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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직장생활에 대하여 2 (feat. 사내 트러블)
게시물ID : emigration_29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은날되새오
추천 : 8
조회수 : 170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8/04 20:30:18
이어서 뉴질랜드 직장생활 트러블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이전 글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emigration&no=2992&s_no=2992&page=1

문제의 발단은 마케팅팀과 하는 업무에서부터 였습니다.. 올해 초부터 마케팅팀이 준비하던 웹사이트가 있었는데 디자인이 여러번 퇴짜맞던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피드백을 주고 퇴짜를 놓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작업을 마치고 넘기면 피드백 없이 한참 뒤 (짧으면 2-3주, 길면 2-3개월) 다시 기획안을 가지고 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디자인 할 때마다 2-3개 만든 시안을 수정작업 없이 그대로 휴지통에 넣어야 했죠.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 작업의 연속. 그러다 결국 얼마 전, 마케팅팀 매니저가 출장을 가기 전에 또 다시 기획안을 자신의 후임에게 전달했고 저는 다시 작업을 했습니다. 

기획안이라 해봐야 자신들이 영감을 얻은 웹사이트의 어떤 애니메이션이 좋았는지, 어떤 색상이 좋았는지 뭐 그런 형용사 어구로 범벅 된 페이지에 캡처한 웹사이트 메인페이지 이미지 1개, 화이트보드에 그 레이아웃에 자신들의 컨텐츠를 넣은 스케치 1개로 총 3장의 기획안이 전부였습니다. 그 레이아웃이나 애니메이션대로 디자인했다고 소송에 안 걸리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똑같은 구성에 컨텐츠만 넣었더라고요. 게다가 그 웹사이트는 누가 봐도 회사홍보를 위한 에이전시 웹사이트 같았고 적어도 그런 웹사이트 제작에는 기획-브랜드디자인 개발-패턴 및 디자인 요소 창출-웹사이트 디자인-스토리보드-스토리보드에 따른 애니메이션 제작-애니메이션에 맞춘 소스 개발 및 데이터 구축의 순서로 절대! 디자이너 혼자서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아니었습니다. 

매니저가 후임에게 기획안을 보냈기에 제가 후임에게 이건 내가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회사홈페이지를 구축하는데 사용하고있는 빌더시스템에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넣을 수 있는 개발자를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팀 개발자에게 물어보고 소스를 살펴본 뒤 말했죠. 하지만 후임도 인문계열의 대학을 나와 이제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안 된 아이여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렇다고 매니저도 없는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 때 슈퍼바이저와 상의를 했어야 했는데 슈퍼바이저는 저에게 곧장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특히 사장이나 타 팀 매니저들한테서 오는 일은 터치를 일체 안하기때문에 속으로만 끙끙 앓았습니다. 

디자인을 하기는 해야하는데 혼자서 퀄리티를 올리는데 무리가 있고, 여차저차 흉내를 내보아도 시각적인 임팩트가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차이는 분명했으니까요. 그럭저럭 만든 후 일단 후임에게 시안을 보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이번에도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피드백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마케팅팀 매니저에게 메일을 다이렉트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바빴는데 귀찮았는지 다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더군요. 파티션이 있더라도 다 들리죠, 사무실은 한 공간에 같이 있으니까... 아래 대화를 대충 번역헤서 적어보겠습니다. 

걔 : -OO(제 이름)! 피드백 받고 싶댔지?

나 : 안녕!

걔: 여기 피드백 줄게.
    안녕. (흥분해서 인사도 잊었었나 봄)

나 : 응, 그래.

걔 : 니가 보낸 거 전부 마음에 안들어. 내가 바란 건 제일 먼저 재미있고 흥미로워야 해.

걔: 그런데 니가 보낸 건 전혀,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 모던한 느낌도 없고 프로페셔널한 느낌도 없어. 기존의 것과 절대적으로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게 하나도 보이지 않아.

나 : (여기서 끝이고 다시 작업하라는 말 하려나?) 어, 알겠어. 피드백 고마워.

