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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숟가락과 와루바시#6
게시물ID : humorstory_1341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메
추천 : 2
조회수 : 23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7/03/01 10:15:52
6.

"일어나!"


"우리 이쁜이상 좀만 더 자겠스므니다."


"미쳤냐?"


"난다요, 이따이따해, 호옹호옹."



아침부터 잠꼬대를 심하게도 해댄다. 아직도 꿈에서는 일본인가 보다. 엄마가 발로 차자 

그때야 눈을 비비며 사나운 머리 꼴을 하고 일어나는 수호. 햇살이 슬며시 발을 디디는 

엷은 레이스 커튼을 걷고, 수호의 엄마는 아침부터 한바탕 해댈 태세이다.



"김수호 일어나!"


"으허억...헉...헉...무...무슨 일이야?"



꽤나 놀란 모양이다.



"너 가서 무슨 짓을 했는데 잠꼬대가 그따위야?"


"무..무슨 짓이라니? 게다가 잠꼬대는 또 뭐? 나? 아무짓도 못했어."


"못했어?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라고? 뭘 못했는데??"


"엄마는 아침부터 왜 이렇게 아들을 못살게 굴고 그래. 그냥 비행기 타고 오느라고 피곤

하겠거니 하고, 좀 재워주면 안돼?"


"비행기는 일주일 전에 탔는데 왜 지금 피곤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는 엄마.



"비행기를 장시간 탔더니 후유증이 오래 가네 아이구."


"자꾸 지랄 옆차기하는 소리 할래? 무슨 하와이라도 갔다 왔냐? 빨리 일어나서 밥먹어. 

그리고 방학이 됐으면, 뭔가 할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계속 방안에서 뒹굴뒹굴하고만 있

을 거냐?"


"도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에휴."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밖으로 향하는 수호. 일본을 갔다온 이후로 거의 변함없는 생활의 

연속이다. 지겨워할만도 하련만, 끊은 줄 알았던 담배를 꺼내들고 빨간색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요새 들어 삶이 지겹다.



"후우. 젠장...왜 이렇게 힘이 없지?"



한마디 내뱉으며, 핸드폰을 열어본다. 핸드폰 안에서는 유가타 복장에 뽀얀 화장을 한, 

한 여자가 웃고 있다. 수호도 따라서 힘없이 웃어본다.



"너 때문인가?"



그래도 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솟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운명도 아닌데 왜 이럴까?"



하늘을 눈부시도록 맑고 푸른데, 수호는 갈 곳도,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따금

씩 놀이터를 전쟁터삼아 지나다니는 참새들이 갈 곳을 잃은 듯, 수호 앞에서 두 마리가 

짹짹거리고 있다.



"이것들이 누구 염장지르나."



돌을 던지려다 말고 수호는 오랜만에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영락없이 시진

이였다.



"또 얘냐..."



피식 웃고는 전화기를 편다. 



"오빠! 왜 요즘에 힘이 없어?"


"아니다. 너는 이렇게 좋은 날 만날 남자친구도 없냐? 나한테 맨날 전화질이게?"


"그래서 만나주겠다는 소리야? 그리고 집은 언제 가르쳐줄거야?"



거의 혼자 여자친구 놀이를 하고 있는 수준이다. 수호도 때때로 불쌍하고 애처로운 마음

은 들지만, 그것뿐이다. 좋아진다거나 운명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일상의 것처럼 전화가 오면 받고 대화를 그렇게 나누곤 한다.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내가 미쳤냐? 너한테 집을 가르쳐줬다가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냥 나는 조용

히 집에서 살련다. 야 그러지 말고, 너 친구 중에 괜찮은 애 없냐? 오빠 한명만 소개시

켜주라."


"풋...갑자기 무슨 소리래?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오빠가? 참 오래 살고 볼일이네."


"웃기는 소리는 지가 하고 있네. 니가 오래 살았으면 나는 할아버지냐?"


"그래서 어떤 스타일의 애로?"



흥미롭다는 듯이 시진이는 대꾸한다.



"음...고운 옷이 잘 어울리고, 짙은 하얀 화장이 잘 어울리는 긴 생머리에 인형같이 생

긴 여자 정도?"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에서 만난 미유코를 떠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그런 여자가 어떤 여자야? 아니 어떤 기집애야?"


"아니다. 공부나 해라."


"오빠 요즘에 좀 이상해졌어. 물론 나한테 원래 잘 대해준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지금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 무슨 일 있지?"


"무슨 일이 있기는...그냥 이 오빠가 인생무상을 느끼는 중이라 그런다. 니가 뭘 알겠

니. 이 오빠의 깊은 심정을..."


"나야 오빠의 속을 알 턱이 없지. 아마 아무도 모를걸. 근데...그러면 그럴수록 알고 

싶어져...참 개학 언제야?"


"아직 한참 남았다. 한달도 넘게 남았어."


"그래? 그럼 한달 후에 기대하고 있어."



사각사각이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시진이.



"뭘 기대하라는 거야?"



이번에는 달칵, 하는 소리를 내며 시진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런 지화자,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어.'





태양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작렬하고 여름을 마감하려는 듯이, 방학

은 끝났는데도, 캠퍼스 위에서 아직도 학생들은 더위에 구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

고 있었다. 손수건에 땀을 흠치며,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는 학생들을 찬찬히 살펴보

며, 수호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설마 개학 첫날부터 찾아오지는 않겠지? 지도 학교는 가야겠지?"



