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제: 『식자우환』
識字憂患은 「글자를 아는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사전에서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①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知識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 ②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不利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름. 쉽게 생각하면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말이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고요. 사전의 예문은 이렇네요. 식자우환이라더니 텔레비전에 대해 좀 안다고 덤볐다가 멀쩡한 텔레비전을 고물로 만들어 놓았다.
자동차를 몰게 되면 운전을 잘하지 못하여 사고가 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운전을 잘하지 못하여 내는 사고보다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 생각하여 내는 사고가 더 잦습니다. 초보운전자는 자신이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심스레 차를 모니 사고가 나도 크지 않습니다. 위험한 때는 오히려 운전에 익숙해졌을 때 입니다. 아직 운전을 대단히 잘하는 것은 아닌데 스스로는 모든 운전기술에 다 통달한 줄 압니다. 이때 사고가 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운전에 익숙해지니 자랑하고도 싶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졸음운전도 해봤고 음주 운전도 해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어떻게 사고가 나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게 되었는지. 무식하면 용감한 법입니다. 알게되면 그게 보이고요. 저는 운전 잘 못합니다. 그 전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이것으로 조금 말장난을 해볼까요? 무식자無識者용감勇敢유식자有識者우환憂患. 굳이 뜻을 풀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문제와 차이는 문제에서는 글자를 뜻하는 자字를 썼는데 이 말장난에서는 사람 또는 무엇무엇이라는 것을 뜻하는 자者를 쓴 것입니다. 예전에는 글자를 아는 것을 유식하다 했거든요.
어제는 다기망양多岐亡羊(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리다)을 풀었습니다. 어떤 것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깊게 들어가면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입니다. 안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삼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삼는 것이 아는 것이다-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시是지야知也-.)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깊게 알게 되면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더 잘 그리고 더 많이 보입니다. 갈림길도 더 잘 그리고 더 많이 보이고요, 때론 양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또 걱정되기도 하고요. 이때도 식자우환識字憂患을 쓸 수 있습니다. ③번의 경우일 수 있겠네요.
식자우환識字憂患은
소식이란 시인이 쓴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란 시에서 나온 말입니다. 석창서란 사람이 취묵당이란 일종의 서재를 꾸몄습니다. 석창서는
초서라는 글씨체를 잘 쓰던 서예의 대가로 다른 사람들의 서예작품도 모으고 있었습니다. 소식의 글씨도 가지고 있었겠지요? 다른 유명한 서예가인
왕안석의 글씨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소식과 왕안석은 원래 서로 존경하며 깊이 사귀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왕안석의 개혁정책에 대해 임금님이 물어오니 소식이 반대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 일로 소식과 왕안석은 조금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소식은 ②번의 경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시에는 그런 정황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식자우환시人生識字憂患始 인생은 글자를 알게되어 걱정이 시작되네
성명추기가이휴姓名麤記可以休 이름이나 거칠게 쓸 수 있으면 그쳐도 좋으리
하용초서과신속何用草書誇神速 초서가 무슨 쓸모 있어 빠름을 자랑하고
