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춘(1513~1577)의 미암집 중에서...
* 나경裸耕
알몸으로 밭갈이를 하는 풍속으로
대전에서 출토된 농경문청동기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함경도, 강원도 일대에 남아 있었다.
<입춘날 알몸 밭갈이를 이야기하다 立春裸耕議>
멀리 변방의 시골 풍속에서 나온 일이 백성들을 괴롭히니
배운이들은 놀라고 뭇사람들은 그러려니 여긴다.
옛날에 태원(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백성들은 개자추로 인하여 중춘(仲春 음력 2월)
한 달 동안 불에 익힌 것을 먹지 못 하도록 시켰는데, (개자추가 불에 타죽자 진문공이 시킨 일)
초거가 병주幷州목사가 되어 백성을 깨우쳐 이 풍속을 고쳤다.
위나라 업鄴에 사는 사람들은 귀신을 좋아하여 해마다 하백에게 아내를 맞도록 빌므로, (강에 처녀를 빠뜨려 바치는 일)
서문표가 수령이 되어 단단히 그 풍속을 고쳤다.
이것은 모두 마음이 어진 군자가 우리에게 어질고 의로운 마음을 채워주고,
온누리 모든 사람의 어둡고 여린 것을 고친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도 왕도와 멀리 떨어져 있다.
사리에 어둡고 귀신과 도깨비에 홀리는 것은 오히려 괜찮지만
말할 나위 없이 가장 해로운 것은 새해에 옷을 벗고 밭갈이 하는 것이다.
매년 입춘(立春)날 아침에 도할사(都轄司)의 토관(土官)이 관청문 길바닥에서
사람을 시켜 나무로 만든 소를 몰아 밭 갈고 씨앗을 뿌리며
농사를 짓는 흉내를 내게 하여 한해의 농사를 점치고 풍작을 빌었다.
그런데 반드시 밭 갈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알몸으로 추위를 무릅쓰게 하니, 이것이 무슨 뜻인가.
오랜 늙은이들이 서로 이르기를, “추위를 견디는 씩씩함을 보여주고, 그 해 따뜻한 상서로움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하는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빼앗을 수 있겠는가.
추운 사막에서 손발을 한번 드러내면 금방 손발이 얼어 터지는데,
더구나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길거리에 서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바람과 서리가 뼈를 쑤시고 몸이 벌벌 떨려서 기침과 고질병을 백에 하나도 면하지 못하니,
이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과 다르겠는가.
어진 마음을 지닌 사람이 이것을 본다면, 어찌 섬뜩하게 두려워 가여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관원에게 물으면, “백성들의 풍속이다.”라고 하고, 백성에게 물으면, “관원이 시켜서 한다.”라고 한다.
대개 이것은 처음부터 사리를 깨닫지 못한 데에서 생기어 마침내 그러려니 여겨 이루진 풍속이 되었다.
6진(함경도)을 둔 지 100여 년 지나오면서
마음이 어진 문관과 무관이 백성의 부모가 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 괴이함을 알지 못 하여 진나라 초거와 위나라 서문표처럼 나서서 맺고 자르지 못 하였다.
아, 한숨이 나온다. 또 가뜩이나 가난하고 추운 땅에 인구가 늘어나지 못 하고
겨울에는 바람과 서리에 넘어지고, 여름에는 물을 건너다 떨어지고, 추위와 돌림병이 또 돌아서 아파 죽는지라
사람 사는 집이 새벽별처럼 드문드문하니
다행히 죽지 않고 남은 사람은 마땅히 어루만져 살게 하기를 어린아이 돌보듯이 해야 할 것인데,
또 어찌 그들을 차마 몰아서 고황(염통밑 명치끝)의 고칠 수 없는 병의 땅으로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목민관(牧民官)들이 허수아비와 같은 큰 잘못을 깨닫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하루아침에 깨닫는다면,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그들이 옷 벗지 않도록 할 뿐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대가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아야 하고,
시골에 유배 와 있으면서 지킬 도리나 확실히 지켜야 할 일인데,
지금 이러한 일을 말하여 장차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하니,
이것은 보통 일에서 벗어납니다.”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마땅히 끼어들지 않아야 할 것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요,
차마 입다물고 넘어가지 못 할 것은 아는 것이 없는 백성들의 풍속이니, 이것이 같지 않습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