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의 데비 넬슨(어머니)은 동네 밴드의 리드 싱어였다.
밴드 멤버 중 한 사람 마샬 매더스 쥬니어(아버지)와 결혼했다
1972년 10월 17일 마샬 매더스 3세를 낳았다.
에미넴은 그의 본명이 marshall bruce mathers 3세 였기 때문에
M&M → Eminem이 되었다.
친아버지와 에미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나는 누굴 닮았는지 모른다. 병원에서 바꿔쳐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난 지 반 년만에 아버지란 사람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고 하더라.
나는 심지어 18살-19살 까지도 나의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에미넴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가사를 쓴 곡들로 에미넴의 어머니는 아들 에미넴에게
1000만달러의 소송을 벌인다.
하지만 에미넴의 어머니는 이 소송을 통해
고작 2만 5천달러를 얻을 수 있었다.
추락하던 모자지간의 관계가
이 소송을 시작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에미넴이 소송 후 2002년도에 낸 곡
cleanin' out my closet(속내를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아들인 자신이 겪은 어린시절에 대해 폭로한다.
또한 어머니가 뮌하우젠 증후군 증상을 가졌으며
(아프지 않는데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로 인해 에미넴 스스로조차 어린시절 내내
자기가 아프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See what hurts me the most is you won't admit you was wrong
날 가장 아프게 하는 건 네가 틀렸다는 걸 인정 안 한다는 거지
But how dare you try to take what you didn't help me to get
날 도와주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감히 뺏으려 할 수가 있어
(자신에게 소송했던 것에 대해)
(에미넴과 Ronnie 삼촌 어렸을 적)
Remember when Ronnie died and you said you wished it was me?
Ronnie삼촌이 죽었을 때 내가 차라리 죽길 바랬다고 한 거 기억나?
Well guess what, I AM dead - dead to you as can be!
그건 알지, 나 죽었어, 너한테 난 죽은 놈이라고!
< 에미넴 왼팔에 있는 마샬+킴 하트 문신/ RONNIE RIP 문신>
에미넴은 어린 시절을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삼촌 로니와 대부분 보냈으며
그가 자살하고 난 뒤,
에미넴은 왼쪽 팔뚝에 그를 추모하는 문신을 새긴다.
"제일 친한 친구, 정말로 나에게는 유일한 그런 사람이었다."
에미넴은 어릴 적에 곱슬머리에 왜소한 체격,
혼자 멜로디를 허밍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렸을 때 부터
자주 전학을 다니는 바람에
더 쉽게 왕따를 당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일화는
9살 때 학교 애들한테 맞아서
3일동안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났다고 함
어린 시절 만화와 TV만이 엠의 친구였고
실제로 그는 스파이더맨의 광팬이다.
미시간의 링컨(Lincoln) 고등학교는
에미넴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캔자스 시티와 디트로이트를 오가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그가 결국 17살이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흑인(Afro-American)이 아니란 이유로 그는 학교에서
단지 흑인들의 머리스타일이나 흉내내는 힙합 워너비(wanna-be)로
낙인이 찍히며 한물간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와 비슷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오스번 고등학교 근처에서 열렸던 프리스타일 랩 배틀에 종종 참여
→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
9학년 때, 3번의 무단 결석으로 유급, 17살에 자퇴.
에미넴 23살, 전처 킴벌리 20살 때 1995년생 딸 헤일리를 낳는다.
1996년때 에미넴
1996년 12월 헤일리의 첫번째
생일이었던 크리스마스 5일 전,
에미넴은 다니던 식당에서 해고당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이 40달러가 전부였음
이 날 에미넴이 쓴 곡 Rock bottom 가사 中
My life is full of empty promises and broken dreams
내 삶은 텅빈 약속들과 부서진 꿈들로 가득하지
I'm hoping things will look up but there ain't no job openings
현실이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일자리는 없어
I feel discouraged hungry and malnourished
좌절감을 느끼는데다 배고프고 영양실조 상태야
Living in this house with no furnace, unfurnished
난방기구도, 가구도 없는 이 집에 살면서
And I'm sick of working dead end jobs with lame pay
난 쥐꼬리 만큼 주는 막장 일에 신물이 나
When this life makes you mad enough to kill
누군가를 죽이게 할 만큼 이 삶이 널 화나게 할 때
When you want something bad enough to steal
훔칠 만큼 상황이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When you feel like you have had it up to here
너가 여기가 한계라고 여겨질 때
'Cause you mad enough to scream but you sad enough to tear
소리 지를 만큼 화가 나지만 눈물 흘릴 만큼 슬플 때
That's rock bottom
그게 밑바닥이야
1996년 언더 첫 앨범 Infinite 발매 후
판매량 1000장에 그치며 혹평을 얻은 뒤에도
에미넴은 헤일리를 키우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1997년 상금을 위해 랩 올림픽에 나간다.
