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조상 중 고려사에 이름이 남은 자는 호경이다. 고려사 고려세계에 인용된 바에 따르면, 외가 쪽 시조인 호경이 아들 강충을 낳고, 강충이 아들 보육을 낳고, 보육이 딸 진의를 낳고, 그 진의가 고려로 온 당숙종과 결혼해 아들 작제건을 낳았고, 그 작제건이 서해 용왕의 딸 저민의와 혼인해 왕건의 아버지 용건을 낳았다고 한다.
당숙종의 후예임을 공식적으로 자처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그 것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중국사신이 지적하자 당선종으로 급하게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문제는 고대의 종족분쟁의 결과인데, 그간 서울지역의 적폐가문출신들이 중국새끼덜의 논거를 그대로 받아들인 서사와는 다르게 실제 고대사내에서 고구려와 동이세력을 끊임없이 침략한 집단은 선비-돌궐계 집단으로써 일관성이 있는 집단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으며 그러한 가운데에 민족적인 적개심이 극에 달해있었고, 특히 고려조에는 그러한 적개심이 동시베리아계인 거란계가 당시에 동돌궐계들이 장악하고 있던 중국과 무려 유라시아대륙의 반을 횡단해서 서돌궐계 셀주크 투르크를 공격하는 형태로까지 분쟁이 발전해있었는데, 과연 진짜 고구려계라면 적어도 당나라새끼를 참칭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점에서 고려조 건국세력의 성분은 심히 의심되는 것이다.
그들은 후대에 승자의 관점에서 노략질된 역사성분을 단지 주창하고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점은 정작 매소성전투에서 한국계와 중국계의 접점이 경기북부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통일신라초기에 당나라세력이 경기북부와 황해도지역에 내려와있었음이 확인된다.
아마도 그들은 중국식으로 향촌을 장악하려고 광분한 당나라새끼덜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양성을 함락시킨 뒤에 평양에 거점을 삼고, 당나라 새끼덜은 중국식으로 한국인들의 향촌을 장악하려고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게중에 일부가 무려 경기도지역까지 남하해오면서 당시에 이미 경기도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한국계인 신라계 지배계급과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매소성전투로써 매소성전투직후에는 전과확대를 위한 추격전이 펼쳐져서 패잔병들에 대한 섬멸전이 일어났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기록은 남아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후대의 왕정사관들이 고의적으로 곡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가 당나라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는 기록은 없으며 이후에 측천무후가 보낸 사신의 중재로 대애충 화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심하게는 경기북부에 이르기까지 일부는 당나라계의 촌주세력이 장악하였고, 다만 큰 행정구역은 신라가 보낸 총독의 소유로해서 그들 당나라계 촌주들도 신라도독에게 복속되는 것으로 합의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평양에 대해서도 실상 평양성은 당나라새끼덜에게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지만 영유권은 정작 신라영유권을 신라군공의 존재를 통해서 인정했던 절충안을 채택했다. 그 것이 측천무후와 신라의 합의였던 것이다.
그 것을 이해할려면 돌궐새끼덜 식의 촌주지배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중국의 여성운동가 모의 말대로 중국의 촌락이라는 것에서 촌주는 실상 황제급의 군림하는 지배자이며 한국식의 이장이나 촌주와 같이 엘더리즘에 의한 다소간의 리스펙트만 받는 존재가 전혀 아니다.
중국의 촌주새끼들은 자신의 촌에 사는 여자는 아무나 마음대로 강간해도 되던 것이 1970년대까지도 그랬는데, 지금은 조금 의식이 바꼈다는 말도 있지만 뭐 중국이 그러하듯이 전혀 그렇지 않은 지점도 있다고 한다. 현대에는 마음대로 강간해도 되는 종자는 사창가에 팔아먹는다고도 한다. 중국인과 매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도 있다.
자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과 같은 프로그램을 굳이 보지 않아도 정복이 일어나지 않은 일반적인 인류의 촌락사회에서 촌장들이 길가는 년 아무가 강간해도 된다 이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콩고강에서 고기나 잡아서 생존해온 미개부족도 그 지랄은 아니라고. 따라서 중국의 향촌질서가 그따구인 것에 대해서 그 것은 정복의 결과로 비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적인 특수성을 더하면 촌주가 촌민을 강간하는 것은 족외혼이라고 하는 한민족의 유구한 전통에도 매우 어긋나는 것이다. 특히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던 시기 이전에는 한국의 촌락들은 종족촌의 형태를 띄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건 넘사시러운 짓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렇게해서 콘돔도 없던 시절에 2세라도 태어나면 골치아파진다는 말이에요.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용납될 수 없지.
