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이 길어질 거 같아서 평어체로 씁니다.
우리 나라의 창작 예술 작품 중 유난히 '한국적인 것'의 잣대가 심한 것은 웹툰, 만화, 애니 그리고 라노벨이다.
저 작품들은 소비자층이 한정적이며, 역사가 짧고 무엇보다 특히 일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
필자는 일본의 서브컬쳐계를 따라한 작품을 싫어한다.
대사, 행동 등에 대한 고찰없이 그냥 무작정 일본 서브컬쳐에서 본 것을 따라하는 작품들을 싫어한다.
예를 들어 학교의 일상을 주로 다루는 작품이 있다 하자.
10대 로맨스물이든, 일진물이든 아니면 중고딩이 주인공인 이능력 배틀물이든
'대한민국'의 학교와 학생이 주인공이 작품이다.
그런데 캐릭터들의 언행을 보자.
'헤에~' '여어' '에또..' '~까나' '랄까' 등, 전형적인 일본어투가 나오기도 하고
사과할 때 손날을 세워 고개를 숙이거나, 도게자를 하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입학 시기인 3월 초에는 벌써 교정의 벚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왜색'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주장이 일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고 있다.
한복, 김치, 불고기, 태극 문양 등등
'한국적인'것을 논할 때, 꼭 끼어드는 소재이다.
여기에서 이 논쟁은 일반 온라인상에 한정하기로 하자
정부, 공무원 등이 '전통적인 캐릭터'를 만들면 필연적으로 재미없는 게 나오기 마련이니까.
'한국적인 것'을 논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는
'일본 서브 컬쳐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의 반대가 '한국적인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느 반공 = 민주주의가 아니 듯,
왜색의 반대가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왜색 반대 =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제는 기껏해야 김치, 한복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 논의에 앞서, 우리나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교해보자
전통문화/ 정서
일본 o o
미국 x o
한국 o x
우선 일본을 보자
일본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참 축복받은 나라이다.
섬나라 특성 상 외세의 침입에서 자유로웠고,
서구화,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본래의 전통 문화를 유지해갈 수 있었다.
게다가 6.25 전쟁의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 후, 자신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일본은 전통문화와 현대의 조화가 상당히 자연스럽다.
신사가 보존되어 있고, 졸업식 같은 날에 기모노를 입고, 전통 축제가 유지되는 등
일상에서 일본의 전통 문화를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배경이 현대이거나, 작가가 새로 설정한 세계여도 자연스레 기모노 등의 일본 문화가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게다가 피규어나 넨드로이드로 기모노를 입은 여캐를 따로 만들어 팔아도 잘 팔리는 편이다.
80년대 경제 호황 때 슬슬 헐리우드 자본을 노리더니 '사무라이' '닌자'는 전세계적으로도 먹히는 소재이기도 하고.
반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역사도 짧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속된 말로 하면 '근본 없는 놈' 정도 되겠다.
원래 원주민이 살던 땅에 영국 청교도들이 들어왔고 그 후에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그러면 미국의 전통 문화는 무엇인가? 원주민 문화? 영국인?
하지만 미국은 자신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60년대 서부 영화에서 나오는 정서들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개척 정신이 대표적이며
무법천지 땅에서는 '육체적인 힘'이 숭상되었고, 이는 서부극에서 총잡이들의 대결(누가 더 총을 빠르고 정확히 쏘나)에서 나타나고
오늘날 히어로물에서도 여전히 잘 드러난다.
게다가 개인의 안전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영웅'이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인종들이 뭉쳤기에 '우리는 하나' 라던가 현대 들어와서는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큰형님 미국' 등이 있다.
물론 시대가 지나면서 이러한 정서를 비틀거나 안티 테제를 형성한 작품들도 나오지만
대다수의 헐리우드 영화에는 '미국적인 정서'가 녹아있다.
강인한 힘을 지녔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도와주는 히어로물,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스타워즈에 녹아있는 개척 정신
세계를 혼돈에 빠뜨리는 테러범을 때려잡으며 주인공이 세계의 질서를 수호할 때 휘날리는 성조기 등
'미국 정서' 하면 아 그거, 하고 알 만큼 미국 작품에는 정서가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전통 문화와 현재 우리와는 사실상 단절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상당부분 훼손되었고,
6.25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전통 문화는 박제되어서 박물관에 보존되었다.
5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차 산업이 중심인 농경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급격히 변하였고,
강압적인 군부 독재 시대를 거쳤고,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잡았다.
그나마 명절 때 입던 한복도 점점 개량 한복으로 바뀌고 있어서
우리가 일상에서 전통 문화를 접하는 건 김치를 빼면 거의 없다.
정서 부분은 어떠한가.
정서적인 측면은 상당히 암울하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위해 '실용적인 것'이 아닌 문화, 여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과거에는 만화와 더불어 장기, 바둑도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금전적인 이익만 중시하는 천민 자본주의,
'물질적 행복'이라는 기준 하나로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 경쟁하는 무한 경쟁주의,
기준과 다른 것을 싫어하여 뭐 하나 유행하면 너도 나도 무조건 따라하는 따라쟁이에
그 기준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치부하는 무한 오지랖쟁이에
아직도 남아있는 반공 +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전체주의 + 상명하복의 권위의식
거기에 요즘 들어 심해지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는 갑질하는 것 등등
다이나믹 코리아답게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부분은 물론 정서적인 부분도 급격히 변했다.
그리고 수면 위에는 한강의 기적이 찬란하게 반짝이지만
한강 밑 바닥에는 몸을 내던진 자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현대인과 전통문화가 단절되어 전통적인 부분을 자연스레 서브컬쳐에 융화하기 힘들다면,
정서적인 부분이라도 다뤄야 할텐데
이러한 정서적인 부분을 잘 살려내는 작품은 안타깝게도 거의 못 봤다.
전통 문화가 현대인의 삶과 유리되었다면
현대인의 정서, 삶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이 그 나라적인 작품이다.
미국 문화에서 '두유 노우 인디언?' '두유 노우 프로테스탄트?' 하지 않아도
그들의 정서를 녹여내고 그들 특유의 문화를 창조해냄으로 '미국적인 것'을 만들어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다이나믹하고 암울한 현대를 관통하는 암울한 정서가 불편해서일까,
정서적인 부분에는 눈을 감은 채 김치와 한복만 줄창 파대고 있다.
정서라는 속알맹이 없이 김치라는 껍데기만 나폴거려봐야
과연 주 소비자인 '한국인'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한국적인' 것이 될까
김치, 한복보다는
'두유 노우 싸이?' '두유 노우 캉놤스타일?''두유 노우 지성 팍?' '두유 노우 유나 킴?'이라 물어보는게
어쩌면 더 '한국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적어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기보단,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중요시 하는' 정서라도 잘 나타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