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론(Chickenism)
- 치킨주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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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이라는 새로운 단어에 대하여 패러다임의 혁신이라느니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느니 하던 시절도
어언 기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인식과 사고는 더 이상의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과연 인류의 미래는 무엇을 기반으로 짐작해야 하는가,
혹은 과거를 통해 앞날을 볼 수 있듯 다가올 문제와 닥쳐진 현상을 반영할 수 있는 절대가치는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한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Daniel Louis Castellaneta (1957 ~ )
근대 치킨학이 태동을 꿈꾸는, 현 시기의 기틀을 마련 해 준 미국의 저명한 닭띠해 출생 육식학자 Daniel Louis Castellaneta는 말하였다.
"우리 모두가 치킨을 사랑하지 않느냐!"
이에 수많은 육식학파는 반기를 들었으나 구시대적 발상으로 현상에 머무른채 발전을 거부하며 스스로 퇴보의 길을 걸어
태생적으로 모순의 구조를 갖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고한계는 필자와 같은 새로운 치킨학파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치킨은 단순한 '가축' 이나 '먹거리' 를 벗어나 신생인류의 기점이 될 수 있는 정신혁명을 일으키는
또 다른 패러다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입증하겠다.
이미 시대를 앞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한 그의 말을 기억하며.
I am not an Athenian or a Greek, but a citizen of the chicken.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치킨의 시민이다 - 소크라테스 -
목차
제1부 조류에 대하여
- 제1장 육식의 이해
- 제2장 네발짐승과 조류
제2부 치킨에 대하여
- 제3장 치킨요리와 섭취윤리
- 제4장 치킨과 요리사
- 제5장 치킨의 역사
- 제6장 한국 역사속의 치킨
제3부 치킨의 실제
- 제7장 치킨요리의 기본 과정
- 제8장 양념과 후라이드
- 제9장 돼빨과 소꼴
제 1장 조류에 대하여
- 제 1장 육식의 이해
인간은 육식과 함께 진화해 왔다는 말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최근 사이언스 데일리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사냥을 배운 것이 진화에 결정적인 단계였다고 지적하며
사냥을 하려면 상호 소통과 계획, 도구 사용이 필요했으며 이 모든 것이 더 큰 뇌를 요구했는데
고기가 먹이로 추가됨으로써 이처럼 큰 뇌의 발달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하였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기원은 결국 농경에 있다고 주장하는 채식학파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치킨주의 사상의 가장 큰 이념중 하나는 바로 채식의 회피이다.
치킨은 곧 자유라는 기본 전제로 출발하는 치킨학파의 논리에 따르면
식물을 먹는다는것이 과연 현 시대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인가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어째서 배척해야 할 사상인지 충분히 깨닫고도 남을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 개개인이 언제나 자유롭게 임하고 획하여 섭취할 수 있었던 육식에 반해,
처음부터 끝까지 생산과 분배의 모든 과정에 있어 인간의 손길이 미쳐야만 간신히 얻을 수 있는
비효율적이고 생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바로 채식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땅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의 생활에 있어 땅은 삶의 터전이고 세상의 반을 이루는 존재를 위판 필수기본요소이다.
땅과 인간이 자유롭듯이, 인간과 동물이 자유롭고, 동물과 땅 역시 자유로운 상태는 매우 이상적인 상태이다.
[땅 - 인간 / 인간 - 동물 / 동물 - 땅 : 각각이 자유로운 이상적인 상태]
허나 채식을 위한 식물의 경작이 어떠한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보자.
땅을 인간이 지배하고 갈아엎으며, 인간은 무분별하게 식물을 취하고 비축하며, 인공적인 재배는 곧 땅의 황폐화로 연결되는 모순의 구조이다.
[땅 - 인간 / 인간 - 식물 / 식물 - 땅 : 각각이 투쟁으로 시작하여 투쟁으로 끝나는 상태]
모든 과정이 단순히 각 개체와 환경의 투쟁이라는 강제력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에 치킨학파를 비롯한 모든 육식학파 계열은 채식은 폭력( = 강제력 )이라는 바탕을 거부하는 것이다.
- 제 2장 네발짐승과 조류
육식의 역사는 과거의 증거로만 볼때에도 채식에 앞서왔다.
약 100만년전의 구석기 유물은 사냥의 도구였을뿐 그것이 작위적 농경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보기 어려운 동시에
인간의 생활범위 에서 함께 출토되는 화석들로 중요히 여기는 것 역시 포유동물의 화석이다.
옛부터 인간이 육식으로 삶을 영위함에 있어 사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는데
단순한 물리력을 행사하기에 전제될 수 있는것은 바로 인간과 대상의 행동반경이 공통분모를 갖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컨데 심해의 생물이나 하늘의 새는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생명이었고 더욱 우월한 생명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네발집승(길짐승)을 잡으며 날짐승과 물짐승을 우러러 왔다.
