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실상 고구려계도 아닌 것들이 국가중심주의 교육을 받아서는 정작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고구려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본인은 제주계의 부계를 가졌지만 왜 너희들 신라계나 백제계가 태반이겠지. 국가주의라는 관점을 버리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통찰로는 아차산성에 고구려성이 들어선 적이 있었고, 분명히 고대의 어느 시기에 고구려계 거주구들이 경기도에 들어섰다고 보여진다.
게중에서 연개소문의 일본식 이름인 윤이가순미와 같은 윤씨를 쓰는 파주의 파평 윤씨는 고구려계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그와 동시에 경기북부의 파주나 궁예의 후고구려가 있던 철원일대에는 고구려계 이주집단으로 기인하는 거주구가 존재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것조차도 1950년대까지의 일이고, 정작 같은 고구려계끼리인 인서울 북촌의 한량과 양아치인 우익깡패들과 평양계 고구려계 계파인 북한군에 치여서 경기북부의 그들은 정작 학살당하고, 해산된 뒤에 디아스포라까지 당하였다.
오늘날 철원일대의 농부들은 상당수가 나라의 이주정책에 의해서 이주해간 경상도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할 작자들은 지덜끼리 총질해서는 서로 싸움해서 뒤지고, 정작 해방이후 공간사 내에서 고구려계 마을들은 경상계 이주집단에 의한 동란이후 공간사내에서 신거주구로 거듭났다.
그 고구려인들끼리 총질하는 것이 보도연맹이나 노근리에서의 학살로 묘사될 수 있는데, 정작 기호지방의 고려계들은 1170년대의 무신정변 때에도 기울어진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들간의 계급투쟁이 발생하였다.
그 이후에 발생한 신진사대부라는 계급들은 물론 그들의 고려계 성분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쿠빌라이 칸의 다문화 제국지배정책에 카운터파트가 되어서 출세한 친원파 엘리트들이었다.
그러한 친원계 관료계급의 성격이 강했던 신진사대부들을 훈구라고 할 수 있었는데, 실력만 있으면 외국인도 등용해주던 원나라의 관용정책을 따라서 그들은 적어도 조선 전기에는 비교적 열린 집단이었다.
그에 반해서 고려족 지식인인 정몽주와 길재의 후학임만을 강조하는 사림이라는 것들은 인종차별 쩌는 선민적인 배타적 지배집단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훈구에서 사림으로 정권이 넘어감에 따라서 한국사회는 더욱더 폐쇄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림들은 능력치도 무능해서 여진에 대한 종주권을 통째로 상실하는가 하면 왜로부터도 공격을 초래하였다.
그러던 그들이 세도정치로 또한 말아먹었고, 그렇게 말아먹었던 종자들은 또한 고종 대에도 정권을 창출하여서는 나라를 팔아넘기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 것이 조선조 중기이후에 고려로부터의 선민주의를 주창하던 것들의 처절한 말아먹음이었고, 그러한 선민주의를 가진 자들의 도성으로써 서울이나 개성, 평양의 의미 또한 퇴색하면서 그들 폐쇄적 집단을 경족 혹은 경화사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여간 한반도에서 봉건제가 사라진 계기가 된 동란 당시에 혈통상 고구려 혈통을 자랑할 수 있는 종자들은 지덜끼리 치고 받다가 거진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고려족들의 stronghold였던 개성일대는 한국전쟁 당시에 가장 극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전투사후에도 사상범 색출을 빙자한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양측의 학살로 완전히 씹창이 난 곳이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관점을 가지고 인서울 엘리트집단이 뭐라고 하건 말건 실질적으로 경기북부의 거주구의 인간들을 한국전쟁 이후에 다수가 삼남계로 대체되었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의 산업화와 다수의 전라계의 상경까지 일어났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구려 역사가 한국사라는 관점은 국가주의에 의해서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정작 실제로는 고구려계 혈족들과는 그닥 별반 혈연을 가지지 않은 백제계나 신라계나 탐라계들에게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조선조에는 실제로 고구려계의 혈연집단을 자처할 수 있었던 자들의 경족으로써 행사하면서 그들의 배타성을 자랑하는 개념으로 실상은 고구려 또한 한국계라는 관점이 인서울 엘리트들에게서 팽배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집단은 오늘도 남아있는데 바로 파평 윤씨이다.
尹元衡 윤원형과 문정왕후 윤씨와 고구려놈인 연개소문의 이두식 표기인 伊梨柯須彌 단지 부 두개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당파 싸움으로써만 조선사를 그리는 다테마에(겉햝기)와는 다르게 실지로는 사림의 시대가 열린 중종 반정의 진정한 권력자들은 파평 윤씨였던 것이다.
즉, 윤씨 천하가 된 중종 대에 정작 고려조의 두 학자로부터 기인하는 학파들만이 등용되는 고려놈들의 '우리끼리' 가 성립하자 너도나도 그 이후에는 사림을 표방한 것이다.
윤씨들은 아마도 광개토대까지 내려가는 고구려계의 이주민들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실상 사색당파가 아니라 그들의 혈연이 중종 때부터 강조된 것이다.
