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T.V를 볼 때면 대한민국에는 저렇게 멋진 사람들만 산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방송매체를 통해 나오는 말만 듣자면, 대개의 아이돌은 카리스마 따위는 시계처럼 차고 있는 것 같고,
이혼한 연예인 부부는 아무런 앙금도 없이 사이좋게 잘들 지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슨 말만 하면 쿨하니 어쩌니 하고 멘트만으로 모자라는지 자막까지 달아주니 이 나라 연예인들은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잘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저, 그 많은 쿨한 인간들이 내 옆에는 왜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지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언제부터인가 쿨한 것이 멋진 인간의 조건처럼 굳어져 버린 것 같다.
물론 쿨 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실제 그런 사람을 보면 멋있게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쿨은 방송에서의 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어느 배우처럼 인상을 쓰며 목소리를 깔고 하는 외양적인 모습이 쿨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쿨이란 어깨에 힘을 주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가 진실로 녹아 있어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무엇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후배의 실수로 내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게 되었을 때,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변명하지 않고 책임지는 것,
그리고는 후배의 어깨를 말없이 다독여 주는 것,
적어도 그런 것이 나에게는 쿨한 사람이다(물론 나는 그런 거 안된다. 만약 내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했다면 순사에게 잡히자 말자 고문도 하기 전에 불었을 인간이다. 이또 히로부미는 안중근이 죽였다고).
그러니까 외양이나 목소리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가 우직한 사람이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사실 누구나 살다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탓일까. 실제로 쿨 한 사람과 있어보니 별로 좋은 것은 없었다.
말도 없고,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어딘지 모를 부담감만이 주위의 공기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영화로는 어떨지 몰라도, 주위의 친구로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쿨한 사람이 가볍게 보일 리가 없으니까.
확실히 쿨 하다는 것은 멋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모두에게 쿨을 강요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혼을 해도 친구처럼 쿨 하게 지내면 멋진 거고, 내일 어찌 될지 몰라도 와인이라도 한 잔하는 센스가 있어야 쿨 한 것처럼 보는 분위기다.
도대체가 친구처럼 잘 지내면서 이혼을 한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되지만, 이쯤되면 앞집의 치와와도 쿨하게 짖지 않으면 강아지 대접도 못 받을 분위기다.
요즘은 너나 나나 쿨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쿨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 성품의 반대편에 있는 무엇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인간은 핫(Hot)한 쪽이 아닐까?
이혼을 하면 슬픈 게 당연한 거다. 더구나 싸워서 헤어졌다면 상대를 원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다는 말을 들으면 착한 사람과 위선자,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힘든 때는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인간의 심성이다. 상처를 받으면 흔들리고 아픈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감정을 가지면 마치 아마추어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이 세태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픈 감정에 충실하게 산 뒤에,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비로소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것이 쿨 한 것은 아닐까?
자신을 추스르기가 힘들어서 얼마쯤은 길거리에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과거의 허물에 문득 가슴도 아파하면서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성숙해진 결과로 쿨 해지는 것이 사람 아닐까?
그러니까 쿨 하다는 것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라고 생각한다. 쿨하게 사는 게 아니라 쿨하게 살아지게 되는 거다.
피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고 또 그렇게 반복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아픔에 무뎌지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성숙하게도 되는 것, 그렇게 세월이 쌓이다 보니 어지간한 일은 견뎌내며 살아가게 되는 것,
해서 그 때서야 비로소 내가 아닌 남들이 나를 봤을 때 쿨 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충분히 젊고, 다양한 경험없이 살아왔으면서 쿨 하다고 말하는 것은 글쎄,
나에게는 쿨 한 것이 아니라 쿨 한척 하는 것으로 보인다(나이가 어리다고 성숙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를 거쳐야만 아는 것도 분명 있는 거다).
간혹 T.V.에서 중견 배우들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물론 예전에는 예쁜 여배우들만 봤었다).
그네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은연중에 느껴진다.
어떤 이는 묵묵히, 어떤 이는 즐겁게, 또 어떤 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과거를 거쳐 왔건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해서 멋있게도 보이고. 비단 탤런트뿐만 아니라 필자 주위에도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멋있고 쿨 하게 보일 수가 없다.
링컨이 나이 사십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고 했는데 아마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미국드라마 샤크에는 엄마를 잃은 여섯 살 아이가 울음을 참고 있자 형사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Don’t be acting tough! Be tough! 강한 척 하지 말고, 강해져라.
쿨 하게 산다는 게 결코 쉬운 말도 쉬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쿨은 유행같은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인 탓이다.
정혁용 씀.
한겨레 훅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