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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story_1344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0
조회수 : 2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08 11:47:51
12.
가볍게 쳐다보며 탐색전을 벌였다. 진지해질 줄 알았던 미유코의 얼굴은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수호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뒤에서는 시원이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수호는 자기 혼자만 온 힘을 다해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두 즐기는
표정이다.
주위를 살짝 신경쓰는 도중 미유코의 몸이 움찔하였다. 단지 움찔한 것 같은데, 어느 새
수호의 눈앞에 와 있었다.
"집중해야지? 자 이번엔 진짜로 들어간다"
수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역시 보통내기는 아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그 동안 해왔던 아버지와의 대련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수호가 먼저 재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리고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힘껏 주먹
을 휘둘렀다. 그러나 차마 얼굴로 향하지 못하고, 팔쪽을 향하였다. 미유코는 쉽게 피했
다.
"너도 내가 여자라서 못 때리겠어? 봐주는 거야? 미안하지만 그래가지고서는 절대로 나
를 못 이겨."
"훗 그래 너 말이 맞아. 어쩔 수가 없네. 어쨌든 핸디캡을 안고서라도 해야지. 간다!"
미유코도 이번에는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당황한 수호는 주먹을 내둘렀으나 고개를
숙여 피한 미유코는 잽싸게 수호의 배쪽 빈공간으로 파고들어 수호가 공격하는 방향 쪽
으로 그대로 어깨메치기를 했다. 유도 기술이었다. 수호는 엎어지는 순간 낙법을 하기는
하였으나 등쪽에 충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파워 면에서 남자보다 뒤쳐지는 여자가 구사할 수 있는 공격 중에 상당히 효과적
인 방법이었다.
수호가 일어나기도 전에 곧바로 미유코의 발이 날라왔다. 바닥에 누운 상태로 순간 옆으
로 굴러서 간신히 피하고 바로 일어났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숨을 쉴만한
틈같은 것은 주지 않았다. 바로 미유코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했다.
급습이기도 했지만, 정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였다. 가벼운 몸을 이용해서
만들어 내는 가공할만한 스피드였다. 그렇게 심한 타격은 아니지만 잠시 정신이 몽롱했
다.
'이거 장난이 아니군...이런 게 실력차이라는 건가?'
연속적으로 날라오는 주먹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또 다시 미유코가 주먹을 뻗으
려는 동작을 취하자 수호는 움찔하며 팔을 들어올렸지만, 그것은 속임수였다. 곧바로 팔
로 수호의 몸을 밀어내며, 오른쪽 발로 수호의 왼쪽 발 뒷꿈치를 걸었다.
수호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반격할 틈같은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
이 생각났다. 실력 차이가 날 때에는 상대방이 방심하는 한 순간을 노려서 한 번에 끝내
야 한다는 말씀...과연 그걸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수호는 미유코를 한 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문제는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래서는 너에게 기대를 건 의미가 없잖아. 빨리 일어나."
"흠...너도 나를 봐주는 거야? 그러면 위험한데."
"괜찮아. 그래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아직도 방심하고 있어. 하긴 그럴만하지. 여러 가지 무술을 고루 갖추고 있어.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지루한 경기를 빨리 끝내려는 듯, 미유코가 빠르게 다가왔다.
'스피드는 빠르지만 많은 곳이 비어 있다. 저걸 노려야 돼.'
하지만 그 헛점이 보인다고 해도 쉽게 범접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파상적인 공격 때문
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수호는 한 순간 방어하
는 손을 내리고 그대로 미유코의 주먹을 맞았다.
주먹은 정확하게 가슴팍에 꽂혔지만 일부러 그나마 단련이 되어 있는 곳을 내준 것이다.
미유코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맞고 나서 곧바로 반격을 하는 수호의 주
먹이 무서운 속도로 미유코의 얼굴을 향해 오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주먹은 정확하게 미유코의 얼굴 앞에 멈춰섰다. 미유코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후우, 난 니가 기대하는 만큼 쎈 것 같지도 않고, 배짱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졌다."
'젠장! 도저히 주먹을 뻗지 못하겠네. 뭐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수호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가방을 들고 쓸쓸히 체육관 입구를 나섰다. 수호가 나가는
동안 놀란 구경꾼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뒤늦게서야 시원이도
수호의 뒤를 따라 나왔다.
'아마 저 주먹을 맞았다면 내가 졌을 거야. 정말 섬뜩하네.'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있는 미유코였다.
"야 너 대단하다! 너 싸움 잘하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움직임하고는
차원이 다른걸? 뭐 물론 한 대도 못 때리고 주야장천 맞기만 했지만..."
"아무 말도 시키지 마라. 어쨌든 졌다. 젠장!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도대
체 미유코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때리라는 거야?"
"그래도 마지막에 망설이지 않았으면 한 순간 좀 찔끔하더라도 여자친구 될 수 있는 건데
왜 안 날렸어?"
"내 여자 아프게 해서 여자친구 만드느니 내가 아프고 여자친구 안 하는 게 나아."
머리가 복잡한 수호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냥 집에 가
서 약 좀 바르고 파스 붙이고 한 숨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운명을 쟁취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후우."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어둑어둑한 골목길에 여고생들로 보이는 애들이 4~5명 있
다.
