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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진짜 나쁜년이다....
게시물ID : gomin_3190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
추천 : 2
조회수 : 66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4/19 21:49:50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때부터 아주 무서웠다.
질문을 해도 귀찮아하거나 화를 냈고, 사소한 실수에도 굉장히 심한 벌을 내렸다.
어릴때는 아빠가 무섭기만 했는데,
조금씩 크면서 아빠가 싫어졌다. 아빠의 무뚝뚝하고 욱하는 성격을 닮기 싫었는데
그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 사소한 일에도 아빠랑 마찰이 잦았고
나중에는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싸웠다.
아빠 성격 못이기고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때 진작에 이혼을 했는데,
나한테서 엄마를 뺏어가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아빠가 미워서
나는 더 반항하고 더 못되게 굴었다.
대학가면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일부러 대학도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와서
죽든 살든 혼자 해보자 하면서 알바하면서 대출받고 학교다녔다.
사촌동생이 그래도 명절에는 얼굴좀 비춰달라고 해서 일년에 딱 두번만 집에갔다.
집에가서 차례지내고 제사지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냥 집에가서 인사하고 밥먹고 다시 돌아왔다.
매번 그랬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때부터 일을 안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남들은 부모님 용돈받고 학교다니는데 나는 비빌 언덕조차 없다는게 답답하기도 했고
어쩌다 가끔 통화라도 하면 결국 서로 소리지르면서 전화를 끊었다.
너 생활비도 없이 혼자 잘 지내고 있니.
라는 말도 해줄 수 없이 작아진 아빠가 싫었다.

근데 오늘, 시험공부 하다가 집중 안되서 놀다가 구글에서 우연히 아빠 이메일 주소를 쳐봤는데
아빠 이름으로 만든 블로그가 있는걸 알게되었다.
뭔가 싶어서 들어가보니까,
혼자서 참 별말들을 다 끄적거려놨다.
친구도 두명밖에 없는데 그것도 다 무슨 홍보사이트 같은건데,
혼자서 오늘 있었던 일같은 걸 써놨는데,
어차피 아무도 안볼텐데...

난 진짜 나쁜년이다.
이혼하고 재혼해서 살고있는 엄마랑은 이틀 삼일에 한번꼴로 전화도 하고
주말마다 놀러가서 맛있는 것도 보고 영화도 보고 하는데,
아빠랑은 스무살 지나고 나서 전화한 횟수가 열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연락을 안했다.
아빠가 스마트폰을 샀는지 카톡에 내가 남자친구랑 찍은 사진을 보더니
너 남자만날거면 꼭 아빠한테 데리고 와야된다 하고 이모티콘까지 붙였는데,
난 이제 아빠가 하다하다 별간섭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답장도 안했다.
밥은 잘 챙겨먹냐고 문자와도 잘 먹고 잘지낸다는 예쁜소리 한번 해본적이 없다.
신경쓰지 말고 아빠 할일이나 잘하라고.

난 이나이 먹도록 아빠가 나쁜 사람인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진짜 내가 나쁜년이다.
어릴때부터 나한테 가족은 남동생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서
난 지금 이런 기분이나 이런 감정이 너무 어색하고 답답하다.

예전엔 그렇게 무섭더니,
지난번에 선거한다고 집에갔더니 점심이나 먹으라면서 밥을 차려줬는데
밥이 1인분밖에 없다고 아빠는 밥먹기 싫다고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다.
상이 하도 작아서 냄비를 들고 먹는다.
나는 그냥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먹고 집으로 왔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우리 아빠 이가 많이 빠져있다.
그래서 또 생각해보니까 그게 꽤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거 같다.
그래서 고기도 못먹었던 거 같다.

난 진짜 나쁜년이다.
나쁜년인데 용기까지 없어서 아빠 블로그에 아무말도 적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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