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카페와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일사천리로 달렸다거나, 일반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이런 이민 경험도 있다...하고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요.
글빨이 좋지 않은 점, 그리고 문법/맞춤법 실수가 있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영어로 문과 공부해서 문송문송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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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국 교포 2세로, 80-90년대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덕에 한국어로 소통하지 않으면 상대를 해주질 않으니 울며불며 한국어를 배웠고-_-;;
많은 주재원 자녀들과 함께 주말에 한국 학교에 나가 국어 수학 역사 등의 과목들을 어느정도 꾸준히 배웠습니다.
사실 영국에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나지도 않고ㅎㅎ 쉬는 시간이면 풀밭에 앉아 클로버꽃으로 목걸이를 만들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지나가는 애들한테 메롱하며 놀았던 신나는 기억들이 한가득...
하지만 박사과정을 영국에서 끝낸 아버지의 종신교수 계획이 무산되면서 온가족이 갑작스레 한국행을 하게 되고
중3부터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지요-_-;;
아주 하드코어한 (부)적응기였습니다-_-;;
아직 체벌금지가 시행 전이라 학교에서 맞는게 정말 컬쳐쇼크였고,
수업때 화장실 간다는 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수업중 질문이나 의견을 말하면 나대는 이상한 애로 찍힌다는 것도 처음엔 몰랐으며,
고작 한두살 차이나는 복학생 날라리들에게 왜 90도로 인사하고 존대를 하는지도 이해불가였고,
사교육도 안 받아본지라 애들이 학원가서 예습하고 학교수업땐 뒤에서 학원문제지 풀거나 자는 모습도 충격적이었어요.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참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많습니다-_-;
집에다가 매일 울며불며 자퇴시켜달라 영국으로 다시보내달라 검정고시를 보겠다... 난리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부모님 눈에 들어온게 자사고였어요. 그런곳이라면 일단 외국 살다온 애들이 좀 될거고, 수업선택의 자유도 토론에 대한 욕구도 채워지리란 생각에 그쪽을 지원해보라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다행히 붙었고, 그곳에서 저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미국 유학으로 한국을 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계획대로 술술 풀리겠나요? 고2가 되자 아버지 사업이 기울며 일단 미국 대학 원서는 넣되, 못갈수도 있으니 한국 대학도 지원하는 쪽으로 선택지를 넓혀야했습니다. SAT와 수능의 강렬한 입시 하모니-_-!! 그 시절은 주말포함 하루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고, 위염 장염 고막염 스트레스성이었던 연속적인 가위눌림 등에 시달렸고, 애국조회하다 졸아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도, 너무 졸려서 사감쌤 cctv를 피해 장롱이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새우잠을 잔 적도 있었어요 ㅎㅎ 그런 시기들이 홀몸 유학과 이민생활에 필요한 독기를 키워줬다고 생각합니다-_-; 지금은 하루만 그렇게 자도 며칠 골골대지만요.
12월 얼리 입시 발표가 나고 꿈에 그리던 미국 모대학에 철썩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K대에도 장학금을 받으며 합격해서 그걸 빌미로 이제 미국 대학 장학금 밀땅을 시작합니다-_-;; 풀장학금이 안 나오면 유학은 꿈도 못꿀 집안사정이었으니... 그러면서 일단 어딘가엔 속해야하니 K대를 1학년 1학기와 여름동안 다녔지요. 이 동문들을 지금도 우려먹고 있으니 새삼 한국 학력주의의 강력함을 꾸준히 느끼는 중입니다... 다행히 잘 협박(?)해서 미국 대학에서 풀 학비+기숙사비+책값+1년 1회 비행기값+방학보조금까지 두둑히 뜯어내고 한국쪽은 자퇴하고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시간이 흘러흘러 저는 미국에서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비슷한 문과 조합의 전공을 하신 아버지의 우려와 반대를 뒤로하고, "내 장학금이니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테야!!"하고 문송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ㅎㅎ 이때부터 경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됩니다. 학교를 다니며 동문 사교육 인맥을 땡겨 온라인으로 번역, 문제출제, 에쎄이 모의 첨삭 등 쏠쏠한 알바를 하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습니다. 총 20여개국...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한국어를 가르쳐주신 것에, 국문학 독서 습관도 길러주신 것에 대해 생전 처음으로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ㅠㅠ 한국처럼 사교육으로 대학생들이나름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나라가 없잖아요? 