실제로 조선조의 율법이라도는 해도 그러한 형태는 철저하게 금지를 했다고 봐야 하며, 상류층은 모르지만 하류층의 혼외정사는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하멜표류기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혼인한 여자와 간음한 자는 여자와 함께 발개벗겨져서 도시로 끌려다닌다. 이때 얼굴에는 차가운 석회를 바르고 양쪽 귀를 뚫어 화살을 꽂고 판결인이 :"사람들 여기를 보십시요! 이 남녀가 간음죄를 범했습니다!"라고 외치며 두드릴 작은 북을 등에 매달고 있다. 이같이 하고 도시를 돌아다닌 후에 관가 앞마당에서 50-60대의 엉덩이 곤장을 맞는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혼인하지 않은 여자들-관기나 노예, 무당따위의 불가촉천민- 과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조선조의 촌주들이 얼마나 제약(제약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중국이 오히려 비정상)을 받는 존재들인지에 대한 상황을 알려준다.
게다가 조선조에 촌주들은 지방관의 엄격한 감시에 놓여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아전으로써 지방의 관청에 무료봉사를 해야 되는 집단이었다.
어쨌든 상기한 법칙에 따라서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당나라새끼덜은 고구려와 신라인들이 살고 있는 향촌에 가서는 중국식으로 위계를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서나 삼국사기에서는 엉터리로 말하지만 그것이 진짜 신라와 당의 전쟁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도 실제로 경기북부지역의 오래된 촌놈들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대표되는 삼남지역의 촌의 민심은 사뭇 다르다.
후자에서는 위계서열을 결정짓기 위한 행동들이 거의 없는 반면에 경기도 지역에서만 유독스럽게 그 지랄을 한다. 학교의 일진문화 따위가 그러한 것이다.
후자에서는 경상도 문화에서는 어른이 있는데, 애새끼덜이 싸우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문디새끼덜이라는 것은 확실히 그 문디새끼덜이 아이누족새끼덜이 화톳불 하나를 둘러싸고는 꾸역꾸역 앉아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뭐 사극이 보여주는 개지랄과는 다르게 조선시대의 한국인들도 초갓집은 그나마 양반이고, 태반은 움집이나 막집에 살고 있었다.
그러한 바닥에서 얼마되지도 않은 세간에서 위의 그림처럼 노인들끼리 부딪겨 있는데 아새끼덜이 싸운다카면 좋아할 놈이 누가 있겠노.
그리고 어차피 함께 저 지랄이나 될 것인데, 싸운다는 것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기안84나 소싯적에 인서울지역 학교문화를 배경으로 하던 만화들도 실상은 저 지역만 저 지랄이다라고 보면 매우 흥미로운 서울지역 지역새끼덜의 흥미로운 행태가 되는 것이다.
그간 서울새끼덜은 그들이 지방인을 연구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지방의 연구대상이 된다고는 생각 못했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러한 당나라 새끼덜이 장악했던 지역성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 구타유발자들(2006)이라고 보여진다.
단연코 말하건데 저 것은 우리가 아는 경상도나 전라도의 촌동네 풍경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삼남지역에서 이장이라고 하면 능력있고 인망있는 자들이 된다. 저런 양아치짓 하는 새끼덜은 그 동네의 패러다임이 아니다.
그리고, 소싯적 제물포 새끼덜도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뭐 인천을 대표하는 똥양아치다. 뭐 참고로 나는 인천출신은 아닌데 뭐 잠시 그 동네에서 일 하던 시절이 있긴 하였는데, 뭐 그 동네 물이 이렇다고 조금 느껴본 적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약간의 역사성을 도출해냈는데, 본인의 집안은 제주도출신으로 4.3사태를 겪어본 집안 출신이기도 하다.
사실 4.3사태라는 말도 아주 순화된 문충 새끼덜의 도출된 명사지만 실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자행되었던 결코 4월 3일 하루로 설명될 수 없던 제주인대학살이라고 그냥 제주 홀로코스트라고 있는 그대로 작명을 해 주길 이 나라 인서울엘리트 GAe새끼덜이 지덜이 기라면 기고 아님 아닌 지록위마까지 가능한 이따위 나라에서 온당한 말이 가질 힘을 인정이나 해 줄지 모르겠다.
