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안될 건 없는데 그게 외부적 문제인지 내부적 문제인지를 알아야..."
"아니, 그냥 컴터가 고장났다 캐. 좀 봐주라."
나는 뭐 얼마나 큰 문제이기에 개인 컴퓨터를 나한테 고쳐달라 하는가 싶었다.
뭐 부팅이 안된다, 소리가 안나온다, 게임 실행이 안된다 등등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여러가지 파훼법을 생각하는 도중 이건 지금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글쎄, 제가 뭐 직접 와야 알지 지금은 힘들겠습니다."
"벌써 가져오고 있다 카는데?"
그럴거면 왜 물어본거지? 차라리 그냥 하라고 하지.
여튼 한 오 분 정도 기다리니 누군가 들어오는 장면이 교무실 CCTV 모니터에 보였다.
그 아저씨는 딱 봐도 조립이면 3~40에 살 컴퓨터를
브랜드에서 7~80주고 산 듯한 모양새인 본체를 들고 낑낑대며 들어왔다.
외양이 꽤 깨끗한 것이 나름 관리는 잘했구나 싶어서 뒤의 나사를 풀려고 손을 가져가자 아저씨가 만류했다.
"아이고 마 뒤에 뜯을 필요가 없다."
"그, 내부적인 문제인지..."
"아니 내가 비밀번호를 까묵어부렀어."
네?
순간적으로 잘못들은건가 싶어 뭘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되물음이 터져 나갔다.
불행히도 내 귀에 들린 대답은 똑같았다.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컴퓨터를 키질 못한다.
본인의 단기 기억력의 문제를 가지고 그 먼 거리를 컴퓨터를 들고 왔단 말인가.
조만간 미국행 비행기 끊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갈 것만 같은 배포를 가지신 분이었다.
그 아저씨는.
난 본체를 연결하고 이것저것 만지는 시늉을 하며 아저씨가 포기하길 기다렸으나
아저씨의 눈은 갓 깎아낸 금강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비밀 번호를 뭐로 하셨는데요."
"글쎄 그걸 까먹었다니까. 어떻게 해결 좀 해봐라."
내가 선생님 비밀번호 알았으면 지금 카드를 무력으로 뺏어서 은행에 갔겠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삼키고 천천히 말했다.
"그건 비밀번호 기억해 내시기 전까지는 답이 없습니다."
"그럼 주변에 아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던가."
"아무한테나 물어봐도 대답을 똑같을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뭐라도 좀 해봐라. 해결 되면 가르쳐도잉?! 난 볼일 있어서 가볼게."
이 시점에서 난 대화로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뭐라도 좀 해보라는 것. 그것은 니가 뭘 알건 말건 상관없다.
고치면 그만이고 못 고치면 나의 쌍욕을 들을 준비를 하거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터였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되짚었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난 그걸 뚫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귀찮고 복잡했기에 그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그 눈빛에 실망감이 드는 그 장면과
내가 들을 질타의 말들을 견뎌내기에 내 멘탈은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결국은 어찌어찌 비밀번호를 뚫긴 했지만
나는 이 과정을 어떻게 알려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마시라'고 밖엔 알려드릴 수 없었다.
이 것은 내가 컴퓨터 관련해서 부탁받은 일 중
20만원으로 최신게임이 돌아가는 컴퓨터를 맞추어 달라는 부탁에 이어
가장 어이없는 부탁으로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