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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15
게시물ID : humorstory_134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0
조회수 : 2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13 12:23:25
15.

미유코는 조심스레 스미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뭐?!"-


-"스미레,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봐. 시원이가 원래 여자에 좀처럼 관심이 없대. 그

래서 지금까지 여자친구도 한 명도 없었대."-


-"그래? 그러면 더욱더 용서할 수가 없네. 그렇게 생겨먹었으면 생긴대로 놀 일이지. 지

가 뭔데 여자들을 무시해? 꽃미남이면 다야? 용서할 수 없어!"-



스미레는 흥분한 듯 하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마치 자신한테 걸리면 꼼짝도 못할

거라는 자신감이 찬 표정이었다. 미유코는 스미레가 상처를 받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수호와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나가봐야 했기에 말을 끝내고서는 서둘러 준비

를 했다. 

자극적인 빨간색 큰 머리핀을 꽂고, 긴 생머리를 곱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청순해 보이

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갈색 치마 위에 꽃무늬 물결이 새겨진 흰 블라우스를 입었다. 블

라우스에 붙어 있는 단추까지 새하얀색으로 그렇지 않아도 새하얀 얼굴과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아주 생쇼를 하네."-


-"뭐가?"-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크크 잘해봐라. 그런데 너 어떻게 극복한 거냐?"-


-"아 그거? 그게, 나도 의문이라서 앞으로 차츰차츰 풀어보려고. 수호가 말한 게 정말 

존재하는 건지 아닌지..."-



미유코는 수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짝 수줍은 미소를 흘린다.



-"존재하다니? 뭐가?"-


-"그런 게 있어."-


-"맨날 지 혼자 말하고 지 혼자 좋아해. 잘 다녀와. 청승과부는 집 지키고 있을 테니까.-

마치 딸자식을 시집 보낸 듯 시원섭섭해하는 스미레를 뒤로 두고, 미유코는 기숙사 방을

나선다.


-"훗, 미유코 좋아보인다.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스미레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수호가 기다리고 있는 강변역으로 가기 위해 미유코는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한국을 처

음으로 방문하는 여자 일본인에게는 다소 어려울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어를 능숙하

게 읽고, 쓰고, 말하기를 할 수 있는 미유코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

황이 닥치자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 참 뿌듯하고 편리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하지만 잘한다고 해서, 일본어보다 편할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수호와 얘기를 하지 않

는 이상은 특별히 한국어를 쓸 필요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일본 여성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의 일본어가 들려오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미유코는 쑥쓰러워서 서둘러 그 장소를 빠져나간다. 지하

철을 타고 어렵지 않게 도착하자 수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둘이 만나는 날이면 항상 수호가 10분 정도 일찍 와서 기다리곤 했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미유코가 자신을 찾는답시고, 길을 잃어버리고 헤맬 것을 대비한 배려였다. 미유

코는 항상 그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는데 괜찮았어?"


"그럼, 내가 누군데?"


"어련하시겠어요? 그런데 너 오늘...죽인다!"


"죽이다니? 무슨 소리야? 누굴 죽여?"



미유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 순간, 수호는 자신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 미유코는 일본인이었지. 나는 미유코가 하도 한국말을 잘하고 편하게 느껴져서

그냥 한국인인 줄 알고 있었지 뭐야! 하하하...그 뜻은 죽여주게 예쁘다는 뜻이야."


"예쁜데 왜 사람을 죽여?"


"흠, 그건 한국말의 심오한 부분이니까 나중에 더 공부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지금 설

명하기가 약간 어렵다. 원래 한국말 하다 보면 특이한 표현법이 좀 많아. 가령, 예를 들

면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한다거나 왜, 그런 거 있잖아."



수호는 앞으로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음, 그런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


"자,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공주님?"


"재밌는 곳으로...나 구경 많이 하고 싶어."



