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1. 24. 월요일
블루칼라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나포되었던 주얼리호의 선원들이 무사히 구출됐다. UDT 요원들이 투입돼 장장 4시간에 걸쳐 해적들과 총격전을 치르며 아무런 인명사고가 없었다는 기적적인 결과에 나 역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구출 작전이 과연 인질들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었는지는 사실 조금 의심스럽지만 연평도 사태부터 감사원장 후보의 사퇴와 종편방송 선정으로 이어진 현 정권의 삽질을 만회하는 기사회생의 사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위기 때마다 새롭게 터지는 사고로 상황을 모면해가는 가카의 운빨은 정말 소망교회 장로님다운 축복으로 여겨질 정도다)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소말리아라는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해적의 나라’라는 것일 것이다. 전 세계 해적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선박들을 납치해 톡톡히 몸값을 뜯어낸 전력이 있는 악질적인 놈들의 나라. 그게 최근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소말리아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최근엔 이 ‘해적의 나라’ 를 증오하며 여차하면 군대를 동원해 그 나라 영토까지 쓸어버리자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의 근현대사를 훑어보면 그런 증오의 화살이 제대로 된 타겟을 향하고 있는 건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고민도 없이 아무데나 화살 쏘는 쉐키라면 뭐 어쩔 수 없고.) 시기가 참 안 좋지만 여론의 방향과는 정반대인 글을 쓰는 건 원래 내가 이렇게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놈이라서 그런 거니까 맘에 안 들면 읽지 마시라.
물론 내가 원피스의 애독자이긴 하지만 해적질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소말리아 앞바다는 위대한 항로도 아니고 밀집모자 루피의 낭만도 없다. 그곳엔 씁쓸한 역사를 뒤로 하고 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핏물이 흘러드는 죽어버린 바다만 남아있는 것이다.
국제문제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가 177개국을 대상으로 뽑은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순위에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 3년 연속 1위에 올라있는 나라 소말리아. 지구상에서 가장 실패한 이 나라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고 한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딴지스라면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햅번을 기억할 거다. 비록 오래된 재방송이었지만 나에게도 꼬꼬마 시절 흑백 TV 속에서 본 햅번은 여신 그 자체였다. 요즘에야 모니카 벨루치 여사도 여신으로 떠받들여지지만, 햅번 여신님은 벨루치 여사를 하녀로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포스가 있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필름 속 그녀가 아니었다.
몇 차례의 이혼 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영화계를 떠났던 햅번이 다시 대중들의 시선을 모은 곳은 1992년의 굶주린 소말리아 땅이었다. 스크린을 수놓던 그 곱고 예쁘던 피부는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덮여버렸지만 굶주림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 소말리아 아이를 안고 있던 햅번의 모습은 그녀 생애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된다.
88년부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에 나선 햅번은 92년 소말리아에서 자선활동을 펼치다가 결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93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이 사진 한 장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말리아의 비극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탐욕스러운 열강의 정치인들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이 이 비극의 땅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소말리아를 향해 많은 구호 물자가 답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원일기의 김혜자씨가 햅번 여신님처럼 그 땅의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봉사활동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우리나라와 별 다르지 않은 근현대사를 가졌기에 더더욱 우리 국민의 동정을 샀던 나라 소말리아. 어쩌다가 그 나라는 이제 우리 국민들에게 '군대를 파병해서라도 싹 쓸어버려야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걸까.
소말리아는 1991년 중앙정부가 와해되면서 폭력과 약탈, 각종 군벌들과 이슬람 무장 세력의 내전에 시달리며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는 이십여 년을 보냈다.
지금도 UN의 인정을 받는 소말리아 정부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치안이 미치는 지역은 수도 모가디슈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 한반도 세 배 정도 넓이의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그나마 치안이 유지되는 곳은
고작 종로 한복판 정도의 넓이란 말이다.
소말리아 근대사는 우리나라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질곡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에 이미 열강들의 탐욕에 국토가 쪼개졌는데 서부는 프랑스, 북부는 영국, 남부는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20세기 초부터는 그런 침략자에 맞서 소말리족이 꾸준히 저항운동을 펼쳤었다.