하여간 물론 그 와중에 살아남은 놈들의 집안이니까 지금도 숨 쉬고는 있겠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생각했던 의문은 일반적인 국가라면 작동해야 할 지역민간의 온정주의나 혹은 적어도 단일민족을 표방하는 집단간의 온정주의가 왜 제주 홀로코스트당시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는가였는데, 인서울과 경기북부, 제물포 일진문화를 접해보고는 단숨에 결론내릴 수 있었다.
그 것은 이념이나 좌우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완전히 상이한 문화를 가진 집단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문화충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문화라는 것이 한쪽은 굴종시키고 서열을 정립하는 것을 강요하는 문화이고, 다른 한 쪽은 그러하지 않다. 그렇다면 제주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충돌이 발생하게 된 역사성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굴종시키는 문화를 가진 쪽은 애초에 한반도인들을 침략했던 당나라 세력의 후예새끼덜로 간주되는 무시할 수 없는 지역성이 정렬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서울은 한강유역의 남북부를 모두 아우르는 대도시지만 소싯적의 한성은 강북에만 존재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소싯적의 서울어를 들어보면 오늘날 다수집단이 된 남부계 한인들에게는 거진 이북어로 들린다.
특히 백제의 중심지가 한수이남에 있었고, 고려조새끼덜이 백제인과 신라인을 침략했다는 역사성과 지역성을 결부시키면 구시대의 한수이북의 한성은 서북지역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본인의 제주출신 할매가 절규하게 하던 단어인 '서북이'라는 GAe새끼덜의 범주는 협의의 의미로는 서북청년단을 말하지만 광의의 의미로는 서북새끼덜이 가진 정체성 그 전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서북과 타지역을 가로지르는 지역경계는 바로 한강이며, 한강이북새끼덜의 정서는 애초에 남부인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예전에 본인은 이러한 견해를 홍머시기라고 하는 자신이 성재기의 뒤를 잇는다는 반골종자와 대화를 해봤는데, 그 인간은 서울의 아주 오래된 집안이라고 하였고, 그 인간이 동의한 것은 실상 평양과 서울은 대단히 가까운 지역이며 광주와 전주만큼이나 동질성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끼리 평양계파와 서울계파가 수틀려서 패권전쟁을 했던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패러독스였다는 것이다.
즉, 왕규의 서경개척으로 개성놈들이 서경개척을 해서 생긴 것이 평양이고, 이성계가 천도를 해서 개성놈들이 남경으로 옮긴 것이 한성이다.
그만큼 두드러지게 동질집단이 수가 틀렸다는 것이다.
즉, 동족상잔의 분쟁이라는 것은 한민족끼리의 분쟁이라는 뜻 이전에 서북새끼덜의 분쟁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구시대의 서울인들은 이렇게 북한의 서북계와 그 여느 남부인들을 제끼고 가까운 종자들이었고, 조폭문화나 일진문화는 실상 그들의 지역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m5lY52rwY
뭐 여기 박훈이라는 인천조폭새끼도 자신이 왜 그러한 지역성에 야합하게 되었는지는 겨우 알아 쳐 먹어도 그 근본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문화 일체는 한 때에 한반도를 침략했던 당나라새끼덜로부터 근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아가서 당나라새끼덜이 한반도로 난입해서는 고려왕조를 세웠고, 신라와 백제를 강제적으로 군사행동을 통해서 병합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철썩같이 믿어지는 수도와 지방의 위계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정복자와 피정복자간의 매너에 의해서 발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역사도 매우 왜곡되었다.
군사적인 견지를 보고 견훤이 상주와 안동에서 고려군세를 막아낸 것은 고려세력으로부터 신라세력을 보호하는 군사작전의 목적을 보이지 삼국사기에서 claim 혹은 주작된 것처럼 견훤이 지가 신라를 쳐 먹으려고 고려와 싸웠다는 말은 완전히 엉터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외에 견훤이 경애왕의 처를 겁탈했다 그딴 것도 죄다 믿을 수 없는 개소리다.
견훤이 진짜로 고려를 조지고 싶으면 군사적인 정석은 고려군세가 신라로 내려오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문경세제 코 앞에서 막는 것이 아니라 고려가 경주까지 포위해서 공성전을 하게 만든 뒤에 그 뒤를 공격해서 짜부시켜서 조지는게 가장 정석이다. 물론 그러하기 위해서는 양측 군세가 맞붙을 수 있는 접점으로 기동할 필요가 없으며 백제가 선덕여왕 때에 경주를 급습했던 경로였다는 무주에서 합천으로 군사를 돌려서는 경상남도쪽에서 어프로치를 치면 별반 고려군세와 접점없이 고려놈들을 싸그리 역포위해서 조질 수 있는 것이다.
