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중 특정 어구엔 " "를 붙혔다. 의혹사항임을 표시한 것이다)
아래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는, 국방부 천안함 백서가 3월 26일에 출동했다고 밝힌 대청도 고속정 편대(235편대, 233편대)에 속하지 않은 고속정 두척이 그려져있다. 바로 231F와 316호 고속정(PKM)이 그것이다.
왜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해군 2함대사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고 하는 이 상황도에 대청도 고속정 편대가 아닌 연평도 고속정 편대인 231F와 316호 고속정 2척의 모습이 보일까. 그리고 사고 당일 출동했다는 대청도 고속정 편대에 속한 2(3)척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만약 위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 표기되어있는 연평도 고속정 편대 231F(편대 표기)와 316호가 3월26일 구조과정 등에 참여했다면, 천안함이 침몰한 3월26일에 백령도에는 대청도 고속정 편대 뿐만 아니라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도 출동한 것이 된다.
합참이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밝힌 대청도 고속정 편대 4척에 그리고 나중 입장을 바꿔 추가한 대청도 고속정 편대 1척 뿐만 아니라 연평도 고속정 2척이, 사고 당일인 3월26일에 백령도 천안함 침몰현장과 그외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이 된다.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 상에 보이는 연평도 편대 소속 고속정 2척(231F 표기와 316호)에 대해서,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에 추가 지원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합참은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추가전개된 함정에 대해서 경계지원을 위한 초계함 및 구축함이 지원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연평도 고속정 편대등 고속정(PKM)의 추가전개에 대한 내용은 볼 수 없다. 3월29일 공개된 구조전력 현황도(아래 2번째 그림)에도, 그간의 경계 탐색 전력 중 고속정에 대해서는 5척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 나오는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231F와 316호)이 3월27일에 추가 지원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없다.
위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는 해군 고속정 4(5)척(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 파란색 함정 표시)과 해경함정 3척(녹색 함정 표시), 그리고 초계함(속초함)과 호위함 3척( 청주함, 제주함, 전남함) 도합 4척의 모습이 보인다. 3월27일에 추가 전개된 5척의 전력 중에 호위함 3척의 모습이 보인다. 3월27일 08시55분까지 추가 전개된 초계함 1척과 구축함 1척의 모습은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 없다. 상황도가 3월27일 오전 8시55분 이전의 백령도 함정 전개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3월 27일 국회 국방위 해군함정 침몰 관련 보고 (15시18분)
-합동참모본부정보작전처장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입니다.
지금부터 아 함정 원인 미상 침몰 관련 상황을보고드리겠습니다.
1쪽입니다.
어제 3월 26일 21시 30분경 백령도 서남방 1마일 해상에서 아 초계함인 천안함이 원인 미상으로 침몰된 상황 관련 보고입니다.어제 상황 발생 현장의 기상은 남서풍이 20노트로 불었으며 파고는 3m였습니다. 수온은 8도였습니다.선저에 파공이 발생하였으며 파공으로 침수가발생하면서 배가 침몰되었습니다. 사고 지점의 수심은 24m였습니다.
상황 발생 후 야간 조치사항을 보고드리겠습니다.
21시 41분부터 구조전력인 고속정과 링스(LYNX)가 사고 해역으로 이동을 하였으며 22시40분 현장 근해에 있던 해경정에서 천안함 인원 58명을 구조하였습니다.기간 중 22시 57분 백령도 북방에서 미식별된고속 이동 물체를 백령도 서방에 있던 속초함에서 포착하여 경고사격을 하였으나 고속 이동 물체는 새떼로 추정되었습니다.23시 40분 구조헬기 및 조명기가 현장에 도착해서 조명하에 주변 해역을 탐색하였습니다.
00시 30분 합참에서는 서북해역 경계전력 증강배치를 하였습니다.이후 진해에서 대기 중이던 해난구조대가 진해를 출항하여 06시에 평택기지로 이동하여서 금일백령도로 입도하였습니다.
2쪽 보고드리겠습니다.