2차 대전을 거치며 영국령 소말리란드를 이탈리아가 침공하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패전국 이탈리아령 소말리란드는 UN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다. 그 후 1960년 6월 영국령 소말리란드가 먼저 독립을 하고 며칠 뒤, 뒤따라 UN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난 구(舊) 이탈리아령 소말리란드가 협병을 해 결국 소말리아 공화국으로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그때 프랑스령 소말리란드는 이미 에티오피아에 흡수된 상태였고
흩어진 소말리족은 케냐 북동부까지 퍼져 있는 상태였다. 소말리아 공화국 정부는 빼앗긴 자신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외교적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양국가 사이엔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전쟁은 어찌어찌 끝나고 에티오피아 정부와는 그럭저럭 관계를 회복하게 됐지만 문제는 소말리아 국내에서 벌어졌다.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 대부분에서 그랬듯이 소말리아 공화국의 내정은 극도로 불안했고 결국 대통령 암살과 뒤이은 구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도 아닌데 소말리아에서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세세한 역사를 서술할 생각은 없다. 그거야 구글신에게 검색을 부탁하면 금새 튀어나오는 내용들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맨 뒤에나 나올 테니 굵직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자.
하여간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바레 장군은 처음엔 소련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지만 80년대 들어선 소련을 등지고 미국과 손을 잡았다. 바레의 쿠데타 정부는 그렇게 22년 동안 소말리아를 통치했지만 그 때부터 이미 소말리아는 크고 작은 반정부 세력의 저항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바레 대통령을 축출한 것은 그의 심복이었던 아이디드라는 사내였다. (씨바, 정말 우리나라 현대사랑 너무 비슷하지 않냐?)
아이디드는 이탈리아령 소말리란드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으며 독립 후엔 소말리아 공화국의 대위로 임관한 인물이다. 그리고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자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 자리에 임명되며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런 출세도 잠시, 바레 대통령은 점차 아이디드를 견제하게 되었고
결국 6년 동안 그를 감옥에 투옥시켜 버렸다. 권력의 정점에 가깝게 올라섰다가 감옥에 쳐박힌 아이디드의 상실감은 굳이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롯데마트 사장도 아닌 주제에 바레 대통령은 통큰 치킨 배포를 보이며 아이디드를 다시 복직시킨다. 6년 감옥살이면 아이디드가 완전히 기가 꺾여서 주인에게 충성할 거라 생각했는지 그를 다시 자기 꼬붕으로 불러들인 거다.
하지만 감옥이란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곳, 잉여력의 성지라는 걸 바레 대통령은
잘 몰랐던 것 같다. 권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 6년의 감옥 생활을 버텨냈을 땐 감옥에서 배급받아 먹는 밥알보다 자기를 감옥에 쳐넣은 놈에 대한 분노를 더 많이 곱씹기 마련인 거다. 아이디드도 감옥에서 남아도는 시간 내내 복수심으로 칼을 갈았겠지.
하여간 출옥 후 2년 만에 권력의 요직에 복직한 아이디드는 1991년 반군단체 USC를 이끌고 군사정변을 일으켜 바레 대통령을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나마 중앙정부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던 바레 정권은 그렇게 막이 내려 버린 거다.
아이디드는 자신이 직접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않고 무하마드라는 인물을 새로운 임시 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했는데 그건 아이디드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의 장막 뒤에서 실권을 장악하려는 음모였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수반에 오른 무하마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이디드의 간섭을 벗어나 완벽한 권력을 독차지 하려 했으며 결국 아이디드와 무하마드의 권력 다툼으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의 내전 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국내 사정과는 무관하게 소말리아라는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도양과 홍해를 두루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최적의 군사 요충지를 소련과 미국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바레 대통령과 손을 잡은 소련은 내전에 시달리던 쿠데타 정부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공급했고 뒤이어 들어온 미국 역시 소말리아에 친미 성향 정부가 들어서도록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무기를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소말리아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의 수렁으로 빠지는 밑거름이 되어 버렸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 넘었지만 무기와 총탄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공급됐던 것이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말리아에서도 그 피 묻은 돈을 탐닉하는 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내전의 혼란을 틈타 무기 수입업자, 마약 밀매업자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는 그만큼의 총탄이 소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죽음은 돈벌이가 된다. 죽음으로 돈을 버는 자들에게 소말리아의 내전은 노다지를 캐는 광맥과 다름 없다. 그들은 내전 상황이 끝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소말리아의 내전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알 카에다 같은 무장 이슬람 세력까지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으니 그 땅에 사는 평범한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극한까지 내몰렸을지 상상이 되겠지?
