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베
베스트
베스트30
최신글
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부러진 뼈는 신경쓰지 않고 성병검진만 했다"
게시물ID :
history_28110
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이온맨킹
추천 :
10
조회수 :
98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7/06/04 00:55:32
[기획-‘위안부’ ③] 일본이 만든 성 노예제의 실상
[미디어오늘
문형구 기자
]
일본이 전시 성노예, 즉 위안부 제도를 만든 것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였다. 일본이 이같은 유례없이 참혹한 범죄를 기획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남아있는 극소수의 문헌들에 비춰볼 때,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전력을 저하시키는 성병을 예방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은 이후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위안부 제도를 더욱 확대하고 체계화시켜 갔다.
▲ 상하이에서 발견된 일본군 직영 위안소 '어메이루 400호' 당시 이름은 ‘일본해군구락부’. 사진출처=상하이저널.
▲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매표소. 사진출처=상하이저널.
출처
http://v.media.daum.net/v/20170603093815964
출처
보완
★
paranormal
2017-06-05 02:26:20
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6&aid=0000087123
비공감 사유를 적어주세요.
(댓글 형식으로 추가되며, 삭제가 불가능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리스트 페이지로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