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 비가(悲歌)
조선 여형사 좌포청 다모 장채옥 (役 하지원)
조선 최고의 무관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 (役 이서진)
백성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화적 장성백 (役 김민준)
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다모(茶母)
연출 : 이재규
극본 : 정형수
방송사 : MBC (총 14부작)
방영 기간 : 2003.07.28 ~ 2003.09.09
- 지난 이야기 -
··· 이어서 ···
결국 하옥되어 의금부로 압송되는 황보윤.
- 나으리, 소녀 반드시 방도를 찾을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굳건히 하시고 몸을 살피십시오.
- 굳이 애쓰지 마라. 부질 없는 짓이다.
너를 이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속절 없는 회한만 드는구나.
내가 있거나 없거나 너의 세상살이가 무엇이 달라지겠냐마는
부디 살길을 도모해 나와 같은 인연을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황보윤을 구명하기 위해
채옥은 윤에게 전하는 마지막 서찰을 남긴 채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을 알현하려 궁궐 담장을 넘는다.
- 나으리를 처음 뵈었을 때가 제 나이 일곱이었습니다...
아비가 죽고 어미와 오라비마저 뿔뿔이 헤어지고서도
슬픔이 무언지 모르는 철없는 나이였습니다...
- 나으리는 그 날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저를 업고 뛰셨지요...
그 날 이후로 나으리는 제 아비였고...
어미였고...
오라비였습니다...
- 지금까지 나으리와 함께 한 세월이
곧 제가 기억하는 생의 전부입니다...
그런 나으리를 잃는다면 제가 어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 나으리...
나으리의 말씀처럼 처음부터 산채로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나으리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차마 그 자를 베지 못한 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죽기보다 괴로운 일입니다...
제 마음을 씻을 길은 이것 밖엔 없는 듯 싶습니다...
- 나으리...
이 년 이리 죽습니다...
부디 제 목숨을 거름 삼아 나으리의 뜻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채옥은 가까스로 임금을 만나
사주전 패거리들이 단순한 화적이 아닌
정예 군사를 가진 역적의 무리라 전하는데 성공하지만
호위병들의 공격으로 몸의 기경팔맥이 모두 끊어지는 치명상을 입는다.
채옥의 희생으로 황보윤은 방면되고
임금으로부터 은밀히 역모를 수사하라는 명을 받지만
죽어가는 채옥을 살리기 위해
윤은 어명도 내버린 채 스승 수월대사를 찾아간다.
채옥이 월담하기 전 남긴 서찰을 확인하는 윤.
- 이리 보낼 수는 없다...
난 아직 가슴에 품은 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어...
- 옥아...
내가 있어 한 순간이나마 숨을 쉰다는 걸 느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말을 듣고 내 가슴이 얼마나 벅차게 뛰었는지 아느냐?
- 개 돼지보다 못한 반쪽 양반 피에
시래기 줄 그리느라 손발이 부르튼 후살이 어머니를 둔
나 또한 무슨 희망이 있어 살았겠느냐?
나도 그랬다...
나도 네가 있어서 한 순간이나마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말을 하지 못한 채 15년이 흘렀구나...
- 옥아... 가지마라...
난 아직도 너에게 해준것이 아무것도 없다...
옥아... 들리느냐?
가지마라... 옥아...
의식없는 채옥에게 뒤늦게 진심을 전하는 황보윤.
밤낮없는 윤의 지극한 보살핌에 기적적으로 차도를 보이는 채옥.
하지만 채옥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황보윤이 아닌 장성백의 이름을 부르는데
가까스로 깨어난 채옥은
스승 수월대사로부터 가슴 아픈 사실을 듣게 되고
- 옥아...
넌 이제 속세의 여인들처럼 살아 갈 수 있는 몸이 아니다...
... 아이를... 가질 수 없을게다...
포청으로 돌아온 채옥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황보윤.
하지만 예전의 몸이 아닌 채옥은 차마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 그리 말씀 마십시오. 나으리는 제게 피붙이 같은 분이십니다.
- 넌 항상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널 속이고 있구나.
네가 천인의 신분이 아니었어도
나를 혈육처럼만 느낀다고 하겠느냐?
난 너의 부모도 아니고 오라비이고 싶지도 않다.
- 난... 그저 너를 아끼는 사내일 뿐이다...