금일 오전 조치사항 및 활동 내용입니다.
05시 30분 해병 6여단에서는 백령도 해안을 2개 대대로 하여금 수색 정찰을 실시하여 해변 모래 위에서 천안함 것으로 판단되는 구명정 2개를 발견하였습니다.이후 2함대에서는 인명구조 초계 및 호위함이 탐색작전을 실시하였으며 백령도에 전개해 있던 해난구조대는 금일 오후 13시 40분부터 구조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구조작전의 주안은 실종자 탐색, 선체 상태 파악, 침몰원인 규명에 주안을 두었습니다.
현장 함정 추가 전개로 경계지원을 위하여 초계함 및 구축함이 지원 완료되었으며 구조 지원을 위한 구조함 및 상륙함 각 1척이 내일 중으로 지원될 예정입니다.
3월27일 회의록 1~2쪽]
3월29일 공개 침몰 천안함에 대한 구조 전력 현황도
결론적으로,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에 나오는 대청도 고속정 편대 2척 (233F 표기, 235F 표기),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316호, 231F표기)은 사고 당일인 3월26일에 천안함의 구조, 생존자 수색에 참여한 고속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로 지워진 것같은 고속정 1척은 천안함 구조 수색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해경501함의 도착 당시 천안함 주변에는 고속정 4척 밖에 없었으므로, 해경에 의한 본격적인 생존자 구조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나 생존자 구조가 끝마쳐지고 백령도 남방 사고해역 주변 수색 시점에, 다른 곳에 있다가 천안함 구조 수색 세력에 합류했을 경우 둘 중의 하나다.
3월26일 백령도에는, 국방부가 사고 당일 출동했다고 밝힌 대청도 고속정 편대(233F와 235F) 5척과 연평도 고속정 편대(231F와 316호) 2척이 출동한 것이 된다. 해경501함의 구조현장 도착 당시에 목격된 고속정 4척과, 천안함 침몰현장과는 다른 곳에 출동했을 고속정 3척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3월 26일 사고 이후 총 7척의 고속정은 백령도 어디에 있었을까.
3월26일 10시15분에 현장에 도착한 해경501함은 해군함정 4척(고속정)이 천안함과 그 주변을 서치라이트로 비추고 있었다고 확인해준 바 있다. 합참도 3월27일의 국방위 보고에서 고속정 2척이 먼저 오고 나중 2척이 와서 4척이 천안함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합참이 3월27일 국방위 보고에서 밝힌 천안함에 먼저 도착한 고속정 2척은, 군이 사고해역이라 주장하는 백령도 서방을 감시하는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이 9시30분경에 출현을 목격한 해군함정 3척과는 척 수(數)가 다르다. 나중 국방부는 고속정 3척이 먼저 천안함 침몰현장에 도착했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지금까지 예에서 본 바와 같이, 국방부의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너무나 심해서, 사건 초기의 진술만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속초함의 경고사격 20여발을 격파사격 130발로 바꿔버린 뻔뻔한 국방부의 행태는 그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그리고 천안함사건은 최초상황발생시각 저녁 9시15분을 기준으로 사고상황과 그 이후 상황을 판단해야한다.
[이날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해난구조대(71명)는 상황 발생 40분만인 21:55에 비상소집되어…"(7쪽)라는 구절이 나와 군이 사고 시각을 밤 9시 15분으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403223903
천안함사건은 수사(搜査)가 되어야할 사안이다. 수사(搜査)대상인 군(軍)과 국방부에 의해 주도된 합동조사단의 결과 발표는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각색하는 것이었다. 사건 초기 비교적 사고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파해준 해경으로 하여금, 2011년 해경백서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해경501부함장의 진술을 통해 위증하게까지 만든 사안이 바로 천안함사건이다.
