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태 흐름 정리
시리아 사태를 말하려면 우선 2011년 일어난 아랍 민주화 혁명부터 다시 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튀니지 벤 알리정권이 길어지자 튀니지 시민들이 정권을 뒤집기를 결심했고, 결국 벤 알리정권은 방명에 이른다
이것이 아랍 민주화 운동의 발화점이고, 이 튀니지 사건은 리비아와 이집트에도 불을 붓는다.
이집트는 무바라크의 우둔한 대처에 일찍이 상황 종료, 상대적으로 조용히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러나 리비아의 카다피는 앞의 두 나라를 보고 처음부터 무력으로 강경하게 대처하고, 살육을 저지른다.
이에 여권은 단합해서 정부군과 싸우자며 시민군을 조직하고 내전이 발발한다.
리비아가 내전에 빠지자 UN도 바로 개입하기 시작하고상임이사국을 모아 투표한다.
리비아가 산유국인만큼 관심은 높았고, 특히 지중해 맞은편의 프랑스가 관심이 컸다.
또 미국이 참가하니 자연스레 영국, 이탈리아 등이 따라왔고 유럽 각국도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오딧세이 작전이 펼쳐지고 리비아는 나토 공군에 털리고 카다피는 쫒겨난다.
리비아 사건은 시리아에 영향을 미치고 시리아도 민주화 바람이 불지만,
시리아의 아자드 정권은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것에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고, 타 아랍국가에 비해 상당히 기독교 비율이 높다.
이 기독교 세력은 정권이 물러나면 탄압이 심해질 거라 예상하고 민주화에 반대한다.
이렇게 단합이 되지않아 수포로 돌아가는 듯 하나, 13세 소년의 시체 사건으로 혁명에 불이 붙는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를 아자드 정권은 무참히 짓밟기 시작했고, 여기에 UN군의 개입이 시작되려한다.
여기서 문제가 불거지는데 시리아는 리비아와 다르게 60만에 이르는 군사등 군사력이 다를뿐만아니라 러시아와도 친하며,
아랍 국가 중에서도 석유가 나지 않는 국가로 이득이 될게 없다.
그래서 미국도 끼어들기 싫어하는 형국인데,
경찰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로서 더이상 국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서,
만약 러시아와 중국이 대책이 없다면
전쟁을 하겠다는 입장이고, 지금은 의회을 결정만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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