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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story_1346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0
조회수 : 2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12 18:44:37
14.
미유코는 오늘도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미유코의 몸은 10살짜리 꼬마아이의 몸으로 돌아
가서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되어 있다. 그러고는 애타게 엄마를 부른다. 저 멀리에서
어머니가 서서히 다가온다. 천천히 그리고 사뿐한 걸음으로...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큰 소리 내어 외치며,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여느 때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는 미유코. 너무 힘들다고 너무 괴롭다고 너무 외롭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따스한 손길로 미유코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신다. 그때야 비로소 미유코는 평온한 표정
으로 품안에서 잠이 든다.
행여라도 어머니가 오지 않는 날에는 밤새 울며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물론 꿈속에서 말
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갑작스레 눈을 뜨니 미유코는 어느 새 22살의 숙녀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쳐다보며 말을 건넨다.
"엄마, 이제 안 오셔도 되요. 이제는 스스로 해볼게요. 이제 저도 다 컸나 봐요. 이제
더 이상 번거롭게 안 오셔도 엄마 딸 잘 자고 잘 살게요. 그냥 멀리에서 지켜봐 주세요.
이제 수호가 지켜준대요. 그러니까 엄마 이제 편히 쉬셔도 되요."
그러마라고 말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간다. 마
지막으로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간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먼 거리에서 뒤를 돌아봤는
데 시진이의 눈에는 정확하게 어머니의 눈동자가 비춰진다. 매일 파르르 떨리던 눈동자
가 어느 새 안정을 찾고 고요하고 아늑하다.
이제 안심하고 가시는 것 같아 미유코는 홀가분하다. 미유코도 드디어 어린 아이의 틀을
벗어나 한 단계 성숙해진다.
오늘도 수호는 여자 기숙사 앞에서 미유코를 기다린다. 이제 전혀 어색한 포즈나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지나가면서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던 여학생들도 이제 신경쓰지
않는다. 이제 거의 학교에서 공식적인 커플이 되어서 누구나 알만한 커플이었다. 한국인
과 일본인이 사귀니 입소문이 돌게 된 것이었다.
미유코가 저 멀리에서 걸어온다. 물론 옆에는 유우끼와 스미레가 항상 끼어 있다. 스미
레는 항상 말이 통하지 않는 수호 대신에 미유코에게 투덜댄다. 제발 수호보고 시원이하
고 같이 좀 오라고 하라고...
그럼 미유코는 살짝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한다. 그런데 번번이 그 말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수호가 말은 전했다고 하는데 시원이의 모습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다.
스미레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 시원이 오빠 얼굴 좀 봤으면...그리고 말 좀 걸어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그냥 아침에 이렇게 기다릴 게 아니라 수업하는 게 찾아가면 되잖아?"-
미유코가 제안을 한다.
-"찾아가서? 찾아가서 뭐라고 말해? 발음도 이상한 한국말 몇 마디 배워서 대화하라고?
너무 창피하잖아 그건."-
-"스미레, 넌 그냥 일본에서 너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고이즈미한테나 그냥 잘해줘.
왜 괜히 한국에 와서 오바하고 그래?"-
유우끼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넨다.
-"뭐? 고이즈미 걔 얘기는 꺼내지 말랬지?! 나는 걔 싫어. 싫다구!! 하필이면 이름도 총
리하고 똑같아 가지고는..."-
스미레는 대뜸 흥분하며 화를 낸다. 옆에 있던 미유코와 유우끼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수호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걔 이름 특이한 게 걔 잘못도 아니잖아? 풉."-
-"그래! 이름까지는 봐주겠다 이거야. 그럼 왜 얼굴도 비슷한 건데? 난 싫어!"-
수호와 미유코는 이미 팔짱으로 끼고 앞장서서 학교로 향하고 있다. 뒤에서는 유우끼와
스미레가 미유코에게 배신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뒤쫓아오고 있다. 수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미유코를 한 번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한다. 미유코와 잘 되고 나서 신경 쓰이는 게 더 많이 늘어난 것 같
은 느낌이다. 요 며칠 동안 전화 한 통 안 하고 잠수 타고 있는 시진이도 신경 쓰이지만,
같이 놀자거나 어디 가자고 항상 먼저 제안했던 시원이가 말도 적어지고, 잘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바로 전화하거나 찾아봐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겠지만, 미유코와 같이 다
니며 신경쓰느라 그럴 여유를 못 찾고 있었다.
'삐진 건가? 내가 너무 미유코랑만 놀아서? 시원이에게도 신경 좀 써야겠네. 그래! 이참
에 스미레를 소개시켜준다고 하는 거야. 만약 둘이 잘 되면 나는 친구로서 역할을 잘한
거고 둘이서 잘 놀 테니까 조금 소홀히 해도 이해해줄 거야. 혹시 모르지, 그 녀석이 스
미레랑 논다고 나랑 안 놀아줄지...흐흐'
"수호, 시원이는 왜 같이 안 오는 거야?"
"응? 그러게. 내가 같이 오자고 말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고. 요새 들어서 뭔가 행동이 좀
이상해졌어. 말도 별로 안 하고, 잘 웃지도 않고 왜 그런지 잘 모르겠네. 그래서 스미레
소개시켜 줄려고 하는데 어때?"
"그래? 스미레도 시원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잘 됐다. 내가 스미레한테는 말해볼게."
"알았어. 내가 약속 시간 정해놓을게."