따라서 ,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이 목격한 출현 해군함정 3척은, 합참이 3월27일 국방위 보고에서 밝힌 천안함에 먼저 도착한 고속정 2척과는 다른 상황(장소)에서 목격된 함정들로 판단해야 하고,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이 목격한 출현 해군함(정) 4척과 "구조" 당시 목격된 PCC정도로 보이는 큰 배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령도 연화리 서남방 해역을 관측하는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은 저녁 9시30분경에 해군 함정 3척의 출현을 보고했고 이어서 해군함의 출현을 보고했다. 박일석상병은 나중 출현한 해군함에 대해서는, 먼저 출현이 목격된 해군함정 3척의 경우와는 달리 척 수(數)를 적지 않았다. 문맥은 1척으로 읽히기도 하며, 군의 보고원칙을 감안한다면, 해군함이 2척이상 계속 와서 "구조"했다면 척 수(數)까지 보고했을 것이므로, 나중 출현이 목격된 해군함은 1척이라고 판단함이 옳다.
또한 박일석 상병은 먼저 출현이 목격된 선박에 대해서는 해군함정 3척 그리고 나중에 출현이 목격된 선박에 대해서는 해군함이라는 다소 뉘앙스의 차이가 나는 표현을 썼다. 해군에서 쓰는 선박톤수를 기준으로 한, 함(艦)과 정(艇)의 차이가 연상된다. 247 초소 초병들은 해군 함(정)들의 불빛을 보고 출현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박일석 상병 진술서
필승! 62대대 6중대 60A+ 2포 부사수 상병 박일석은 후임 근무자 상병 김승창과 2010년 3월 26일 247초소 야간 2직 19:00~21:00까지 근무시간에 근무를 수행하던 중 21:23분에 낙뢰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 ‘쿵’소리와 함께 하얀 불빛이 247초소 기준 방위각 ∠280°4km지점에서 보였습니다. 불빛은 섬광처럼 보였는데 좌·우 둘 중에 좌쪽이 더 밝어 보였습니다. 우쪽은 두무진 돌출부에 의하여 불빛이 가려진 상태였습니다. 야시장비(PVS-7)을 이용해 불빛이 일어난 쪽을 관측했는데 불빛은 2~3초 후에 바로 꺼졌고 그날 해무가 심해 시정이 500m여서 PVS-7으로 관측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후 21:30분경 247초소 방위각 ∠170°2km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하였습니다. 해안 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추었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추었습니다. 그 후로 247초소 기준 방위각 ∠180°3km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고 22:59분에 247초소 기준 방위각 ∠270°6km지점 아군함정이 경고사격 약 20발 정도 발사했고 그 후에 구조헬기가 247초서 기준 방위각 ∠160°방위각 ∠10°등 수많은 헬기가 구조하기 위해 초소와 연화리 위쪽을 날아 다녔습니다. 헬기 구조작업은 2010년 3월 27일 02:10경까지 계속 되었으며 02:40분경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필승!
2010년 3월 28일 상병 박일석
김승창 상병 진술서
1. 본인의 직책은?
2010년 3월 17일 6초소 초병으로 62대대 6중대 해안중본으로 들어왔습니다. 초병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2. 사고 당시 본인의 임무는?
- 근무신고 / 투입시간 / 이동경로 / 근무장소는 ?
247초소 초병 후임근무자로 근무를 들어갔고 6소초에서 연화리를 거쳐 922포, 923포를 지나서 247초소로 근무진입을 하였고 근무지 진입시간은 21:15분 정도였습니다.
- 누구와 근무, 임무분담, 근무방법, 무엇을 이용 감시, 상황발생시 조치
상병 박일석과 근무였고 임무는 초병이며 관측을 함께 하고 보고는 선임근무자인 상병 박일석이 하였습니다. 근무방법은 PVS-7과 탐조등을 이용하여 관측하였고 두무진 돌출부부터 굴곡해안 일대를 관측하였습니다. 상황발생시 선임 근무자에게 보고하고 상황실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하였습니다.