'폴 로젠버그' 에미넴의 매니저는
에미넴이 언더시절부터
매니저로 같이 함께 했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에미넴이 우는 모습을 본 날이
랩 대회에서 2등을 했던 날이었다고
1999년 메이저 데뷔앨범
The slim shady LP의 전신인
1997년 12월 6일날 나온 Slim shady EP를
눈여겨 본 인터스코프 레코드 사장인 '지미 로빈'
에미넴의 데모 테이프를 가져가서
애프터매스의 사장이었던 '닥터 드레'에게 들려줬다고
닥터드레 曰
"When Jimmy played this, I just said"
" 지미가 이 테이프를 틀었고, 난 이렇게 이야기 했어. "
"Find him, Now."
"당장 그를 찾아와."
에미넴은 처음 닥터드레 스튜디오로 불려 갔던 날
1시간만에 첫번째 싱글
"My Name Is" 녹음을 끝냈고
바로 에미넴의 2번째 앨범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
The Silm Shady LP가 녹음이 들어감
성공을 열망하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에미넴의 피부색부터가 문제였다.
“왜 푸른 눈의 백인 래퍼를 키우려고 하느냐.
그 아이보고 록이나 하라고 그래라.”
닥터 드레(Dr. Dre) 조차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핀잔을 들어야 했다.
과거 백인 힙합 뮤지션들이 흑인의 흉내에 그친 반면,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라고 부르며
백인들 중에도 흑인처럼 사회낙오자와 부적응자가 많다며
당시 힙합계에서 에미넴의 등장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백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한 음반 속에 그가 겪은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었다.
여지껏 특정 인종을 일반화해 편견을 만들었던 모든 이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Stan' (2001 grammy) 은 역대급 라이브라 불리며
[10 Best Grammy Performances]의 2위로 선정된다.
또한, 당시 논란과 비난만 가득하던 에미넴의 평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만큼
뛰어난 호흡 조절과 감정표현을 갖춘
환상적인 라이브 실력으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대중과 평론가에게 인정 받게 된다
EMINEM - Stan
이 당시 에미넴은 호모포비아라 불리며 고충을 겪고 있었고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게이인 엘튼 존과 함께 그래미에서 공연했다.
2005년 엘튼 존과 그의 파트너가 합법적 동성결혼을 했을 때,
에미넴은 두 개의 다이아몬드 Cockring을 보냈다고
*남근에 끼우는 보석, 사정을 막는 링
에미넴이 2008년 중독으로부터 재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도움을 요청한 몇 명중 한 사람이 엘튼 존
엘튼 존은 에미넴이 재활을 할 시기 일주일 한번씩
전화로 상태를 체크했다고 한다.
인터뷰 中 삶에서 많이 배우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Elton John (엘튼 존)"
하지만
에미넴이 시간이 갈수록
부와 명성을 얻게 되면서
챙겨주지도 잘 알지도 않는
친척들이 그에게 달려든다.
<Mashall mathers 가사 中>
You know I just don't get it
이렇게 된 게 이해가 안 가
Last year I was nobody
작년엔 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This year I'm sellin records 올해 난 앨범이 팔리고 있어
Now everybody wants to come around like I owe em somethin
이젠 내가 빚이라도 진것 마냥 모두가 내 주변으로 다가오지
Heh, the fuck you want from me, ten million dollars?
헤, 넌 내게서 대체 뭘 원하는거야, 천만 달러를 원해?
Get the fuck out of here
여기서 x발 당장 꺼져
10여년 전 삼촌 로니의 비트 박스에 녹음한
에미넴의 랩 송의 저작권을 주장하고 에미넴과 딸 헤일리 사진을 방송에다 모두 공개한
외할머니 베티 크레신(Betty Kresin)
에미넴이 채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렸지만
그가 유명해진 후 텔레비전 쇼에서 아이의 사진을 내밀며
애정을 표시하는 친아버지 마샬 매더스 주니어(Marshall Mathers Jr)
토튼 K 넬슨
에미넴의 외삼촌이지만 이름만 삼촌인 이 사람은
데뷔 직후 계속 에미넴과 만나길 원했고
가지고 있던 어렸을 적 에미넴의 사진을 팔기 시작 했으며
불행한 자신의 삶을 도와주지 않는 에미넴을 저주하며
2004년 10월 17일 에미넴의 생일에 자살 했다.