경상도 지역은 조령이남이라고도 할 정도로 소백산맥의 남부지역으로 실상 중부지방으로 가는 길은 몇 개의 고갯길에 의지하는 지역인데, 정작 그 고갯길 너머지역인 상주와 안동에 백제군세가 포진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이 것은 경상도를 지키는 군세의 포진이지 경상도를 치러온 군세의 포진은 아니란 것이다.
따라서 고려새끼덜의 역사주작이 심히 의심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려놈들이 중국계라고 한다면 그들이 경상계와 전라계를 이간질하는 것은 이이제이라고 하는 그들의 종특에 다름아니다. 이 것은 중국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아는 한국인이라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후삼국사를 보면 이이제이를 위한 떡밥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띄고 있는 기사들이 마치 정사처럼 행사한다는 것이다.
즉 이를 극복하게 제대로 된 역사를 구성해보면 오히려 이렇게 된다.
1. 돌궐계들은 고구려때부터 한국인들을 포함한 동시베리아계 제민들과 끊임없이 다투다가 결국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아가서 한반도의 평양에까지 거점을 확보하였다.
2. 평양에 거점을 확보한 돌궐계들이 반도내에서 향촌에서 군림하기 위해서 돌궐계 군사집단들이 흩어져서는 점거활동을 하다가 통일신라세력과 충돌하였고, 또한 고구려부흥세력으로 알려진 고구려계 촌주들도 신라세력에 가담하였다. 왜냐면 당나라 새끼덜이 촌에서 위계를 확립하기 위한 폭력활동은 일반적인 저항을 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것은 오늘날 중국새끼덜이 자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간, 인신매매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악질적이고 잔인한 것들을 의미한다.
3. 초기에 이러한 연합군세와 충돌한 집단들은 중국본토에서 기인하는 군세가 아니라 평양성을 거점으로 뭉친 돌궐계들이 정착하러 온 집단들이었을 것이며 그들에 대해서 신라군세는 매소성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들 집단을 추격해서 섬멸하였다. 그러나 공세한계에 의해서 그들을 완전히 축출하지는 못하였다. 완전축출을 했으면 했다고 기록이 되었겠지만 그러한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4. 완전축출이 되지 않은 결정적 증거로써 측천무후라고 하는 당시의 돌궐세력의 큰 어미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지도자와 적당하게 화의하였다.
5. 이렇게 반도내에서 정착한 중국계 집단이 후일에 난동을 일으켜서 성립한 왕조가 고려왕조로 보인다.
6. 이런 막가파 새끼덜을 상대로 경상계와 전라계가 연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고려놈들조차도 고창전투에서 신라계 호족들도 백제군에 참전하였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서울사가들은 엉터리고 곡해를 해놨지만 실상 뭐 동네 촌주(=안동 김씨, 장씨, 권씨)정도를 제물따위로 꼬셔서 지형정보나 군사정보를 일부 추출하는 행위는 여느 역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짓이므로 이를 견훤의 강압에 못 이긴 신라계 호족들이 이반했다라고 하는 것은 확대해석인 것이다.
7.다른 야사에 의하면 애초에 견훤을 전라도로 보낸 것은 다름 아니라 신라왕이었고, 견훤은 바로 경상도인이며 견훤이 전라도인들로 이루어진 신라의 공식 군제인 9서당의 백제 서당인 백금서당과 청금서당을 시급하게 재편하기 위한 일반적인 포석일 뿐이다. 게다가 상주출신 견훤에게 고려계라고 역사를 통해서 위장한 당나라 새끼덜이 경주로 침공해오는 경로가 다름 아니라 견훤의 고향이던 상주였던 것이다.
그리고, 본디의 한국인은 일부 토성을 빼놓고는 성씨를 쓰지 않으며, 한국의 성씨라는 것의 태반은 20세기에 자행된 창씨개명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요컨데, 우리가 조선왕조 역사를 통해서 성씨를 가진 인간들만이 활개치는 것은 당시에는 상위 1프로 새끼덜의 역사만이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조선왕조라고 하더라도 상위 20프로쯤만 되어도 흥보정도의 이름이나 가졌던 것이다. 뭐 그 것도 흥부는 덕수 장씨다 그런 설도 있는데, 것도 적당히 갖다붙인 버전이지 오리지날이다라고는 감히 주장못하는 것이고. 뭐 조선시대에 흥부라고 카면 응당 성없는 흥부라고 민초들은 인지했겠지 덕수 장씨 버전이 있다 그딴건 현대의 정보화시대에 발굴된 기록이지.