3. 사고 발생 인지시간은? (무엇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는지 등)
사고발생 인지시간은 쾅하는 소리를 듣고 손목시계를 이용하여 시간을 본 후 보고하였고 근무진입 후 얼마지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무진입은 21:15 정도에 하였고 상황인지 시간은 21:23이었습니다. 전자손목시계를 착용하였고 TV뉴스화면 나오는 시간으로 맞추었고 분단위로 맞추었습니다. 사고이후 4월 1일경 알람을 맞추다 실수로 시간을 조정해 사고 당시 손목시계 시간과의 정확한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4. 사고발생 지점은? (평소 관측범위인지, 무엇을 보고 알았는지, 좌표냐, 주변환경이냐)
평소 관측범위였고 두무진 돌출부 쪽이었고 2~3시 방향으로 보았습니다. 두무진 돌출부는 시정이 좋지 않아도 위치가 잘 판단되는 지형입니다.
5. 사고당시 상황은? (누구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기술)
- 본 것 (섬광, 화염, 물기둥, 연기, 부유물 등)
쾅하는 소리와 동시에 4~5km로 추정되는 거리에서 하얀 빛이 퍼졌다가 소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빛 주변이 조금 밝아졌고 주변으로 퍼지는 모양이었습니다. 시정이 좋지 않았고 가까운 거리가 아니여서 그 외에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안경을 착용하였고 교정시력은 양안 다 1.0 이상입니다.
- 들은 것(충격음, 폭발음 등 지속시간, 느낌정도를 구체적으로)
쾅 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났고 한 번으로 났습니다. 부딪히는 소리보다는 폭발음에 가까웠습니다. 이후에 군함이 사격하는 소리를 같은 장소에서 들었는데 당시 사격 소리와 유사했고 사격소리보다는 더 크게 들렸습니다.
- 기타(침몰함정 주변이 의아물체, 부유물 등 목격 여부등)
야간시간이었고 시정이 좋지 않아서 빛 이외에는 다른 물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6. 사고발생 직후 어떤 조치를 하였나? (시간대별로 구체적으로 기술)
-감시장비(장비명, 기능, 운용방법 등) 작동 여부
감시장비는 PVS-7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1배율로서 야간광학장비로 관측할 때 사용하는데 사고 당시에는 맨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운용방법은 10분에서 15분마다 관측하거나 주변물체에 변화가 있을 때 주기적으로 관측하였습니다.
- 지휘보고 / 상황전파 등 초동조치 여부
쾅 하는 소리를 들은 후 선임근무자에게 바로 보고하였고 선임근무자(상병 박일석)가 바로 상황실에 보고하였고 계속 관측하였습니다.
- 출동인원(부대, 경찰, 민간 구분)
247초소에는 근무자가 계속 근무하였고 이후에 PCC좌초 인지후 연화리 쪽으로 중대본부 인원이 전투배치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7. 사고 발생전 이상징후 목격 여부?
- 침몰함정 기동상태
사고발생 전에는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 침몰함정 주변선박(의아물체 포함) 이동 여부
침몰함정 주변에는 없었고 의아물체로 판단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동하는 물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10. 초계함이 침몰되던 상황은? (함수와 함미 구분하고, 침몰시간은)
초계함이라고 판단하지 못하였고 함수나 함미 등을 관측하지 못하였습니다.
11. 구조당시 상황은?
구조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2일 진술인 상병 김승창
247 초소초병들이 최초 출현을 목격한 해군함정 3척과 나중 목격한 해군함은 도합 4척이지만, 이를 해경501함이 현장에 도착해서 목격한 천안함 주변의 해군함정(고속정) 4척이라고 볼 수 없다. "구조"당시 상황을 보고한 247 초소 초병 김승창 상병의 증언을 보면 그렇다.
김상병이 목격한 "구조" 당시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 1척 중, 소형선박 3척은 박상병이 목격한 해군함정 3척일 것이며,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은 박일석 상병이 나중 목격한 해군함이거나 "천안함(함수)"이어야한다.
