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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요동군 서안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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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hishright
추천 : 2
조회수 : 95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6/19 21:30:33
한나라 요동군 서안평은?

글 : 이덕일 

한나라 요동군 서안평(西安平)이란 곳이 있다. 한중 고대사의 주요 쟁점 지역 중의 하나다. 한나라 요동군 산하의 현인데, 고구려와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던 지역이었다. 나는 꽤 오래 전에 내몽골 파림좌기(巴林左旗)란 곳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저녁 무렵 오토바이를 개조한 세발 택시를 탔는데,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안 기사가 느닷없이 “여기에 고구려 성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른바 강단사학계는 고구려는 지금의 요하를 건너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곳 중에 염난수라는 곳이 내몽골 시라무렌 강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한국 강단사학계의 부동의 정설인 ‘한국사 강역 축소론’에 따라서 ‘믿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택시기사에게 부탁해서 가보니 ‘아! 거대한 토성이 있었다’. 다음날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모두 ‘고구려성’이라고 답했다.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조상 대대로 그렇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귀국해서 사료를 찾아보니 거란족 요(遼)나라 역사를 기록한 『요사(遼史)』 「지리지」에 대답이 있었다. 요나라 수도 상경(上京)이 파림좌기였는데, 『요사』 「지리지」 상경임황부 조에 ‘본래 한나라 요동군 서안평 땅이다〔本漢遼東郡西安平之地〕’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제야 많은 의문과 모순이 한꺼번에 풀렸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조는 “질제·환제 연간(서기 146~167)에 (고구려)가 다시 요동 서안평을 공격해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와 처자를 사로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태조왕이 서기 146년 장수를 보내서 한 일로 나온다. 

이른바 강단사학계는 고구려가 공격한 서안평을 압록강 대안 단동(丹東)으로 비정하고, 대방을 황해도로 비정한다. 그 근거란 단동의 옛 지명 안동(安東)의 안(安)자가 서안평의 안(安)자와 같다는 것 하나뿐이다. 강단사학계의 고대사 위치 비정이 개그콘서트 수준이라는 것은 이제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왜 압록강 대안의 단동을 공격했는데 황해도에 있어야 할 대방령이 죽고 평안남도에 있어야 할 낙랑태수와 그 처자가 사로잡혔는가? 강단사학은 답변이 궁해지자 대방령과 낙랑태수 부처가 안동에 놀러갔다가 발생한 일이라고도 해석했다. 개그콘서트도 문 닫아야 할 수준이다. 

그런데 위의 『후한서』 기사에는 주석이 있는데 “『군국지』에서 말하기를 서안평·대방현은 모두 요동군에 속해 있다(郡國志 西安平, 帶方, 縣,並屬遼東郡)”는 것이다. 서안평뿐만 아니라 대방도 요동군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강단사학계는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황해도가 언제 요동군이 되었는가? 고구려의 국시 ‘다물(多勿)’은 고조선의 옛 강토를 수복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개국 이래 고구려는 한나라를 서쪽으로 몰아내고 고토를 수복했다.한반도 북부의 낙랑군과 대방군? 물론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 후 한 케이블방송의 요청으로 파림좌기를 다시 방문해 박물관장과 인터뷰했다. 관장은 요사에 여기가 요동군 서안평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고구려 성에 대해서도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모두 고구려성이라고 말한다”고 답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북공정 소조의 지침이 파림좌기까지 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 후 이 내용이 방송을 타고 나서 다시 파림좌기 박물관에 가서 고구려성의 위치를 물으니 6, 7명 쯤 되는 박물관 직원들이 동시에 ‘고구려성 없다’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와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역시 ‘고구려성 없다’는 앵무새 같은 답이 돌아왔다. 동북공정 소조의 지침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주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이처럼 사활을 걸고 역사전쟁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한국사 강역축소론’ 따위의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이른바 ‘통설, 정설’로 떠받들면서 이를 비판하면 ‘사이비, 유사’ 따위의 비학문적 용어로 매도하고, 보수·진보에 모두 포진한 언론 카르텔이 반복 재생산하는 구조다. 중국학자들은 북한강역까지 갖다 바치는 강단사학자들을 기특하게 여기겠지만 속으로는 경멸하지 않을까? 영토주권을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역사주권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또 문헌을 뒤지고 답사에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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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acebook.com/newhis19/posts/11380134589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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