특히 하늘은 인간히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하고 신성한 영역이었기에 날짐승에 대한 숭상은 어느 민족에게서나 드러나는 현상이다.
허나 네발짐승의 사냥 역시도 쉽지 않은 것이어서 그것을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두는 평등하였다.
하지만 농경의 발달로 채식량이 늘어나며 잉여재산의 존재가 사유와 계층의 분화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그 평등한 작업이었던 네발짐승의 포획을 위한 역할분담 역시도 귀천이 나뉘고 분배율을 가르게 되었다.
즉 네발짐승의 사냥은 일련의 집단 내 이익조율 이라는 정치적 활동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역사와 문명의 진행속에 그 하늘과 함께하는 새 마저도 양식이 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사고와 인식을 떠나 단순하게 얼마나 더 먹을 수 있는가를 논하며 (소 800kg, 돼지 100kg, 닭 3kg)
네발짐승의 양적 가치가 오히려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새를 좇는 인간의 사상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이 갖고 누가 더 많이 먹는가 하는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치판단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제 2부 치킨에 대하여
- 제 3장 치킨요리와 섭취윤리
본격적으로 치킨을 논한 최초의 육식학자 [좋은 닭고기스튜 밀. 통칭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치킨은 단순히 육식에 의한 식단의 한가지라는 수동적 선택됨이 아니라, 결국엔 개인과 사회,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다"
[좋은 닭고기스튜 밀. 통칭 존 스튜어트 밀] [ John Stuart Mill 1806 ~ 1873 ]
동시에 그것을 위한 세가지의 요건을 제시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내면,의식적 치킨
- 단 한사람을 제외한 모든사람이 어떤 다른고기로 통일했다 하더라도 단 한사람이 치킨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
2. 각자 원하는 치킨
- 많은 사람(자기 메뉴에 만족한 사람)들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메뉴를 따라야만 할 필요가 없는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3. 양계, 부화를 위한 치킨
- 치킨을 추구하는 자 역시도 양계나, 부화를 목적으로 하는 등의 자기선택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는 상호이익이기 때문.
이에 이후의 치킨학파는 밀의 의견에 큰 거부감 없이 그 이론을 거름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자체를 절대적으로 수용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밀은 치킨을 선택하는 것은 어느 수준 이상에 머무르는 지식층과 성숙한 자에 대한 낙관적 태도였고
반대로 말하면 문명,사회적,지적수준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치킨은 주어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 제 4장 치킨과 요리사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시한번 문제가 발생된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치킨을 요리하는 자들이 치킨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가장 큰 딜레마가 두가지 존재한다.
나의 치킨요리가 타인에게 있어 그들의 치킨요리에 방해가 된다면 어떤것이 우선해야 하는가
또한 나의 치킨요리가 나를 위한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요리가 된다면 그것은 나와 대상중 누구를 기준으로 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대한 해답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어떤 특정한 선택을 해답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이 해답아닌 해답에 의아함을 갖는다면 아직 치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치킨을 요리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성별, 신체적, 사회적 조건을 초월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인간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 치킨요리는 자체만으로도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제 5장 치킨의 역사
현재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닭은 3000∼4000년 전에 미얀마·말레이시아·인도 등지에서 들닭을 길들인것으로 추측되는데
실제적으로 치킨이 명시되며 기반을 마련한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때의 치킨은 완전히 치킨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으로 여성이나 노예에게는 치킨요리나 섭취의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치킨을 요리할 권한도 타인에 의해 보장받는것이 아니어서 온전히 직접 요리해야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부 계층에게만 부여된 선택, 직접적 치킨이었다고 보는것이 온당하다.
하지만 스파게티 전쟁을 끝으로 패배하는 동시에 그리스의 치킨은 퇴색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 치킨요리는 약 2000년간을 인류사에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치킨이 다시 요리로써 인류사에 언급되기 시작한것은 역설적이게도 요리할 방법조차 알 지 못하였던 프랑스의 왕 앙리4세에 의해서였다.
[ 앙리 4세 1553 ~ 1610 ]
백년전쟁 이후에 국가가 황폐화되고 재정이 무너진 상태에서 앙리 4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느님은 내 왕국의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길 원하신다"
비록 권력에 의해 주어진 치킨이었지만 그것은 프랑스에 빠르게 뿌리내리며 혁신적인 결과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정신적 기반이 된다.
이후 요리법의 가장 큰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위대한 요리학자가 등장하게 된다.
[존 로크 John Locke / 1632 ~ 1704]
그의 초상에서 처럼 그는 항상 배고픔에 굶주리는 자였고 치킨을 갈망하였다.