아마도 에미넴은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그 존재 가치를 이미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마 에미넴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딸들에게만은 그렇게 애틋한 지 모르겠다.
2000년 6월에 엠은 자신의 처의 외도현장을 전해듣고 찾아간다. 결국 그 둘을 목격한 엠은 총알이 없는 총기를 휘두르며 협박
이 위협으로 에미넴은 소송에 걸리게 된다.
이로 인해 총소지 혐의와 폭력죄 관련되서 체포되었다
2000년 7월 에미넴이 'Kim'곡을 콘서트에서 부른다.
(남편 에미넴이 바람이 난 아내 킴을 잔인하게 죽이는 내용)
거기 있었던 킴은 큰 충격을 받고 집에 가서 자살을 시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킴이 자살소동을 벌였을 때 그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돌본 사람이 에미넴
하지만 이 소동으로 서로에게 큰 충격을 받은 건 확실해 보인다.
그 뒤에
에미넴은 이혼신청을 킴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
그것도 얼마 못가 킴과 에미넴은 화해를 하고
둘 다 소송을 취하한다.
하지만
2001년 말쯤 킴은 에미넴에게 천만달러의 이혼 소송을 건다
에미넴이 총기 이용 살인미수에 의한
2년의 보호 감찰과 5년의 징역 선고를
안긴 전력과 곡들로 인한 자신의 명예훼손 및
활동을 하느라 자녀 양육에 소홀했다는
킴의 주장을 받아드려 법원은
이 소송의 핵심이었던 딸 헤일리 양육권을 엄마인 킴에게
아빠인 엠에게는 딸 헤일리를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교섭권을 준다.
킴이 몇개월 뒤 음주운전과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이 때 에미넴은 유럽 투어 中 이었지만 이 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그리고 직후 에미넴도 자신의 딸 헤일리 양육권을 가져온다.
이 때 에미넴은 2002 'Hailie's song'를 만든다.
I got my baby, baby the only lady that I adore, Hailie
난 내 아기를 되찾았어, 내 아기 유일하게 숭배하는 여성, 헤일리
그리고 전부인 킴은 휘트니를 낳는다.
<당시 에미넴은 이혼 한지 4-5개월만에
킴이 휘트니를 낳은 것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또한 딸 헤일리에게 엄마의 임신과 여동생의 존재를
설명해주는 것이 자신이 겪었던
제일 힘든 시간 중 하나였었다고>
킴의 쌍둥이 여동생의 딸인 일레이나(에미넴의 조카)를 돌볼 여력이 없었고
킴은 감옥에서 나온 뒤 자택감금 中
도망쳐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킴 자매 모두가 아이를 키울 수는 여건을 갖추지 못하자
에미넴은 법적으로 조카 알레이나의
단독 양육권을 가져왔고 딸 헤일리와 함께 같이 키운다.
2004년도
이때 일어난 모든 상황들과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슬퍼하는 딸과 조카를 위해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곡
에미넴은 위 곡의 가사를 쓰면서 울었으며
위의 완성된 MV를 보고서 또 한 번 울었다고 한다.
Mockingbird (자막)
Now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
이제 쉿, 아가야 울지마렴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모든 게 괜찮아 질거야
Stiffen that upper lip up little lady I told ya
그 윗 입술에 힘주고, 나의 꼬마 숙녀, 아빠가 말했지
daddy’s here to hold ya Through the night
아빠가 너를 안아줄게 ,그래 이 밤이 새도록
I know mommy’s not here right now and we don’t know why
엄마는 지금 여기에 없고,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고
We feel how we feel inside
우린 만감이 교차하고 있지
It may seem a little crazy pretty baby
좀 미쳐 보일지도 몰라 어여쁜 아가야
But I promise Mama’s gonna be alright
하지만 아빠가 약속할게, 엄마는 괜찮을거야
2005년 12월경
'EMINEM'
전세계적으로 1억장의 앨범 판매한 랩퍼.