그러한 수많은 소위 발굴버전들은 실제의 당대의 인지와는 전혀 무관한 수정사관을 형성한다. 수정사관이라는 것은 modified된 엉터리라는 뜻이에요. 왜냐면 그 자체도 믿을 수가 없다고.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수가 뒤질 때는 분명히 300개라고 캤는데, 나중에 보니까 18세기에는 500개가 되었고, 20세기에는 천개가 되었다 그런 지경이라고. 결과적으로 700개는 짝퉁이지. 그런데, 뭐 어느 것이 짝퉁이다 증거를 대라고 뭐 천경자 작품도 없는 것이 생기고서는 되려 없던 것 판 놈이 증거대라고 배째라 개지랄하는 그 지경이 되니까 피곤해서 야 좃같네 니꺼 진품 맞다 이 조깥네 그렇게 인정해주는 거다.
역사도 다 그런 거야. 뭐 왕씨가 나는 조까고 고구려의 후예다 뭐 이 지랄카고는 뭐 아니라는 놈 있으면 나와봐 이 지랄카는데, 뭐 조깥네 인정 이거지 뭐 진실이야 뭐 알게 뭐야 ssibal. ㅋㅋㅋㅋㅋㅋ 그래놓고서는 전쟁으로 정복한 새끼덜이 역사에서도 갑이 되고, 영웅이 되고, 그 후예들도 떵떵거리고, 그 반대로 정복당한 놈은 노비나 되고 노예나 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역사도 선민사상이 아주 강한 엉터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지금에 와서는 바로 그 노예가 천민들이 다수집단으로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서울의 학계에서 서울의 엘리트집단에 야합하려는 문충새끼덜의 관점은 그 새끼덜의 출세욕 만큼이나 경도된 것이며 금마들의 친인척새끼덜 중에서 뭐 성정이 괄괄하다는 새끼덜이 제주 홀로코스트나 야기하던 놈들이며, 그 2세새끼덜이 같은 핵교에 편제되면 일진놀이나 쳐 하게 된다는 것이 제주 홀로코스트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자 현대의 인서울 새끼덜의 정신상태에 관한 분석이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으로부터 한국의 봉건적인 경제구조가 또한 도출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특히 횟감의 유통구조에서 금마덜이 부가가치를 어떻게 올리던 간에 자릿세를 어떻게 받아 쳐 먹던간에 지방출신의 생산업자에 대한 처우는 일정하다.
그러한 가운데에 뭐 지방업자가 지랄이라도 할라치면 중국산 그루퍼랑 교잡된 잡종이나 유통시켜서는 단가나 꺾는 것이다.
아 뭐 그렇게 돈 번다고 또 갸들 밑에 있는 용역이나 수행하는 것들한테 돈 잘 준다는 것은 아니고. ㅋㅋㅋㅋㅋㅋ
실제로 경매이후에 확정된 도매가가 아니라 경매장에서 도입가는 그러니까 진정한 원가는 광어나 다금바리나 킬로당 만원밖에 차이 안 난대요. 그러면 그 호구잡으면 다 지꺼지. 그 기대치까지도 경매쟁이들이 또 쳐 먹는다 그런 것이고. 그 프로세스에 생산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뭐 실상 공산품도 비슷해서 완제품 팔아먹으려면 마진 안 나오는 제품은 퀄리티를 낮춰서라도 단가 떨구라고 전화로 지랄한다. 그렇게해서 잘 팔리면 뭐 그게 공장한테 오는 수익? 좃도 없다. 역으로 애초에 지랄을 해서는 우리가 을이고, 점마가 갑으로 되게 하려는 그 자체가 지랄의 목적이 아닌가까지 진정성이 의심된다.
결과적으로 소매자가격에서 생산자의 몫은 극히 적어서 공장식구랑 사장까지 다 합쳐서 가져가는 수익이 뭐 조폭새끼가 대리점 차렸다는 금마 혼자 쳐 먹는 것보다 못하다. 실제로 후자는 건물주 되고, 전자는 꼴랑 최저임금이나 받기 일수에요.
