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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네로(54~68 재위) <쿼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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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손작
추천 : 0
조회수 : 7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21 20: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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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 세계의 폭군 중 한 분이다.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총명하고 스마트한 청년으로 기대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의 스승 또한 지적인 웅변가이면서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세네카였으니 나중에 폭군이 되리라는 건 더욱 예견치 못했을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그리스 때 시작되어 로마 초기까지 이어진 말하자면 금욕주의 철학이다.

금욕주의 스승을 둔 것에 더해 청년 네로는 유머 감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착한데 재미있기까지 한 젊은 황제. 제국의 황제가 유머를 가졌다는 것은 제국민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예나 지금이나 권위주의에 찌든 인간에게 유머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여러 이유로 친족을 죽이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비윤리적 장면에 사람들이 경악하는데, 네로는 아랑곳않는다. 심지어 스승 세네카까지 처형하는 것이다.

황제 즉위 때 명연설문까지 써주어 원로원의 찬사를 받게 해준 세네카였다. 결국 네로는 반란으로 쫒겨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폭군론이 너무 과장됐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서기 64년 여름에 있었던 로마 대화재의 배후에 네로가 있었다는 것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 화재는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작은 불이었는데, 초기 진화 실패로 크게 번졌던 것이다.

로마 전체가 타들어간 큰 불이었던바, 백성들이 막나가는 폭군 네로를 의심한다. 이에 네로는 당시 한창 전파 중이던 신흥종교 기독교에 책임을 씌워 민심 수습에 나섰으며, 그것이 사상 최대의 기독교 대학살이다.

이 기독교 탄압은 네로가 폭군이자 정신병자로 기록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로마 대화재 이후 로마는 시내 도로가 재정비되고 화재 대비를 위한 수로까지 증강되며 더욱 반듯해졌단다.

허풍이 심했던 네로는 어리석은 암군(暗君)이었음이 분명하다. 암군이 있으면 그 나라는 크게 약해진다. 실제로 그 후 로마 제국에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쿼바디스>(1951):

폴란드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쿼바디스를 각색한 영화이다. 시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자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촉망받는 로마의 한 젊은 장교가 예수를 믿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반 이후 로마 대화재가 나온다.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내려다 보며 시를 읊고 악기를 켜며 노래를 부르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신하 페트로니우스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유명한 장면이다. 참고로 페트로니우스는 코미디 네로25에서 활약하던 별명 골뱅이, 개그맨 정명재가 하던 역할이다. 황제에게 고언을 하던 역이다.

눈물의 꽃병이라는 눈물 단지를 가져오게 하여 창작 애도시를 읊으며 눈물을 거기에 담는다.

너를 위해 눈물을 흘리노라. 한 방울은 널 위해, 한 방울은 날 위해, 나의 슬픔의 열매를 봉해버려라. 그리하여 네로가 그의 진정한 친구를 위해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게 하라."

물론 이 모두 영화적 허구이다.

마지막에 기독교인들이 원형극장에서 처형당하고 있을 때,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가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로마를 향해 가는 예수를 발견하고 말한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는 대답한다.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한다고.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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