소말리아를 취재했던 뉴욕 타임즈 동아프리카 지국장인 제프리 제틀먼은
그곳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소말리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국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내가 그랬듯 그저 문 앞에 서서 광란의 무정부 상태를 바라볼 뿐이다. 과거의 외부 개입은 모두 무참한 실패로 끝났으며 따라서 어떤 나라도 다시 손을 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개입은 최악 중 하나였다. 미군은 시기를 잘못 선택해 강력한 군벌과 맞서 싸웠으며, 맞싸우는 적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어떤 군벌은 지원했다. 미국은 소말리아의 위기를 이끄는 두 동인, 즉 파벌 체제와 종교를 도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소말리아는 실패한 외교 정책들이 줄줄이 묻히는 무덤이 되었으며,
국민은 급진화되고 정정은 더욱 불안해졌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위기가 초래되었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소말리아는 예상을 깨고 더 나빠진다. 정치적 위기에 뒤이어 수십 만 명이 굶어 죽었던 1990년대 초반의 기아 사태와 비슷한 재앙이 재연되려는 참이다. 전쟁, 피란, 가뭄, 하늘로 치솟는 식량 가격, 구호 요원들의 탈출 등, 모든 양상은 이 나라가 총체적 기아 사태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년 5월에 나는 가뭄으로 온 세상이 타들어 가는 소말리아 중부의 한 오두막 앞에 서 있었다. 병든 남자 아이가 죽어가는 엄마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의 옷은 축축했으며, 겨우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며칠째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이제 곧 죽겠군그래.” 근처에 있던 한 노인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하고 가 버렸다."
그렇게 소말리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구호물자마저도 막강한 군벌을 형성하고 있던 아이디드 일당이 빼돌리는 상황이 지속되자 UN은 33개국으로 구성된 PKO(유엔평화유지활동)를 2만 8천여 명의 미군 병력과 함께 소말리아에 파견하게 된다.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잠시나마 소말리아는 치안을 회복했고 국제사회의 구호물자는 굶주린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93년 4월, 미해병대가 철수하자마자 아이디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아있는 UN 평화유지군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그 결과 평화유지군으로 남아있던 파키스탄 병사 24명이 소말리아 군벌의 공격에 사망했고 미국 언론인 4명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 이후에 벌어진 미군과 아이디드 군벌과의 전투를 다룬 영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이다.
미국은 아이디드를 손보기 위해 그의 부관 두 명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아이디드의 부관들이 미군 부대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것을 파악한 미국은 최고의 정예 부대를 투입해 한 시간 안에 작전을 완료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후 3시 42분에 시작된 이 작전은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20분 간격으로 출격한 블랙 호크 헬기가 연달아 적들의 공격에 격추되면서 이 작전은 적 요인 납치가 아닌 미군의 생존이 걸린 구출 작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때 소말리아인들이 미군 사체를 칼로 난도질해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
CNN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미국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19명의 사망자와 80여명의 부상자를 낸 이 '블랙 호크 다운' 사건으로 인해 부시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게 된다. (하지만 소말리아 측의 사상자는 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미군이 철수한 후 소말리아는 다시 치안부재의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렸고
96년에 아이디드마저 암살당하면서 소말리아는 더더욱 겉잡을 수 없는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현재의 소말리아의 현실에 대해 제프리 제플먼은 이렇게 말한다.
“소말리아는 실패한 국가라고 부르는 것조차 지나치게 우호적인 평가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실패한 국가다. 짐바브웨도 그렇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최소한 정부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록 부패하기는 했지만 정부 관료 시스템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이래 소말리아는 국가가 아니었다. 이 땅은 주변국과 바다 사이에 존재하는 통치 부재의 무법 천지라고 불러야 옳다.”