미유코는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많았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말을 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하나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수호는 항상

미유코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보통의 남자라면 샘을 낼만도 하지만, 어차피 미유코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 웃음은 수호만의 웃음이었다. 그 점이 너무도 뿌듯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실컷 구경하게 해줘야겠네.'



이렇게 마음먹은 수호는 서울의 거리를 마구잡이식으로 돌아다녔다. 거리에서 파는 갖가

지 모자, 목걸이, 반지, 귀걸이, 옷 등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어느 새 미유코의 목에는 목걸이가 손에는 반지가 걸려 있었다. 



"이런 거 안 좋아해서 안 차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구한테 선물 받은 적이 없어서 안 차고 다니는 거였지. 내가 

혼자 사서 차고 다니기는 좀 그렇잖아?"


"뭐, 어때? 다들 그러고 다니는데."


"넘넘 복잡하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연인들도 많았다.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디론

가 향하고 있었다. TV에서 자주 나오는 세렝게티의 들소떼의 대이동을 방불케했다. 도대

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미유코

저 앞에 가서 어느 가게에 들어가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완전 쇼핑 광 되겠네...후후 미유코, 같이 가."


"예쁜 게 넘넘 많아!"


"어디서 갑자기 이상한 말투는 배운 거야? 넘넘이라니?"



수호도 모르는 사이에 미유코는 발음에 악센트까지 주면서 넘넘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

었다. 정말 귀엽고 예쁜 여자들이 해야 그런대로 봐줄만한 줄임 용어였기에 미유코가 하

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차라리 미유코를 더욱더 귀엽게 보이게까지 했다.



"너무너무를 줄인 말이잖아. 수호, 바보."


"아 그런 거였어?"


'누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묻냐. 이거 상당히 앞으로 갑갑하겠네'



수호는 미유코와 만나면서 자주 알면서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수호가 좋든 싫든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 문화권이라는 점

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수호를 간간이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가끔 가다가 미유코가 수호를 놀리는 듯한 말투로 모르는 일본어를 남발할 때,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도 수호는 즐기고 있었다. 일단은 청각이라는 호기심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츰 시각이라는 즐거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만큼 미유코는 사람들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지금까지 남자친구가 없었다는 게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봐야 여자친구가 없었다는 

것은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딱 맞는 초짜들이 만나서 연애를 하는 기가 막

힌 우연이 연출되었는지도 모른다.



"손에 그 반지 어떤 일이 있어도 빼면 안 된다."


"응? 반지 빼지 말라고?"


"응"



미유코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한다.



"잉, 세수할 때는 얼굴 아야하는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헤어지는 의미로서의 반지를 빼는 행위를 말하는 거야. 좀

말이 어렵지? 일본 문화권이랑 좀 다른가?"


"아니야. 알겠어"



어디서 아이같은 말투만 많이 배워온 것 같다. 앞으로 컴퓨터 사용을 좀 자제시켜야 될

듯 싶었다. 원래 초기에 배울 때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한 순간이 나중에 긴 순간을

좌우하는 것이다.

수호는 미유코에게 살며시 다가가 이마에 키스를 했다. 순간 미유코는 화들짝 놀란 눈으

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수호의 입술이 거의 정확하게 미유코의 이마에 닿는 키였기에 아

주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할 수 있었다. 미유코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랬던 것이다. 수호도 순간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괘...괜찮지?"


"그럼, 그런데 사람이 많아서 좀 창피하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호는 미유코의 손을 붙잡

고, "뛰어" 라며 그 곳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뛴 것 같았다. 미유코

도 숨을 헐떡이며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며칠째 가만히 있던 스미레가 오늘은 뭘 하려는지 열심히 거울을 보고 있다. 오늘은 수

업도 없는 날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고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뭔가를 열

심히 연습하고 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이 대체 뭘까?



-"좋았어. 훗."-



곧 그녀는 방을 나선다. 옆에서는 미유코가 곤히 자고 있다. 미유코가 깨지 않도록 살금

살금 나가는 꼴이 영 어색하다. 

