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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0 아니겠슴니까 그러므로 10차로 갑시다 우리
게시물ID : gametalk_2999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임
추천 : 5
조회수 : 753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2/26 16:25:54
 벌써 10번 전이다. 내가 막 베테랑을 엔딩본지 얼마 안되어 사령관 철인을 시도할때였다. 엘더를 관광보내고 가는 길에 다음 지구를 위해 시공간 루프를 갈아타기 위해 전 지구를 터트려야 했다. 시공간 저너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지구를 깍는 노인들이 있었다. 지구를 새로 시작하려고 깍아달라고 부탁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안됩니까?" 했더니

"지구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서 깍으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였다. 더 값을 흥정하지 못하고 그저 잘 깍아만 달라고 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깍기만 했다. 처음에는 빨리 깍는 것 같더니 다른 사령관들이 지구를 여럿 터트릴동안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깍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다음 지구 시작이 빠듯해왔다. 갑갑하고 지루하여 이제는 초초할 지경이였다.

"더 깍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주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터질 만큼 터져야 지구가 되지, 재촉한다고 될 지구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시작할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깍는 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만, 다른 사령관 다 출발했다니까요"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 도 없고, 다음 지구는 어차피 틀린 듯 하여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깍아보시오."

"글쎄 제촉하면 더 늦는다니까. 지구란 제대로 만들어야 지, 깍다가 놓치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깍던 것을 숫제 무릎에 놓고 태연스래 담배를 태우지 않는 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지구가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있던 지구다. 

 홀로 남아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지구를 깍아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사령관 본위가 아니라 엘더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우 높게 부른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은하계의 수없이 터진 지구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째 은퇴한 사령관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덜덜 떨리는 손이 어쩐지 외계인을 잡다 지구인을 많이 잡아봤을 모습이였다. 노인에 대한 내 태도도 누그러진 셈이다

 다음 은하에서 지구를 내놨더니 엘더는 이쁘게 깍았다고 야단이다. 전에 터트린 것 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엘더의 설명을 들어보니, 초반이 너무 어려우면 빠르게 터트리고 다음 지구로 가버리고 초반이 너무 쉬우면 나중에 외계인이 기를 펴지 못하고 흥미가 떨어지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게 희망고문하기 좋은 지구는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그 노친네의 음모를 깨달았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바꾸었다. 참으로 개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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