그리고 그 무법천지의 나라는 또다른 자들에게 먹잇감이 되었다. 소말리아 내륙은 내전에 휩싸여 외국인들이 얼씬도 안 하게 됐지만 소말리아의 바다는 오히려 반대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내전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 속에서 소말리아 정부와 군벌들은 자신들의 바다를 지킬 여력이 없었다. 덕분에 소말리아 영해는 다른 나라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각 나라의 어선들은 마음대로 소말리아의 영해에 들어가 참치와 새우를 잡아들였고 그 금전적인 가치는 지금 해적들이 부르는 인질의 몸값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서해에서 싹쓸이 저인망 어선으로 고기의 씨를 말리듯이, 외국의 어선들은 소말리아 바다의 생태계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닥치는대로 고기들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자국에서 처리하기 껄끄러운 핵폐기물을 소말리아의 바다에 가져다 버렸으며 그 아름다운 바다에서 생명의 씨를 말려갔다.
결국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근근이 살아가던 소말리아 어부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바다를 지켜주지 못하자 스스로 무기를 들고 외국의 배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짐작하겠지만 그 어부들의 조직이 지금의 소말리아 해적의 모태가 된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자원 해안 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건 그런 슬픈 역사 때문이다.
물론 난 해적질이라는 범죄를 두둔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말리아 어부들이 해적으로 나서게 된 그 배경에는 열강의 침략과 그들의 바다를 먼저 침략한 나라들의 원죄가 있다는 얘길하고 싶은 것이다.
똑같이 식민지 상황을 겪고 군사 쿠데타를 몇 번이나 경험한 우리나라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소말리아가 저렇게 된 건 그 민족 스스로의 탓이라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화자찬에 빠지는 걸 조금만 자중해 보자. 우리 민족 역시 조금만 삐딱선을 탔으면 소말리아와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되었으리란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인이 몇 분 더 계셨으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 거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아쉬워하는 양반들도 있다. 그런데 박정희 같이 구데타에 뛰어드는 놈들이 동시대에 몇 명 더 있었더라면, 혹은 전두환이 들고 일어났을 때‘씨바, 전두환 따위가 해먹겠다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고 덩달아 들고 일어난 새끼가 몇 명 나왔다면 우리나라도 소말리아 꼴이 났을지 모를 일이란 거다.
이건 우리 민족의 힘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열강의 세력 틈새에서 그 시절 최악의 사태는 모면하고 흘러갔을 뿐이다. 전두환 같이 삐딱선 탄 놈들이 몇 명 더 나왔으면 온 민족을 피바다로 몰아갈 수 있었단 말이다. 반세기 전 김일성의 또라이짓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듯이 말이다. (김일성이 아니더라도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또다른 또라이가 나왔겠지만)
소말리아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종교도 이슬람 수니파로 거의 통일되다시피한 나라다.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에 가장 좋은 여건들을 갖춘 나라인 거다. 실제로 그들은 내전을 벌이더라도 외국의 침략 앞에서는 하나로 뭉치는 저력을 갖고 있다. (블랙 호크 다운 사건이 미국 입장에선 괘씸하겠지만 19세기부터 열강의 식민지배와 이권 싸움에 휘말려 고생한 소말리아인들에겐 외국군의 주둔 자체가 침략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잖냐)
그런데도 이 나라가 내전에 휩싸여 끝없는 폭력에 자멸하고 있는 것을 그들 민족 스스로의 탓이라고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이지만 자신들의 바다를 외국의 침략자들로부터 지키려던 어부들을 그런 해적으로 만들어 버린 국제 사회에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결장암으로 죽음의 고통과 싸워가며 오드리 햅번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있으면 친절한 말을 하거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살피거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이에게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하거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고,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며,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단다.
결코 누구도 버림받아서는 안 된단다. 기억해라, 애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사용하면 된단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한 손은 네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란다."
해적질이라는 범죄를 두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우리가 군대를 보내서 쓸어버려야 하는 악의 땅이 아니란 거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햅번의 품에 안겨있는 저 죽어가는 아이들의 나라를 어떻게 저주할 수 있단 말인가.
http://www.ddanzi.com/news/557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