그런 새끼덜이 정작 서울정권에다 대고는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이 지랄이라서 안 된다 이 지랄카는 것이지. 그런데, 애초에 금난정권 따위로 제주홀로코스트를 야기하던 새끼덜이 지방의 상권을 강압과 위력으로 복속시키던 김두환과 조폭새끼덜의 관행을 이해하면 이 것은 필시 조선왕조적인 봉건적 위계가 곧 현대적 시장질서로 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 것도 쿠팡 이런 것에 싸그리 망해 없어질 지경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서울 자영업자 새끼덜은 그러한 지점에서 금마들의 성장환경부터 그 모든 위계와 위력행위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이나 필요하겠지만 그조차도 이미 늦었다. 한국의 유통업은 이제 정작 그들이 떠받치던 대기업의 가문들로부터 철저하게 시장주의화 될 것이고, 이제 회도 마트에서 팔리고, 24시간 배송되는 시대다. 지방의 생산업자야 뭐 단가 100원이나 운반업자는 운송비나 제값 쳐주면 땡큐지. 구시대적인 봉건적 경제질서 그게 이때까지 간게 과도기일 뿐.
그들이 소싯적부터 시전상인이라고 하던 형태로 강요하던 그 시장질서는 또한 정복자와 피정복자간의 위계내에서 작동하는 위계적 시장질서이며, 그 것도 모두 끝이 온 것이에요.
그들이 경제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위력에 근간한 시전세력의 유통업이나 무역업을 말하는 것이지만 정작 그들이 강요했던 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서 교역과 유통은 대형화되고 그들은 도태된 것이다.
오늘날 서울의 유통업자 100만명이 구조조정된다고 하여도 할 말은 없으며 억울하면 그들은 이제 배송알바나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지방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러 낙향하던지 말이다.
지방의 농업이나 제조업에서는 이미 노동력의 공급부족을 말해온 것이 오래되었다고. 그리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은 서울에서는 서울법을 따르라는 것은 되었겠지만 이제 지방으로 가면 서울식으로 개지랄하면 존나 쳐 맞겠지? 실상 갑질할 건덕지도 없겠지만 말이다.
노조 욕하고 그런 새끼덜도 서울의 기득권을 자처하는 새끼덜이 지랄병일 경우가 태반이다. 정작 아부지 금속노조 공장댕기는 울산놈이 노조반대하겠냐? 경남전체에서 그런 마인드는 조중동의 세뇌에 빠지지 않고서야 가질 수 없는 스탠스지.
이러한 입장으로 보자면 일본이 망한 것도 끝까지 소비는 진작하지 않으면서 도쿄공화국이나 조장하면서 도쿄중심의 소자본가들을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의 촌은 극심한 노령화에 시달리고 있으며 명백하게 농업 혹은 공업 생산성을 가지던 공동체가 외곽으로부터 붕괴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에 정작 도쿄공화국의 기득권들은 여전히 어떻게 하면 도쿄에 사업장을 차린 토건족이나 유통업체나 지원할까 그따구나 궁리하니까 망하는 것이다.
유통은 특히 효율이 생명인데, 유통을 그 지랄로 보호하려고 들다가 정작 이제 디플레가 오니까 소비가 망해서 물건을 제 값에 팔지도 못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50프로 세일을 붙이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물건을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더욱 망한 것이다.
도쿄 쁘띠부르주아들을 보호하려다가 되려 그들에게 더욱 지독한 절망만을 맛보게 한 것이다.
결국 뭐 틈새시장이나 노려서 조금 생계나 가질려는 소상공인까지 싸그리 망하게 된 것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1Cxl4Sav_JQ
뭐 막말로 오늘날 인서울 소상공인들이 가지고 있는 어줍잖은 같이 살자는 의식과는 다르게 노량진수산시장 정도의 물량을 단 한 놈이 이건희수산 맹글어놓고 다 컨트롤해서는 극단적인 박리다매를 추진하는 한편 반대급부로 노량진새끼덜 싸그리 실직자가 되어서는 억울하면 지방내려가서 노가다나 생산직이나 아니면 운수직이나 하던가 배송노가다를 하던가 뭐 다 싫으면 자살하던가 그게 진짜 자본주의 맞어.
즉, 서울새끼덜은 아주 특이한 내로남불주의로 지방생산직 금속노조한테는 연대를 박살내라 특권이다 이 지랄을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그 것을 누리려고 하지. 그리고, 그들의 매점매석으로부터 서울의 지대는 형성된다. 결국 수산물 가격의 태반은 점포세가 반영되는 거야.