학교에선 도서관, 식당, 연구조교 등 다양한 알바도 하고 학과 커미티 임원으로도 봉사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못 이룬 교수의 꿈을 이룰거라 꿈꾸며 학교를 다녔지만, 4학년때 졸업논문을 쓰며 가르치는 건 정말 재밌지만 연구는 영 체질이 아닌 것 같아...를 깨닫고 대학원 원서 쓰기를 중단했어요. 그러다 졸업할때가 되어 미국에 남을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땐 미국의 국제적인 입지도, 트럼프도 당연히 전혀 예상을 못했지만, 그냥 뭔가 미국엔 계속 살기 싫었어요. 미국중심적인 사고도 싫고, 많이 여행다녔다고 공항을 통과할때마다 범죄자 취급하는 입국심사도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리고 대도시 출신 친구들도 거의 없어서 졸업하고 어차피 다들 뿔뿔히 흩어질거, 모험 한번 해보자 싶어서 국제학교에 SAT/AP 교사로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몇 나라 국제학교들에 붙었고 한국에 나름 가까운 중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거기서 몇년간 국제학교 교사일을 하며, 한국이랑 중국이랑 잘 맞아떨어지는 명절엔 한국도 꼬박꼬박 들어가며, 특례입시도 지도하며, 홍콩으로 이직도 해보며, 장기적으론 무얼 하며 살아야할지 궁리를 좀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이때가 정말 소비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ㅎㅎ 미국 월급+@으로 중국에 생활하며 어딜가든 택시를 타고, 무얼하든 사람을 부르고, 혼자 사는 집에 가정부 아주머니, 그리고 주말엔 자주 마카오 여행까지 ㅠㅠ 지금도 그때 생활을 가끔 떠올립니다. 아 그때 차라리 죽도록 절약해서 캐나다 오자마자 집값이 쌀때 콘도를 살껄하고요-_-;; 그래도 중국 살며 느낀 점은 돈을 떠나 그저 안전하고 매너있고 마음 편한 곳이 최고다~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서 더이상 못있겠다 싶을때 대학원을 갈 나라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학교를 다니는게 나라 옮길 방법 중 제일 편해보여서...
공교육이 제대로 잡혀있고 교사 생활하기 괜찮은 나라나 지역이 어딜까 찾아보다가 대학때 친구 따라 몇번 놀러와본 캐나다 온타리오에 꽂혔습니다. 그땐 아무데나 한군데 붙어라...하는 심정으로 유티, 욕대, UWO, 브록... 전부 교육쪽으로 대학원 원서를 넣었어요. 다행히 1지망이었던 유티에 붙어 2011년에 토론토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5년은 참 짧은 학업과정이더라고요. 그냥저냥 토론토 생활 적응하는사이에 휘리릭 시간이 마구마구 흘러가버렸습니다. 학교 다니며 emergency supply도 해보고, 연구조교랑 OSSLT 채점도 해보고... Pathways to Education이나 방과후 튜터 같은 봉사도 하고... 그래도 그때는 EE로 이민이 바뀌기 전이라 PNP로 한큐에 이민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다시 취준생이 되었지요...
취준생이 되고서는 매일같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시 교사가 되고싶었지만, 저도 그때는 별 조사를 안 하고 (온타리오 교사 취업이 정말 최악으로 막막하다는 걸 대학원 입학때까진 전혀 몰랐습니다 ㅋㅋ 읔ㅋㅋㅋ) 이미 경력도 있으니 대학원만 나오면 취업되려니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포기는 못하겠고, 계속 원서는 넣고, 교육청에서 연락은 안 오고,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어요.
어쩔수 없이 이때도 돈은 벌어야하니 번역, 문제출제, 과외 등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이도 어느덧 20대 후반... 영주권은 따놓았지만 커리어 한치 앞을 알수 없는 이때부터 부모님의 한국 들어오란 압력도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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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보고 2탄 올리겠습니다....? 는 농담이고... 생각보다 길어지는 얘기라 이만 끊고, 2탄은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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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야기가 제가 대학+이민까지 계획되진 않은 장기 조기유학을 굉장히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귀국 후 한국 부적응자 되기 딱 좋거든요-_-;; 그리고 자녀가 대학+이민까지 간다면 또 부모님까지 이민 계획이 있지 않은 이상,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한단 것도요. 어렸을때 외국어 발음이나 다양한 경험이 목표라면 차라리 방학 캠프나 꾸준한 과외를...
오유 어느 분이 쓰신 글에서, 이민은 돈/영어/기술 중 둘 이상은 맞아떨어져야 한다...랬는데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저도 좋아하지도 않는 한국으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갈뻔한 케이스예요. 돈 어중간, 영어 상(원어민), 기술 어중간(영어권 고학력+경력, 하지만 하드스킬이 없는;;)으로 어설프게 이민 시도했다가, 절망도 했다가, 어찌어찌 운빨로 잘 풀린 얘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