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황금장갑을 받은 날. 어쩐 일인지 잠이 통 오질 않는 것이다. 선경과 두산을 거치며 겪었던 아픔이 기쁨의 희열 이후에는 더 크게 한 차례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니 옛날의 서러움이 복받쳐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를 갑자기 부둥켜안고는 꺼이꺼이 한 시간여를 서럽게 울어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진이 빠지도록 울고 나니 이렇게 까지 자신을 선택하고 믿어준 감독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수는 그 은혜를 어찌하면 갚을 수 있을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며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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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탓하랴! 결국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다는 것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끝내는 이렇게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다. 급작스레 늘린 운동량이라는 것은 당장 효과는 뛰어났을망정 이렇게 1년이 지난 이후에는 살과 뼈가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 애원하는 소리를 듣게 되니 오랜 세월 현역으로 뛰기를 바라는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선택이었을 줄이야! 여러 차례에 걸쳐 망가진 몸을 고쳤으나 여전히 날 서린 방망이질을 하는 성호 성님을 보고 있자면 자신의 굳어가는 몸뚱이에 원망도 있으련만 대수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이미 범인의 몸으로는 이루기 힘든 황금장갑을 타내었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선수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수들에 비하면야 이미 많은 것을 이룬 것이다. 잠시간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무래도 지금이 감독에게 은혜를 갚을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였다.
한밭벌에서 나고 자란 감독은 아무리 자신보다 오랜 기간 공놀음을 하였다지만, 선수로서의 경력으로 보는 눈과 감독으로서의 경력으로 보는 눈은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생초짜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감독은 스스로가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잘 알지 못하니 제대로 몸뚱이를 가누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그저 답답해할 뿐, 어찌 구멍을 찾아 빛을 보여줄 생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니 진흙탕을 기어올라 간신히 빛을 본 대수의 입장에서는 감독의 처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대수를 알아보고 경문감독에게 읍소하면서 까지 한밭벌에서 뛸 수 있도록 해준 감독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2년 전 패기 넘치던 모습은 간 곳 없고 그저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자신이 중용턴 선수들만을 굴려가며 몽니를 부리니 은혜를 입은 몸으로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다.
대수는 그렇다고 단박에 감독에게 면전에 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윗사람을 깎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못난 놈이 되어도 자신이 되어 은혜를 갚아야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지나친 직언은 윗사람의 자존심도 뭉개버리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대수는 보름정도의 시간을 철저히 자신을 못난 놈으로 낙인찍히도록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방망이질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 구지 스스로 못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저 노력하며 적당히 기록질만 하며, 감독이 깨달을 때까지 적당히 이할 오푼만 유지하면서 기회가 올 적에는 간간히 때려 맞추어 점수나 내면 자연히 목숨부지는 되는 것이다. 문제는 막음질에 있다. 감독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사람은 미련하도록 믿어버리는 성격이니 아무리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내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방망이질이 신통치 않음에도 막음질 하나는 괜찮으니 자리에 두고 씀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분명히 자신을 대신을 인물이 있음에도 당장만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 대수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선수권에서 허우적대는 주석이는 그런 곳에서 뛸 재목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본디 자리를 깔아줘도 처음에는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남과 다른 재질을 가진 이라면 머지않아 자기 자리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니 당장 젊은 주석이가 바로 그런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인물의 미래를 자신처럼 이제 내리막을 치닫는 겉늙은 범인이 막아 서있는 것은 자신을 황금장갑 얻도록 해준 선수단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대수는 감독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이유마저 실망토록 만들어야했다.
그리하여 오월에 들어서니 대수는 본격적으로 실수를 연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을 흘리는 것은 물론이요, 평범하게 굴러가는 공하나 빠뜨려먹기 일수에, 자신의 실수에도 남의 탓을 하며 황금장갑을 탔던 날래고 정확하며 겸손했던 모습은 서서히 관중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거둘 줄을 모르니 대수는 점점 답답해만 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평범한 실수를 가지고는 영광스러웠던 작년의 모습을 쉬 지울 수 없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렇다고 팀의 들보와도 같은 현진이나 입대가 코앞이라 기록관리가 시급한 훈이나 혁민이, 혹은 금의환양하여 팀에 보탬이 되는 찬호형님의 경기에서 수준 이하의 몸짓으로 실망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력을 보니 옳다구나! 15일에 만만한 날이 있는 것이다.
15일 소창식이 선봉투수로 서는 날. 비록 생일을 맞이하였다고는 하나. 앞으로 살아가며 생일날 승리를 맞이할 수 있는 날은 하고 많았다. 게다가 자신을 하나 버려서 팀을 더 단단히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오늘의 패배는 앞으로의 승리에 큰 보탬이 될 터이니 미안함을 앞세워 자신의 처신만을 생각하며 변명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대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선수들은 너무나도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창식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자 하였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나. 어쩌면 이는 더 큰 기회였다. 그렇게 대수는 3루수의 실책을 예상하면서도 설렁설렁 움직이며 공을 빼고, 평범한 땅볼도 한 차례 흘리며, 전문선수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송구선택을 보여주고 자칫 자신이 일부러 그러는 것을 들킬까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남의 탓으로 돌릴 뿐, 겸손하거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시종 당당하게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자신의 바람과 몸짓이 보탬이 된 덕일까. 선수들은 크게 요동했고 상대의 점수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우리의 패배가 어디 기쁠 수 있을 소냐마는. 15일 하루의 선택이 앞으로 독수리단의 반석을 다질 기회를 제공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