그러한 혼내는 실상 윤씨 정권이고, 다테마에만 조광조가 사림이라는 당파를 대변하는 것 마냥하는 얼굴마담이었던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윤짜장이나 윤형원이나 윤임, 문정왕후 이런 새끼덜만이 그들은 고구려의 직계라는 선민사상을 가질 수 있는 자들이고, 그러한 그들로부터 기인하는 세도정치의 불평등한 사회는 실상 그러한 자들의 기득권을 고구려를 이방인화 시키지는 않고, 단지 혈연정도만 인지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서울사회내에서 윤씨덜이 가지는 기득권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지점에서 그들 기득권 혈족들의 낭만주의이자 선민사상이 공식 역사화 한 것인 승자의 역사의 관점이 끽해야 고구려도 한민족이다라고 하는 별반 맞지도 프레임인 것이다.
물론 고구려인들 중에서 후손들이 한민족이 된 자들도 상당하겠지만 그렇게 한민족과 고구려가 정렬되는 역사냐는 관점은 타파될 필요가 있다고 간주될 뿐이다.
그리고, 고구려사를 현대에는 중국놈들이 땡겨올려고 하는 것 같은데, 뭐 조까라고 문돌이 새끼덜 국가에서 나오는 연구비 타내려는 것이지 그 것이 한국인과 중국인의 자존심 싸움이 된다는 식으로 개소리 하는 새끼덜도 그냥 저지능인 멍청이 새끼덜일 뿐이고, 고구려 역사를 근거로 오늘날의 국제법상 영유권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좃도 아닌 것인데, 그냥 개지랄하는 포퓰리즘으로 선동하려는 무리새끼덜이나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가 범람하는 이 판에서 그따위 정보 뭐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이고, 물론 성격이 개지랄같은 본좌는 슬쩍 염장을 지르면서 어그로를 끄는 아주 더러운 놈이라서 놀려먹는 거다 ㅋㄷㅋㄷ 바보들 놀리면 재밌잖아. 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가 닥치고 우리 역사라고 하는게 자신의 부심이라는 병신들을 보면 아주 재미져서 그냥 더 농락하고 싶다. ㅋㄷㅋㄷ 뭐 열받냐? 그럼 인터넷 끊던가. 인생에 도움도 안 되는거. ㅋㅋㅋㅋㅋㅋ
물론 그 까의 와중에 지식이랄 것이 발생해버리는 어처구니 없음도 맛보고 있지만 말이다. 솔직히 그딴 병신같은 것에 왜 내 뇌용량을 할당해야 하냐고. 돈도 안 되는 것 말이다.
뭐 윤짜장 새끼, 고구려 오랑캐 새끼네. 뭐 그런거지. 뭐 인종차별이라고? 되려 신라계나 백제계의 지방민이 오늘날 기울어진 판에서 역차별 받는 것인데, 왜 그들을 욕 못하냐고? 고구려라는 놈들 그냥 소싯적에 신라와 백제를 침략한 오랑캐 놈들일 뿐이고, 그 반사효과로 아직도 고구려계 혈족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라는게 꼴랑 서울의 기득권이라고 말할거야?
아니지 끽해야 그들은 정치나 법조계에서나 조금 득세할 뿐이고, 오늘날 대중 중심의 국민경제내에서는 차라리 전라계 이주민들이 서울의 경제내에서 더 많은 지분을 가지지 않겠어?
경성제국대 출신의 고압적인 엘리트집단이 잘 나가는 시대랄 것은 지금은 끝물일 뿐이지.
그러한 친일파 집단이 고구려 낭만주의를 정작 만주사변을 일으키던 1930년대에 조선일보에 이유립의 환단고기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라는 것을 개제하면서 불러일으킨 포퓰리즘이 실제로는 현대적인 역사론에 의한 고구려 빠의 원조일 뿐이다.
그런데, 정작 이유립의 연구와 기재는 죄다 위서이고 허위, 날조인 것이 낱낱히 밝혀 졌고, 신채호의 연구로 위장한 것 역시도 의심스러운 것이 정작 신채호는 1929년부터 여순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신채호의 몇몇 연구로 위장된 것들은 실제로는 감옥에서 고문으로 일본놈들의 연구를 그의 이름을 쓰도록 강제한 가능성을 무시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 민주화된 1987년 이전에 살아있던 본인의 기억으로는 그 이전 시대의 인문적인 소산이라고 하는 것들은 죄다 프로파간다 조직인 사상계들이 퍼뜨리는 그렇고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한 친일파 엘리트들이 서슬퍼렇던 그렇고 그런 시대에 냉전 논거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제어하던 엘리트새끼덜로부터 현대적 역사기법을 표방한 한국사학계에서 고구려도 한국사라는 관점이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꼴랑 관성적으로 그 논거를 받아들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별반 의심없이 그 것을 수용한 레밍새끼덜한테 일일이 이건 그냥 좃도 아닌 건데, 1930년대에 친일파들이 끽해야 만든 프레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저지능인 멍청이가 중국짱개 이 지랄이나 하는 것 따위 그냥 조까라 그래.