이건희수산이 자기 건물에서 점포세 안 내고 팔면 훨씬 더 싸게 팔 수 있겠지만 그 것 자체를 인서울 큰 손들은 원치 않는다. 그 것으로부터 서울공화국이 야기된다고까지 할 수 있다.
소래포구 그 지랄인 것들도 실상은 그 점포세내고 들어와있는 것들의 드론질로부터 시작해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점포세만으로도 월 5천 받으면서 SUV에서 점마 새끼 장사하나 안 하나 감시하고 있다는 그런 놈이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이권하고는 조폭이 결탁할 수도 있고, 그 지랄이 서울식이냐? 그래서 지방공돌이, 고기잡이 돈도 좃같이 주는 거잖어. 그게 너희다 ssibal.
그리고 이 모든 방식은 마치 중국새끼덜이 인도네시아 상권을 장악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지. 결국에 그들은 짱궤식으로 된 전제화된 국가주의를 추구하는 것들이며, 실제로도 그들은 짱궤새끼덜의 후예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실제로 또한 소중화랍시고 조선시대에는 그 것을 표방하였고, 그 것이 확대 재생산 되는 공간으로써 서울기득권을 타파하지 않는 한 수도의 이전만은 형식에 불과하다.
뭐 일단은 자본주의가 온당하게 작용한다는 경제적으로 조정될 가치라고 일단은 평가한다만. 또 정권바뀌면 내 인식이 바뀔지도 몰라.
솔직히 저 쪽은 너무 노골적이잖아. 나는 그 쪽에 대해서는 희망따위는 없다.
뭐 이 모든 것이 수틀리면 궁극적으로 지방의 주인됨을 위해서 경상도정도는 독립해서는 현기차를 국유화한 뒤에 대구지역 부품공급업체 사장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재인수하던가 하고, 그 자체를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독립이 필요충분조건이 되며, 최악의 경우(민주적 방식의 분리에 서울권력이 반대하는 경우)에는 그 모든 것을 훼방놓을 서울권력새끼덜의 간섭을 배제하는 최종 솔루션으로써 고리원전에서 핵재처리라도 해서는 서울에 수소폭탄 놔드리고 지방은 독립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한국식 엉터리 전제주의 유교식민주주의를 배재한 진정한 민주주의 성립의 길이라고 나는 간주한다.
물론 그 것은 최악의 경우이며,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서울적인 귀족주의를 표방하는 적폐세력들이 가진 정치이데아나 그들의 실질적인 기득권은 더 이상 지방민들에게 그들이 왜 같은 국가의 일원이야 하는 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유조차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이 끊임없이 집권하려 든다면 한국의 경상독립이나 전라도의 독자화와 같은 발칸화(balkanization)의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노골적으로 도곡동 거주의 유지이시던 누군가가 한국의 기업집단군내에서도 성공했다고 하시던 이명박이라는 그 분이 한국국가전체를 그의 사유재산을 증식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던 정권 밑에서 한국의 지방거주민들은 그가 자행한 고환율 정책으로 실질소득의 상당부분을 갈취당했듯이 말이다.
그가 자행한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기업들은 외화를 더 많이 벌 수 있었고, 게다가 달러표시의 실질임금까지 깎았으니 일석이조였겠지만 지방의 소득증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트리클 다운이라는 개소리는 강남부자새끼덜의 한갖 프로파간다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익숙한 좌절은 실상은 고려조 왕건이나 그 새끼의 아들인 광종 왕소때부터 지방에 자행된 폭력성이었으니 그 역사성은 도통 오래된 것이다.
그러한 천 년의 역사동안 단지 아지발도라는 경상도놈과 전봉준만이 그 모든 악질적 체제를 박살낼 수 있는 움직임을 가졌지만 특히 후자는 서울로 상경할 수 있는 군사경로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외세의 개입에 의해서 그의 군세의 진격은 좌절되었다.
그 것이 바로 적폐새끼덜이 현대에 외세와 결탁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의 문장에서 보듯이 지방기업이 지방재정에 기여하는 바는 그들의 총 조세지출의 단지 0.22프로만이 지방정부에 직접 하달될 정도로 엉터리이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지방내에서 자체적인 자본의 축적은 전혀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노동한계생산성은 끊임없이 수도권과 차이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맞게 지방에서 독자적인 자본의 축적이 일어나게 하려면 '경상도인의 것은 경상도인의 손에' 라는 구호를 가지고서는 경상도의 인서울귀족자본가 혹은 인서울꽌시소유의 설비들이라도 국유화해서는 경상계 자본가가 단독 혹은 컨소시엄으로 복수소유를 통해서 그 것은 재소유하는 과정은 필연이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후세대새끼덜은 경제발전에 대해서 인서울정권에 보은하여야 한다는 노예제적인 보은의식에 의해서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라는 그따구 명제에서 더 이상 사고하기를 원치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상계는 신라계이고, 전라계는 백제계이기도 하거니와 민족이 같다고해서 국가가 여러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되려 예나 지금이나 신라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소백산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실질적으로 국가를 나뉠 지정학적 경계는 뚜렸하다는 것이다.
