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과 형산강은 분명히 관개를 위해서 이어진 강이다. 그러므로 변한지역의 같은 지역의 동일선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과 경주는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과 경북으로 나뉘어졌다. 분명히 경북의 영천과 경주사이에는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는 자연경계가 있는 반면에 울산의 끝자락과 경주의 끝자락은 사실상 이어져있는 연속성 있는 취락이 된 지역도 있음에도 말이다.
어쩌면 여기에는 소싯적 적폐들의 경주지역에 대한 오랜 규제와 견제의지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경남으로 넣어줘도 되는 경주지역을 경북의 대구가 관할하는 소관으로 넣은 것이다.
오지랖넓은 대구 친구들은 경주에서 대구까지 30분이면 되. 요 지랄이지만 절대 30분 아니다. 미니멈 1시간이다. 그리고 대구와 경주는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대구에서 영천 찍고 경주이다.
어찌되었건 변한은 확실하게 경주와 울산 그리고 포항일 것이다. 그런데, 해당지역은 현대에는 스스로 물을 자급할 수 없는 지역이란 것이다. 동천 지천들의 상류에 있는 보들을 다 헐어도 그게 될지는 감히 장담못한다. 그리고, 울산시민들의 식수는 모두 낙동강에서 대고 있다.
즉 오늘날 해당지역은 대청댐 일대와 더불어서 물부족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지역이다. 따라서 신라조때에 해당 지역의 상황이 더 나았다고 하더라도 지진에 의한 단층변화에 의해서 수량이 줄었다고 한다던가 하는 별도의 논거가 없다면 적어도 오늘날 해당지역의 물부족의 원인은 오버포퓰레이션, 그러니까 과잉인구 그 자체이다.
요컨데, 경주와 울산일대가 그러한 것이다. 과잉인구, 환경파괴, 극단적 님비, 전쟁이 해당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해당지역의 자연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치를 넘어선 인구가 살면서부터 그냥 모두가 쫄딱 망해버렸다.
물론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상류에서 물을 점유하고 있는 오랑캐 지배집단으로 추정되는 세력들도 없었을 것이고, 물들이 부족하지만 비교적 그래도 많아진 인구를 평등하게 부양하는 쪽으로 행정지도가 이루어졌겠지만 그래봤자 형산강과 태화강의 그닥 많지 않은 수량에 모두가 밥숫갈을 올린 것 자체가 문제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안은 어쩌면 모두 버리고 낙동강수계로 이전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수도이전의 건수가 노무현의 교살로 이어진 것마냥 정치적으로는 쉽지 않은 결단인 것이다.
경주 또한 해안가에 닿아 있는 행정구역임을 이해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일에 조선조는 결코 경주지역을 조선이 필요로 하는 조운과 해상교역의 프로세스의 일부지역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그 역할은 바로 오늘날의 부산지역으로 대체되었고, 동래성에는 인서울북촌의 시전상인들이 제어하는 왜와 교역하기 위한 지방하청조직이나 다름없는 래상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한편, 부산포에서는 왜인의 거주구가 허용되었다.
조선조에는 울산과 마산까지는 왜인거주구가 허용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경주는 배제된 것이다.
21세기 오늘날에도 경주 지역은 상권이 싹 망한 지역이다. 철도 노선이 다각화되면서 동해남부선만 있던 시절에 경주가 그간 누리던 기생관광의 허브라던가 그러한 이점들도 모조리 상쇄되었고, 경주역전은 적어도 상당히 망하였다.
그리고 포항제철은 포항인들에게 일자리를 줬을지 모르지만 반대급부로 포항항을 통한 일본과의 교역항으로써의 기능이랄까 따위는 코크스 하역항으로만 역할이 제약된 것이다. 하역과 하치장으로 말이다.
즉, 포항은 경북지역이 전세계와 교역해서 수출과 수입과 유통을 발생시키데 필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이 강요되어서야 겨우 다르게 말하면 러스트벨트가 되기 쉽상인 제철소 하나를 겨우 받아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