다이아몬드 앨범 2장을 가진 랩퍼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SLIM SHADY'
자기자신은 물론 어머니,아버지,아내
그리고 수많은 연예인들을 대차게 까던
무서울 것 없는 미칠 때로 미친 또라이
이 두 자아는 사라지고
'MASHALL MATHERS (본명)'
그토록 사랑한다던 딸 헤일리를
자신의 커리어때문에 챙겨주지 못하고
딸조차도 자신에게서 등 돌리며 떠나려 하는
오직 죄책감과 후회만이 남은 아버지가
딸을 위해 만든 작별의 곡
and when i'm gone, just carry on, don't mourn
내가 사라지면, 그냥 살아가, 슬퍼하지 마
rejoice every time you hear the sound of my voice
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즐거워 해주렴
just know that i'm looking down on you smiling
내가 네 미소를 내려다보고 있을거란다
and i didn't feel a thing, so baby don't feel no pain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그러니 아가 아파 하지마
just smile back
그냥 날 보며 웃어줘
<When Im Gone 자막>
2006년 에미네과 킴벌리는
두번째 결혼을 하지만
3-4개월 만에 두번째 이혼 신청을
그리고
이혼 신청한 5일 뒤
2006년 4월 11일
"(그 당시) 약만 먹고 울기만 했다.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싫었다.
나만 슬퍼한 것도 아닌데, 프루프의 장례식에서 그게 내 장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니, 내 자신이 혐오스럽고 이기적이었다."
(에미넴의 Proof 장례식 추모 연설문 中)
그는 제게 어떻게 리더가 되는지를 가르쳐줬어요.
그를 만났던 그 누구라도, 단 한번이라도 만났던 사람이라면,
그가 방에 걸어 들어가면 방 전체가 밝아진다는 걸 알 겁니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죠,
그는 자석이었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어요.
그에 대해 알고 싶고, 그의 스웨거를 따르고 싶었을 거에요.
프루프가 없었다면, 에미넴도, 슬림 셰이디도, D12도 없었을 겁니다.
2014년 에미넴 공연 보러 온 R.I.P Proof 의 아들과 함께
(맨 오른쪽 에미넴이 감싸고 있는아이가 Proof의 아들임)
Proof가 죽고 난 뒤 남은 Proof의 가족들에게
꾸준히 재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하죠.
에미넴 Deja vu 가사 中
Look at my daughters face,
내 딸들 얼굴 좀 봐
Mommy, something is wrong with Dad, I think!
"엄마(=킴), 아빠가 뭔가 잘못된 거 같아!
He's acting weird again, he's really beginning to scare me
아빠 행동이 다시 이상해졌어, 아빠 때문에 진짜 무서워질려고 그래
Won't shave his beard again, and he pretends he doesn't hear me
또 아빠가 수염도 안 깎고, 아빠가 내 말을 못 들은 척 해
And all he does is eat doritos and cheetos and he just
그리고 아빠 암것도 안하고 Doritos와 Cheetos만 먹기만 해
Fell asleep in his car readin' three musketeers in the rear seat"
방금 아빠 차 뒷좌석에서 삼총사를 읽다가 잠이 들었어"
[2009 - Relapse 中 Deja vu 자막]
2008년 재활 당시 에미넴이 썼던 곡
[2009 - Relapse 中 Beatiful 자막]
에미넴은 킴과의 두번째 이혼 뒤에도
헤일리의 친부가 다른 여동생인
휘트니의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카 알레이나와 입양딸 휘트니와 에미넴
현재 에미넴과 전부인 킴벌리는
알레이나, 헤일리, 휘트니 세 딸의 양육권을 공유하고 있다.
2013년 크리스마스 - 알레이나,헤일리,휘트니
2014년 헤일리 고교 졸업식에 참석한 알레이나와 휘트니
2009년 학예회 中 딸 휘트니의 모습을 찍기 위해
직접 서서 캠코더를 들고 있는 에미넴
2013년 막내 휘트니가 나오는 합창단 공연을 보기 위해 학교에 온 에미넴
2014 딸 헤일리 졸업식에 참석한 에미넴
What does being a good father mean to you?
지금 당신은 아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Just being there. Not missing things.
If there's anything important going on, regardless of what it is,
I'm there. Helping them with homework when you can. At the grades my older ones are in,
it's hard [laughs]. I never even passed ninth grade. They're already way smarter than me.
거기에 있어 주는 것. 그 무엇도 놓치지 않으면서.
만약 어떤 중요한 일이 생기면 그게 뭐든 상관없이 난 거기 있을 겁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때는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줍니다.
나보다 더 높은 학년인 경우, 그건 어렵습니다.
[웃음] 난 9학년을 패스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나보다 더 똑똑합니다.