'아 이런 씨...하필 오늘 짜증나게...'
조용히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돌아선다. 절대로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고, 오늘은 너
무 힘들고 피곤해서 그러는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또 위로한다.
'난 지금 무서워서 돌아가려는 게 아니야! 지금 내가 뭘 하는 거냐.'
순간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 하늘이시여..'
뒤를 돌아보자 어느 새 뒤에 이쁘장하게 생긴 여고생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시진이였
다.
"얌마 놀랬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리고 놀래긴 왜 놀래?"
"어? 아...아냐."
"설마 오빠! 우리들 보고 쫀 건 아니지?
순간 아닌데도 뜨끔하는 수호...
"아니야! 오빠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농담인데 되게 오바하네. 어? 뭐야? 오빠 얼굴 왜 그래?"
"어? 어...얼굴? 아 그냥 오늘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
수호는 얼굴을 최대한 빛에 가려가며 말한다. 어차피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시진이 앞에
서 넘어졌다거나 다쳤다는 어설픈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수호가 더 잘 알고 있
다.
"어떤 놈이야? 어떤 씨발새끼가 우리 오빠 얼굴 이렇게 만들어놨어? 말해!"
시진이는 예상보다 훨씬 흥분한 것 같다.
"시진아, 흥분할 일이 아니고 그냥 남자끼리 다툰 거야. 너도 친구들끼리 많이 다투잖아?
그치? 그리고 말 좀 곱게 해라 씨발새끼가 뭐냐."
"시원이 오빠? 그 새끼 맞지?"
"시원이 아냐. 그리고 시원이는 오빠 친구야. 새끼라니? 오빠 친구한테 함부로 말하는 거
오빠 용서 못한다."
시진이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돌아선다. 그리고는 애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한마디 하고 간다.
"오빠, 내 앞에서 아픈 모습 보이지 마! 그게 누구든 오빠 아프게 하면 내가 가만히 안
둬. 오랜만에 오빠 보러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수호는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진다. 정말 요즘에 왜 이렇게 골머리를 앓는지 모르겠다.
시진이가 저렇게 돌아가버리니 더욱더 불안해진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돌아가
려던 길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원래의 길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누구야? 빨리 말해? 오빠 맞지?"
"나...나는 아니라니까...너 정말 오해다. 나 아니야."
키크고 잘생긴 대학생이 조그마한 여고생에게 붙잡혀 쩔쩔매며 말하고 있다. 여고생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오빠 아니면 누구야? 빨리 말해! 어떤 놈이야?"
"노..놈이 아니라 여자야..."
"뭐?"
뒤통수를 맞은 듯 시진이는 잠시 멍하게 있다.
"여자라니? 설마 그때 본 그 일본인 여자?"
시원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시원이는 억지로 말하면서도 자신이 큰 실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떡하지? 큰일이네. 그러고 보니 미유코가 큰일이 아니라 시진이가 위험하잖아!'
"시진아, 그게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야.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수호가 얻
얻맞은 게 아니라...너 수호 알잖아? 걔가 어디 여자한테 맞고 다닐 놈이냐?"
시원이는 차마 사귀는 조건으로 시합을 벌였다는 것을 시진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씨발."
굳게 잡고 있던 손을 거세게 놓고는 씩씩거리며 학교 안으로 향하는 시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시원이는 뒤늦게 다시 학교로 뛰어간다.
오늘따라 몸이 무거웠는지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난 수호는 가방을 부랴부랴 싸들고 성
급히 택시를 잡아 탄다. 왠지 오늘은 불안한 느낌이 거세게 몰아쳤다. 어제의 시진이의
뒷모습이 눈에 자꾸 밟혔다.
"아저씨, XX대로 빨리 좀 가 주세요."
급하게 도착한 수호. 재빠르게 시원이를 찾아 나선다.
"아 젠장! 어디 있는 거야?"
시간표를 좇아 가 본 강의실에는 시원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강의실에
없을 녀석이 아니었다.
'뭔가 일이 터진 건가?'
그때 저쪽에서 시원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이시원!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났지? 시진이가 혹시 너 찾아왔냐?"
"어? 너 알고 있네."
"시진이한테 뭐라고 했어? 설마 다 말한 거냐?"
"다 말한 건 아니고 내 말을 도무지 들을 생각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나와서 미유코 때
문에 너가 그렇게 됐다는 것만 말했다. 미안하다."
"뭐?! 그럼 시진이 어디로 갔어?"
"아까 아침에 나한테 그 말 듣고는 학교로 순식간에 들어가 버렸어. 그런데 미유코도 지
금 안 보여."
'제길...'
수호가 걱정하던 일이 결국 터지고 마는 것일까?
'시진아, 제발 내가 갈 때까지만 좀 참아라 제발...'
순간 수호는 시진이가 걱정되는 것인지 미유코가 걱정되는 것인지 헷갈렸다. 분명 시진
이가 좀 날리는 여고생이라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철부지 여고생일 뿐이다. 미유코는 철
저하게 교육을 받고 자라난 무술인이었다. 시진이가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시진이가 손끗 하나 못 건드릴 것을 알면서도 미유코가 걱정되는 것은 왜일까? 수호는 일
단 학교 안에서 갈만한 장소를 먼저 뒤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수호...학
교 밖으로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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