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제의 호령 하에 있긴 하되, 법은 한법을 따르지 않고 토착법을 따르고 태수 외 몇몇 고위직은 중국에서 파견된 한족이 맡지만 그 외 대부분의 실무직과 지역 행정망을 운영하는 관리는 죄다 현지인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그저 최고 댓방 하나가 바뀌었을 뿐 별로 바뀐 게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재미있는 지방조직이죠?
헌데 먼 변방의 이민족 지역이 사는 지역은 이런 식으로 통치해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또 현실이죠.
낙랑군은 거기에 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위만 일당이 들어오기 이전에도 이미 대동란을 피해 이주한 한족 이주민들이 꽤 있었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위만 일당이 들어오면서 이런 이주 한족들이 사회지도부가 되고 여기에 현지 토착인 지도자들이 연합하는 형태가 되어 있었다는 거죠.
그렇기에 한무제가 고조선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세우지만 낙랑군 외의 지역은 조기에 죄다 통제력을 상실해 버리는데 반해 이 낙랑군은 오래도록 존속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왜냐? 거기 사회 지도층 인사들 상당수가 옛날에 중국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이었기 때문이예요. 이런 사람들이니 당연히 중국 본토의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죠. 거기에 비하면 나머지 군은 위만이 조선을 접수한 후 새로 정복한 지 얼마 안되는 이질적인 지역이었던 거죠. 그런 지역 사람들이 원격지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말도 안 통하고 풍습도 다른 중원인의 통치를 따를 이유가 없는 거죠.
사실 이전에도 이미 창해군이라는 변군을 설치해 보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나라에 귀부해온 일족을 기반으로 동방에 거점을 마련해 보려 햇던 거죠. 하지만 얼마 유지 못합니다. 중원으로부터 요동과 그 이동지역은 너무나도 먼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현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는 한 아무리 돈을 쏟아 붓고 군대를 주둔시켜도 오래 버틸 수가 없는 거죠.
그럼...
왜 낙랑군이 오래도록 존속했는지 짐작이 가시죠?
중국 본토의 통제를 받는다는 거 빼고는 행정조직이나 사회구조가 원래 그 지역에 존재했던 읍락국가와 별 다를 바가 없는 독자적인 정치체였기 때문입니다. 중원에 변란이 일어나서 황제가 바뀌어도 낙랑은 전혀 신경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심지어는 왕조가... 그것도 북방에서 내려온 오랑캐 추장이 신왕조를 개창해서 새로 태수를 파견하더라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거죠.
현지에서는 그냥 다른 읍락국가와 다를 바가 없는 거였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