걔 : (아직 안 끝남) 우선 1번 시안, 왜 컴퓨터를 맥으로 만든 거야? 우리가  대표로 매니징하는 컴퓨터는 맥이 아냐, 이해를 못 하겠어. 
- 회사 리소스를 구매하는 거 하나 없이 직접 만들어야 해서 이번에 무료로 나온 목업을 찾아 다운받아 썼음, 그런데 대부분 목업은 애플 제품을 중심으로 나옴. 

걔 : 그리고 2번 시안, 정말 네 커리어가 우려될 정도로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폰트는 왜 이렇게 못 생겼어? 옆에 붙은 이미지는 따로 놀고, 그냥 색종이 갖다 붙인 거 같아.
- 프로젝트 시작 당시, 자신이 갖고 온 폰트를 활용 했음. 알아보지 못한 듯.

걔 : XX한테 브리핑 줬잖아, 이거 하면서 안 읽어 봤어?
- 이 떄까지 화가 안 나다가 이 부분에서 화가 불끈 나더라고요. 읽었다 하면 읽고서도 이해 못 할 정도로 업무에 도움이 안 되는 영어실력이라는 거고 안 읽었다 이러면 근무태만이잖아요. 어느 쪽의 대답이든 일 못하는 사람이 되는 질문이니까요. 

나 : 읽었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 했나봐. 미안. 
-결국 멍청한 인간이 되기로 선택, 하지만 나중에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 절대 이 상황에 사과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나오는 내부 클라이언트라는 개념으로 왜 이 일이 혼자서 못 하는지, 퀄리티가 상상하는 것과 왜 다른지 사과가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한다고. 

걔 :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내가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네가 내 말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서. 일단 하던 거 멈춰 봐. 다시 기획안 줄게. 

그렇게 대충 마무리가 되었지만 저는 이 악순환이 더 심하게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그 날 밤은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늘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면 저런식으로 메세제를 보내는게 화가 나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 마음에 안들어, 재미없어, 못 생겼어, 뭐 이런식으로 보내는데다가 왜 이렇게 못 했어? (넌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니?) 라던가. 하지만 거기에는 이걸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다 하는 내용은 없었으니 그 다음에 디자인을 하는 것도 늘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대부분 수정이 아닌 재작업이었죠.... 그래서 전 마케팅팀에서 들어오는 일이 제일 힘들고 싫었어요. 방향은 없이 닥달만 하는 느낌인데다 헤매는 저를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러니? 내 말이 어려워? 이런 식으로 덧붙여서 메일을 보내곤 했거든요. 비교해보면 다른 팀이나 외부클라이언트는 시간적 압박이 있어도 재작업이 거의 없을만큼 트러블이 없었고 헤매는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날 고민하다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슈퍼바이저에게 그간의 일을 상세히 상의했습니다. 이 때까지 슈퍼바이저는 내부 클라인터를 상대하지 않고 제가 바로 상대했기 때문에 내용을 몰랐다가 제 이야기를 듣고 놀라더라고요. 제가 이런 건 디자인 스튜디오나 에이전시에서 기획부터 개발까지 맡아서 하는 거라고 이게 우리가 쓰는 빌더시스템에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여서 말했죠.그래도 처음에는 피드백이 없이 새로 기획안만 왔다는 말에 제대로 피드백받으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에 채팅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슈퍼바이저는 이게 무슨 피드백이냐면서, 그냥 화 난 클라이언트가 짜증 부리는 거 아니냐고 놀라더라고요. 여러 외내부 클라이언트를 겪은 슈퍼바이저도 그런 메세지는 거의 없었다면서 화가 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마케팅팀과 미팅을 잡았다고, 난 아무래도 이 일은 안 맡는게 좋겠다 그러니까 그럼 그 미팅 언제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몇 시다 이러니까 나도 그 미팅 가겠다고 전하라고 해서 그 날 오후 마케팅팀 매니저를 불렀죠. 

걔 : (들어오자 마자) 너네 무슨 말 할진 모르겠지만 나는 100% 이게 시간 낭비라고 확신해. 내가 분명 그 프로젝트 멈추자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날 여기에 불러? 이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네도 시간낭비야, 시간 낭비하고 월급받을 거니? 