채옥은 황보윤에게 장성백만큼은 자기 손으로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이미 장성백을 향한 채옥의 마음을 알고 있는 황보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마라...
하지만 채옥은 홀로 장성백을 잡기 위해 유인책을 펴고
- 피를 봐야할 악연이라면
이제 그만 너와의 연을 끊어야겠구나.
장성백과 겨루던 중 채옥은 그만 풀숲에 가려진 땅굴을 밟게 되고
결국 채옥을 구하려던 장성백과 함께 땅굴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 날 왜 살려줬어?
- 너 같으면 어찌했겠느냐?
생각 같은건 없었다...
내 몸이 먼저 그랬을 뿐이니까...
- 산채에서 널 베어버렸다면...
이곳에 떨어진 널 잡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마음으로 베어야 칼이 움직이는 법...
무엇때문에 항상 망설였는지 난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땅굴 속에 갇힌지도 며칠 째.
떨어지면서 다리를 크게 다친 성백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 너와 산채에 있는 동안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 칼을 들고부터 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살아왔다...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 헌데... 처음 너를 본 순간 칼을 버리고 싶어졌다...
너에게 마음을 잃을수록 점점 겁이 났다...
원망스러웠다...
언젠간 너에게 칼 끝을 겨누어야 한다는 것이...
- 처음으로...
처음으로 칼을 놓고 평범해지고 싶었다...
결국... 헛된 희망이었지만...
- 이 곳에서 죽는다 해도...
너를... 잊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지체되자 스스로 출구를 찾던 채옥은
그만 독지네에게 발목을 물리게 된다.
한편 뒤늦게 채옥이 벌인 일을 알게 된 황보윤은 채옥을 찾기 위해 온 산을 뒤지고
천신만고 끝에 채옥이 있는 땅굴을 찾아내지만
채옥은 성백을 구하기 위해 황보윤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화적패가 당도하기만을 기다린다.
- 왜 대답하지 않았느냐?
너라도...
너라도 살아야 하지 않느냐...
-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냐...
생각 같은건 없었어...
내 몸이 먼저 그랬을 뿐이니까...
땅굴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채옥과 성백.
독지네에게 물린 채옥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채옥의 발목에 있는 독을 입으로 빨아내는 성백.
가까스로 채옥은 살렸으나
결국은 성백 본인이 중독되어 버리고 마는데
- 남겨지는 것보단 떠나는 편이 낫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네 잘못이 아니다...
널... 혼자 두고가서... 미안하다...
- ... 사랑한다...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성백.
- 눈을 떠봐...
새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잖아...
같이 살고 싶다고 했잖아...
난... 아직 대답도 못했어... 눈 좀 떠봐...
- 나도...
나도 너 사랑한다고...
제발 눈 좀 떠봐... 제발...
- 같이 나가... 같이 살아...
나도 혼자 남는 거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죽지마... 죽지마... 안돼... 안돼...
점점 식어가는 성백을 잡고 흐느끼는 채옥.
화적패와 관군이 대치하고 있던 차
가까스로 출구를 찾아 땅굴에서 빠져나온 채옥과 성백.
채옥은 성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화적패의 인질이 되고
자신과 성백을 맞바꿈으로써 성백을 안전하게 보낸다.
이후 왜 그리하였냐며 묻는 황보윤에게
장성백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채옥.
- 그 자를... 사랑하느냐...
일찍이 채옥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윤은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하려하고
- 나는 내일부터 종사관이 아니다.
너는 나와 함께 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 전 도련님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 그건 내가 판단한다. 넌 나와 함께 간다.
- 전... 아이도 낳을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 상관 없다...
내겐 너만 있으면 된다...
- 나으리와는 섞일 수 없는 비천한 몸입니다...
- 내가 비천해지면 된다!
- 나으리...
저도 이런 제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그 자에게 칼을 들이 밀어야 할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혀를 깨물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게 빠져드는 저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 가자...
장성백을 잊을 수 있는 먼 곳으로 가자...
어디든 가자...
더 이상 날 속이며 살지 않을 것이다...
서자로 돌아가도 좋다... 백정으로 살아도 좋다...
- 너는 내가 있어 숨을 쉰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그렇다...
너 없이는 내가 살지 못한다...
- 이 년의 육신이야 나무 그늘에 숨긴다 한들...
이미 떠난 마음은 무엇으로 가리겠습니까...
···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