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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펌)[세월호 침몰]산 사람은 살아야지
게시물ID : sewol_301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지불안증
추천 : 2
조회수 : 89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3 23:45:00
2014. 05. 23. 금요일
곧 막내는 벗어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레기, 퍼그맨











'산 사람은 살아야지' 

본 기레기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마도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였던 것 같다. 슬퍼하는 이종사촌 형에게 어머니가 어깨를 토닥이며 들려주던 그 말. 해병대 출신이라던 형은 이내 울먹임을 삼켰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의 울림이 주었던 따뜻함만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때까지는 몰랐었다. 

저 말이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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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후 38일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들은 조심스럽다. 21세기 들어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사고를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았다. 쉽게 떨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말 하나가 참 꺼내기 어렵다. 

조도면도 그런 분위기였다. 새들이 내려앉은 것 마냥 많은 섬들이 모여있는 마을, 사고 지점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살기에 제일 먼저 달려가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한 고마운 어민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지금 육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물리적인 고립만이 아닌 정서적 고립. 슬픔을 새삼 떠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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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레기가 조도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오는 배가 없었기에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남쪽 바다가 보이는 신전 해수욕장 근처에서 민박집을 알아봤다. 그런데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노인 분께서 집으로 들어와보라신다. 손님용 방이 아닌 주인집 거실에서 커피 한 잔 하지 않겠냔다. 나중에 들어보니 외지인을 한 달 만에 보신단다. 덕분에 사고 이후 분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팽목항을 못 쓰니 섬과 육지를 오가는 배 편이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랬다. 조도로 들어갈 때 이용했던 항구는 '쉬미'라는 항구인데 여기는 수심이 얕다보니 물이 조금만 빠져도 큰 배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5월 초 연휴 때 많은 방 예약이 있었지만 전부 취소되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모두가 올해 민박은 포기하자는 분위기란다. 팽목항에도, 면사무소가 있는 하조도에도, 조도를 관광하기 좋게 개발하겠다는 공사 계획 조감도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그러나 공사자재는 쌓여만 있고 각종 건설 장비들은 주차장에 기약없이 멈춰 있을 뿐이다. 짐작해보건대 관광 쪽에서의 손해는 올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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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이나 기타 해조류 등이 반품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세월호에서 기름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은 조도면의 여러 섬 중 두세 개 정도인데 조도면에서 난 거라면 무조건 기분 나쁘다고 안 먹으려 하더라고. (후에 면사무소 수산계에서 확인해본 결과, 조도면이 아니라 진도 다른 지역에서 난 것도 반품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 하는 것은 염치 없게 느껴진다는 말을 항상 마지막에 붙이신다. 

다음 날. 면사무소에서 유류 피해 보상 대상자 선정과 관련해서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사고가 났을 때 정순배 이장단장과 함께 섬 주민 전원에게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조치한 수산계 직원들은 명단을 작성하고 걸려오는 주민의 전화에 왜 보상 대상에서 누락이 됐는지, 신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로 그 후의 시간 대부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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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분에게도 전화 연결을 시도해봤는데 깊이 있는 인터뷰는 할 수 없었다. 모두 배를 타고 나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로운 광경이었다. 정부의 지원금 외에는 외부에서 내밀어주는 손도 없었고 이 곳 주민들도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하는 일에 조심스럽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죠.' 

그 한 문장이 입 안에서 멤돌았다. 희안한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누가 먼저 이 말을 하며 사건으로부터 도망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끝내 저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구해준 고마운 분들에게도 이 말을 아끼다니.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유족들만큼 슬픔이 크진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2014년 4월을 살아간 자의식 있는 사람 치고 이 날 얻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 사고가 났을 때, 안전하다는 방송에도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던 사람들처럼. 그래서 어쩌면 조도 주민들만이 아닌 우리들 모두, 서로에게 이 말을 듣고파 하는 중인지도 모르는데 무언가 나의 옆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내는 것조차 쉽지 않게 만든다. 

아직 10명이 넘는 실종자가 있어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게 시기상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실종자를 줄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조도면 주민들은 오늘도 팔리지 않을 해조류를 길에 널고 있다. '이거 사주자' 지금, 이런 말조차 해서는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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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방사능 먹은 농산물도 후쿠시마 응원하겠다고 사줬다는데, 앞서 서술했듯 조도면 양식장에 세월호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인한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라 한다. 이는 조사해서 피해 입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구분해주면 될 일이니 일본의 사례와 비교될 수는 없는 거다. 조도면의 용감했던 어민들은 우리의 응원을 받을 충분한 자격과 근거가 있다. 

아울러, 이 글을 진도에 보상금을 주는 게 부담스러워 언제 끊어버릴까 타이밍부터 재고 있을 창의성 없는 관계부처 수장님에게 바친다. 부디 머지 않아 받아쓰기에 특화된 몇몇 언론에서나마 진도에서 난 수산물을 소비해주자는 캠페인을 볼 수 있기 바라면서.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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