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1888~1970, 한국명 석호필ㆍ사진) 박사님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세균학과 교수 겸 전도사로 처음 이 땅을 밟았다. 그는 3ㆍ1운동(1919년)이 일어나자 교직을 포기하고 이 운동에 적극 협력하면서 일제의 포악상을 세계에 알렸다. 항일운동을 벌이던 마을 주민 23명이 무참히 희생당한 ‘제암리 학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던 스코필드 박사의 덕이 컸다. 기사원문↓(2006/04/09 18:26)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604/e2006040918262748200.htm 요즘 프리즌뷁에 스코필드를 석호필로 부르는게 센스있다고 생각했는데 원조가 있으시군요.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하시고..흠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묘지에 묻히신 외국인이시라네요 호오
첫글^^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