그걸 보던 사람들이 막 박수를 쳐주더라”고 했다. 아이는 자라서 정말로 재주를 넘는 소년이 됐다. 그 재주로, 세계를 제패하려 한다. 금을 만들어, 집을 짓는다. 양학선(20·한국체대·사진)의 꿈이다.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20가구가 채 안되는 주민들이 모여 산다. 마을 끝에 있는 양학선의 집은 비닐하우스다. 허리조차 펴기 힘든 하우스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산다. 벽에는 양학선의 사진과 메달이 걸려 있다. 어머니는 “학선이가 뜀틀에서 뛰어오르면, 난, 그게 꼭 화려한 꽃이 하늘에서 날면서 샤라락 도는 것 같아. 얼마나 멋져”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웃었다. 주름이 펴졌다.
아버지는 말을,
웃음을 잃었다. 공사장 미장기술자였던 아버지는 수년 전
어깨를 다쳤다. 인대가 모두 끊어졌다. 일을 놓았고, 삶도 놓았다. 광주 살림을 파하고 2년 전 석교리로 들어왔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면서 아버지는 자꾸만 침울해졌다. 그해 여름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은 450㎜의 비를 퍼부었다. 비닐하우스만 빼고 모든 게 다 쓸려내려갔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아버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매일 약을 입에 털어넣는다. 그렇게 우울한 아버지를 웃게 만드는 건, 아들 학선의 재주넘기다.
런던올림픽 남자체조 도마 금메달에 도전하는 양학선은 전북 고창에 있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번듯한 새집으로 바꿔드리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다. 작은 사진은 아버지 양관권씨(왼쪽)와 어머니 기숙향씨. 고창 | 이용균 기자
아버지는 “학선이 재주를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힘차게 달리고 발판을 구르고 뜀틀을 짚어 하늘을 날면, 아버지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제대로 땅에 내린 걸 확인하고서야 아버지는 눈을 떴고,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저 혼자 컸다. 기특하다”고 했다. 팍팍한 삶은 여유를 없앴다. 지금껏 단 한번도
가족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학선이가 돌아오면 형과 함께 세 부자가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 기숙향씨(43)는 “학선이가 원숭이띠다. 원숭이가 제일 많이 움직인다는 오전 10시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지고는 못 살았다. 세계 최고난도의 기술 ‘양학선’도 그래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관권씨(53)는 “2년 전 세계선수권에서 4위를 한 뒤 ‘아무도 트집잡을 수 없는,
신기술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양학선은 정말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신기술을 완성시켰다. 하늘로 날아올라 한 바퀴 돌면서 세 바퀴를 비틀었다. 한국 올림픽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위한 최고의 무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양학선은 금으로 집을 짓고 싶다. 비닐하우스를 뜯고, 번듯한 집을 짓고 싶다. 석교리에 집터는 마련해뒀다. 어머니는 “해준 것도 없는데, 참 효자”라고 했다. 태릉선수촌 훈련비가
하루에 4만원 안팎. 안 쓰고 차곡차곡 모으면 월 80만원 정도다. 대회라도 참가하면 훈련비가 안 나온다. 그 돈을 모아서 매달 10일 어머니 통장에 넣는다. 아버지는 “매달 10일이면 돈 잘 들어왔냐고 제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고 했다.
‘효자’ 양학선의 도전은 6일 밤 11시41분에 시작된다. 힘차게 뛰고, 구르고, 날아올라, 착지에 성공하면 금으로 집을 짓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치지만 말고 와. 제일 좋아하는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준비할 테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