그는 고기를 요리하는 식당은 손님들의 사회적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손님의 모든 요리(그리고 치킨)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요리사가 손님의 맛을 보장하지 못할경우 손님은 응당 요금을 지불하지 않을 저항권을 갖는다고 설명하며
요리사가 메뉴 선택의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양사와 요리사의 2권한을 분리시켜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어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는 저서 [닭의 정신]에서 영양사와 요리사 이외에 웨이터의 권한을 분리시켜 3권의 분립이 필요하다 하였다.
또한 제네바의 J.J.루소는 모든 닭은 사람의 기대하는 맛을 무시하지 않는 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사람은 요리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자신이 어떠한 맛을 원하는지를
요리사에게 적극적으로, 상세하게, 최대한으로 언급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기초로 하며 세계는 근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치킨의 시대를 개막하게 된다.
- 제 6장 역사속의 치킨
치킨이 역사속에서 얼마나 추앙받아 왔는지는 굳이 문헌의 기록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아 가는 추세이지만 그 정확한 근거를 알리기 위한 자료를 첨부한다.
치킨은 애초 治貴人(치귀인 : 사람을 귀히 다스리다) 이라는
어진 정치의 일환인 한 사상적 가치가 그대로 닭을 존중하는 의미에 부합하여 붙어 유래된 단어이다.
본디 우리역사 속에서의 치킨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고귀하고 존중한 가치로 추앙받아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고문헌에는 한반도에 꼬리가 긴 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전통무용의 복장에서도 긴꼬리닭을 형상화한 복장으로 춤을 추는 등 닭을 숭상하는 민족을 내포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또한 민족국가의 첫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칭한것도 다름없이 그에 상응한다.
조선[ 朝鮮 ] :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
해가 일찍 뜬다는 뜻을 단순히 지명이 동쪽에 위치함에 있어서였다고 한정적으로 추측하는 학파도 있으나
치킨주의 학파에서는 이를 수많은 닭이 숭상받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어떤 나라보다 일찍 닭의 울음에 아침을 맞이하였으리라 주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기록하는 설화에 따르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라고 전해진다
이 설화가 바로 민족 통일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신라의 옛 이름이 鷄(닭계) 자를 따서 계림이 된 이유이다.
또,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원일(正月元日)에 항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닭은 액을 막는 수호초복의 기능이 있는 동물로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 "닭 잡아먹고 오리 발 내놓기" 라는 속담에서도
다른 어떤 동물에 견줄 길이 없는 닭의 우수함을 칭송하는 민족의식이 깊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제 3부 치킨의 실제
- 제 7장 치킨요리의 기본과정
일반적으로 우리가 치킨을 섭취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과정에 따라 이루어 지는가.
이를 위해서 앞서 서술한 존 스튜어트 밀 이외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두명의 사상가가 있다.
닭스 Karl Heinrich Darx [1818 - 1883 ] //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 - 1895 ]
닭스와 엥겔스는 변질법을 국물론적 입장에서 재정립 하였다.
* 변질법 : 음식은 언제고 상하게 되어있는데 언제, 왜 변하게 되는지를 끝없이 추론하는 형식의 음식접근법
* 국물론 : 모든 맛은 결국 국물에 근거한다는 것. 즉 국물이라는 것은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액체를 포함하는 것이기때문에
국물없는 맛이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함을 지적하며 나타난 이론
이전까지의 맛에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고 그 대상에 대한 논의도 제각각이었지만
닭스와 엥겔스는 국물론적 변질법을 통해 모든 맛과 음식에 관하여
치킨이 반드시 보장되는 실질적 유통기한이 존재하게 될 필연성을 입증하였다.
이에 대비되는 허상적인 맛을 제시한 대표격인 채식학파의 토마토 모아 (Thomato More 1477 - 1535 )와
그의 저서 <유통기한> 을 기억한다면 쉬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통기한에서 반드시 언급되어야만 하는 그 유명한 대목인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
여기서 양은 당시 가장 흔한 소[牛]과의 동물이었고(양은 소목 솟과 양속의 총칭)를 대변하는 대상으로 사용되며
육식에 의해 잠식되어가는 우리의 식탁이 더이상 치킨을 보장하지 않고
네발짐승의 압도적 지분율을 드러내는 현실을 비판코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토마토 모아의 언급대로 유통기한 이라는 이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좋은 닭스튜 밀, 닭스와 엥겔스의 의견처럼
분명히 채식이라는 것이 모두의 보편적인 최대한의 치킨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와 동시에 단순히 육식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닌 네발짐승의 식단화를 통하여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치킨섭취의 전제>
각 치킨의 요리중에 치킨이 치킨끼리 서로 결합하고 맛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통제적 수단으로 튀김옷(채소)을 사용하여 각각의 부위와 개체의 존엄함을 보장해 주는것.