하지만 공개된 디지털 자료인 TOD상 "함수"는 9시30분부터 TOD사각지역으로 접어드는 10시7~8분까지 247 초소초병들이 목격한 방위각 170~180도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리고 TOD상 "함수"는 우현으로 90도로 기울어 물에 반쯤 잠긴 상태였으며, 더구나 연화리 247 초소 에서 바라보는 각도에서는 배 밑바닥이 보이게 된다. "함수"의 길이도 88m의 초계함 전장이 아니라 47m로 37m의 고속정의 길이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의 함수"를 그것도 2~3km 떨어진 초소에서 PCC로 보이는 큰 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따라서 김승창 상병이 "구조"당시 목격한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은 "함수"가 될 수 없다. 또한 천안함도 될 수 없다. (내용추가-아래 脚註 1 참조)
따라서 김승창 상병이 목격한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은, 박일석 상병이 나중 목격한 해군함일 수 밖에 없다. 김승창 상병이 목격한 PCC로 보이는 큰 배는, 247 초소에서의 관측거리 상 함상(艦上)의 불빛으로 판별되었을 것이다.
만약 박일석 상병에 의해 나중에 출현이 목격된 해군함이 고속정 등 소형 선박이라면, 김승창 상병이 "구조" 당시 목격한 PCC정도로 보이는 큰 배의 출현이 따로 보고되었어야 하지만, 247 초소초병들은 이에 대해 증언해준 바가 없다.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 박일석 상병이 나중 목격한 해군함이 "좌초된 PCC" 역할을 하게된 것이고, 먼저 목격한 해군함정 3척은 그 "좌초된 PCC"를 "구조"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결국 3월26일 사고당일 백령도 연화리 247 해안초소 초병들은, 고속정 3척과 해군함( PCC로 보이는 큰 선박)을 "구조" 당시에 목격한 것이며, 이는 해경501함이 현장에 도착해서 목격한 고속정 4척과 우현으로 90도 기울어 반쯤 잠긴 천안함과는 다른 상황(장소)을 목격한 것이 된다. 이 장소(상황)에서 목격된 해군함정 (소형선박, 고속정) 3척은 상황 종료 후, 백령도 천안함 침몰 현장과는 떨어져있다가 3월27일 새벽에 고속정 기지에 대청도 고속정 편대 2척과 함께 복귀한 후 오전에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천안함 구조 수색에 나섰던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316호, 231F)과 교체되었을 것이다.
[대청도 선진항 50여미터 거리에 있는 해군 고속정 기지에는 군인 2명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주민들은 고속정 5척이 새벽에 들어오더니 오전에 사고 해역으로 다시 떠났다고 말했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6606
그리고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병들에 의해 "구조" 당시 목격된 PCC로 보이던 큰 배(해군함)은 상황 종료 후 어떤 행보를 보였을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속초함은 공식적으로는 백령도 서방에 사고 당일 "저녁 10시40분"에 도착하여 11시경에 "130발의 격파사격"을 했다.
그렇다면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 상 보이는 연평도 고속정 편대 소속 231F와 316호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을 보기로 하자. 아래 국방일보 기사는 천안함 전투정보관 정모 중위의 사고직후의 대처사항을 적고 있다. 대청도 고속정 편대인 235편대를 긴급출동시켜 달라는 구조요청과 함께, 연평도 고속정 358호정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자망으로 상황을 전파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정 중위는 휴대전화로 2함대 지통실에 전화를 걸어 “경비 중인 천안함이 조난당했으니 구조를 요청한다. 235편대를 긴급 출항시켜 달라”고 외쳤다. 잇따라 358호정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자망으로 상황을 전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3분 동안 구명볼을 풀어 전탐실 뒤 도어쪽으로 내리는 작업을 도우며 상황을 파악했다.
