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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7
게시물ID : humorstory_1342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2
조회수 : 1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3/02 10:13:15
7.

한눈에 봐도 저번 통화에서 수호가 별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을 듣고, 그렇게 꾸미고 왔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호는 갑갑하고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아차, 싶었

는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이미 그녀가 지나간 자리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

려는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환영만이 어른거릴 뿐이었다.



'잘못 본 것이었나?'



시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열심히 수호에게 달려갔다. 평소 같으면 손을 내저으며,

도망가는 시늉이라도 할 수호가 오늘따라 멍하니 있다는 것을 시진이도 어느 정도 의식

하고 있었다.

수호는 정신을 잠시 딴 데 두느라고 신경을 못 썼겠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시진이를 봤

다면 예쁘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바탕이 그렇게 생겨먹은 데다

가 그런 식으로 치장을 해놨으니 곧바로 문방구에 들어가 사올 수 있을 것 같은 인형이

었다.

정말 수호의 주문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진이의 기대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만다.



"뭐해?! 너무 놀래서 그러는구나?"


"어? 어...음...흠...."



그렇게 오랜만에 그렇게 꾸며서 그렇게 놀래키며 나왔는데,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자꾸

이상한 방향만 바라보며,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는 수호. 야속할만도 하지만 시진이는 

이미 익숙한지 화도 내지 않는다. 

다만, 오늘만큼은 생길 수밖에 없는 섭섭한 마음을 시진이만 열 수 있는 마음 깊숙한 서

럽장에 꼭꼭 감춰둔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빠가 말한 여자 소개시켜줄려고 이렇게 왔는데 들은 척도 안 할 거냐구?!"


"어? 그...그래? 미안하다. 그런데 어디?"



시진이는 어이가 없었다. 이렇듯 빤히 보이는 복장을 하고 와도 눈치를 못 채다니. 어쩌

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눈처럼 흰 얼굴에 검은 긴 생머리, 인형같은 여자 아니었어?"


"그...그랬었나? 그런데 어디 있냐고?"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제야 수호 특유의 놀리는 듯한 말투가 살아나 있었다. 시진이는 

내심 평소의 모습으로 수호가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뻤다. 수호도 이제야 정신을 가까스로 

차리고 있었다.



"됐어! 내가 오빠한테 뭘 바래? 그냥 오늘 하루만 눈 딱 감고 나랑 데이트해주라?"


"내가 왜?"


"그럼 아예 평생 눈을 감게 해줄까?"


"흠...어디로 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시원아 미안하다. 노래방은 다음에 가자."


"응? 무...물론 그래야지. 하핫. 나 신경쓰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와."



억지로라도 수호를 끌고 가는 시진이의 입가에는 웃음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이렇게까

지 준비를 해왔는데 퇴짜를 놓으면 안 될 것 같아 수호는 어쩔 수 없이 가고 있는 것이

었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만약 아까 본 걔가 맞다면 대체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그것보다도 이번이 두 번째 마주

치는 것인가?'



시진이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억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오빠, 오늘 즐거웠어. 오빠 방학 때 너무 우울하게 보낸 것 같아서 개학 첫날부터 이렇

게 찾아와서 특별 이벤트도 해주고, 나 너무 기특하지 않아?"


"시진아, 오빠가 할 말이 있는데 말야..."


"됐어. 다음에 들을래."



쪽, 하는 소리를 내며 시진이가 수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얼굴을 붉히며 재빠르게 달아난

다. 불안했던 걸까? 그렇게 한마디와 한 자취를 남기고 시진이는 멀어져갔다. 그렇게 멀

어져가는 시진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수호는 전에 없던 미안함이 아려온다. 

그녀 때문일까? 그날 밤 수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마침 적은 수업을 빨리 끝마치고 오후 수업은 시원이에게 대출을 부탁한 채, 수

호는 그녀를 찾으러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여자도 자기 발로 직접 찾으러 다녀본 적이 없는 수호였다. 자신의 머릿속

을 운명론으로 꽉 채운 채 부동의 자세로 꿈쩍도 하지 않고, 우연히 여러 번 필연적으로 

마주치길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속으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본 애가 맞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



자기 자신이 평소에 비해 극심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는 것도 애써 외면하려는 듯이 온

갖 비겁한 핑계를 대가며 찾고 있었다. 학교 주변에서 갈 법한 곳이란 곳은 모조리 뒤져

보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아, 지금 내가 바보같이 뭘 하고 있는 건지...지나가다 우연히 보고 어디로 갔는지 어

디에서 사는지 전혀 모르는데 도대체 어떻게 찾겠다는 거야...후."



상당히 큰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수호는 언제부턴가 계속 느끼던 무력감과 허약감

은 사라지고, 지금 이 일에 굉장히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나올 시원이를 보러 다시금 학교로 향하는 수호는 다시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

했다. 그렇게 학교 정문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서 본관을 넘어서서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학교 호수를 쳐다보았다.

수호가 1학년 때만 해도 굉장히 깨끗하고, 오리까지 쌍쌍이 떠다녔던 호수는 지금은 죽

은 듯이 조용하다.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 것을 본지도 꽤 지난 일이었다. 이미 

분수대에 나오던 물은 다 사라진 듯 이끼가 껴 있는 것처럼 푸르기만 하다.

다시 앞을 보고 가려던 수호는 또다시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녀가 걸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저기요..."



잽싸게 뛰어가서 그녀 주위에 붙어있는 여학생은 신경쓸 새도 없이 말을 걸었다. 갑자기

모르는 남학생이 그것도 타국의 남학생이 다가와서 말을 걸자 여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미유코는 수호를 보자 낯이 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잠시 길에 머문 채 기억을 더듬

어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보았을까?'



수호는 뒤늦게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이 여자는 일본인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얼굴까지

뻘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참 일본어로 해야 되는데 어떡하지.'


-"누구지? 아는 사람 있니?"-


-"나 알 것 같은데..."-



미유코가 직접 나서서 일단 상황을 중지시켜놓고, 기억을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일본 사람인 것은 확실하구나!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그런데 도대체 뭐라고 하

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아!! 혹시 그때 그 온천하고 마쓰리 축제 때 봤던? 유우끼 너 기억 안 나?"-


-"뭐? 그때 온천에서 깐죽대고 축제 때 너한테 와서 '예'라고 했던 걔? 풋..푸하하"-


-"나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때 하도 웃겨서..."-


"저기요...죄송한데 제가 일본말을 잘 못하거든요..."



신나게 떠들고 있던 일본 여학생들에게 수호는 한국말로 더듬더듬 말을 다시 한 번 건네

봤다. 많은 용기를 내고 입을 벌려야만 했다.



"아 네 죄송해요. 갑자기 나타나셔서 어디서 봤었나 생각하고 있던 중이였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가 환한 웃음을 보이며, 한국말로 그것도 꽤 봐줄만한 억양과

발음으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호는 너무 놀래서 또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

었다. 수호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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