동시에 이를 온전히 결합하기 위해 국물(기름)이 반드시 존재함 역시 기억해야 하는 것.
* 치킨을 요리하는 동시에 - 타인이 조리하고 있는 치킨의 독자적, 기본적인 맛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
* 실제 세계에서의 이 과정은 개개인의 조율에 한계가 있으므로 요리사가 최소한의 보호적 차원의 튀김옷 사용.
- 제 8장 양념과 후라이드
그리하여 육식주의의 하나로 접목되는 치킨은
결국 치킨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하여 채식의 최소요건을 결합시킬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튀김옷 이다.
그와 동시에 치킨옷 자체에 따라 치킨의 전반적인 향과 맛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치킨의 튀김옷은 그 유형과 속성에 따라 두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후라이드치킨 과 양념치킨
(1) 후라이드 치킨
- [1] : 외부로부터의 보호치킨
최소한의 튀김옷을 추구하는 후라이드 치킨은 어느 낱개를 보호하기 위한 수동적인 튀김이다.
즉 다른 부위로부터 강제적으로 영향을 입거나 다른 부위에 들러붙지 않는 상태. 각각의 치킨이 구속과 제약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2) 양념치킨
- 양념치킨 [1] 외부에의 치킨 : 요리, 맛의 조정에 직접 투입되는 치킨
- 양념치킨 [2] 외부에 의한 치킨 : 음식다운 음식을 추구하는 치킨
양념치킨은 어떠한 당연히 후라이드 치킨을 전제로 보다 넓은 추가적인 의의를 갖는다.
치킨 스스로가 각 부위별 맛을 지배하면서 외부요소의 내부 투입을 방지하는 의미의 후라이드 치킨의 한계를 넘어
개별 부위와 개체의 맛을 통제하고 그 이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의 치킨을 의미한다.
- 제 9장 돼빨과 소꼴
요리사는 요리를 위해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지만
정당한 손님과의 합의에 따라 메뉴를 지정, 추천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손님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 못한 요리사는 메뉴선별 권한을 남용하게 되고
이는 이미 부위별로 손봐져 나오는 네발짐승을 선호하게 되는 동시에 일일히 손봐야 하는 치킨을 외면케 된다.
하지만 손님은 정당하지 못한 요리나 메뉴선택에 대해 소비자로서의 손님이 취식을 거부하고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
네발짐승의 요리는 크게 재료상의 스펙트럼이 있는데
"돼빨주의 - 중도 - 소꼴주의"로 구분되고 있다.
돼빨주의와 소꼴주의 간에는 요리관, 양념판단의 기준, 매출액의 평가에 차이가 있으며 어느것이 옳거나 그르다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요리사의 역할인식에도 간격이 발생한다.
1) 돼빨주의 요리관
돼빨주의는 "돼지고기나 겨우 먹고 빨빨거리고 다닌다" 는 반대파의 비아냥에서 생성된 단어였지만 널리 사용되어 보편화 되었다.
고기의 양적 매출액은 인정하되, 근수 위주의 평가의 결함에 주목하며 부위배분적 요리, 각 부위의 가격평등을 중시한다.
많은 영역에서 요리사의 적극적 개입을 지지하며 더욱 많은 요리사의 손질투입과 곁채소를 선호한다.
2) 소꼴주의 요리관
소꼴주의는 "소 한마리 통째로 먹고서도 꼬르륵 거린다" 는 반대파의 비아냥에서 생성된 단어였지만 널리 사용되어 보편화 되었다.
고기의 양적 매출액을 신봉하고, 요리사를 불신하며, 재료적 정의, 종 간의 평등을 중시한다.
요리사의 재료에 대한 손질 최소화를 선호하며 최소한의 양념투입에서만 손질개입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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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이로써 그간 치킨에 대한 설파의 핵심내용을 마치고자 한다.
정리하는 와중에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내용들이 추가적으로 있었지만
덧붙이는 내용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중심의 뼈대를 필요로 하는 내용들이었기에
현재 정리한 내용만으로 치킨에 대한 실질적인 지해를 돕는다고 판단하여 추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치킨을 논하고자 함은 단순한 이유로
"나의 치킨은 소중하지만 타인의 치킨도 소중하다"
라는 기본을 잊고 지내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사회분위기의 형성에 매우 큰 우려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이에 핵심된 치킨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은
큰 틀 안에서의 수정이나 심각한 오류를 일으킬때의 수정에 한할 것이다.
그동안 치킨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무명논객" - "뚬뙇뚬뙇" - "다잘될거야" - "데이♪" 님과 평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 모두는 치킨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