그렇게 몰래 어렵사리 나간 스미레는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더니 발길을 옮긴다. 이미 

머릿속에는 시원이가 강의를 듣고 있는 강의실이 떠올라 있다. 기숙사에서 내려가 오른

쪽으로 턴을 한 뒤, 붉은색 벽돌같은 모양으로 치장된 건물을 지나 현대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물에 도착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었다.



-"이 안에서 수업을 받고 있단 말이지? 후훗..오늘 끝장내자.-



다짐을 끝마치고서는 수업이 끝나고 시원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적으로 왔다갔다를 반복하나 그 수업은 언제 끝날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곧이어 한 

무리의 학생들이 또 나오고 있었다. 어떤 수업이 하나 끝난 정도의 인파다. 역시나 시원

이도 어김없이 그 속에 섞여서 나오고 있었다.

스미레는 마음을 다잡고 재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시원이가 살짝 보고 알아채는 순

간 시원이는 별이 반짝하는 느낌을 받았다. 스미레가 정통으로 시원이의 따귀를 때린 것

이다. 그리고는 -"나쁜 놈"- 이라고 일본어를 내뱉고는 마지막 결정타로 눈물을 글썽거

리며, 홱 돌아서서 재빨리 뛰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따귀를 맞아서 어안이 벙벙하던 시원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쁜

놈"- 이라고 소리치며 가는 스미레를 붙잡지 못하고, 볼에 손을 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이 바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저마다 "저 남자가 여자를 찼나 봐." 라던지, "무슨 몹쓸 짓을 한 거지?" 라는 등의 말

들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시원이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것보다 자신이 왜 맞았

는지, 왜 자신에게 -"나쁜 놈"- 이라고 했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더 미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시원이는 일본어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알아들을 수 있었고, 아마도 

스미레는 그것까지 계산에 넣은 듯했다. 



'도...도대체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설마 소개팅 안 한다고 해서 저렇게 오바하는 건

아닐 테고...'



한참을 뛰던 스미레는 숨을 헐떡이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정원으로 들어가 자신의

키높이만한 나무 뒤에 숨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이도 시원이는 쫓아오지 않은 듯했

다. 



-"후우후우, 이 정도면 됐겠지? 킥킥. 이제 미유코의 힘을 좀 빌려야겠군."-



시원이는 뒤늦게야 자신은 스미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감에 빠졌다.

도대체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어야 할 텐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그렇다! 미유코한

테 통역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원이가 미유코에게 전화를 걸었을 즈음에는 이미 미유코가 스미레에게 장황한 상황설

명을 한 시간 동안이나 들은 후였다. 이미 미유코의 입가에는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 역

력했다. 



"미유코? 나 시원인데..."


"어, 그래 시원아,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스미레에게 나에 관해서 무슨 얘기 한 거 없니?"



미유코는 수화기의 입구 부분을 막고서는 -"야! 왔어, 왔어!"- 라며 스미레에게 전달하

자, 스미레는 간단하게 윙크를 날리고 잘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그냥 소개팅 하기 싫다는 소리밖에 안 했는데?"


"그래? 그거 말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거야? 뭐, 내가 자기를 안 좋게 봤다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 아니다, 됐다. 전화로 말할 게 아니라 혹시 스미레 있어? 있으면 너랑

스미레 좀 같이 좀 나와줘라.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겠다."


"그래? 옆에서 울고 있는데 그럼 데리고 나갈게. 어디로 나갈까?"


"기숙사 뒷길로 나오면 공원 있지? 거기로 나와라."


"알았어."



