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은 1919년 미국에서 통과되어 이듬해부터 발효되기 시작했다. 이 법을 추진한 세력은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었다.
초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곡물의 전용(轉用)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된 금주법이었지만
사회·문화적 움직임에 편승한 운동의 추진력은 이내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1919년 10월 28일 볼스테드 법으로 알려진 전국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이 제정되고 이듬해 발효되면서
미국 내에서 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모든 주가 금주법을 통과시킨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금주법이 발효되었고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술의 합법적 생산이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는 술의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당연히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짜 술을 만드는 움직임이 확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질 술을 마시다가 건강을 잃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물론 모두 서민들이었다.
반면에 금주법을 추진한 사회 지배층은 약간의 돈이 더 드는 불편을 겪었지만 술을 마시는 데는 썩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갱단이 밀주(密酒) 제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알 카포네(1899~1947)라는 전설적인 이름이 두각을 나타낸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편 금주법의 통과와 시행으로 힘을 얻은 보수주의 집단은 이후 이민법을 통과시켜 아시아계 이민의 완전 금지와
유럽인 이민자의 제한 등을 추진했고, 우리에게 백인우월주의자로 알려진 KKK단의 세력 또한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내친 김에 교육까지 관여했으니 1925년 테네시 주 의회는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령을 채택했다.
결국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전역이 혼란에 빠져 들었고 이후 대통령에 출마한 루스벨트는 금주법의 폐지를 공약했다.
그리고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1933년 이 법의 폐지안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