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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501함 단정1,2호가 저녁 10시16분에 향(向)한 곳은 어디인가.
게시물ID : military2_31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량산
추천 : 2
조회수 : 167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4/22 20:38:15
군과 합조단은 백령도 서방해역의 소위 "공식폭발원점"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 폭발"로 두동강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함선이 우현으로 90도까지 기울어지는 "충격"사고 이후 기름냄새를 맡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령도 서안 247초소병들은 소위 공식사고시각 이후 기름냄새를 맡았다고 진술, 보고한 바가 있는가. 
기름냄새가 났다면 당연히 247초소병들은 특이 사고사항으로 반드시 보고하고 진술했을 것이다.

하지만 247초소병들은 전혀 기름냄새를 보고, 진술한 바가 없다.
또 이들은 생존자들이 사고 직후 갑판위에 올라와 터트렸다는 조명탄 섬광을 목격,청취하지 못했다.
백령도 서방해역이 사고 해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자연의 초기 지진파 공중음파 자료는 그 사고위치를 대청도 서북방지점으로 보고한 바 있다.
지자연은 3월30일에는 그 진앙지를 백령도 서방해역으로 바꾸어 버린다.

따라서 지진파 공중음파가 천안함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 탈락되고, 247초소병들이 두무진 돌출부에서 9시23분에 목격, 청취한 백색섬광과 꽝하는 소리 역시 천안함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제외된다.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사고를 전후하여 오직 한번 9시23분에 단 한번의 꽝하는 소리와 백색섬광을 목격, 청취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혹 백령도 서방 해역에서 천안함이 다른 이유로 두동강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 두동강나는 소리가 해안초소병들에게 포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도 247초소병들은 기름냄새를 반드시 맡아야 한다. 풍향이 언급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백령도 서방해역에서 천안함은 두동강으로 이어지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47초소병들은 기름냄새를 맡을 수 없었고, 생존자들이 쏘아올린 조명탄 섬광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분명한 사실이 이해가 안된다면, 천안함사건을 분석한다고 할 수 없다.

TOD나 KNTDS는 조작이 용이한 디지털 자료에 불과하다. 디지털 포렌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형사법정이라면 증거능력 자체도 없다. 

백령도 서방해역의 소위 공식폭발원점(수심47m)을 사고지점으로 조작하기 위해 , 다른 곳(사고해역인 백령도 장촌 앞바다와 그  남서쪽 1.8km수심 25m지점)에 침몰해있던 함미와 여러 부품들을 미 해군 살보함, 구조함 광양함 등이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기자들 눈에 띄지 않고 수중에서 이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게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은 백령도 서방해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조작하기 위해, 
어뢰 공격이 있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어뢰 폭침으로 조작하기 위해, 
미 해군의 특수부대까지 동원되었고, tod kntds에 대한 조작이 있었다.

22전대장 이원보는 천안함이 분명히 좌초해있다고 실종자가족들에게 말한 바 있다.
이원보는 나중 재판에서 3월27일에 아시아경제상황도의 빨간점 해역을 함수침몰위치라고 설명했다고 주장했으나, 이원보 뿐만 아니라 박연수도 그때까지 단 한번도 천안함이 두동강났다고 말한 바가 없다.
박연수는 빨간점해역을 "사고해역"이라 지칭했었다.

오로지 3월27일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최원일이 처음으로 천안함이 두동강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3월27일 오전에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보며, 이원보가 설명한 빨간점 해역은 함수침몰위치가 아니라 바로 천안함이 좌초한 사고해역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안함은 두동강이 났으며, 그곳에서 남서쪽으로 1.8km 수심25m에서 3월28일 오전 10시경 해군은 고속정 측심기로 함미추정물체를 발견하고 떨어져나간 부위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가 두동강사고 지점이었기 때문에 백령도 장촌포구 주민은 짱하는 소리와 한참 있다 또 들린 소리 이후 창문을 여니 기름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적폐14.jpg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가 두동강사고 지점이기 때문에, 장촌포구 주민들은 9시30분경부터 20여분간 포소리를 청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는 천안함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터트린 조명탄 섬광들과 이미 도착한 고속정들 또는 장촌 포구 인근의 백령도 해병대가 쏘아올린 조명탄 소리였을 것이다.

[한편 백령도 주민이 KBS에 전해온 내용에 따르면, 9시 반 무렵부터 20분 정도 함포 소리가 계속 났다고 전해주었습니다.또 중간 중간 끊기는 소리가 아니었고 지속적으로 대포 소리가 났다고 전해주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070327해군 초계함 침몰 [23시 35분 속보]동영상 1분15초부터


[김옥자/백령도 장촌 주민 : 9시 30~40분? 그 정도 됐는데 씻고 나니까 포소리가 연속 몇 분 나더라고요. 그래서 뭐지 하고 밖에 내다보니까, 계속 포소리가 나요.한 10분?]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726735


[주민 조모(46)씨는 "오후 9시30분께 부터 10여분간 큰 포성이 들려 보통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현재 해군 장병 30~40명이 용기포항에 이불, 물 등을 갖고 나가서 구조된 승무원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3/27/0200000000AKR20100327005000065.HTML


[백령도의 한 주민은 "사고 후 15분 동안 초계함 승무원들의 구조작업을 위해 해군 함정이 조명탄을 쏠때 '펑펑'소리가 들렸다"라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191901



