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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8
게시물ID : humorstory_1342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1
조회수 : 2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03 11:06:51
8.

"저...저기 어떻게 한국말을?"


"아, 네. 저 이번에 이 학교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는데, 한국어학과거든요. 제가 한

국말을 좀 하죠? 그런데 그때 온천에서하고 축제날 봤었던 분 맞죠? 계속 긴가민가해서 

그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 버리셔서..."



수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 그렇다면 그때 왜 한국어로 말씀을 안 하시고?"


"그때 일본어로 간단하게 '예' 라고 하시고서는 그냥 가버리셨잖아요. 온천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셨고..."


"그...그랬었나? 하하핫 제가 워낙에 일본어에는 젬병이라서요."



그렇다. 수호는 겨우 'hi'라는 말을 남겼을 뿐, 한국인이라는 근거는 전혀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온천에서 한 번, 축제날 때 한 번, 게다가 저 여자에게는 다른 나라인 우리나라에서까지 

한 번 만나서 총 세 번 우연치 않게 만났어. 그것도 내가 끌렸던 여자에게...'



수호의 머릿속은...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운명론의 얽혀 있던 끈들이 서서히 풀

려가며, 모든 것이 밝아지는 듯하였다.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운명을 만난 것인가? 누

가 뭐라고 하든 수호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충실한 녀석이었다.

앞으로 수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이다. 



-"얘,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둘이서만 떠드니? 너만 한국말 잘한다고 우리는 완전 무시하

는 거야? 소개 좀 시켜줘 봐. 잘생겼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유우끼가 끼어든다.


 
-"얘, 우리 몰래 다른 나라에까지 남자 만들어 놓았나 봐."-



스미레도 한 몫 거든다.



'또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유우끼 너 설명 좀 해주고 있어"-


"그때 대체 무슨 말씀하실려고 그랬던 거에요?"


"예? 아 그...그게...그 무슨 얘기냐 하면..."



수호는 갑자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그...그러니까 저...저랑 치...친구하실래요?"


"예?"


"그러니까 이렇게 우연치 않게 여러 번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랑 연락하고 지내지 않으

시겠냐구요?"



이제야 좀 진정이 되고 있는 듯하다.



"죄송한데 너무 길고 어렵게 말하면 제가 잘 못 알아듣거든요..."


"핸드폰 번호 좀..."


"아! 폰 번호요? 왜요?"


"그...그게 그러니까...프렌드하자구요. 프렌드 몰라요?"



결국 수호는 공통 언어라는 영어를 도입해서 설명을 해야만 했다.



"아, 네. 잠시만요..."


-"얘들아 이 남자가 친구하자는데? 번호 좀 달라고..."-


-"어머 그래? 너한테 관심 있나 보다 얘. 그런데 번호 줄려고?"-


-"글쎄...어떡하지?"-



미유코는 그렇게 쉽게 번호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성격은 아니었나 보다.



-"얘, 뭐 어때? 어차피 온 지 얼마 안 되서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친구해서 한국 구경

도 시켜달라고 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좋잖아? 주기 싫으면 내 번호라도 줄까

? 후후..."-



역시나 스미레였다.



-"아냐...괜찮은 생각 같다. 그러지 뭐."-



또 수호는 이 일본 여자들이 뭐라고 뭐라고 떠드는 동안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어 공부를 그 동안 안 해놨다는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었다.



'되게 뻘쭘하네.'


"아! 죄송해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 한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답답했었는데...좋아요.

번호 드릴게요. 자주 연락해요."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수호는 친구하자는 제의에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감사하는 모습이 비쳐질지 알면서도 기

쁜 마음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수호의 들뜬 가슴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피어오

를 것이다. 

전화번호를 받은 수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원이가 나올 강의실을 향해 뛰었다. 지

금의 수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빨리 시원이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설 뿐이었다.



"시원아! 시원아!!"


'뭐야, 저 자식?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미친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올 건 또 뭐

야? 망신 줄려고 작정했나?'



시원이는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시원아! 야 왜 대답을 안해?"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야, 지금 헛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 내 운명을 만났다니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

의 반쪽을 만났어! 이번에는 확실해!"


"또 그 소리냐? 이번에는 누구냐?"



뻔하다는 표정으로 시원이는 묻는다.



"너, 그 일본에서 내가 쫓아다녔던 여자애 알지?"


"근데, 걔가 왜?"


"걔를 어제 살짝 본 것 같아서 긴가민가하고 찾아보다가 오늘 방금 막 만나고 왔다는 거

아니냐!"



수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일본에 있어야 할 애가 왜 여기에 있어? 혹시 비슷한 사람하고 헷갈리는 거 아냐?"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슨 바보인 줄 아냐?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진까지 핸드폰

에 저장해놓고, 운명이 나타날 때까지만 보고 있으려고 저장해 둔 거 알지? 그러니 나는

한눈에 알아봤지. 어때? 대단하지 않냐? 이건 필히 하늘이 정해준 거야."



수호는 또 지긋지긋한 하늘이며, 운명이며, 필연 등을 강조하며, 자신의 말에 한층 더 

설득력을 불어넣으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내가 가서 직접 말까지 걸고, 핸드폰 번호까

지 알아냈지롱. 우헤헤헤..."



수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였다. 하지만 시원이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무슨 또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건지 이제야 좀 감이 오네. 네가 가서 일본어로 직접 대

화를 해서 번호까지 따냈다고? 푸헤헤...일본어라고는 곰방와하고 'hi(?)'밖에 모르면서

도대체 무슨 보디랭귀지를 해가지고 번호까지 얻어냈다는 거야?"


