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적인 분류와 이에 따른 민족 자치 구역 설정 등으로 확인된 분포지역으로는 러시아[5]와 중국 내 여러 민족 자치 구역에 살고있으며 주 거주 지역은 연해주, 아무르 강 유역, 사할린 동북부에도 살며, 쿠릴 열도에도 극소수의 퉁구스족들이 산다고 한다. 과거에는 만주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청나라 이후 한족의 이주로 퉁구스족 인구는 소수로 전락했으나, 만주족 자치 행정 구역이 아직 일부 남아있다.이들의 기마 유목 문화는 오르도스 고원에 진출했던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에게 영향을 받았다.[6] 다만 이들은 퉁구스계 민족들 중 완전한 기마 유목민은 드물었고 대개 삼림 지대에서 반농반렵 경제를 유지했다.만주족, 어웡키족, 나나이족, 오르촌족등이 만주 지역에 거주하며, 민족 자치 행정 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소수민족 자치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청나라 때 만주족에 동화된 시버족들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일리 카자흐 자치주[7]에 거주한다. 그 외에 일본 홋카이도의 윌타인(오로크족), 오로치인들도 거주하며 몽골 동쪽에도 에벤키족들이 살고 있다.
여기서 오로치인들을 통해서 고대에는 고구려계가 일본인들의 상전노릇을 했다는 지점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러한 봉건영주들 세력들에게 복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통칭 중세JAP랜드라고 부르는 적폐가 아직도 남아있단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적폐들의 씨족들은 그들이 족보를 어떻게 위조했던지 간에 실상은
모두 일본인 입장에서는 외세에서 기인하는 지배집단에 여느 보통일본인들을 복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옥저=오로치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알다시피 옥저는 고구려의 속방의 형태로 된 나라이면 ethnic 그룹으로서는 고구려와 같은 민족인 퉁구스카들이다.
애초에 바다로 진출하는 성향이 강했던 함경도의 퉁구스인들을 옥저라고 불리었을 특이점이 있다. 반면에 동예라고 불리던 세력들은 바다로 진출하지 않는 내륙세력이었고, 한민족에 밀려서 동예는 북방으로 밀려났다.
본디는 한반도에 있던 동예가 위의 1444년경에는 한인들에게 치여서 완전히 북쪽으로 밀려났다. 그 것이 바로 Yeren이다. 여기서 사람을 뜻하는 ren을 빼고 나면 예가 된다. 바로 예맥이라고 할 때의 예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예맥은 오늘날 고구려가 한민족의 종족사인줄 착각하는 자들이 엉터리로 이해를 했지만 실상은 그 것은 원대 이후에 성립된 Mongol-Jurchen 지배계급의 성립으로써 원조의 쿠빌라이칸 이후에나 중국을 지배하던 북방계 지배계급들이 그들의 조상을 반은 맥(=Mongol), 반은 예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쿠빌라이칸이라는 놈은 금나라의 지식인들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서 원왕조를 개창하였고, 그렇게해서 성립된 대도 연경에서 금나라계 여진족들과 몽골인들이 나란히 신사층을 이루었다.
그러한 북경의 지배계급들 내에서 Molgolian 과 Yeren이 합친 것이 이제 이 도시의 기득권이다라는 뜻으로 예맥이라는 것이 인지되기 시작했던 것이 그것과 별반 상관없는 한반도의 친원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데 위 그림에서 예나 건주여진은 한민족들에게 조금씩 밀리다 보니까 저렇게 동시베리아쪽으로 밀려났지만 고구려가 존재하던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반도안에서 거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원산만을 통해서 일본열도로 진출해간 옥저계 퉁구스카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본놈들은 오로치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로치=>오우치가 나온 것으로 보이며, 오우치 씨족이 고대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실상 일본의 봉건제 핵심가문들은 모두 고구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정작 오우치는 백제 왕조의 후손을 자처하는 집단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간 백제도 부여씨이고, 고구려도 부여씨다 그러므로 백제와 고구려는 한민족이다라는 세뇌가 한반도에서 많이 일어났지만 정작 한성백제는 암사동 움막집시절부터 독자적으로 일어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딱히 한성백제의 출계집단이 되었다고 볼 증거는 많이 희박하다.
되려 백제가 가지는 문명사회로써의 소유의 발달에 의해서 신석기 동굴인으로써는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는 있는 퉁구스인들이 배척되었을 것이다.
그외에도 동명성왕 설화와 비류, 온조라는 것은 정작 백제를 기록했던 남조역사에는 등장하지도 않고, 선비계 오랑캐들의 역사에 정작 등장하지만 그게 진짜 인지도 의심스럽다. 요컨데, 동명성왕 설화는 선비족적인 mythism이 반영된 선비족이 엉터리로 짜집기해서는 그들식으로 그린 고구려와 백제내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송, 제, 양, 진의 남조 4국에서 마한전이 고대로 백제전으로 옮겨갔다. 즉, 남조의 한족들은 백제를 마한의 후속국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즉, 비류와 온조라는 것은 한제국의 멸망 이후에 중국에 난입했던 오랑캐들이 존나게 미개한 관점으로 그들의 근원설화를 고구려와 백제사에 대입해서 분량으로 조진 엉성한 위서에서 나오는 낭설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한수유역에서 고구려계와 백제계는 그닥 교잡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일본열도로 가보면 어쩌면 오로치계 고구려계집단과 백제계 이주집단은 일본열도의 봉건제의 상류층을 형성하면서 그들끼리 통혼하지 않았냐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오우치 씨들은 백제계의 후손으로 물타기 되지만 정작 작명센스상으로는 그들은 퉁구스카라도 간주된다.
즉, 고대에 열도에 난입한 백제계와 고구려계가 통혼해서 중세잽랜드의 영주세력의 리니지를 형성하였는데, 그 와중에 표방된 리니지는 백제의 후예라는 것이 표방되었지만 정작 이름으로부터 그들은 옥저계 퉁구스인일 것이라는 확증을 주게 된다.
그러한 이민족 지배계급에 일본 열도의 commoner, 다수층들은 이민족 지배계급으로부터 기인하는 출계집단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열도 토박이들은 복속하는 기성권력구조에 아직까지도 순응적인 것이다. 그 것을 중세잽랜드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