뭐 어쨌던 현재로써는 상교동계 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정권만이 지방에 대해서 최소한의 symphathy라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에 반해서 적폐집단이라는 진영은 상교동계로 결집되던 경상인들과의 접점도 이제 존재치 않게 되었으며, 그들은 응당 강남이 잘 되면 경상도도 잘 될 것이다. 그따구로나 생각하는 서인독재시절의 고압적, 귀족적 정치집단이라는 서울기득권 본연의 태세로 이미 전환한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뭐 지방놈덜 지랄지랄카면 교육부 예산으로 체육관이나 하나 지어주면 그만 지랄하겠지 그런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인 대답은 이러하다. 그들은 본래 남하한 짱개들과 그 짱개들에 야합하려 했던 지방놈들이나 잡놈들을 포함한 것들의 합집합이자 적분이고, 그에 반해서 혈통의 문제야 어찌되었던 간에 지방에 살게 되면 지방놈이야. 경상계는 경상도놈이고, 전라계는 전라도놈이다.
이순신 집안도 낙향하게 되니까 삽시간에 충청도놈이 되었다가 또 전라좌수영에 부임한 그 이후에는 후예들은 전라도놈이 되었는데, 전라놈들이 된 이후에는 별반 특출난 놈이 없어졌다고 칸다.
이미 지방놈이 되었으면 4촌이나 6촌이나 하다못해 8촌이라도 서울놈들이 있을 때에나 조금 거들먹거릴만하지 촌수는 대가 이어질 수록 결국 멀어지는 것이니 3대쯤만 지나면 천하의 파평 윤씨, 남양 홍씨도 떨어지고 나면 지방년놈이라는 것이다.
뭐 본좌의 경우에는 내 친할매라는 년이 난리 때에 내려왔던 년이지 뭐였는지 모르지만 결혼생활 와중에 별 볼일 없는 지방놈의 마눌로 뒤지기는 싫었던가 내팽개치고 서울로 갔다고 칸다.
뭐 비단 법조계쯤 되어야 지방으로 가는 것은 좌천이다라고 그 지랄이 아니라 별반 볼 일 없는 천출이나 다름 없는 것들도 그 지랄이었음을 어려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것이 바로 나다. 그러니 서울 것들의 티를 내지는 않지만 지방에 대한 천시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 여자도 뭐 재혼해서 배 다른 자녀도 있었다고 애비로부터 들었다는 것 같은데, 도통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서울에서 키우는 자녀들이 더 잘 될 것이라고 봤으니 그 지랄을 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ㅋㅋㅋㅋㅋㅋ 물론 인서울 한량새끼덜과 시전새끼덜의 기득권이 투사되는 서비스업이 대구조조정을 맞으면 상황은 틀려지겠지만. ㅋㅋㅋㅋㅋㅋ
뭐 SSG나 쿠팡이나 땡기면 되는 것이니 이미 이 것은 조정될 것이고, 결국에는 제조업필드의 주인됨의 문제만이 남게되겠지. 대구 이런 것은 이미 답이 없거던. 대구출신의 대부르주아가 나오지라도 않으면 답 없지. 그러나 대구의 좃만한 부르주아는 끽해야 정씨가문에 복속되어야 한다 이따구 공식이 있는데, 적폐식 서울권력과 함께 이 공식이 타파가능할까? 뭐 서울새끼덜이 좋아하는 외국인자본이나 얼라이언스로 끌어들이면 대구의 모든 돈을 다 한놈한테 끌어모아서 원기옥을 맹글어도 인서울 정씨가문 프리저 새끼의 뺨때기에 다섯바늘짜리 기스도 못 낸다 이기다.
경상독립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경순왕과 견훤은 왕건한테 슈킹당한 것이 맞고. 그 슈킹한 놈은 짱궤의 후예다. 그게 인서울 새끼덜 엘리트적폐문돌이새끼들이 차마 못 말하는 터부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