이즈음 통신장의 도움을 받으며 최원일 함장이 나타났다. 함장은 “모두 침착하면 다 살 수 있다”면서 “함 내 남은 인원이 있을 수 있으니 수색조를 편성해 구하라”고 지시했다. 통신장은 비상통신기로 함대와 교신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아 2함대 상황장교와 통화 중이던 포술장의 휴대전화로 구조 완료 시까지 통신망을 유지했다.]
http://kookbang.bemil.chosun.com/bbs/view.html?b_bbs_id=10002&num=772
[21시 28분경 천안함 포술장은 휴대전화로 2함대 상황장교에게 구조요청을 하였는데 2함대 상황반장이 통화내용을 듣고서 상황장교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확인 후 21시 30분경 문자정보망을 이용하여 대청도에 있던 고속정 편대에 긴급출항을 지시하였습니다. 21시 30분경 2함대 당직사관은 지통실에서 천안함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함정이 침몰되고 있으니 빨리 지원병력을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고 직통실장에게 보고 후...]
http://imnews.imbc.com/replay/nw930/article/2602770_5789.html 4 월4일 중간조사 결과 발표 내용
한편 4월1일의 속초함 사격과 관련한 국방부 브리핑 내용 중에는 속초함의 전개와 관련하여 아귀가 맞지않는 대목이 있었다.
[지금부터 초기상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서북도서에서 당일 날 천안함은 백령도 서방에 있었습니다. 천안함은 3월 16일 날 평택항을 출항해서 백령도 근해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정상적인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3월 26일 21시 22분에 백령도 서방해역에서 침몰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2함대사에서는 21시 26분에 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대청도에 있는 고속정 편대와 속초함을 현장으로 이동을 시켰습니다.
다음은 속초함 사격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속초함은 이 근해에서 당시에 중국어선이 약 180척 있었습니다. 중국어선을 감시하다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함대 지시에 의해서 백령도 서방 “현장을 향하라“는 지시에 의해서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속초함이 백령도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함대에서는 현장에 이미 충분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속초함에 대해서 현장으로 가지 말고 혹시 불순세력에 의한 어떤 피습 우려를 고려해서 만약에 그럴 경우에는 공격했던 어떤 물체를 탐지하기 위해서 속초함에 대해서는 백령도 서방으로 가서 차단을 하라는 그런 지시를 해서 속초함은 백령도 서방으로 계속 항해를 하였습니다. 백령도 서방으로 항해하던 중 22시 55분에 백령도 북방에서 고속으로 북상하는 표적을 접촉하였습니다.]
http://stopnews.kr/gmbbs/skin/news/gmbbsView.asp?page=1&bbs_seq=502천암함 침몰 4월 1일 오후 브리핑
즉, 속초함에 백령도 서방 "현장을 향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동하는 과정에서 현장으로 가지말고 백령도 서방으로 가서 차단을 하라는 지시를 내려서 속초함은 백령도 서방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4월1일 브리핑 당시 제시한, 아래 속초함 사격상황요도등의 그림을 참조하지 않고 위 브리핑 내용만을 보면, 뭔가 아귀가 안맞고,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을 준다.
과연 천안함 사고 현장이 어디였을 지, 그 현장이 백령도 서방이었을 지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아래 속초함 사격상황요도 등은 4월1일 브리핑에서 국방부가 제시한 그림이다.해경501함 뿐만 아니라, 해경 1002함, 어업지도선 227호등이 모두 "백령도 서방 현장으로 도착"하는 모습이다.마치 백령도 서방에서 해경에 의한 천안함 생존자 구조까지 다 마쳐진 것처럼 그려놓았다. 위 아시아경제 군 상황도와 확연히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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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1/
천안함이 백령도 연화리의 초기 "사고발생지점(백령도 서남방 1마일)"에서 침수가 발생하여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에서 두동강났다고 가정하더라도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9시30분경부터 15~20분간 포소리를 들었다는 백령도 남방 장촌포구 주민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에 백령도 서방해역을 감시하는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은 그 어떤 조명탄과 포소리 청취 목격 증언을 해주지 않았다.
국방부장관등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씨는 백령도 연화리 서남단 초소 초병들의 증언이 꼭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이 출현을 목격한 해군함(정)의 수(數)와 PCC로 보이는 큰 배는 어떻게 식별이 되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백령도 연화리 247 초소 초병들이 목격한 "구조상황'이 위장상황인 지를 밝히기 위해서도 반드시 증언 청취가 있어야 한다. 마사지가 이미 행해졌을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