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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data_10871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설가j
추천 : 10
조회수 : 8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5/20 16:35:45
그래서 제 첫사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때는 제 학생시절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저는 LA 근처의 도시에 살았습니다.
한국인이 꽤나 많은 도시였죠.
맨 처음엔 새롭고 그 뒤엔 두렵고... 뭐 여러 감정들이 섞여있는 상태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한 친구와 밥을 먹기로 하고 비빔밥 집에 갔는데
그 곳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습니다.
음.. 착해 보이지만 예쁜 얼굴과 눈웃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2 살이나 연상이고 같은 학교에 2 년 선배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몇일 간 만나면 인사하고 아는 체 하고 이런 정도였는데
어느 날 그녀가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멀리 간 것도 아니고 차타고 15 분 정고의 거리였지만 당시엔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또 명분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첫사랑이 끝나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1 년 동안 홀로 보고 싶은 마음도 참고
잊어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바를 하게 됬는데 그 곳에서 같이 알바를 하게 된 사람이 그 누나였던 것입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엔 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는 그녈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집안에 돈도 꽤 되고 얼굴도 장 생겼지만
그에 비해 전 초라했고 또 그녀가 그 사람을 좋아한 다는 걸 알고
그녀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는 집안 사정 상 끊을 수 없었고 그곳에서 계속 그녀를 만났습니다.
찢어지는 제 마음을 모르는 그녀와 저는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도 많이 나누고 장난도 치며 2 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그녀의 데이트 얘기를 듣는 것이었고
그녀와 그가 싸웠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장 달려가 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를 위로하며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고 또 잘 됬다는 밀을 들으면 기뻐도 해두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한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는 제게 그에 대한 푸념을 털어 놓다가 저에게 만나니고 했습니다.
저녁 10 시가 넘어 컴컴해진 시간에 면허도 앖던 제가 자전거를 타고 20 분을 달려서 그녈 만나러 갔습니다.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너무도 슬퍼하는 그녀를 위로하며 차마 나에게 기대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엔 더 이상 반지가 있지 않았고
그 손가락에 끼게 될 다음 사랑의 결정은 제 것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1달, 2달이 지나고 세달 째 되는 날 여름방학에 그녀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거부하면 어쩌지 고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자신의 첫 사랑에게
대쉬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라는 심정이 컸습니다.
대답은 놀랍게도 예스였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녀를 돌봐주는 모습에 끌렸다고 나중에 말해주더군요.
그렇게 연애는 시작됐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한끼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다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군대 영장이 날라왔습니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고 유학비자였던 저에게 군대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맘 군대는 가야 했기에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기전 이벤트를 생각했습니다.
니 살 돈은 알아서 벌어라 라는 가족정책 때문에
알바로 생활비를 벌단 제게 그녀에게 비싼 선물을 해주긴 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읺았습니다.
하지만 제 돈들을 탈탈 털어서 군대에 가기 전 그녀에게 줄 선물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곤 차마 직접 전해 줄 자신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그녀의 집 현관 앞에
전해두고 저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선물을 주며 약속한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제대한 뒤 열심히 공부를 해 대기업 팀장까지 3년
총 5 년의 시간 동안 그녀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마지막 날 그녀에게 주었던 선물은 시계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긴 편지 내용은
군대를 가게 됬다는 말 그리고 한국에서 살게 됬다는 말
한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했습니다.
당신 알에 떳떳한 남자가 되서 나타나겠다고
하지만 실패할 수 있으니 그 시계의 초침이 멈출 때까지만 나를 기다려 달라고
딱 그 때까지만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그녀를 다시 찾을 땐 두려웠습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찾으면 어떡하나
날 잊었으면 어떡하나
휴가까지 내고 미국에 나가 그녀를 찾았습니다.
일하던 곳은 그만 두었고 집은 또 이사를 갔더군요.
모든 걸 잃고 포기하려고 했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핸드폰에 연락해 보기로 했습니다.
차마 전화를할 용기는 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문자오 이 한마디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시계는 아직 돌아가고 있나요'
5 분 10 분 .... 답장이 없어서 포기하는 그 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이 준 손목시계는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그 손목시계의 초침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의 시계는 아직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답장을 들은 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에 갔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디자인 학과을 졸업하고 어떤 중소기업의 디자인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목엔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손목시계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결혼을 하고 아직 신혼입니다.
그녀가 말하길 시계를 선물로 주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항상 어디서든 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시곗바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생각 났다고 합니다.
그 손목시계는 저희 결혼 사진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지금 일요일 그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살짝 가서 뒤에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입다.
봄은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아직 꽃 냄새가 나네요.
우리둘의 몇년을 뛰어넘은 사랑만큼 진한 향기를 풍기는
자작나무 꽃향기가 그녀의 요리 향과 같이 나 절 추억속에 빠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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