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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
게시물ID : history_291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masia
추천 : 7
조회수 : 261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12/08 22:08:23
...이덕일이 한 주장입니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40095

..이덕일은 이 주장의 근거로 선조실록의 기록을 제시합니다..
(선조실록 25년 5월 4일자 기록.)
자 그럼 해당 기록을 볼까요?

승지와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을 인견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중로(中路)에는 신할(申硈)·황윤용(黃允容)과 해주 목사(海州牧使) 등이 병사 1천 명을 이끌고 가게 되어 있으니 다시 대장(大將)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대가(大鴐)가 보산관에 닿는다면 매우 편하실 것입니다."

하고, 이헌국(李憲國)은 아뢰기를,

"해가 바야흐로 길어지니, 안성(安城)을 지나 용천(龍泉)에서 자고 내일 황주(黃州)에서 자면 모레는 평양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길을 가기에만 힘쓰시고 음식을 드시지 않으신다면 옥체가 상할까 염려됩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난을 당하면 임금은 마땅히 진려(振勵)해야 하고 신하는 마땅히 사직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성상께서 요동(遼東)으로 건너가실 계획을 세우지 않으신다면 신들이 어찌 감히 치첩(雉堞)009) 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신들이 천안(天顔)이 초췌함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걱정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기서 용천이 얼마나 남았는가?"

하였다. 노직이 아뢰기를,

"저물녘에 들어가게 된다면 인마(人馬)가 다 굶게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가다가 보산(寶山)에서 묵자."

하였다. 두수가 아뢰기를,

"마땅히 황해 감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고, 김응남은 아뢰기를,

"지나는 곳마다 백성들이 모두 눈물짓는 것을 보니 인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고려의 현종(顯宗)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주(羅州)로 파천하였으나 결국은 중흥을 이룩했습니다. 도성(都城)은 잃었지만 평양은 지킬 수 있습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밤이지만 용천(龍泉)까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두수가 또 아뢰기를,

"용천까지 가면 사람과 말이 다 피곤하여 변이 있게 될까 염려됩니다."

하고, 정창연(鄭昌衍)은 아뢰기를,

"사람과 말이 지친다면 곤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갓 의논들만 할 것인가?"

하였다. 홍인상(洪麟祥)이 아뢰기를,

"황해도 인심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은 수령이 감사의 명을 잘 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잘한 것이니 은전(恩典)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대동강 상류에 다른 길이 있는가?"

하니, 두수가 아뢰기를,

"삼등(三登)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고, 이충원(李忠元)은 아뢰기를,

"평안도는 험한 곳이 세 군데 있는데 성천(成川)·평양·영변이 그곳입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우리가 한 발짝 물러서면 적들은 한 발짝 따라오기 마련인데, 신할(申硈)이 나가 싸우지 않고 그냥 왔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들로 하여금 오지 못하게 하라. 경들은 아직 경성 소식을 못 들었는가?"

하니, 충원이 아뢰기를,

"적병이 동대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역로(驛路)가 단절되었으니 사람을 보내어 탐지해 오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적병이 얼마나 되던가? 절반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

하니, 두수가 아뢰기를,

"그 말의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내시위(內侍衛)나 사복(司僕)은 오로지 견마(牽馬)에 관한 일을 관리하게 되어 있는데 다들 도망치고 단지 이마(理馬)010) 4인만 남았습니다. 경기 감사를 시켜 잡아 보내게 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 감사 조인득(趙仁得)은 가자(加資)하고, 이마(理馬) 김응수(金應壽)·오치운(吳致雲)은 동반(東班)에 서용하라."

하니, 충원이 아뢰기를,

"어찌 잡인(雜人)을 동반에 서용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어지러운 때이지만 명기(名器)부터 먼저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승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지금은 상규를 지킬 수만은 없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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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이 근거로 든 게 제가 볼드친 저 문장인듯 합니다.

원문에서 본 주제와 관련 있는 문장은 

上曰: "賊兵幾何? 半是我國人云, 然耶?" 斗壽曰: "此言, 不知虛實矣。

이부분인듯 합니다.

문제는...

....

 ....저거 물어보는 겁니다...

선조가 피난중에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라는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윤두수한테 묻는 거구요.

그런데 윤두수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게 전붑니다.

아무리 봐도 해당 대목 중에서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는 이덕일의 주장을 지지하는 서술은 찾을 수가 없군요.

단순히 선조가 저 말을 듣고 이게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대목을 왜군 절반 조선백성설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겠죠..

사실 임진왜란 때는 저거 말고도 다른 소문도 돌았습니다.

예를 들어..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904023_001

여기에 따르면

선조가 히데요시가 죽은 게 맞니?라고 이항복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더군요.

여기에 대해서 이항복은..

알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출처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505004_002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904023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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