그래도 수호는 못내 불안해 주위를 살피며 학교를 도둑놈처럼 들어가고 있었다.



"야!"



누군가 수호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부른다. 수호의 가슴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수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야, 깜짝 놀랬잖아!"



시원이였다.



"깜짝 놀래기는 무슨...내가 더 깜짝 놀랬네. 너 어떻게 된 거야? 방학 동안 한 번 놀

러 가자니까 그러마하고 연락 한 번 없고, 대체 뭐하고 지낸거냐? 뭐 재밌는 거리라도 

생겼어?"


"재밌는 것은 무슨...그런 거 없어 임마!"


"야, 너 좀 이상하다. 왜 이렇게 시들시들해졌냐? 너 수호 맞냐?"



시원이는 걱정스런 얼굴이다. 꽤 오랜시간 동안 옆에서 봐온 시원이한테는 거의 보기 드

문 수호의 모습이었다. 



"모르겠다. 방학 내내 방구석에 쳐박혀서 그냥 그렇게 지냈어."


"뭐, 어디 아픈 거 아냐?"


"아니야 그런 건...그냥 무기력해진 것 뿐이지."


"언제부터 그런 건데?"



시원이가 계속 물어온다. 그런 것조차 수호는 왠지 대답하기 힘들고 귀찮다.



"일본 갔다오고 나서부터...늦겠다 빨리 가자."



다행인지 아닌지 시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수호는 내심 안심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모양

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반 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학교 수업은 똑같이 진행되고 있

었다. 수호는 연신 하품을 늘여놓을 뿐이었다. 개학 첫날에, 날씨는 푹푹 찌고, 수업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정말 최악의 조건들만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하아암."



그대로 엎드려 자버리는 수호. 옆에서 수업을 같이 듣고 있던 시원이는 보고도 평소 때처

럼 흔들어 깨울 생각을 안 한다. 다만 걱정하는 표정으로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을 뿐. 수

업이 귀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은 시원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교실의 소음과 함께 수호와 시원이도 물결에 휩쓸리듯이 같이 빠져

나온다. 



"야, 이제 3학년이다. 우리는 군대까지 갔다와서 도피처도 더 이상 없고, 물러설 곳도 없

어. 이제 제대로 해야지?"


"알긴 아는데 좀만 기다려봐라. 적응되겠지 뭐..."



수호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오늘은 다행히 개강

이고, 그렇게 수업이 빡빡하지도 않아서, 금방 수업이 다 끝났다. 시계 바늘은 오후 3시

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야, 기분도 좀 그런데 노래나 한 곡 때리고 갈까?"



시원이가 제안했다.



"그럴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수호는 오락실 노래방으로 발길을 돌리고 마음속으로 신나는 곡을 

선곡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진이랑은 어떻게 되가냐?"


"어떻게 되가다니? 내가 그렇게 면박을 줬었는데 뭐..."


"에이, 보니까 방학 동안에 계속 연락하는 것 같더만 뭐...나한테 뭘 숨기려고 그러냐?

솔직하게 말해봐. 이제 조금 마음이 생기냐? 그 정도면 괜찮잖아? 그렇게 꾸준히 지치

지도 않고, 너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여자애가 어디 있었냐? 그 정도면 조강지

처도 울고 갈 정성이다."


"그렇게 관심 있으면 니가 채가든지 말든지..."


"정말이냐? 너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채가는 수가...야, 수호야? 듣고 있냐?"



시원이는 말을 멈추고 수호의 시선이 멈춘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시원아 나 지금 빨리 꼬집어봐."



수호의 시선 끝에는 약간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그냥 이쁜 여학생이 걸어가고 있을 뿐

이었다. 물론 눈에 띄게 예뻤지만, 그렇다고 수호가 생전 처음 보는 여자를 길거리에서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야, 왜 그래? 뭐 귀신이라도 봤냐?"



수호의 마음에 쏴아, 하는 파도소리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 동안 원인 모를 수호의 답답

한 마음이 한 번에 막힌 변비가 내려가듯 한 번에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쟤는...그때 그 일본에서...'



수호의 시선 끝에는 정확하게 미유코가 꽂혀 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보는 핸

드폰 때문에, 강한 마음의 무언가가 작용해 다른 여자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수호는 자세히 움직이는 사물의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럴 리가 없는데...그럴 리가...'



솔직히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같은 동양인이더라도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외국인을

다시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치장이 많이 달라져 있을 때는 더더욱 그

럴 것이다. 시원이는 낯익다는 느낌도 거의 희미하게 가진 채 미유코를 지켜보고 있었다.

거의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수호는 달랐다. 일본에서부터 계속적으로 신경이 쓰였고, 방금 전 순간까지도 핸

드폰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여자를 못 알아볼 리가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과거의 화

장기가 많이 약해지고, 옷차림이 변했다지만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호는 자신의 마음의 파도를 의식하기도 전에, 그 동안 그 갑갑했던 마음이, 어떻게 보

면 이런 시시콜콜한 일로 뚫려버렸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전에 빨리 붙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오빠!"



달려가려는 수호는 뒤에서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소리가 있었다. 수호는 급히 뒤를 돌

아보았다. 그 곳에는 얼굴에 하얀 분같은 것을 덕지덕지 바른 채 입술에 빨갛게 립스틱

을 칠하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시진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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