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CR8AVxOq94c
이 동영상이나 보자. 옛날같았으면 뭐 그냥 우연의 일치다. 이 뭐 개소리냐고 개무시되었겠지. 특히 학자들로부터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백문이 불여일견, 이건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있다는거야.
뭐 동영상은 무조건 보라고. 그게 아니면 대화가 잘 안 될테니까.
본좌는 비록 아마추어지만 타밀어와 한국어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냐 따위와 같은 완전히 이단적인 부분같은 것을 파고들 수 있단거다. ㅋㅋㅋㅋㅋㅋ
그 점이 학계의 격식에 묶이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지. 나같은 말을 학계에서 꼰대들한테 했다가는 좃같이 까였겠지.
증거 운지 이 지랄카는 놈들 말이다. 증거가 어딧어 씨발.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자 이제부터 존나게 지루한 시간이다. 지리개념이 없으면 존나 짜증이 날꺼다.
현시창에서 타밀어는 위의 지역에서 쓰인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허황후하고는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지.
자 대략 두가지 맥락을 짚겠다고.
한가지는 버마인들과 타밀인들의 어휘교환이고, 한가지는 불교의 전래지.
본인의 중국문명 버마기원설에 의하면 중국문명내에서 특히 진한제국과 오초월은 모두 윈난성에서 버마인들과 교역하던 중국계들이 스촨성과 장강과 감숙성 및 산시성으로 퍼져서 성립한 것이고, 허난성과 허베이의 하은주 고대문명설은 선비족 지배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중세적인 후대의 판도가 고대에 투사된 것이다.
초한지에서 항우와 유방이 싸울 때만 해도 서쪽의 제후들은 판세에 전혀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아가서 삼국지 위서론까지 제기하게 되지.
왜? 삼국지 게임을 해보면 한대에 중원의 경제력이 존나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원의 경제력이 그렇게 된 것은 최소한 수양제(604~618년)의 운하프로젝트까지 간 뒤에나 강남의 산물을 허난성의 카이펑이나 정저우 지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실상 3세기 이후에나 중국에 침략한 선비-투르크계들의 거주구인 카이펑 일대에 식량난을 해결했다고.
수가 강을 열고, 당송이 이익을 받았다 그런 말이 있었다고칸다.
그러나 정작 초장왕의 이민집단이 스촨성에서 넘어올 때에 스촨성 절벽 위에 목관을 놓고는 하였는데, 그러한 무덤양식으로 대표되는 이주집단이 서쪽에서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그들은 버마와 나아가서 인도양을 통해서 건너온 철기문명및 버마의 청동기 문명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는거지.
한가지는 한국불교 종단으로부터 드러나는 한국계의 북방계 침략집단에 대한 굴종의 역사론이라는 오늘날의 평양이나 서울의 토박이들은 좀 싫어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불교는 애초에 태국의 비구승계의 상좌부불교로부터 기인하는 종단이었지만 고려조로부터 정작 중국계 대승불교 종단으로 대체되었다.
그러함과 동시에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북방계들이 계속해서 남하해온 지점들을 복원해가면서 상황을 봐야한다는거지.
오늘날의 베트남인들은 명백하게 수나라와 당나라에 의해서 장강과 주강일대에서 축출되었으며, 그러한 연원으로부터 오늘날 베트남이 존재하는 인도차이나 반도에만 부다의 설법으로부터 기인하는 온당한 불교 종파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땡중들은 매우 싫어하겠지만 한국의 조계종이라는 것의 대승불교라는 것은 중국의 선비족계 지배집단이 불교를 모사해서 흉내낸 실제의 부다의 말이나 그의 제자들의 말이나 기술과는 하등 무관한 위경으로부터 기인하는 체계이다.
대승이라는 것이 존나 거창해보이지만 실상은 선비족계 권문세족들의 그들만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지. 그러한 자들이 또한 선비라고도 불린 사족이라는 놈들이 되었고, 한중일 중에서 한국과 중국에서는 바로 이 사라는 존재가 무려 천년을 민중들을 속이면서 다스려왔다.
일본에도 사라는 존재는 있지만 그 것은 사대부나 신사층이 아닌 사무라이를 지칭하는 전혀 다른 뜻이고.
객관적으로보면 선비-돌궐계들에게 장악되었던 나라들에게서만 신사계급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지.