RECOVERY [회복] 2010년 Eminem
'Going Through Changes' 가사 中-
Hailie this one is for you, Whitney and Alaina too
헤일리, 이건 널 위한 거란다, 휘트니와 알레이나에게도
I still love your mother, that'll never change
난 아직도 네 엄마(Kim)를 사랑해, 그건 절대 변치 않을거란다.
Think about her every day,
매일 그녀에 대해 생각해.
we just could never get it together
우린 그저 함께 할 수가 없었단다
Hey, wish there was a better way, for me to say it
내게 이 말들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But I swear on everything,
하지만 내 모든 걸 걸고 맹세컨데,
I'd do anything for her on any day
언제든지 그녀를 위해서라면 난 그 무엇이든 해줄거야
There are just too many things to explain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단다.
When it rains guess it pours, yes it does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기 마련이라지, 그래, 맞는 말이야
Wish there wasn't any pain But I can't pretend there ain't
거기(자신과킴의관계)에 고통이 없었으면 바랬지만
난 모른 척할 수가 없지
I ain't placing any blame, I ain't pointing fingers
난 누구를 탓하려는게 아니란다, 난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어.
Heaven knows I've never been a saint
난 천국에도 성자가 없다는 걸 안다.
I know it just feels like we just pissed away our history
(킴에게) 우리의 역사를 낭비한 것만 같지, 나도 알아
And just today, I looked at your picture, almost it to say
그리고 오늘 방금, 네 사진을 봤어, 속으로 이렇게
I miss you self consciously, wish it didn't end this way
널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But I just had to get away, don't know why
하지만 난 떠나야만 했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
I don't know what else to say, I guess I'm
달리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 아마 난...
2011년 10월경 휘트니 학교 근처에서
찍힌 에미넴과 전부인 킴벌리
What's a typical day like for Marshall Mathers these days?
요즘 먀샬 매더스의 일반적인 하루는 뭔가요?
I'll get up around 7:30 or 8:00 and work out.
I was working with a boxing trainer for a while,
but now I just run, bike, hit the heavy bag. I eat breakfast
– low-fat waffles with sugar-free syrup and a Red Bull –
and then just get to the studio as early as I can,
try to put in a full day's work so I can get home early enough to see the kids.
난 7시 30분 또는 8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합니다.
난 한동안 복싱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뛰고,자전거 타고, 샌드백을 칩니다.
나는 아침식사로 - 저지방 와플과 함께 무설탕 시럽 그리고 레드불 -먹습니다.
그런 다음 가능한 한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합니다,
하루 일할 양을 다 하고나서 나는 아이들을 보기위해 일찍 집으로 갑니다.
2014년 '펠루자축제' 中 에미넴 공연 보러 (친구들과)시카고로 간 알레이나,휘트니와 헤일리
2014년 8월경 디트로이트 에미넴(&리한나) 콘서트 보러 온 조카 알레이나
롤렉스 시계 일화 -에미넴과 앤더슨의 인터뷰
어려운 시절을 오래 겪어 그런지
돈 쓰는 습관이 없다는 에미넴
"난 나이키에서 신발사는게 사치 가득한 쇼핑"
에미넴 파파라치 사진
에미넴은 악플로 인해 상처입는게 무섭다며
컴퓨터 사용법을 일부러 배우지 않는다.
"그것들(악플)을 보면 아마 금새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될 거다"
에미넴은 인터넷을 대신 해주는 사람을 고용해
트위터나 유투브 채널을 관리하고
에미넴의 친구들로부터 온 이메일도 전달한다.
MTV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샤샤 바론 코헨은 게이 컨셉의 부르노를 연기하며
와이어를 타고 날다가 실수로 에미넴의 얼굴 위에 착지하는데,
에미넴은 화난 표정으로 시상식장에서 나감
하지만 이는 계획된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퇴장한 후 호텔로 돌아온 에미넴은 혼자서
너무 웃겨서 웃고, 티비보면서도 웃으면서 좋아했다고.
원래 퍼포먼스 계획은 패리스 힐튼 무릎위에 떨어지는것이었으나
패리스가 거절하고 에미넴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2000년부터 2009년 동안 최고의 앨범 판매량 가진 아티스트
(SoundScan's Artist of the Decade)
21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이자 랩퍼
Be a king? Think not - why be a king when you can be a God?
(왕이 되라고? 아냐 됐어 - 신이 될 수 있는데 왜 왕이 돼?)