그리고 그것이 해군이 3월28일까지 "사고발생지점과 침몰지점은 조류의 흐름이 있더라도 거의 같은 곳" 라는 입장을 견지했던 이유다. 물론 해군은 백령도 남쪽 장촌 앞바다에서 발생한 사고를 위장하기 위해, 사고 발생 당시부터 백령도 서남방 1마일 지점을 이미 조작해냈었고, 속초함과 고속정 3척을 동원해 247초소병들이 170~180도에서 목격한 위장구조상황까지 조작해냈었다.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가 나중 실종자가족 이용기씨에게 가리켜주었다는 백령도 서방 저수심지역의 소위 "최초 좌초"위치도 백령도 서방을 사고위치로 조작하기 위한 일환이었을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박연수는 수심이 낮은 소위 "최초 좌초"위치를 지목함으로써 천안함이 저수심지역에서 좌초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주었다. 좌초 위치를 백령도 남쪽 빨간점해역에서 백령도 서방으로 바꿔치기 했을지언정. 합참 작전처장 이기식은 4월1일 mbc군상황일지를 토대로 질문하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천안함은 9시14분 중국어선 감시관련보고 이후 안전한 곳으로 피항하기 위해 지그재그 운항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중국어선들은 백령도 동쪽 NLL 인근의 꽃게어장을 노렸지, 백령도 서남방의 까나리 어장을 노리진 않았을 것이다. 


10시15분 대청도 서북방에 도착한 해경501함은 10시16분에 고속단정 2척을 내려 14분을 달려 천안함에 접근 10시30분부터 구조를 시작한다.

10시16분에 해경501함에서 내려진 고속단정 2척은 그때 과연 어느 방향으로 내달렸을까?

당연히 해군과 교신을 하고, 해군이 말해준 좌표지점과 천안함 침몰해역으로 향했을 것이다.

만약 10시16분에 고속단정 2척이 향해 출발한 곳이 백령도 남쪽 장촌앞바다 빨간점해역이라면, 군이 주장하는 "함수 표류"따위는 없던 것이 된다. 왜냐하면 공개된 TOD의 사각지역으로 10시7분에 접어든 함수가 8분만에 5km여를 표류해 장촌앞바다까지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류의 흐름이 세다 하더라도. (아래 격자지도 상 경도線 43이 10시 7분 함수가 TOD사각지역으로 사라지는 지점쯤 된다. 격자 간격은 1km다) 

하지만 고속단정이 향해 간 곳이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일 가능성은 100%이며, 그래서 해경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애초 신고받은 지점(백령도 서남방 1마일지점)에서 5㎞가량 해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있었다”고 증언했던 것이다. "떠내려와있었다"가 아니고 "떠내려가있었다"는 것은 해경501함이 10시15분에 대청도 서북방 해역에 도착해서 보니, 그런 상태였다는 것이다. 해경은 해군 고속정들과 교신했을 것이다. 천안함의 당시 위치를 , 주위의 고속정들의 현재 위치 좌표로 알려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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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해점(백령도 서남방 1마일지점)에서 5km정도 천안함이 떠내려가있었다고 해경이 표현했을 때 그 지점은 장촌 앞바다 해역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백령도 장촌포구 주민의 사고 당시 경험담이 밝히 드러내는 것처럼, 천안함은 백령도 남쪽 장촌포구 앞바다 해역에서 두동강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천안함은 그 해역을 떠난 다른 곳에서 표류해온 것도 아니었으며, 진정한 사고발생지점과 침몰지점은 조류의 흐름이 있더라도 거의 같은 백령도 장촌 앞바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군은 사고지점을 백령도 서(남)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해경에, 9시30분에 백령도 서남방 1마일 지점에서 천안함이 물이 샌다고 신고를 해서 해경을 기망했으므로, 해군의 말을 믿은 해경 501함은 10시15분 대청도 서북방 지점에 도착했을 때 백령도 남쪽 장촌 앞바다에 있는 천안함과 고속정 4척을 보고( 물론 해군과의 교신을 통해 천안함이 장촌포구 앞바다에 있다고 연락을 받았을 것), "신고된 사고해점(백령도 서남방 1마일)"에서 5km정도를 떠내려간 것이라 상황을 파악했던 것이다

해경은 구조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해군고속정 4척이 천안함 주위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청도 고속정 편대 2척(위에 언급한 백령도 서남방 위장구조상황에 동원된 3척을 제외한)과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아시아경제상황도에 표기된 2척)이 바로 그 4척이다.

그러니 현재 재판을 치루고 있는 신상철님은 , 해경501함의 갑판장이나 부함장을 재판에  다시 불러 10시16분에 고속단정이 향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그 사이(10시16분부터 10시30분까지)에 과연 천안함이 "표류"나 하던 것인지를 반드시 물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안함(함수)은 결코 7.4km를, 4마일을 표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해군본부의 모 준장은 천안함 함수가 4마일을 표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의문을 표했었고,
함수가 반쯤 가라앉은 상태로 7.4km를 표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함수는 표류하지도 않았고, 사고 지점도 백령도 서방해역이 아니다.

천안함조작사건은 거의 다 밝혀졌다. 
몇가지 최종확인해야할 사항이 남았을 뿐이다.
위에 제시한 대목도 그 중의 하나이다.

분석네티즌들과의 피드백이 없으면, 천안함 사건은 밝혀질 수 없다.

설사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사고 버전(version)을 견지하더라도, 이런 중요한 사항을 법정에서 갑판장이나 부함장을 불러 질의하고 확인하지 않는다면, 천안함사건은 진상이 온전히 밝혀질 수 없다.

만약 해경501함의 갑판장이나 부함장이 위 질의에 대해 사실대로만 법정에서 증언해준다면, 천안함 조작사건은 비로소 그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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