"얘가 속고만 살았나?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실은 내가 일본어로 한 게 아니고 걔가 한

국말을 엄청 잘하더라니깐? 한국어학과래!"



서서히 시원이도 수호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정말? 진짜로? 그럼 지금 여기에 왜 왔대?"


"지금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으로 와 있대! 이거야말로 운명이라는 거 아니냐?"


"네 말대로라면 장난 아니긴 하네."


"그러엄, 당연하지. 이제부터 진정한 작업을 들어간다."



수호는 이미 방학 때 비실비실대던 얼굴이 아니었다. 갑자기 밥을 많이 먹어서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오른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순간에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지 시원이는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수호는 운명이라는 것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걱정되네.'



시원이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수호는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노래나 한 곡 부르고 가던가, 오락

실에서 오락이라도 한 판 하고 가거나, 애들끼리 모아서 PC방이라도 가고 그럴 텐데...

지금의 수호에게는 동아리방도 안 갈 정도로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집에 가서 천천히 문자를 할지, 전화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 볼 참

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오늘은 일찍 들어왔구나?"


"네."



뭔가 더 말하려는 엄마를 두고 짧게 대답하고, 수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쟤가 뭔 일 있나?"



엄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다듬던 파를 송송 썰었다.

들어가자마자 수호는 일단 처음이고, 그렇게 친한 상태도 아니니 문자를 보내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정성스레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에 수호의 문자 보내는 실력이라면, 아무리 문자를 길게 쓴다 해도 2분을 넘기기 힘

들었던 수호가, 30분 내내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 여자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서가 다른 일본 여자한테 문자를 쓰려다 보니 보통의 생각과 정서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쓴답시고,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 정도면 됐나?'


<안녕, 나 아까 학교에서 너랑 친구하기로 한 녀석이야. 내 이름은 수호라고 해. 그러고 

보니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이름을 못 물어봤네. 이름이 뭐야? 그리고 한국이나 나에 대

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도 돼.>



이게 수호에게 미유코에게 보내려던(?) 첫 문자였다.

띠리리링, 하고 갑작스럽게 폰이 울려버린다.



"헉 뭐야!!"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수호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려야만 했다. 



"여...여보세요..? 너...너 누구야!"


"아이 깜짝이야, 오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시진이였다.



"으...으악."


"오빠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수호는 이미 자포자기 상태였다.



"아니...아니야.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래? 괜찮은 거야? 아니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으응? 그..그으래? 들었으니까 됐지? 지금 좀 바쁘니까 좀 이따가 통화하자."



수호는 방금 전까지 열심히 써놓은 문자를 까먹기 전에 다시 그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어떻게든 빨리 끊을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끊는다는 말을 하기도 전

에 자기 마음대로 뚝 끊을 수 있을 만큼 수호는 냉정하지 못했다.



"오빠, 왜 그래? 숙녀가 먼저 전화했는데 바쁘다니...무슨 일인데 그래?"


"으응? 아니 그냥 좀 바빠서 그래..응? 좀 이따가 통화하자..."


"오빠, 이상해..변했어.."



수호는 점점 인내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변하긴 뭘 변했다는 거야? 내가 너랑 뭐라도 했냐?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래?

그냥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흑"


"너, 우...우냐? 야 왜 그래?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야 잠깐만 흥분하지 말고 들어봐."



그렇게 날라리에 막무가내인 시진이가 운다고 생각하니까 수호도 순간 놀랬나 보다. 달

래야겠다는 생각으로 목소리가 잠잠해진다.



"울긴 누가 운다 그래? 그냥 콧물이 나와서 그런 거야... 좋아 내가 좀 이따가 밤에 전화

한다."


"뭐...뭐야? 또 그냥 끊었네..."


'그런데 내가 뭐하려고 했었더라?' 


"......"


"으악 내용 다 까먹었다!!"


<난 수호라고 하는데...저기 이름이 뭐야? 친하게 지내자.>



결국 수호가 보낸 문자 내용이다.



<누구신데요?>


'좆됐다. 참 내가 누군지 몰랐었지.'


<아 저기 오늘 학교에서 친구 먹은 앤데..그 일본에서도 봤었잖아?">


<아! 그랬었지? 내일 학교에서 얘기하자. 아참 내 이름은 미유코>



그 다음부터 문자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랑 얘기하기 싫나 봐. 미유코라...이름 괜찮네."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빨리 내일이 올 수 있도록 억지로 잠을

청하는 수호였다. 잠이 올턱이 없는 초저녁부터 밤이 될 때까지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해

가며, 팔굽혀펴기도 하고 배부르게 음식도 먹고, 안대도 껴보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은

뒤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띠리리링, 하고 수호의 전화기가 마구 난동을 치고 있다. 



"뭐...뭐야?"



잠이 든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벨은 울리고 있었다. 필시 시진이일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진이냐? 고맙다."


"응? 뭐가?"


"아니다. 나 피곤해서 그러는데 할 말 있으면 빨리 해주면 안 될까?"


"피...피곤해? 아니야 그럼 됐어. 그냥 자"



수호는 순간 시진이의 목소리가 평소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 무슨 일 있냐?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나도 졸려서 그러지 뭐! 잘 거야!"


"또 끊었네. 이런 싸가지. 그냥 자야지 뭐..아함."



조용하고 아득한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수호가 자고 있는 창가에 어디인지 모를

먼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날아온 별빛이 계속적으로 부딪히고 있다. 초록빛인지 검은빛

인지 헷갈린다. 바깥의 고요함을 깨는 귀뚜라미 소리..오늘따라 집안도 고요하고, 무서

울 정도로 적막하다. 숨소리가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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