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은 허벌나게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이쪽 게시판에 어울리는 음모론이 있다면 이겁니다.
'사실 현재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신기술은 이미 개발이 되었다. 하지만 기득권에 의해 실용화되지 않는 것이다!'
예, 뭐.... 그렇게 보실 수도 있습니다. 우린 항상 언제나 새로운 기술! 놀라운 혁신! 희망찬 미래! 같은 뉴스를 접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릴적에 꿈꾸던 '개인비행기가 집마다 한대씩 있고 텔레포트를 하는 시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면 개인비행기나 텔레포트장치같은걸 사면 기존에 혜택을 보던 업체가 피해를 보잖아요?
....당연히 뻥이죠.
기술 발전은 결코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그 즉시 교체하진 못합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거든요. 우리의 생활 패러다임을 교체할 수 있는 혁명이라도 말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우리가 그냥 편히 앉아서 이루어지진 않거든요.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봅시다. 우리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물을 이용해서 말이죠.
인류의 산업발전에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산업혁명입니다. 인류가 불을 고기 구워먹는데 이용하는게 아니라 보일러를 끓여서 거기서 나오는 증기를 이용해 기계를 움직이는데 써먹었으니까요. 가장 극적인 문명 발전의 계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더이상 인간의 힘을 이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 우리가 잘 알고있는 상투적인 산업혁명에 대한 묘사입니다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이미 인류는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있었고, 대량생산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뉴커먼이 증기기관 만들어다가 푸쉬푸쉬하기 전부터 이미, 한참 전에, 기계를 돌리고 있었죠. 그게 뭐다? 예, 수력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증기기관보다 더 손꼽아줘야 하는 것이 바로 수력을 이용한 시스템입니다. 제분,제철,방적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그것도 꽤 오랫동안 활용되어왔거든요. 고대 로마에서 방앗간은 수력을 이용해 돌렸고, 대륙 건너 중국에선 로마에서 밀 빻는데다 쓰는 수력을 이용해서 풍로를 돌리는데 썼습니다(참고로 수력을 이용한 풍로는 중국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약 1800년 이후에 유럽에서 써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을 통해 생성된 수력을 통해 실을 뽑고 천을 짰습니다. 와 신기해라!
괜히 문명이 강을 끼고 번성한 게 아닙니다. 그냥 마실 물을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라, 교통로와 동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자원이 강이었으니까요. 오랜 역사에서 산업이 발전했던 주요 도시 중, 강을 끼고 있지 않은 도시들이 언제 번성했는지를 보세요.
그럼 증기기관이 나오자마자 이런 수력을 모조리 대체했느냐?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최초로 증기기관이 적용된 것은 제철산업의 원료로 떠오르는 석탄을 퍼내는데 솟아나오는 지하수 퍼내려고 쓰거나, 낙차지점같이 수력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에서 더 큰 수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물을 보충하는 펌프에다 활용하는데 주로 이용했습니다.
확 깨시죠? 참고로 두 활용지점 모두 수력을 또 이용하고 있던 분야였습니다.
그러니까 물로 돌린 힘을 물퍼는데 써서 그 퍼올린 힘으로 물을 세게 흐르게 해서 더 센 힘으로 물을 퍼올려서 더 많은 물을 흐르게 해서....
그냥 증기기관을 돌려서 동력을 뽑는게 아니라 유력증가를 위한 수량 공급원으로서 활용했다는 게 좀 믿기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왜냐면 초창기 증기기관들은 효율성이 꽝이었거든요. 게다가 그 당시에 수력을 이용하는 기술은 이미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한큐에 많은 동력을 얻는 방법이 증기기관으론 불가능(소형화도 그렇지만 대형화시키는데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한데다, 그만큼 큰 장치를 만들 정도의 효율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시설의 효율성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된거죠.
증기기관이 점차 발전하면서 그 활용도가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력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극한으로 개량된 수력은 아직도 우리의 곁에 죽지 않고 살아 숨쉽니다. 예쓰, 땜에서 발전기 돌리는데 쓰이는 수력터빈이 바로 발전되어온 수력활용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결국 수력은 이용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해서 점점 대체되기도 했고, 증기기관이 점점 효율이 높아지면서 유지비도 낮아진 덕에 점점 비중이 줄어들게 되었던 겁니다. 이후 증기기관보다 더욱 효율넘치는 내연기관의 등장으로 증기기관과 수력기관 모두 둘 다 꺼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증기기관이 아예 역사의 뒤편으로 살아있느냐? 아뇨. 증기기관 역시 수력터빈처럼 극한으로 발전된 상태에서 살아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전부다 스팀파워입니다! 왜냐구요? 그냥 대형기관도 아닌 초대형, 그것도 말을 몇만마리 떼로 몰고댕기는 마력싸움에선 증기기관이 가장 압도적인 효율과 내구성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발전소는 전부다 증기 터빈 돌립니다. 석탄으로 내연기관 못돌리...아차, 액화석유가스 있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증기기관의 폭발적인 등!장! 마저도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10마력 20마력 40마력 오오 100마력! 이렇게 증기기관이 쌩쑈를 할 때 옆에선 수력터빈으로 '옛다 천마력' 이러고 앉아있었으니까요.
기존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예시에서처럼 효율성 문제도 문제지만 다음 여건이 필요하거든요.
1. 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교체비용을 감당할 만한가?(그러니까 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향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2. 그 기술이 지금 쓰는 기술보다 효율적인가?(에너지 효율, 환경 오염 등의 측면으로)
3. 그 기술이 지금 쓰는 기술보다 조건이 얼마나 덜 요구되고 더 요구하는가?
4. 지금 그 기술을 당장 필요로 하는가?
사실상 기술 도입의 음모론에 가장 잘 시달리는 자동차 분야에서는 1,2,3,4번 모두가 걸리적거립니다. 특히 4번이 제일 걸리적거립니다!
자동차라는 건 옛날에는 단순한 기계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체계로 고정되었습니다. 운송체계의 핵이죠.
체계가 된 기술을 교체하기 위해선 기반을 아예 뜯어 고쳐야 합니다. 생산은 물론이고 유지하는데 이용되는 모든 시설, 연료 공급체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후달리죠.
1. NO, 아직까진 좀 비싸다.
2. NO, 내연기관의 종합적인 효율(단순한 연료로 생산되는 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에너지를 보존하고 운송하는 것도 포함)이 높다.
3. 자동차를 활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주유소를 대체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4. 아뇨. 지금도 충분히 잘 쓰는걸 ㅋ
대충 이런 문제 때문에 아직 우리는 수소자동차의 시대를 맛보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수소자동차가 모든 걸 대체하기 이전에 놀라운 신기술이 나와서 수소자동차를 발라버리는 경우가 생길지 모릅니다. 물론 하늘에서 갈아만든 공돌이가 내려온다면 말이죠.
사실 기존에 이익을 보던 이들이 현상유지를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막는다는 발상은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대규모의 교체는 물량싸움이며, 물량싸움은 원래 가지고 있는 이들이 지극히 싸우기 쉬운 분야입니다.
플러스로 교체할 때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런 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데다 시장 구조를 재편성하기도 좋습니다.
한마디로 가진자들이 활용하기 굉장히 쉬운 여건이죠.
님들같으면 돈을 좀 퍼부어서 내가 짱먹는 체계를 구축하고 존나 돈 벌어들이는 기회가 있다면 어쩌실래요?
새로운 기술은 언젠가 찾아올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과학은 언제나 발전합니다만 항상 계기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애인을 만들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개발한다던가 하는 순수한 욕망과도 같은 계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