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왕조에서 석씨 왕조, 그리고 다시 김씨 왕조로... 세번의 왕조교체가 있었죠. 그리고 석씨와 김씨는 외지인이었습니다.
이걸 보면 신라를 고구려나 백제보다 오히려 개방적인 나라라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아는 골품제는 실상은
진흥왕이 자기 가계의 혈통만을 고집해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요.
왜 삼국 중 유일하게 여왕이 등장했을까요?
신라가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여권이 강해서???
아닙니다.
여왕은 남자 후계자가 모두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방계로 왕조를 넘기지 않고 끝까지 권력을 부여잡기 위해 나오는 거라 봐야죠.
삼한일통 전야의 신라 정계는 이런 진흥왕계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아집, 그리고 진흥왕계에 밀려나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한 진지왕계의 집념, 그리고 망국 왕가의 후예로써 원천적으로 출세가 봉쇄된 가야 김씨 가문과의 동맹... 이런 게 서로 어우러지면서 아주 파란만장한 역사가 벌어졌던 거죠.
삼한일통기야말로 가장 계급간의 장벽이 느슨해진 때라 봐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고구려인, 백제인을 받아들여 융합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졌던 시대죠.
우리가 아는 폐쇄적인 신라 사회의 모습은 말기... 진골마저도 운 나쁘면 득난의 이름으로 6두품으로 떨어져야 하는 각박한 시대의 상이라 봐야겠죠. 그리고 그 꽉 막힌 김씨 진골놈들이 다 해 처 먹는 사회는 후삼국시대의 개막으로 산산조각나게 되는 거지요.