미유코는 통화를 끊고는 성공이다라는 의미의 브이자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스미레에게 

웃음을 날렸다. 스미레는 곧바로 -"고마워. 잘 되면 나중에 한 턱 쏠게."- 라는 말을 하

고, 미유코와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스미레, 대화도 통하지 않는데 말은 어떻게 극복하려고 해?"-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잖니. 정 안 되면 너 잠깐씩 빌리지 뭐. 키키."-


-"뭐? 너도 참 대책없다. 훗.-



그래도 미유코는 속으로는 내심 기뻤다. 불안정한 두 사람이 한 번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공원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그리고는 가로등이 이제 막 켜져서인지 뿌연 빛을 내며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희뿌연 색의 구름이 뒤덮고, 그 사이로 밝은 반달빛이 엷

게 저민 것처럼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연극 무대의 밝은 조명이 주인공이 있는 자리

를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심에는 시원이가 앉아 있었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 소리가 청승맞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꼭꼭 숨어있던 녀석

들이 나오기 시작했나 보다. 이제 완연한 가을인 것이다.



"후,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시원아."



미유코가 부른 소리에 시원이가 옆을 쳐다보자 마치, 억지로 끌려나온 듯이 미유코의 손

에 스미레의 손이 굳게 잡혀 있었다. 그렇게 스미레는 미유코의 손에 이끌려 시원이의 

앞에 대령하게 되었다.



"미유코, 미안한데 옆에서 통역 좀 해줄래?"


"응,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미유코는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참, 자신의 친구지만 스미레가 너무 

여우같은 계집애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시원이의 말이 시작됐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왜 그렇게 화를 낸 건지 알고 싶다고 좀 전해줘"



미유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미레에게 말을 한다. 그러자 스미레는 슬픈 표정을 지으

며, 미유코에게 다시 전할 말을 전하고 있다.



"도대체 자기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고, 소개팅은 싫다고 한 건지, 너무 

서러워서 그랬다고..."


"뭐? 정말 그렇게 말했어?"



일본어에 대해 습자지같은 지식만을 소유하고 있는 시원이로서는 대화의 내용을 알아듣

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미유코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응, 자 이제 뭐라고 전해?"


"그건 오해야! 누구한테 그렇게 들은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시원이에게

는 그런 것은 아무려면 좋았다. 어쨌든 오해를 푸는 게 우선이었다.


"그건 오해라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소개팅을 거절한 것은 내가 지금 마음의 여유

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고 전해줘."


"마음의 여유?"



또 감상적인 표현이 나오자 헤매고 있는 미유코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여자를 사귈 수가 없다고 좀 전해줘. 그 이유는 차차 나중에 말해

준다는 말도 덧붙여서."



미유코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말을 전하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알았으니까 오해는 풀렸다고. 어쨌든 자기를 울게 했으니까 맛있는 거 사달라는데...

우느라고 배고프다고."


"그래? 오해 풀렸대? 그럼 맛있는 거 그까짓 거 사주지 뭐. 미유코 너도 같이 먹으러 가

자."


"아...아냐. 나는 조금 전에 뭘 먹어서 배불러. 둘이서 먹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유코는 스스로 자신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스미레의 연기력에 더욱더 감탄했다. 그리

고 스미레는 자신을 참 좋은 친구로 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건 해냈다는 뿌듯함

이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결국은 스미레와 시원이를 보내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나서야 기숙사로 혼자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한참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있노라니, 스미레가 슬며시 들어왔다.



-"스미레, 어떻게 됐어?"-


-"응? 그냥 뭐, 밥먹고 왔지. 아, 피곤하다 자야겠다. 나 먼저 잘게."-


-"뭐 그게 다야? 왜 이렇게 시시해? 피, 뭐 숨기는 거 아냐?"-


-"아냐. 피곤해서 그래."-



겨우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버리는 스미레. 기대가 처참히 무너지고,

기대했던 재미난 이야기가 안 나오자 미유코는 김이 빠져서 책상에 그대로 앉아 한 시간

이나 더 책만 읽었다. 그런데 왠지 그 밝은 스미레가 힘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시원이

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미유코

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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