고구려가 중국역사 되면 중국이 북한 멸망시킨다냐? ㅋㅋㅋㅋㅋ 조까라 그러고.
그 놈의 서슬퍼렇던 시절의 어처구니가 없는 인간에 대한 통제를 말하자면 소싯적에 중삐리나 고삐리가 사귀기라도 하면 퇴학시킨다고 그 지랄이나 하던 아주 창렬하던 시절이다.
제 아무리 명문 인문고 다녀도 그랬다고. 뭐 이유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어찌되었건 그러한 조처가 가지는 실질적인 의미는 너는 이 사회에서 공부할 자격이 없는 성적으로 타락한 놈이니까 너랑 같이 퇴학당한 여친이랑 뭐 그 집 부모가 만나도록 해주지도 않겠지만 너 같은 놈은 이제부터 검정고시나 쳐서 생산직이나 일용직이나 하는 놈이 되어라. 너는 엘리트가 될 자격이 없다. 그렇게 말고는 해석을 못해주겠다.
반면에 대놓고 노예양성소인 공고나 상고 따위(=오늘날의 특성화고)에서는 종종 애 울음 소리가 들려도 뭐 이 새끼 조선소라도 들어갈려면 고졸 졸업장은 있어야지 직업반에 넣어줄테니까 졸업은 해라는 관용을 베풀었다고 칸다.
참고로 나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모 예고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 짓을 하다가 걸렸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여자는 뭐 집안이 빽이 좋았단다.
그래서 남자새끼는 예의 뭐 생산직이나 되어라 이노무 어른들한테 복종할 줄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는 새꺄 이 지랄이어서 퇴학을 당하였고, 보지 대준 년은 그냥 뭐 근신인가 정학처분으로 그친일이 나 고삐리 때에 일어나기도 하였다. 바로 옆학교에서 말이다.
뭐 참고로 그때가 노무현이 대통령되고, 이해찬개혁이 아직 미처 대입에 적용은 안 되던 시대다. 뭐 그래봤자 2004년에 대입제도개선안이 발표된 이전이니까 뭐 내 나이대가 나와버리지만. ㅋㄷㅋㄷ
그러던 시절에 고구려 좆까 우리나라 역사 이 지랄한거야. 뭐 그걸 믿습니까? ㅋㅋㅋㅋㅋㅋ 나는 이제 커서 보니까 그냥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로 생각할 뿐이다. 애초에 국사과목 자체가 국뽕주입이나 카는 엉터리로 기억될 뿐이다.
아니 뭐 임신시켜서 퇴학도 아니고 자지를 거기에 넣었다고 그 것도 걸리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사후에 리포트를 했다고 짤려버려 아주 웃겼다 씨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데, 70년대생 된장녀라는 것들 실상 학교가 죄다 꼰대 만든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공부 잘 하면 남친 생기냐? 공부 잘 하는 것처럼 직장도 학교처럼 꼬박꼬박 댕기게 하려고 세뇌하는거지 뭐. 그래서 돈 많이 벌면 남자가 별안간 와서는 고백하면서 결혼주세요. 연봉 6천씩 매년 조공해드림요 ㅋㄷㅋㄷ 요 지랄캐주냐고? 근데, 어처구니 없게도 그 시대의 여자들은 조금 그러한 수동적인 면이 강했다.
엄친아에 대한 믿음도 존나게 확고해서 아따 한국에서 연봉 4500만 받아도 월급쟁이 상위 10프로입니데임. 누님 눈 좀 낮추소 요 지랄캐도 안 먹는 새끼덜 존나 많았다고. 뭐 씨발 핵교에 가둬놓고 남친도 못 사귀게 하고 섹스도 못 하게 하구서는 공부 잘 하면 니 남친 직업이랑 얼굴이 바뀐다 그 지랄이나 카던 문화란게 뭐 맞을 턱이 있냐.
그러다가 눈만 택도 없이 높아서는 정작 자기는 몸을 팔아도 팔자는 고쳐질꺼야 그 지랄하다가 영구미혼 영구무자식 된 루저들 내 나이보다 조금 연상중에서 존나게 많지. ㅋㄷㅋㄷ
그러한 권위주의의 거짓부름으로써 고구려도 우리역사 요지랄 나는 그렇게 간주할 뿐이고, 니덜이 가진 프레임 죄다 개소리다. 알긋냐?
뭐 국사배점 수능에서 몇 점이고, 뭐 국사는 공무원 시험에도 들어간다고? ㅋㅋㅋㅋㅋ 에라이. 그렇게 허위의식이 강해서야 쓰냐? 나라 행정을 하는데 국사가 왜 필요해?
그래서 한국기성세대는 인간 안 되는 새끼덜이라는 거다.
정작 고구려의 참후예라고 할 수 있었던 것들은 경기북부와 황해도 일대의 것들은 동란당시에 지덜끼리 총질하고, 쌩으로 패죽이고 파 묻고 그 지랄해놓고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