그 신사계급의 혈연으로써의 후예들이면서 현대적인 엘리트집단을 차저하기 원하는 자들이 오늘날의 자한당계 적폐들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신사계급들의 정권창출을 위한 도당을 바로 서인이라고 했는데, 서인들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었고, 우봉 이씨나 반남 박씨들은 친일파로 한 몫 잡았지.
바로 그 서인의 세도가문의 부류에 민씨, 윤씨, 홍씨등이 있었던 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학 TO는 갸들이 꽉 잡고 있었잖아. 경복고 나오면 3분의 2가 서울대 간다던 시절 말이다. 그 시절에 출신성분이 좋아서 서울대 날로 간 주제에 엘리트인 척 하는 놈들 지금 늙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상당수지. 지금에야 뭐 농어촌전형도 맹글어주고, 뭐 그렇게 바꼈지만 말이다.
뭐 하여간 이 기사나 보라고. 애초에 신라나 백제의 한국불교의 진짜 근본은 오늘날의 태국 비구승가에 있었다고. 당시에는 캄보디아계들이 타이계들보다 더 대세였으므로 캄보디아계의 부남왕조라는 것이 기원후 1세기에 이미 등장해있었고.
태국 불교는 계율 불교라고도 한다. 계율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요. 화랑이지 뭐냐고.
그렇다면 화랑이라는 것은 태국식 계율 불교 종단에서 만든 어쩌면 태국s://www.youtube.com/watch?v=CR8AVxOq94c
이 동영상이나 보자. 옛날같았으면 뭐 그냥 우연의 일치다. 이 뭐 개소리냐고 개무시되었겠지. 특히 학자들로부터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백문이 불여일견, 이건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있다는거야.
뭐 동영상은 무조건 보라고. 그게 아니면 대화가 잘 안 될테니까.
본좌는 비록 아마추어지만 타밀어와 한국어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냐 따위와 같은 완전히 이단적인 부분같은 것을 파고들 수 있단거다. ㅋㅋㅋㅋㅋㅋ
그 점이 학계의 격식에 묶이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지. 나같은 말을 학계에서 꼰대들한테 했다가는 좃같이 까였겠지.
증거 운지 이 지랄카는 놈들 말이다. 증거가 어딧어 씨발.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자 이제부터 존나게 지루한 시간이다. 지리개념이 없으면 존나 짜증이 날꺼다.

현시창에서 타밀어는 위의 지역에서 쓰인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허황후하고는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지.
자 대략 두가지 맥락을 짚겠다고.
한가지는 버마인들과 타밀인들의 어휘교환이고, 한가지는 불교의 전래지.
본인의 중국문명 버마기원설에 의하면 중국문명내에서 특히 진한제국과 오초월은 모두 윈난성에서 버마인들과 교역하던 중국계들이 스촨성과 장강과 감숙성 및 산시성으로 퍼져서 성립한 것이고, 허난성과 허베이의 하은주 고대문명설은 선비족 지배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중세적인 후대의 판도가 고대에 투사된 것이다.
초한지에서 항우와 유방이 싸울 때만 해도 서쪽의 제후들은 판세에 전혀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아가서 삼국지 위서론까지 제기하게 되지.
왜? 삼국지 게임을 해보면 한대에 중원의 경제력이 존나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원의 경제력이 그렇게 된 것은 최소한 수양제(604~618년)의 운하프로젝트까지 간 뒤에나 강남의 산물을 허난성의 카이펑이나 정저우 지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실상 3세기 이후에나 중국에 침략한 선비-투르크계들의 거주구인 카이펑 일대에 식량난을 해결했다고.
수가 강을 열고, 당송이 이익을 받았다 그런 말이 있었다고칸다.
그러나 정작 초장왕의 이민집단이 스촨성에서 넘어올 때에 스촨성 절벽 위에 목관을 놓고는 하였는데, 그러한 무덤양식으로 대표되는 이주집단이 서쪽에서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그들은 버마와 나아가서 인도양을 통해서 건너온 철기문명및 버마의 청동기 문명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는거지.
한가지는 한국불교 종단으로부터 드러나는 한국계의 북방계 침략집단에 대한 굴종의 역사론이라는 오늘날의 평양이나 서울의 토박이들은 좀 싫어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불교는 애초에 태국의 비구승계의 상좌부불교로부터 기인하는 종단이었지만 고려조로부터 정작 중국계 대승불교 종단으로 대체되었다.
그러함과 동시에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북방계들이 계속해서 남하해온 지점들을 복원해가면서 상황을 봐야한다는거지.