2013년 에미넴에게 1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또다른 곡
Eminem - Headlights
에미넴이 어머니에게 받치는 곡으로
cleanin' out my closet 이 곡을
더이상 부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이젠 어머니를 용서하고
자신의 엄마이기에 엄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또한 에미넴은
어머니의 날에 맞춰 이 MV를 공개했음
-Headlight MV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
I want a new life
새로운 인생을 원해
One without a cause(clean slate)
아무 문제없는 인생을 (깨끗한 백지장같이)
So I'm coming home tonight
그리고서 난 오늘 밤 집으로 돌아올게
Well, no matter what the cost
글쎄,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던
And if the plane goes down
그리고 만약 이 비행기가 추락할지라도
or if the crew can't wake me up
또한 사람들이 날 깨울 수 없다 해도
Just know that I was alright
내가 괜찮았다는 걸 알아줘
And I was not afraid to die
난 죽는게 두렵지 않았어
Even if there's songs to sing
아직 부를 노래가 남았다고 해도
My children will carry me
내 아이들이 나를 이어나갈 거야
Just know that I'm alright
내가 괜찮다는 걸 알아줘
I was not afraid to die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았어
Because I put my faith in my little girls
왜냐면 내 딸들을 난 믿으니까
So I never say goodbye cruel world
그러니 이 잔인한 세상에게 작별인사 따윈 하지 않겠어
Just know that I'm alright
그냥 내가 괜찮았다는 걸 알아줘
I am not afraid to die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아
2014년 에미넴 4만명의 런던 공연 당시
닥터드레가 특별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2014년 닥터드레의 파티 공연 中 피날레를 장식한
에미넴과 닥터드레의 fogot about dre 라이브 공연
에미넴이 살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있는 디트로이트는 '갱스터 도시', '가지 말아야 할 도시' 불린다.
다 깨진 창문에 악에 가득찬 빈민층 흑인들만
남은 도시로 인식되지만, 에미넴은 자신의 고향을 사랑한다.
그 뿐만 아니라
에미넴은 자신의 Marshall Mathers재단을 통해
미시간 디트로이트를 매년 지원 하고 있다.
Marshall Mathers 재단은 기본적으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과 소외계층 및 이 지역 공동체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Marshall Mathers 재단은 남동부 미시간주와 미국에 걸쳐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과 함께 자선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재단은 Gleaners 커뮤니티 푸드뱅크, 디트로이트 어린이들의 캠페인용 옷들,
공동 기반 보호 구역,위기 중재 기관, 미국 적십자 중앙 재해 구호 기금
그리고 힙합 정상 활동 네크워트(the Hip-Hop Summit Action Network),
Ninemillion 단체 등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인 골육종 투명 중이던
17세 소년 게이지는 에미넴이 아이돌이었던
그가 한 번이라도 에미넴을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다.
이런 게이지를 안타까워하던 가족과 친구들은
트위터를 통해 '게이지가 에미넴을 만나게 하자'
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에미넴은 지난
2015년 1월 12일 게이지를 만나기 위해
일요일 오후 5시쯤 직접 차를 몰고
혼자서 게이지의 집을 찾아온다.
(이 만남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진행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에미넴은 2시간정도 머무르며 게이지와
축구와 힙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룬 17살 소년 게이지는
에미넴을 만나고 그 다음 날인
1월 13일 편안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에미넴은 2009년 다시 컴백한 이후,
5년동안 5개 대륙에서 48번 콘서트를 했으며
약 350만명의 전세계의 팬들을 만났다.
- 에미넴 내한공연 당시 -
Whatever I can be to people is fine.
Some people may look up to me.
Some people may consider me a fucking menace.
But I'm grateful for every fan letter I get,
and for every person who says I helped save them.
I don't know, man. I feel like I took a lot of time off.
Not doing shit for those four or five years, how lazy I got –
it's time to get back to doing what I love.
I feel like I've got a lot of gas in the tank.
I just want to make up for letting people down.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던 난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볼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존나게(fucking) 성가신 존재로 여길지도 모르죠.
하지만 팬들에게 내가 받았던 모든 편지들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자신들을 구하고 도와줬다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겠어요. 난 시간들이 많이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4-5년 동안 아무 짓(shit)도 안하고 얼마나 게을렀는지
-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돌아갈 시간입니다.
내 탱크 안에 가스가 많이 생긴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난 그냥 실망시키고 있었던 사람들을 위해 만들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부족한 부분을 수정 및 보완한 글입니다.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