수호는 왠지 뿌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미안한 마음도 이번 일로 한 번에 털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업이 끝난 후 점심 시간, 수호는 재빨리 식당으로 가려는 시원이를 붙잡았다.
"야 이시원, 너 설마 혼자 밥먹으러 가려는 건 아니지?"
"맞아, 왜?"
"야 너 대체 왜 그래? 나랑 같이 먹으러 가면 되지, 왜 혼자 가려고 그래? 너 뭐, 나한
테 섭섭한 거 있어? 있으면 말해."
"아니, 없어! 그리고 너는 미유코랑 같이 먹어야 되잖아. 거길 내가 왜 끼냐?"
시원이의 표정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너 내가 미유코만 신경 쓴다고 삐진 거구나. 알았어! 그럴
줄 알고 형님이 너한테 좋은 일 좀 하려고 하는데 괜찮지? 크크"
수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도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좋은 일이라니 무슨?"
수호는 관심을 가지는 시원이의 표정을 살피며 내심 기뻐했다.
"너 미유코 친구 스미레 알지? 그 말 많은 여자애 있잖아?"
"응, 근데 걔가 왜?"
"형님이 새끼 좀 쳐줄게. 한 번 만나볼래?"
수호는 이제 곧 자신을 사랑한다며 달려와 안길 시원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즐거워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됐어. 관심 없다."
"뭐? 야 뭐가 맘에 안 들어서 그래? 그 정도면 예쁘지. 몸매 괜찮지. 뭐가 빠진다고 그
래? 말이 좀 많아? 아냐, 걔 사실 잘 보면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아."
"됐다구. 나 간다. 밥 맛있게 먹어라."
수호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식당을 향해 가는 시원이를 차마 잡지 못하
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스미레는 꽤 괜찮은 여성이었다. 수호가 아무나 시원이한테
소개시켜준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뿐더러 소개시켜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
다. 그런데 이렇게 보기 좋게 거절당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쯤 미유코에게 얘기를 듣고, 기대를 잔뜩 하고 기다리고 있을 스미레를 생각하니 앞
이 캄캄해졌다.
'어떡해야 되지? 사실대로 말해야겠지? 그럼 되게 기분 나쁘고 실망할 텐데. 그나저나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그런 거 가지고 삐지고 그러는 녀석이 아니었는데...'
수호는 어떻게 해야 시원이의 기분을 풀어줄지를 생각하며, 미유코를 만나러 갔다. 미유
코는 이미 약속된 식당 안에서 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호는 전속력으로 식당으로 달
려 들어가 미유코가 있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했다.
마침 손을 흔들어주는 미유코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미유코 앞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됐어?"
미유코는 조급한 듯 물어왔다. 물론 말투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지만, 미유코도 사실
웬만하면 시원이가 긍정적인 답변을 해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에게 들은
사실은 의외였다.
"싫대. 도대체 요즘에 왜 그렇게 까칠한지 모르겠다니까."
"그나저나, 스미레에게는 말했어? 뭐래?"
"물론 겉으로는 도도한 척 마지못해 승낙하는 것처럼 하기는 하는데, 얼굴 표정을 보니
까 좋아서 펄쩍 뛰는 것 같은 표정이던데. 원래 스미레는 좋은 거나 싫은 건 감추지를
못하는 성격이거든. 그래서 더 걱정이네. 어떻게 전해주지?"
미유코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왔다. 수호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냥 기분 안 나쁘게 무슨 일이 있어서 못하겠다는 식으로 돌려서 말해. 안 그러면 무
슨 일 낼라."
"그래야겠어. 그리고 수호야, 너가 혹시 시원이한테 다른 거 잘못한 게 있는데 잘 모르
고 있는 게 아닐까? 잘 생각해봐."
"어차피 그 녀석, 지금까지 여자 한 번 안 만나고 살았어. 여자들은 지 좋다고 졸졸 따
라다니는데도. 너 시원이 보면 딱 알잖아? 키도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그런데 지
는 뭐가 잘났다고 그런지 눈길 한 번 안 주더라니깐. 나도 당최 그 이유를 모르겠어.
여자들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안 만난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수호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가 그냥 밥이나 먹자며 주문을 했
다.
"그래? 정말 이상하다. 시원이 정도면 여자친구가 있을 법도 한데."
"일단은 우리부터 생각하자. 남 생각하다 놀지도 못하겠다."
"치, 못됐어."
이렇게 말하는 미유코의 표정이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 시각, 다른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시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이 가득차
있다. 뭘 주문할지를 물어보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도 멍한 표정으로 대답을 안 하고 있다
가 다그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충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시킨다.
"후,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대체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된다. 시원아, 제발 정신차려라!"
그러고 있는 사이에 주문한 된장찌개가 나온다. 평소에 시원이가 절대로 안 시켜먹는 메
뉴다.
"아주머니, 이게 뭐에요?"
"뭐긴, 뭐야? 된장찌개지."
"이거 제가 시켰나요?"
"그럼 학생이 시키지, 누가 시켜? 내가 마음대로 가지고 나왔을까 봐?"
굉장히 음식을 잘 만드실 것 같이 생기신(?) 아주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장인의 정신이
엿보인다. 자신의 음식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 인상이다. 아주머니는
인심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고는 다시 주방일을 보러 주방으로 향한
다.
시원이는 한참 동안이나 된장찌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는 만다. 힘없는 손
으로 된장찌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내가 뭐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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