슈퍼바이저 : 그건 일단 알겠어. 근데 내가 이제까지 너가 OO한테 맡기는 일, 나는 뒤로 빠져있었잖아. 어제 그 보고를 처음 받았고 네가 이런 거, 저런 거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면서?

걔 : 어, 마음에 안들어. 그거 알고 있다면 내가 왜 멈추자고 했는지 알겠네?

슈퍼바이저 : 어, 맘에 안들어서 멈춘 건 이해해. 그런데 그 전에도 네가 일 보내고 피드백 없이 새로 기획안만 넘겼다며? 그리고 어제 보낸 피드백 나도 봤어. 미안하지만 그건 피드백이 아니야. 기획안에서도 뭘 어떻게 하겠다는 방향 없이, 뭐가 좋은 지만 써있으니 디자인에서도 헤매는 거고 피드백에서도 마음에 안 든다고만 했지, 뭘 어떻게 고쳐달라는 말도 없었잖아. 

걔 : 그래서 내가 멈추자고 했잖아, 일단 멈추고 다시 방향 정해서 주겠다고. 

슈퍼바이저 : 그래도 그런 피드백은 아니지, 어차피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새 기획 주겠다는 거 아니야? 게다가 메세지 내용도 그건 그냥 짜증부리는 거랑 다름 없잖아. 방향도 없고, 수정사항도 없이 디자이너한테 마음에 안든다고만 하면 이렇게 반복되는 거 아니야? 

걔 : (잠시 말이 없음/동공지진) 그래서 OO(나를 부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보낸 건 아니라고 했잖아. 그 때 너 okay라고 하지 않았어?

슈퍼바이저 : (말할 틈도 없이) 아니 그럼, 얘가 거기서 뭐라고 해. (슈퍼바이저의 레이저 광선 : 사과해, 사과하라고!)

걔 : (다시 잠시 고민) 모욕적으로 들렸다면 미안해. 하지만 우리 인터널 디자이너는 처음이고, 이제까지 메일이나 메세지로 인도 디자이너들을 다루다보니까 내가 말이 다이렉트하게 나갔나 봐. 그렇게 말 안하면 이해 못하는 줄 알았어. 그런 뜻이 아니었어, OO,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마.
(이해 못 하는 줄..... 과격하게 영어로 전달하지 않으면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게 말했다는....) 

나 : 괜찮아, 그런데 너희 팀 방향이 어떻든 기획안에 적은 사이트 정도의 퀄리티를 원하는 거지? 그러면 이건 여기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디자이너가 아니라 팀이 마음 먹고 몇 달은 매달려야 하는 규모야. 그건 외주로 스튜디오나 에이전시 맡기는 게 맞아. 

걔 : 그래, 알겠어. 이 건은 외주로 넘길게. 

그리고 이렇게 미팅은 끝났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기에 정확한 대화는 아닙니다. 물론 저의 대처가 고구마 같았고, 똑부러진 말 한마디 없었지만 슈퍼바이저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짧게 썼지만 슈퍼바이저는 자신이 일하면서 겪는 클라이언트와 비교하며 마케팅팀의 어떤 대응이 잘 못 되었는지 조목조목 따지며 말했었죠. 또 마케팅팀도 쉽게 사과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는데 좀 놀랐습니다.늘 조용하고 얌전한 슈퍼바이저지만 그 날은 진심 상남자 스퇄. 사과를 할 때까지 1시간 정도의 미팅에서 따지더라고요. 그만큼 말은 안했지만 화가 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고민하다가 결국엔 못 할 일을 못하겠다 말한 것이 저에게는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한국에선 못하는 게 어디있어, 까라면 까는 거지. 라는 말에 익숙해져서 엄청 쫄아있었거든요. 지금도 매니저들이 잘 챙겨주고 친구처럼 농담도 나누고 하지만 여전히 매니저는 제게 공포입니다. 한국에서 직장다니며 받았던 상사의 갈굼을 못 이기고 나왔는데 그게 여전히 트라우마에요. 앞으로는 더 나아지면 좋겠는데 이런 것 때문에 편한 직장이라도 늘 회사생활은 조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회사 생활 전반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갈등상황도 넣어줘야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름 쓴다고 썼는데...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이렇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 오신 분,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 그리고 한국을 포함 세계 각지에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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