오늘날의 베트남인들은 명백하게 수나라와 당나라에 의해서 장강과 주강일대에서 축출되었으며, 그러한 연원으로부터 오늘날 베트남이 존재하는 인도차이나 반도에만 부다의 설법으로부터 기인하는 온당한 불교 종파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땡중들은 매우 싫어하겠지만 한국의 조계종이라는 것의 대승불교라는 것은 중국의 선비족계 지배집단이 불교를 모사해서 흉내낸 실제의 부다의 말이나 그의 제자들의 말이나 기술과는 하등 무관한 위경으로부터 기인하는 체계이다.
대승이라는 것이 존나 거창해보이지만 실상은 선비족계 권문세족들의 그들만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지. 그러한 자들이 또한 선비라고도 불린 사족이라는 놈들이 되었고, 한중일 중에서 한국과 중국에서는 바로 이 사라는 존재가 무려 천년을 민중들을 속이면서 다스려왔다.
일본에도 사라는 존재는 있지만 그 것은 사대부나 신사층이 아닌 사무라이를 지칭하는 전혀 다른 뜻이고.
객관적으로보면 선비-돌궐계들에게 장악되었던 나라들에게서만 신사계급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지.
그 신사계급의 혈연으로써의 후예들이면서 현대적인 엘리트집단을 차저하기 원하는 자들이 오늘날의 자한당계 적폐들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신사계급들의 정권창출을 위한 도당을 바로 서인이라고 했는데, 서인들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었고, 우봉 이씨나 반남 박씨들은 친일파로 한 몫 잡았지.
바로 그 서인의 세도가문의 부류에 민씨, 윤씨, 홍씨등이 있었던 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학 TO는 갸들이 꽉 잡고 있었잖아. 경복고 나오면 3분의 2가 서울대 간다던 시절 말이다. 그 시절에 출신성분이 좋아서 서울대 날로 간 주제에 엘리트인 척 하는 놈들 지금 늙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상당수지. 지금에야 뭐 농어촌전형도 맹글어주고, 뭐 그렇게 바꼈지만 말이다.
뭐 하여간 이 기사나 보라고. 애초에 신라나 백제의 한국불교의 진짜 근본은 오늘날의 태국 비구승가에 있었다고. 당시에는 캄보디아계들이 타이계들보다 더 대세였으므로 캄보디아계의 부남왕조라는 것이 기원후 1세기에 이미 등장해있었고.
태국 불교는 계율 불교라고도 한다. 계율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요. 화랑이지 뭐냐고.
그렇다면 화랑이라는 것은 태국식 계율 불교 종단에서 만들었고, 태국의 낙무아이가 화랑의 원형임을 알 수 있다.
그 것을 백제에서는 싸울아비라고 하였고, 사무라이라는 말의 원조라고 하였다지만 실상 신라에서는 행랑채에 거숙하는 식객이라는 뜻의 낭도라고 불리었으며, 낭인이라고도 하였는데, 낭인이 사무라이가 된 것으로도 뭐 어차피 이거나 저거나 힘 좀 꽤나 쓰는 식객이라는 의미에서 통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낭인이 기사도와 같은 계율을 바탕으로 모인 수련하는 종자들의 복수형이 낭도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고려조의 대승불교는 무엇인가? 정작 후백제와 신라로 대표되는 한민족들을 정복한 중국계 집단들의 불교 종파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짝퉁 불교 시키덜이 엉터리로 삼국 유사따위를 썼거나 고대의 고승들의 이야기를 곡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애초에 원효라는 놈이 대승기신론소라고 하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이는 책을 써서는 그가 믿었던 것을 하루아침에 배신했다는 이야기 따위는 모두 거짓으로 보인다.
원효가 화엄종을 창시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화엄종장이라는 것은 한국의 진짜 불교종단의 남아있는 잔당들을 의미할 뿐이다.
즉, 본래의 원효의 종파는 비구승가이며 그러하면서 범어사 따위를 창건하면서 산문의 화엄종장들로부터는 화랑이나 낭도들을 육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은 중세이후에나 한반도에 들어온 사이비라는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면 타밀어로 된 경전체계나 적어도 그 것에 영향받은 종단이 한국의 오리지날 불교종단이 아니었나 적어도 가설은 만들어 볼 수 있다.
그 것이 아마도 허황후가 가져온 불교였을테지만 그러한 불교종단은 특히 부산에 많아던 것으로 보여진다. 김해 김씨의 김유신으로 대표되는 세력 역시도 김해와 부산의 원효의 비구승가계 사찰들이 많이 들어선 시기에 또한 존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