개권창황령인수開卷惝怳令人愁 급하게 책을 열어 사람을 시름케 하나
아상호지매자소我嘗好之每自笑 나도 일찌기 그를 좋아해 언제나 스스로 웃지만
군유차병하능추君有此病何能瘳 너도 이러한 병 있어 어떻게 나을 수 있겠나
자언기중지극락自言其中有至樂 말로는 그 안에 지극한 즐거움 있다고
적의불이소요유適意不異逍遙遊 마음에 꼭 맞게 거닐어 노닒과 다르지 않다고
근자작당명취묵近者作堂名醉墨 요즘 집을 지어 먹에 취한다 이름하니
여음미주소백우如飮美酒消百憂 좋은 술 마시고 온갖 시름 없앰과 같다고
내지유자어불망乃知柳子語不妄 도리어 유자의 말 헛되지 않음을 알지니
병기토탄여진수病嗜土炭如珍羞 병들어 흙 투성이 숯 귀하고 맛난 음식 같아 좋다데
군어차예역운지君於此藝亦云至 너 이 재주에 또한 이르렀다 말하니
퇴장패필여산구堆牆敗筆如山邱 담장에 쌓아둔 부서진 붓 마치 산과 같다고
흥래일휘백지진興來一揮百紙盡 흥이 일어 한번 휘둘면 온갖 종이 다 없어지고
준마숙홀답구주駿馬倏忽踏九州 날랜 말이 훨훨 내달면 온갖 나라 다 밟고 간다네
아서의조본무법我書意造本無法 내 쓰던 글은 뜻이 만들어 바탕에 법칙이 없고
점획신수번추구點畫信手煩推求 점 찍고 긋는 손 믿어 밀치고 모음이 어지러운데
호위의논독견가胡爲議論獨見假 어찌 내게 물어 홀로 보던 것 빌려주는가
척자편지개장수隻字片紙皆藏收 몇 글자 종이 조각 모두 감춰 거두었구나
불감종장군자족不減鍾張君自足 종요와 장지에 덜하지 않으니 너 스스로 넉넉하게나
하방나조아역우下方羅趙我亦優 아래로 나휘와 조습에 비하면 나 또한 넉넉하다네
불수림지경고학不須臨池更苦學 어렵게 다시 배우려 연못 먹물로 다 써야 하지 않다네
완취견소충금주完取絹素充衾裯 이불로 갖출 하이얀 비단 온전히 다 가지시게나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과 매우 다릅니다. 어떤 곳은 아예 뜻을 반대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제가 보지 못한 것을 봤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봤고요. 제가 잘 살리지 못한 부분은 개권창황령인수開卷惝怳令人愁일 것입니다. 이 말은 책을 펼쳤더니 급하게 흘려 쓴 글씨가 있어서 당황하고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제 번역에서는 그 뜻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반면, 불수림지경고학不須臨池更苦學는 제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다른 한시도 마찬가지지만 이 시도 글자 한 글자 한 글자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의 숨은 이야기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한시의 어려움이고 또한 재미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도 다른 사람이나 일을 인용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름이나 쓸 수 있으면 된다는 말은
항우의 말입니다. 지락至樂이나 소요유逍遙遊같은 말은
장자라는 책의 챕터 이름들입니다.
유원종의 말을 인용해 서재의 이름인 취묵당醉墨堂을 두고 먹에 취하다니 뭔가 이상한 병이 든 것 아니냐고 놀립니다. 역대 서예가 중 가장 초서를 잘 썼다는 회소라는 사람은 다 써 망가진 붓을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석창서도 이처럼 다 쓴 붓이 산처럼 쌓였다며 칭찬합니다. (소식은 마치 석창서가 스스로 그렇게 자랑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사실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과장하여 놀리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 뒤, 소식이 자신의 글쓰기를 두고 자기 마음대로 써서 어지럽다고 하는 말은 실제로 자기 글씨가 못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석창서가 편지나 메모마저 모아두었다가 이 부분은 왜이런가요, 저 부분은 어떻게 써야 하나요 하면서 의논을 합니다. (결국 자기자랑입니다.)
종요, 장지, 나휘, 조습은 모두 초서를 잘 쓰는 사람들입니다. 소식이 자신의 글씨가 나휘나 조습보다 뛰어나다고 또 자랑합니다. 이런 말들은 반쯤은 농담입니다. (소식은 지금 석창서를 놀리는 중입니다.) 자신이 나휘나 조습보다 낫다고 하기 전에 석창서가 종요나 장지에 못지않으니 그만 만족하라고 합니다. 그 후, 그보다 못한 사람들을 거론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에서 석창서는 소식한테 글씨에 대해 의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은 모두 석창서를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장지라는 사람은 글씨 연습을 대단히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장지의 집사람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이 비단옷이란 게 장지가 글씨 연습을 한 비단을 다시 염색해 옷을 지은 것이라 합니다. 또, 장지는 연못의 물을 먹 가는데 다 써버렸다고 하고요. 이 일을 빗대어 다시 석창서를 놀립니다. 자네는 이미 장지에 못지않으니 연못의 물과 비단을 낭비하지 말고 비단을 하얀 색 그대로 온전히 가져서 옷이나 이블을 만들어라.
석창서는 유명한 서예가이자 서예작품 수집가였습니다. 조선 정조 임금님 때 대단한 그림 수집가로 김광국이란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모은 그림들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석농화원石農畵苑이란 화첩이 있었고요. 이 화첩의 요즘 말로 하면 책 앞에 붙이는 추천사를
유한준이라는 사람이 썼다고 합니다. 그 글에,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지즉知則위爲진애眞愛)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되고(애즉愛則위爲진간眞看) 보면 그를 모으게 되나 단순히(헛되이) 쌓는 것은 아니다(간즉看則축지이畜之而비도축야非徒畜也)」라는 말이 있다고 하고요. 이 말을 이름이 비슷한
유홍준이란 사람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멋진 말로 바꿨습니다. 그림만 그러할 리 없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제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을 풀고난 후 다기망양이란 소리를 가지고 장난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우洗羽 깃을 씯다
망양다기개茫洋茶氣蓋 넓고 멀리 차 기운 덮어
세사홀연망世事忽然忘 세상 일 문득 아득하니
대력환귀발大力還歸拔 힘써 되돌아감 뽑아내도
산휴현현망山休顯顯望 산에 쉼은 뚜렷하고 뚜렷하게 바란다
썩 잘지은 시는 아닙니다. 시 만드는 여러 규칙이 있는데 그 중 어긴 것이 있습니다. 가장 큰 것으로 소리를 고르게 쓰지 않고 특정한 소리를 많이 쓴 것이 걸리네요. 이 시의
운자韻字는 망忘과 망望으로 양陽
운목韻目에 속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시작하는 망양茫洋의 소리가 또한 모두 양운목의 소리들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게다가 茫洋忽忘은 모두 그 뜻이 忽입니다.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건 그냥 말장난하다 나온 시인데. 혹시 이런 것도 식자우환識字憂患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붙여봤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걸 또 어찌하나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붙인 것은 또 이 시에 숨겨진 다른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서랍니다. (쉽죠? 항우를 살짝 숨겼습니다.) 식자우환 이야기를 하다 다시 다기망양多岐亡羊으로 돌아왔네요. 오늘도 양을 잃은 것일까요? 같이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 같이 쓴거에요.
이전문제: 『
다기망양』
자매문제: (문장 연습 오늘의 단어) 정상, 유감, 사랑, 조금, 미안 ***맛보기 문제: 『가화만사성』
규칙1. 제출한 표현은 읽는 법과 의미를 설명한다.예) 가화만사성 - 家和萬事成(집안이 화목하고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규칙2. 제시된 소리가 모두 들어간 표현을 만든다.예) 가화만사성 - 加禍謾詐盛(재앙을 더해 속임수가 왕성하다)
규칙3.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표현은 제출할 수 없다.예) 家和萬事成(X) 加禍謾詐盛(O)
규칙4. 제시된 소리의 순서는 바꿀 수 있다.예) 성사만화가 - 成事滿華家(화려함을 채우는 일에 성공한 집 또는 成事滿華于家로부터 집에 화려함을 채우는 일에 성공하였다)
예) 성사만화가 - 性事漫畫家... 다들 아실 것이라 믿고 설명은 생략합니다.
규칙5. 한자로 쓸 수 있어야 한다.예) 性事漫畫家(O) 性事畫家만(X)
규칙6. 고유명사는 다른 곳에서 인용할 수 있는 것을 쓴다. 단,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도 허용한다.
예) 사성만가화 - 師誠謾可化(사성이 가화를 속였다)에서
師誠은 조선 말기 승려(1836년생1910년몰)의 법명이고 可化는 1870년에 진사가 된 원숙교(1828년생)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